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46] 김상철 (金相哲) - 다윗의 사명 받고 해외선교 일선에 3. 협회 창립에 참여하는 영광 수복 후 환도하여 1954년 1월 하순에, 연희 전문 후배인 이창환씨, 그리고 선생님의 일본 유학 동창인 엄덕문씨와 연결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정부 공무원으로 있을 때였다.
대구에서 옥세현 할머니께 내린 계시와 하늘의 음성을 접하고서 아무 의심 없이 연결이 되었다. 더구나 6.25동란 중 체험한 영적 역사는 더욱 쉽게 뜻과 연결되게 했었는지 모른다. 유효원, 이창환씨와 함께 서울에서 선생님을 중심하고 열심히 영문 전도지도 만들고 원리말씀 번역에 진력했었다. 1954년 5월 1일경 선생님께서 때가 되었음인지 우리들을 모아 놓고 하늘이 내리신 3가지 단체 이름을 써주시면서, 그 가운데서 하나를 택해야 된다고 하셨다.
그중 제일 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한자 11개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였고, 다른 2개는 우리들이 이해조차 못 할 어렵고도 굉장한 이름들이었다. 5월 3일에 한문과 영문으로 간판을 써서 성동구 북학동, 소위 ‘세대문’ 집에 걸었지만 정식 협회 창립일은 1954년 5월 1일이다. 협회 명칭을 번역함에 있어서 ‘神靈(신령)’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두고, ‘spritual’이냐, ‘holy spirit’이냐에 대한 의견이 있었으나, 많은 사려 끝에 ‘holy sprit’으로 정했다. 이는 3위일체 기성교회 교리의 성신과 혼돈이 되기 쉬웠으나, 뜻은 ‘Spritual Association’과 같은 것으로 알고, 그렇게 번역을 했다. 그리고 간판 밑에는 서울교회(Seoul Church)라고 작은 간판을 붙였다.
‘세대문’ 집에서 정식으로 통일교회가 발족되고, 이곳이 우리 통일운동의 뿌리가 된 것이다. 그때는 물론 부산, 대구에 식구가 있었으나, 서울에 있었던 6명(선생님, 유효원, 김상철, 이창환, 유효민, 박정화)을 중심으로 발족시켰다. 또 창립 시 그 자리에 참석은 안 했으나 대구에서 올라온 강현실 전도사가 협회 창립 당시 서울에 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나의 천적 사명에 대해서 옥세현 할머니를 통해서 하늘에서 내리신 말씀을 지금까지 늘 마음속에 간직해오고 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1954년 2월 대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늘은 옥세현 할머니를 통해서 “상철아! 30년간 너를 훈련시키고 신앙과 종교적 체험을 넓히도록 한 것은 이 한곳에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다원이다. 싸워서 승리해야 하며, 너는 해외 개척 선교사로 일해야 할 사명이다”라는 말씀을 내려 주셨다.
이러한 뜻의 말씀을 받고 대구에서 새벽에 비몽사몽간 선생님을 뵙고 손을 잡았을 때는 전기가 통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이 영적 체험 후부터 선생님이 누구시며, 나의 사명이 무엇이며, 앞으로 해외로 진출하여 하늘의 뜻 전파를 해야 할 의무 같은 그 무엇을 느꼈다. 개척자로서 세상과 싸워, 다윗이 골리앗을 쳐서 승리하듯 사탄 세계에서 기필코 다윗과 같은 승리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옴을 다지게 되었다.
대구에서 영적 경험 후 3개월 만에 선생님을 처음 직접 뵈올 때 환상에서 보았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유효원씨로부터 원리말씀을 처음 듣고서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렇게 1954년에 뜻을 접한 이후 오늘까지 많은 고난의 길이 있기는 했지만, 하늘의 보호하심 가운데 뜻길을 가고 있음에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