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게 아니라
숨으로 사람을 만드신 게 맞다.
공기처럼 가벼웠던 여인.
"나와 결혼해 주시오."
이렇게 될 줄 알고도
미카엘은 가브리엘라에게 청혼했다.
결혼 전부터 화재사고로 폐의 70% 기능을 잃어
산소줄에 의지하여 나머지 30%에 대롱 대롱 매달려 살았던 여인.
한 번의 들숨에 고통받는 자를 위하여
한 번의 날숨에 죄인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봉헌해 가며 십여년을 버텼던 여인.
도저히 임신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기도의 힘으로 기적적으로 요셉을 잉태했고
이제 아빠보다 더 키가 큰 대장부로 키워놓았다.
복사자모회 활동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요셉을 복사로 만들어 신앙심을 북돋우어 주었다.
" 너 꼭 사제 되야 해."
" 엄마, 어린 시절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지만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을 수 있잖아?"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은 조금 배짱을 부려본다.
숨도 잘 쉬고,먹기도 잘 하고,걷기도 잘 하는 나는
가브리엘라 앞에만 앉으면 졸고 있는 다섯처녀 중의 하나였다.
숨도 못 쉬면서, 콧줄을 끼워 잠도 잘 못자면서 그녀는 늘 깨어있었다.
봉성체를 위해 3층 계단을 헉헉대고 올라온 일행에게
"산소줄 빌려드릴까요?" 농담하는 여유.
먹지 않고 냉장고에 굴러 다니는 과일쨈을 어떻게 처치할 지 모르겠다는 내게
"요플레를 만들어 섞어 먹어버리세요." 하는 기막힌 살림의 지혜.
결혼 시절의 그녀는 정말 예뻤다.
계란형의 얼굴에 팔등신.
어느 레지오 단원의 협조단원으로서 하루 종일 굴린 묵주알이 다 닳았으리라.
수줍은 목소리로 "내 마음은 주님의 작은 그릇" 성가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을 때
정말 예쁘고 작은 그릇, 소리없는 작은 꽃이라는 느낌이었다.
올 겨울을 넘길 수 있을까 마을에서 염려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병실과 중환자실을 번갈아 가는 그녀에게 아들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넘쳐났다.
그래서 숨을 더 질기게 끌고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다.
중환자실에 있으면서도 전화를 잘 받기에,거기 계신 분들은 거의 의식이 희미하던데 어떻게 그렇게 전화를 잘 받았냐고하니 "나이롱환자잖아."하면서 입원실에서 밝게 웃더니만, 며칠이 안되어 다시 중환자실.
수면주사를 놓지 않으면 숨쉬기 더 힘들고,손발을 묶지 않으면 고통에 몸부림쳐 다친다고 침대에 사지를 묶어 놓은 모습이란. 십자고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잠든 것인지 의식불명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수면제 때문이라면 혹시나하고 다음날 면회시간에 다시 갔다. 면회방문객들을 위해 수면주사를 잠시 보류해서 간신히 의식은 깨어 있었다. 눈을 확실히 뜨지는 못했지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물을 달라고 혀를 움직이기도 했다.
그것이 생전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2014년 1월 14일 화요일 10시)
목에 숨구멍을 뚫을까 말까 병원측과 걱정어린 논의를 하더니.
드디어 뚫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2014년 1월 18일 12시 30분에 그간의 고통을 모두 멈추고 하느님 품으로 안겼다.
2013년 8월 15일 성모승천일에, 그토록 빌어왔던 남편의 입교와 세례를 완성해 자신의 이름(가브리엘라)처럼 천사의 이름(미카엘)을 선사하고, 오늘 "다 이루었다."며 이승을 떠났다.
예수님처럼 죄없었던 이 여인이 왜 그리 큰 고통을 받아야 했는 지 몰랐었다.
가브리엘라는 11평 집의 2평 방 한쪽에서 늘 지구의 모든 죄인을 위해 기도했다.
공동번역성서가 천주교주교회의에서 발간한 새성서로 바뀌었음에도
"번역한 문구는 달라졌을 지 몰라도 하느님 말씀은 같은 거예요." 하던 그녀.
새성서를 하나 사주고 싶었던 서원을 채우지도 못했다.
난데없는 귤 한 상자.
자기가 살던 빌라의 다른 동에 이사한 나에게 화장지나 비누 사서 방문하지 못한 대신 인사하는 거라고
갑자기 지인을 통해 맛있는 유기농 제주감귤을 보내왔다.
달라이라마가, 모든 말, 행동에는 서명이 들어있다고 하더니
가브리엘라의 모든 말, 몸짓, 행동에는 정말 사랑과 겸손과 유머와 희생의 향기가 스며 있었다.
분향실에 걸린 영정사진이 정말 멋지다.
젊고 건강한 시절의 드높은 기상이 엿보이는 사진이다.
연도를 바치면서도 노랫가락이 아주 편안하게 흘러나온다.
미카엘라는 분명히 그녀가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고 유족을 위로한다.
마감이 있어야 예술가는 끼를 발휘하고
죽음이 있어야 사랑이 소중하다.
가브리엘라. 고마워. 사랑해. 잘 가. 걱정마. 또 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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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 권금자 가브리엘라.- 상주 오은석
분향: 동국대병원 장례식장 19호실
입관: 2014.1.19일(일) 10시
출관: 2014.1.20일(월) 9시
장례미사: 2014.1.20일(월) 10시 풍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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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동성당 61구역에서 2012년 풍동관할로 이사.
첫댓글 꼭 하고 싶은말이 있었는데, 사랑한다고..
부디 하느님품에서 마음껏 숨을 쉬고, 자유롭게 날아다니길 바래요.
가브리엘라 벌써 보고싶어지네요.
안으면 한움큼도 안되었던 그녀지만,
마음만큼은 예수님처럼 따뜻했던 가브리엘라.
이밤, 은총이란 은총은 다 받아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음짓던 마지막 모습 떠올리며..
가브리엘라. 사랑해요.
(밥보님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권가브리엘라 영원원한 안식을 누리소서....사랑합니다....
하느님 품으로 가셨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님 고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주님 가브리엘라에게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주님 가브리엘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방금장례미사하고 왔는데....
요셉이가 청년스런 모습으로 엄마의 영정을 모시고 있어서 한편으로 다행스럽게 느껴졌어요.
마지막 가는 관에 손을 대고
"잘 가시오"라고 속으로 인사를 하니
그 작은 목소리로 "신부님 고맙습니다".라고 하는듯 하여 찡하게 느껴습니다.
주님의 축복처럼 하얀 눈꽃이
당신가는날 아침길에서 당신을 맞으려하는 듯합니다.
편안히쉬시길....
그간 가브리엘라에게 숨은 은인들이 정말 많았구나하는 것을 장례미사에서 느꼈습니다. 하늘에서 이 분들을 위해
주님께 전구해주리라 믿으며 편안히 하느님 품에 쉬시기 기도합니다.
어느 새벽,
세상의 모든 만상이
숨 고르듯 멈추어져 있을때,
나는 내 주위에 성녀 하나가
있었음을 알았다!
깨어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군요. 그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브라함품에서 눈물을 닦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