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상 (精勤賞)
남 도 국
학교를 초등학교 4년 반 중학교 2년 반을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1년 반 동안은 일본 학교에서 배웠고, 중학교 반년 동안은 인민군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일본 학교와 북한 학교를 거쳐왔기 때문에 학교 이야기는 별로 내놓을 게 없는 나는 남의 이야길 듣기만 하며 지내옵니다.
중학교는 어렵게 마련한 공납금을 내고 들어갔는데 석 달 후 6.25 전쟁이 일어나 1950년 6월부터 9월까지 인민군 학교에 강제로 불려가 북한 군가와 헌법을 배웠습니다. 초등학교는 내가 사는 동네의 가까운 울진군 노음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2년째 되든 해 1945년 8월 조국이 해방되었고, 일인들이 물러간 후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교사 부족으로 한 반에 60명 한 학년 4반으로 오전 오후 각 두 반씩 과밀학교가 운영되었습니다.
우리 마을은 앞과 뒤로 큰 강이 흘러 평소에는 큰 돌로 만들어 놓은 징검다리를 이용하여 학교나 읍 마을로 일 보러 오가곤 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어린 학생은 강을 건너 학교에 가기 위험하여 어른들의 지켜보는 중에 옷을 벗어 책보와 함께 머리에 이고 물살이 약한 강 위쪽에서 건너기 시작하여 물살을 타고 강 아래로 건너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4학년 때, 참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물이 많아 강을 건너 학교를 결석할 것 같으면 선생님은 우리 마을 앞 강 건너 제방까지 오셔서 물의 흐름을 살펴보고 우리를 건너오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동네 어른들의 만류에도 우리는 선생님의 격려와 응원에 힘을 얻어 물살 센강을 건너 학교에 갔고 선생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으며 귀가 시는 강물이 줄어 혼자서도 안전하게 귀가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반 60명 학생 중 나의 성적은 중간쯤, 국어나 음악 과목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산술 분야는 하급 수준으로 아무리 애써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4학년 2반 (고) 김기영 선생님은 내가 잘못하는 것까지도 나무라지 않고 대체로 잘 따라 하는 국어와 음악을 잘한다고 칭찬하면서 중점적으로 지도해 주신 참 좋으신 선생님으로 그분 덕택에 나는 지금도 글쓰기 분야에 소질이 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학년말 성적이 반에서 10등 내로 들어, 나의 팔십 년 발자취를 빛나게 한 적이 있으며 그보다 더 자랑스러운 것은 4학년 정근상에 선정되어 학우들의 박수를 받은 일은 8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뻤던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선생님은 홍수만 아니었으면 개근상을 받을 수 있었다며 아쉬워하셨고, 난 그때가 내 학교생활에서 첫 번째며 마지막 큰상을 받은 영광의 날이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요. 가능하면 우리 칭찬하고 박수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군산평생학습관 글쓰기 학우들과 커피 마시며 즐거운 교제를 나누는 시간, 옛날 아주 먼 옛날 꽃 피고 새 울던 애향 울진의 향수를 떠올리며 훌륭하신 고 김기영 선생님을 애절하게 추모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