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속담 가운데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들이 많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 줍고
꿩 먹고 알 먹고....
꿩 먹고 알 먹고란 말이 어떤 배경속에서 나왔을까? 배고픈 시절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즐거운 일이 겹쳐 생긴 경사감이지만 꿩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일가족 몰살(?)을 당한 비참한 상황이다.
잠시 그 속에 담겨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원래 꿩이란 놈은 겁이 많아 조그만 인기척에도 제 살길을 찾아 멀리 도망간다. 그런데 알을 품고 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알을 품었을 때는 사람이 다가가도 잘 도망가지 않는다. 왜 도망가지 않고, 그 알을 계속 품고 있을까?
그 작은 미물도 자기 자식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숭고한 사랑을 품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죽더라고 너를 지키리라. 머리가 나쁘면 흔히 꿩대가리라고들 하지만, 그 작은 꿩의 생각속에 만물의 영장이라고도 하는 인간마저도 왜면하기 쉬운 그 크고 엄청난 사랑, 자아 희생적 사랑이 들어 있을까?
그것은 꿩, 스스로 지어먹은 마음이라기보다 생명을 사랑하는 창조주의 마음이 작은 미물 속에도 깃들어 있는 것이 분명할게다. 아! 자기의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그 한없는 사랑, 그 사랑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
콜럼버스는 계란을 세우려고 애를 쓰다 결국 계란을 깨워서 세워버리고 잘 했다고 큰 소리를 쳤다.
계란을 세우려 애쓰지 마라. 왜냐하면 그것은 누워있도록 만들어진 창조주의 섬세한 배려와 사랑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왜 계란이 동그랗지 않고 타원형일까?
신비1. 둥지 밖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계란속에 담긴 타원형
그것은 알을 보호하려는 창조주의 설계이다.
타원형의 알은 쉽게 굴러갈 수 있지만
타원형의 알은 앞 코의 모서리 덕분에 구르게 되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고
다른 알과 부딪혀서 깨질 일도 없다.
신비2. 알을 쉽게 낳기 위해 타원형으로 창조되었다.
사실 알의 내용물의 질량이 같다면 구형의 동그란 알이 타원형의 알보다 크기가 작다.
표면적 또한 작아 난각의 주요성분인 탄산칼슘도 더 적게 든다.
그러나 구형의 알보다 세로의 길이는 길고 가로의 길이가 짧은 타원형은 낳기가 더 수월하다.
산란 과정에서 달걀이 산도로 향할 때 타원형 알의 앞 코가 산도의 입구 쪽으로 회전을 하기 때문이다.
포유류가 머리부터 태어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신비3. 어미 닭이 알을 잘 품기 위해 타원형이 되었다.
만약 달걀이 사각형이거나 탁구공처럼 완전한 구형이라면 어미 닭이 알을 잘 품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구형의 알은 어미 닭의 무게 때문에 깨질 확률도 높아진다.
사각형의 알 또한 이리저리 돌려가며 고르게 품기가 어렵다.
타원형 알은 이리 저리 굴려도 어딘 가에 부딪힐 가능성이 적고
어미 닭의 무게가 분산되어 깨지지 않는다.
작은 계란속에 담겨있는 창조주의 사랑은 여기서도 거치지 않는다.
신비4. 껍질의 강도의 신비
품을 땐 단단, 부화 땐 병아리도 깨는 달걀의 신비
새의 알은 당연해 보이지만 그 기능은 신비롭고 구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미가 알을 낳을 때, 수정란과 배아의 영양분을 담은 알 주머니는 난관을 지나면서 순식간에 단단한 탄산칼슘 껍질로 굳는다. 자연계에서 가장 빠른 광물화 과정이다. 낳은 알의 껍데기는 아주 얇지만 어미가 올라타 품어도 깨지지 않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 하지만 배아가 자라 새끼가 깨어날 때쯤이면 연약한 부리의 돌기로도 깰 수 있을 만큼 약해져 있다. 알껍데기 구조의 비밀을 분자 차원에서 규명한 연구가 나왔다.
신비5. 심지어 계란을 깨트려보면 그 위에 있는 공기주머니 마저도 그냥 모자라서 생긴 게 아니다. 알이 병아리가 되면서 공기주머니의 그 공기로 첫 숨을 쉰다고 한다. 마치 배가 난파될 때, 공기가 있어 그곳에 가면 살 수 있는 에어포켓처럼 생명을 살리는 신비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잘 아는 지인 한 분이 겨울철 있었던 시골부엌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추운 겨울날 어미닭과 병아리들이 추우니 나뭇짐이 재어져 있는 아궁이 앞에 모여 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 바람이 몹시도 불어 아궁이에서 나온 불똥하나가 나뭇짐에 붙어서 다 타버렸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이 발견했을 때는 나무와 함께 타죽어 있는 어미닭의 가엷고 처량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불타죽은 어미 닭의 품속에서 병아리들이 기어 나오는 게 아닌가?
바로 그것이 십자가의 사랑이다.
우리의 모든 저주, 슬픔을 다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은 당신이 창조한 만물들의 가슴속에 가득하다.
성경속의 그 위대한 복음의 선포는 사건 사건마다 가득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어디에서 이토록 존귀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으랴!
누가 나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
오직 주님의 사랑
오직 주님의 사랑, 귀하고 놀라운 사랑!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살길을 얻었도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5)
이 세상의 모든 속죄양의 죽음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킨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하늘을 날던 꿩을 요즘은 사육을 한다.
그 방법이 참 신기하다.
꿩에게 안경을 씌워서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하면,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사탄 마귀는 오늘날 우리의 마음의 사로 잡는 세상의 온갖 재미있는 거리들을 통하여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주님이 오실 때 하늘 그 영광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이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눅 21:28)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1-14)
https://youtu.be/u9aGA6PYf_s
https://youtu.be/OE77nLYTWUU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 1173번의 헌혈
https://youtu.be/tJ5VOJZXLzo
https://youtu.be/u14HTsc3JBw
https://youtube.com/shorts/daL9-YEgb7M?si=9VX80z6_M7gNoR-y
https://www.youtube.com/shorts/WHoss10xXfk?feature=share
https://youtu.be/yu_ZgsEk8M0?list=PLx0S-BH6AEXhqALYArUmxpp3cF0xyjVI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