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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에서 한 발짝 뒤로 서라. / 김학중 목사
원시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와 조직들은 훌륭한 지도자를 열망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지도자의 능력과 인품은 해당 사회 또는 조직의 생존, 발전, 명예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가 중요한 이유도 그 사회의 운명을 결정지을 지도자를 뽑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두 명의 지도자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북한의 다혈질 지도자 ‘김정은’과 일본의 총리 ‘아베 신조’입니다. 이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으며,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위험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와 미사일로 주변 국가들을 위협하고 있으며,
아베 신조 총리는 강제 경기부양책과 함께 극우적인 역사, 외교, 군사정책을 밀어붙이며 주변 국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만일 이들의 위험한 도박이 비극적인 실패로 끝날 경우, 해당 개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잘못된 지도자를 세운 국민들 역시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도자를 잘못 만난 사람들이 당하는 불행과 비극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구약)성경의 6번째 책인 ‘여호수아’를 살펴 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2대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의 활약을 그린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위기상황에서 요구되는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를 잘 이해하는 지도자는 잘못된 선택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공식적인’ 지도자들에게만 유익한 책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을 밝히 비추는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게 행복의 참맛을 가르치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합당한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지도자가 되어야 할까요?
1. 독점하지 말고 계승하라.
‘여호수아’는 매우 절망적인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여호수아 1:1).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모세는 ‘하나님의 종’,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시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즉 모세의 말에는 절대적인 권위가 있었고,
모세가 말한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권위를 입증해주시기 위하여 무려 40년 동안 매일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고,
안식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에는 ‘만나’라는 먹거리가 넉넉히 준비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아우성 치면 하늘로부터 무수한 새떼가 ‘날 잡아 먹으시오’ 하듯 내려왔고, 이스라엘 백성이 목마르다고 아우성치면 사막 한가운데서도 물줄기가 솟았습니다. 아무리 용맹하기로 소문난 민족들도 무기도 변변치 않은 오합지졸 이스라엘 백성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모세가 이끌던 광야생활 40년은 ‘기적이 상식’이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는 모세가 실제 하나님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세 외에 다른 지도자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과 같았던 모세가 죽었습니다!
그것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코 앞에 둔 시점,
즉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투를 벌여야 하는 매우 중요하고 위험한 시기에
자신들이 40년이나 실제적으로 의지하며 살았던 모세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사망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며,
아마도 집단적인 공황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모세의 후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임자가 된 것은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찌감치 모세에게 여호수아를 후임자로 세우라고 명령하셨고,
모세는 사망 전에 자신의 모든 권한을 공식적으로 여호수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 비친 여호수아는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위기를 돌파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는 모세의 일개 부하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여호수아 1:1).
여호수아 역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을 진정한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여호수아에게 불리한 시점에서 그를 지도자로 세우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시지 않으셨을까요?
죽는 날까지도 정정했던 모세가 가나안 정복마저 완성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치 모세의 죽음을 기다리기라도 하셨던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여호수아 1:2).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죽은 이 시점이 새로운 지도자가 나설 최적의 기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일을 하든, 하나님의 일을 하든 간에,
자신의 일을 독점하려고 하지 말고, 그 일을 충실하게 계승,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세상의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때, 인간이 탁월한 점들 중에 하나는
이전의 세대가 이룩한 업적을 딛고 올라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즉, 인간에게는 기존의 사람들이 확보한 지식과 기술을 이해하고,
그 지식과 기술을 기초로 더 유용한 지식과 기술을 개발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문명은 계속하여 ‘업그레이드’,
즉 ‘이전보다 더 나아지고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들은 앞선 사람들의 업적과 전통에 대하여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선임자들이 이룩한 지식과 기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자신만의 스타일’만을 고집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확보한 지식과 기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급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설사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주더라도 막대한 이익을 챙기려고 욕심을 냅니다.
최근 세계적인 기업들이 벌이는 천문학적 금액의 소송들의 대부분이
과도한 탐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모든 것을 ‘독점’하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역사상의 어떠한 천재적인 발명가나 세계적인 연구기관도
기존의 지식과 기술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업적을 이룩하지 못했습니다.
소위 ‘혁명적인 발전’이라는 것도 사실상 기존의 지식과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즉 ‘옛 것을 익히어 새것을 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많은 현대 경영학자들은 지식과 기술을 탐욕스럽게 독점하는 것이
결코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최근에 등장한 경영학적 개념이 바로 ‘오픈 이노베이션’, 즉 ‘열린 혁신’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의 ‘헨리 체스브로’ 교수가 주장이 이 개념은 ‘기업들은 서로에게 유용한 지식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교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세계적인 의료기기 회사인 ‘메드트로닉’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99%를 외부에서 얻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 즉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창조는 ‘유에서 유를 만드는 것’,
즉 ‘기존의 지식과 기술을 수정, 보완, 개선, 재조합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유익한 책은 개정과 증보를 거듭하고, 유용한 물품은 ‘버전(version)’이 높아집니다. 다시 말해, 지속적인 발전을 원하는 조직과 개인은 앞선 사람들의 업적을 잘 이어받아 개선 및 발전시켜야 하고,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또 다시 후임자에게 잘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사라질 때
그 사람의 업무까지 사라지거나 심각한 장애를 입게 된다면
그 조직은 결코 건전하고 발전적인 조직이 아닙니다.
더욱이 교회의 사역들이 어느 특정 개인의 존재여부에 따라 심각하게 요동친다면,
그것은 그 교회가 아직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교회’로서 온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현재 미국의 ‘애플’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스티브 잡스’에 이어 CEO 자리에 오른 ‘팀 쿡’의 경영실적이
좀처럼 호전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IT업계에서는 ‘팀 쿡’이 교체될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팀 쿡’은 ‘스티브 잡스’ 밑에서 10년 이상 경영수업을 하였으며,
‘스티브 잡스’에게 개인적인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애플’사의 실제 경영을 책임져왔던, 유능하고 검증된 후계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였습니다.
막상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자, ‘팀 쿡’의 경영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애플’사가 ‘스티브 잡스’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었던,
즉 회사의 운명이 온통 ‘스티브 잡스’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던 조직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전하고 발전적인 조직은 업무의 계승을 잘해야 합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선임자의 지식과 기술을 잘 이어 받고, 또한 자신의 자리를 이어갈 수 있는 인재들을 계속하여 키워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선임자 모세가 죽었다고 당황하지 말고,
오히려 모세의 신앙, 지식, 경험을 잘 기억하여 이어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역시 자신의 뒤를 이을 믿음의 후계자를 키워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자신의 삶이 끝날 때까지 믿음의 후손을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도 훌륭한 믿음의 계승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더 큰 도화지를 준비하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분명한 목표를 주셨습니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여호수아 1:3-4).
여러분이 이 말씀을 따라 지도를 그려보면 깨닫게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신 영토는 엄청나게 광활한 지역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나안’ 땅보다도 훨씬 더 넓은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이 지역 전체를 차지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 드리면, 많은 분들은 이렇게 질문하실 것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기신 거잖아요?’
또는 ‘하나님께서 미래를 잘못 아신 건가요? 하나님도 잘못 알고 실수하시나요?’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다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믿지 못할 분이거나 불완전한 분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적 사실의 차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능력과 처지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복을 내려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능력과 형편에 따르자면,
그들은 ‘가나안’ 땅을 단 한 평도 차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가나안’ 민족은 이스라엘 백성보다도 더 우수한 철제무기를 지니고 있었고,
그들의 몸집 역시 이스라엘 백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매우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초라하고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만큼 광대한 땅을 약속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전체 지역은커녕
비좁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데조차 성실하고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싸우기가 겁나고 두려워서, 때로는 싸우기가 귀찮아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는 데 소극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조차 완벽하게 정복하지 못했고,
살아남은 ‘가나안’ 민족들은 두고두고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화근이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안 지키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약속을 받을 준비를 온전히 갖추지 못했습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각은 공무원 임용이나 대기업 취직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는 이유도 대기업의 직원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공무원 임용만 되면 다니던 대학도 미련 없이 자퇴할 지경입니다.
물론 대기업의 직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된다는 것이 나쁜 생각은 아닙니다.
훌륭한 인재들이 안정된 직장,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이 왜 나쁘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과감한 도전을 회피하는 젊은이들의 안정지향적인 꿈은
혁신이나 창조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젊은이들이 새롭고 창조적인 일에 용감하게 도전하지 않는 사회는
마침내 현상유지는커녕 세계적인 경쟁에서 한없이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의 정치, 사회,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이스라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창업국가’입니다.
지난 4월 23일, 한 국내언론이 ‘스탠리 피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와 인터뷰를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피셔 총재는 “창업은 유대인의 영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교육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땅이 좁고, 인구가 적으며, 자원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이디어를 통해 산업을 발전시켜왔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기가 무엇으로 창업할지를 항상 고민하는 ‘창업가의 꿈을 꾸는 나라’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볼 것은 바로 무한한 도전정신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현실에 안주하거나 편한 것만 찾지 않고,
적극적으로 땀 흘리며 고생할 각오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다른 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핵심적인 정신 또한 무한한 도전정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엄청난 ‘영적 영토’를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고 예비하신 모든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신뢰성이나 능력에 관계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 즉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도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문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놀라운 복과 은혜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마음껏 복과 은혜를
디자인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인생 도화지’를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인생 도화지에 어떠한 작품을 그리실지 기대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과감하게 도전해보십시오.
마침내 여러분의 인생 도화지가 완성되었을 때,
여러분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을 보게 될 것입니다.
3. 당신에게는 놀라운 권위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지도자의 책임을 지우시며 몇 가지를 강조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승리, 형통 그리고 동행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호수아 1:5, 7, 8, 9).
둘째,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담대한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여호수아 1:6, 7, 9).
최근(4.15) 한 국내 대기업 임원이 미국 LA로 향하던 국제선 항공기 안에서 추태를 부려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습니다.
일단 언론이 대서특필한 내용은
이 임원이 기내에서 조리한 라면이 마음에 안 든다며 여승무원의 얼굴을 잡지책으로 때린 것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비행기 탑승시간 내내 다양한 트집을 잡아 승무원들에게 폭언과 모욕을 일삼았습니다.
해당 항공사는 이 임원을 미 연방수사국(FBI)에 인계하였고,
결국 이 임원은 미국 LA 공항에서 곧장 한국으로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왜 이 임원은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추태를 부린 것일까요?
그 근본적인 원인은 그가 잘못된 ‘권위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그의 소속회사에서는 큰소리치는 임원이었겠지만,
회사 밖에서도 큰소리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그의 소속회사 내부에서도,
그가 부하직원들에게 상식 밖의 모욕을 퍼붓거나 폭행을 행사할 권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임원으로서의 권위는 그에게 맡겨진 직무를 정당하게 행사할 때에만 발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엄청난 복을 약속해주시고, 강하게 격려해주신 것도 마찬가지 원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담대해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여호수아 1:9).
그렇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용기를 가질 이유,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 안에서 담대한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대표할 놀라운 권위를 주십니다.
이 세상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놀라운 복과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눈 앞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앞에 위축되지 말고,
오히려 그 문제들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이 시간 여러분에게 사명과 비전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 보십시오.
이 시간에도 여러분을 응원하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 보십시오.
그리고 그 분을 믿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담대하게 도전하여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천하무적’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