
‘고운님 오시는 길’.
찻집 이름도 정겹다.
깊고 그윽한 대추차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고 일어서려는데, 주인이 말을 건다.
“시간 있으시면 와송차 드시고 가셔요?”
‘와송차?’
처음 듣는 이름이라 매우 솔깃하다.
“저기 기와지붕에서 자라는 와송을 채취해 달인
와송차인데, 건강을 챙기려고 온가족이마시고 있
어요?”
찻집 여주인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지붕위에
와송이 자라나고 있었다.

오래된 기와에서만 자란다는 '와송'
오래된 기와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있는 차가 아니라며 무료로 담아 오신다.

'와송차'
베푸는 삶에 익숙한 최부자집 후손 이라선가.
항암과 면역력에 탁월하다는 와송차를 천천히
음미 하면서 벽을 보는데, ‘인연설’이란 글귀가
눈에 번쩍인다.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을 수 없음을 노여워 말고
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고 원망 말고
애처롭기까지 한 사랑 할 수 없음을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렵니다.’

그리고
멋스럽게 여행하는 일.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렵니다’
절절하다.
저 중에 몇 개나 해당되는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로 산다는 건 분명 달콤
한 일이다.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려’ 면 있기도 해야
하니까.

허나,
가진 건 많지 않아도 이 자리에 앉아 차 한 잔 마
시며 自然의 일부가 되는 것 또한 고마운 일이라
여기고.
포근한 휴식과 특별한 추억을 아로새기는 것도
호사 아닌가 말이다.

보고, 듣고, 많이 느껴야 앞으로의 일을 예견할
수 지혜도 생기는 법이니까.

천년의 고택 뜰에 착한 꽃송이 피어올라.
첫댓글 이뿌다. 꽈리에 목화에 매화 자수까지...
내생에 저런 분위기에서 차 마신 건 처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