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2 - 위정(爲政) - ⑯ |
1 |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단(異端)을 전공(專攻)하면 해로울 뿐이다.”고 하셨다.
范氏曰: “攻, 專治也, 故治木石金玉之工曰攻. 異端, 非聖人之道, 而別爲一端, 如楊ㆍ墨是也. 其率天下至於無父無君, 專治而欲精之, 爲害甚矣!” 범씨가 말했다. “攻은 오로지 다스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무와 돌, 쇠와 옥을 다스리는 장인을 일러 攻이라 했다. 이단이란 성인의 도가 아닌 것으로서 다른 한 끝을 하는 것인데, 예컨대 양주와 묵적이 이들이다. 이들은 천하를 몰아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는데, 그것만 오로지 다스려서 정밀하게 하고자 한다면, 해가 됨이 심한 것이다.”
新安倪氏曰 周禮考工記 有攻木之工 攻金之工 신안예씨가 말하길, “주례 고공기에, 나무를 다스리는 工(장인)과 쇠를 다스리는 工이 나와 있다.”라고 하였다.
或問有以攻爲攻擊之攻言異端不必甚排者 如何 朱子曰 正道異端 如水火之相勝 彼盛則此衰 此强則彼弱 熟視異端之害而不一言以正之 亦何以祛習俗之蔽哉 觀孟子所以答公都子好辯之問 則可見矣 혹자가 묻기를, “攻자를 공격한다는 것의 攻으로 생각하여, 이단은 반드시 심하게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정도와 이단은 마치 물과 불이 서로를 이기는 것과 같아서, 저쪽이 흥성하면 이쪽은 쇠퇴하고, 이쪽이 강하면 저쪽이 약해지므로, 이단의 해로움을 무르익도록 보고서도 한마디 말로써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또한 무엇으로써 습속의 폐해를 제거한단 말인가? 맹자가 변론하기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공도자의 질문에 대하여 답한 바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異端不是天生出來 天下只是這一箇道理 緣人心不正 則流於邪說 習於彼 必害於此 旣入於邪 必害於正 이단은 하늘이 낳아서 내보낸 것이 아니다. 천하는 단지 이 하나의 道理밖에 없지만, 인심이 바르지 못하면, 곧 사특한 말로 흘러 빠져서 저것에 습관이 들 것이니, 반드시 이것에 해가 될 것이고, 이미 사특함에 들어섰다면, 반드시 올바름에 해를 끼칠 것이다.
問集註云 攻專治之也 若爲學便當專治之 異端則不可專治也 曰 不惟說 不可專治 便略去理會他也不得 若是自家學有定止 去看他病痛却得 누군가 묻기를, “집주에서 이르길, 攻은 오로지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만약 학문을 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오로지 다스려야 하겠지만, 이단이라면 이것만 오로지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단지 오로지 다스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을 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가서 그것을 이해하는 것도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자신의 학문이 정립(定止)되어 있다면, 가서 그 병통을 살펴보는 것은 도리어 괜찮다.”라고 하였다.
楊氏爲我 拔一毛而利天下不爲 墨氏兼愛 至不知有父 如此等事 世人見他無道理 自不去學 양주의 爲我사상은 터럭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묵자의 兼愛설은 아비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라서, 이러한 등등의 일은 세상 사람들이 그것에 이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서, 저절로 가서 배우지 않는 것이다.
慶源輔氏曰 常言一事一件 皆爲一端 異端非聖人之道而別自爲一件道理也 楊氏以爲我爲義而非聖人所謂義 墨氏以兼愛爲仁而非聖人所謂仁 所以爲異端 경원보씨가 말하길, “한 건의 일마다 모두 하나의 端이 된다고 항상 말하는데, 이단은 성인의 도가 아니지만, 별도로 스스로 한 건의 道理로 삼은 것이다. 양씨는 나를 위하는 것을 義라고 여겨서 성인께서 말씀하신 義를 비난하였고, 묵씨는 겸애를 仁이라고 여겨서 성인께서 말씀하신 仁을 비난하였으니, 이 때문에 이단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異端之名 始見於此 孔子所指未知爲誰 老聃楊朱墨翟 皆與孔子同時 特以洙泗之敎方明 其說未得肆耳 或謂孔子不闢異端 非也 如悖德悖禮之訓 已是闢墨 潔身亂倫之訓 已是闢楊矣 서산진씨가 말하길, “이단이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처음으로 보이는데, 공자께서 가리키신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노담, 양주, 묵적은 모두 공자님과 동시대의 사람이니, 단지 洙泗의 가르침이 바야흐로 밝아지려는 때라서 그들의 학설이 극에 달하지 못하였을 따름이다. 혹자는 공자께서 이단을 배척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이는 틀린 것이다. 예컨대, 덕에 어긋나고 에 어긋난다고 하신 가르침은 이미 묵자를 배척한 것이며, 제 몸을 깨끗이 하여 인륜을 어지럽힌다고 하신 가르침은 이미 양주를 배척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楊朱則莊周所謂楊子 居者與老聃同時 墨翟又在楊朱之前 宗師大禹而晏嬰學之者也 호씨가 말하길, “양주는 장주(장자)가 말했던 양자이니, 살았던 것은 노담(노자)과 동시대였고, 묵적은 또한 양주보다 이전 사람으로서, 우임금을 宗師로 삼았고 또한 안영이 따라 배웠던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孔子之時 楊朱未肆 故集註下一如字 然則異端何所指乎 孔子謂鄕原德之賊 孟子謂其自以爲是而不可與入堯舜之道 則鄕原亦異端也 老聃正同時而孔子於禮曰 吾聞諸老聃 則老聃在當時未可以異端目之 今之老子書 先儒謂後人 託爲之蒙莊出而祖 老氏自此而後始爲虛無之祖 而爲異端 不可辭矣 楊子雲曰 非堯舜文王者爲他道 故凡非聖人之道者 皆異端云 신안진씨가 말하길, “공자님의 시대에 양주는 아직 세력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에, 집주에서는 如라는 글자 하나를 적어 넣었다. 그렇다면 이단은 어떤 것을 가리킨 것인가? 공자께서는 향원이 덕을 해치는 도적이라고 말씀하셨고, 맹자는 그것을 일컬어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더불어 요순의 도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였으니, 향원도 역시 이단인 것이다. 노담은 바로 같은 시대였지만 공자께서 예에 관하여 ‘나는 노담에게서 들었다.’라고 말씀하셨으니, 노담은 당시에 아직 이단으로 지목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노자라는 책은, 옛 선비들이 후세 사람들에게 말하길, 이 책 덕택으로 몽현의 장주가 나와서 그를 시조로 삼았으니, 노자는 이때부터 비로소 허무학설의 시조가 되었고, 이단인 것에 대해서는 사양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하였다. 양자운이 말하길, 요순임금이나 문왕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도를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릇 성인의 도가 아닌 것이라면, 모두 이단이라고 운운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 程子曰: “佛氏之言, 比之楊ㆍ墨, 尤爲近理, 所以其害爲尤甚. 學者當如淫聲美色以遠之, 不爾, 則駸駸然入於其中矣.” 정자가 말하길, “불씨의 말은 양주와 묵적에 비하여 더욱 이치에 가깝다. 그래서 그 해가 더욱 심한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마치 음탕한 소리와 예쁜 여색인 것처럼 여겨서 그것을 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점차 그 안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汪氏炎昶曰 程朱之時 儒學亦有流於禪者 故集註有取於程說之痛切 今學者絶口於此 程朱之力爲多 왕씨염창이 말하길, “정자와 주자의 시대에 유학에서도 역시 禪에 흘러 빠지는 자가 있었기 때문에, 집주는 정자의 말씀 중에서 통렬히 끊어냄을 취함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배우는 자들이 이것에 입을 대는 것을 끊어버린 것은 정자와 주자가 힘쓴 것이 많았던 덕분이다.”라고 하였다.
問何以只言佛而不及老 朱子曰 老便是楊氏 孟子闢楊 便是闢老 如隱遁長往不來者 皆老之流 他本不是學老所見 與之相似 누군가 묻기를, “어찌하여 그저 불교만 말할 뿐, 노자에는 미치지 않은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노자가 바로 양씨이니, 맹자가 양주를 배척한 것은 바로 노자를 배척한 것이다. 예컨대 은둔하여 멀리 가서 돌아오지 않는 자들은 모두 노자의 부류인 것이다. 그들은 본래 노자가 본 바를 배운 것은 아니지만, 그와 더불어 서로 비슷하다.”라고 하였다.
楊墨只是硬恁地做 爲我兼愛做得來也 淡不能惑人 佛氏最有精微動人處 初見他說出自有理 從他說愈深愈害人 問佛氏所以差 曰 劈初頭便錯了 如天命之謂性 他把這箇便都做空虛說了 吾儒見得都是實 양주와 묵적은 그저 억지로 이렇게 한다면, 나만 위한다는 것과 똑같이 사랑한다는 것도 해낼 수 있는 것이니, 담백하여 사람을 미혹시킬 수 없다. 불교에는 정밀하고 미묘하게 사람을 움직이는 부분이 제일 많이 있으니, 그 말하는 것을 처음 들으면 저절로 이치가 있기 때문에, 그 말하는 것을 따라 깊이 들어갈수록 사람에게 해가 더욱 많아지는 것이다. 누군가 묻기를, “불교가 이치에 어긋낫다는 까닭이 무엇인가요?”라고 하였다. 말하길, “첫머리를 쪼개면서부터 잘못되었다. 예컨대 天命을 일러 性이라 말하는데, 그들은 이것을 모두 空虛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 유학에서는 보아서 터득한 것이 모두 실질적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勿軒熊氏曰 韓愈云 佛者夷狄之一法 自後漢時流入中國 其初不過論緣業以誘愚民而已 後來却說心說性 雖聰明之士 亦爲之惑 學者不可不力察而明辨也 물헌웅씨가 말하길, “한유가 이르길, 佛敎라고 하는 것은 일개 오랑캐의 법이니, 후한 시대부터 중국에 유입되었는데, 그 처음에는 인연과 업보를 논함으로써 우매한 백성을 유혹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었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마음과 性을 말하여서 비록 총명한 선비라도 또한 그것에 미혹되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배우는 자라면 힘써 살펴서 밝게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程子之時 名公高材 皆爲佛氏之言所陷溺 惟其近理所以害甚 集註采此條而中庸序亦曰 老佛之徒出 則彌近理而大亂眞矣 皆所以闢異端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정자의 시대에는 유명한 재상이나 높은 재주를 가진 사람도 모두 부처의 말에 빠져들었는데, 오직 그것이 이치에 가까웠기에 해가 심했던 것이다. 집주에서 이 구절을 채록하였지만, 중용의 서문에서도 역시 ‘노자와 부처의 무리들이 나오자, 이치에 더욱 가까워서 진리를 크게 어지럽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이것들 모두 이단을 배척하기 위한 것들이다.”라고 하였다.
茶山曰: “孔子之時, 老ㆍ莊ㆍ楊ㆍ墨未立門戶. 非如後世三敎鼎立, 出奴入主, 則孔子所指, 非謂是也.” 다산이 말했다. “공자의 시대에는 노자, 장자, 양주, 묵자가 아직 문호를 세우지 않았으니, 후세의 삼교(유불선)가 솥발같이 서서, 나가면 노비가 되고 들어가면 주인이 되는 것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가 가리키는 바는 이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正義曰, 此章禁人雜學. 攻治也. 異端謂諸子百家之書也. 言人若不學正經善道 而治乎異端之書, 斯則爲害之深也. 以其善道有統, 故殊塗而同歸, 異端則不同歸也. 정의에 이르길, 이 장은 사람들에게 잡학을 금한 것이다. 攻이란 다스림이다. 이단이란 제자백가의 책을 일컫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올바른 경전과 善한 道를 배우지 않고서, 이단의 책을 공부한다면, 이것은 해가 됨이 깊다고 말한 것이다. 그 선한 도로써 통솔함이 있기 때문에, 길은 서로 다르지만 귀결점이 같지만, 이단이라면 귀결점이 같지 않은 것이다.
按中庸孔子曰, 索隱行怪, 後世有述焉, 吾弗爲之矣. 子夏曰, 雖小道, 必有可觀者焉, 致遠恐泥, 是以君子不爲也. 所謂索隱行怪, 所謂小道, 卽異端也. 君子止於不爲, 若夫黨同伐異, 必至是非蜂起, 爲人心世道之害, 故夫子深戒之也. 살펴보건대, 중용에서 공자가 말하길, 은미한 것을 찾고 괴상한 것을 행하면 후세 사람들이 전술함이 있겠지만, 나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자공이 말하길, ‘비록 작은 道라 할지라도 반드시 여기에 볼만한 것이 있지만, 멀리 이르는 데에 발목 잡힐까 두려우니,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작은 도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索隱行怪나 이른바 小道는 곧 이단인 것이다. 군자는 행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지, 만약 같은 사람이면 무리 짓고 다른 사람이면 정벌한다면, 반드시 是非가 벌떼처럼 일어나 人心과 世道에 해가 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니, 그러므로 공자께서 이를 깊게 경계하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