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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5월 (1596년 5월)
557
5월 초1일 (정묘)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5월 27일]
558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한 번 목욕했다.
559
5월 2일 (무진) 맑다. [양력 5월 28일]
560
일찍 목욕하고 진으로 돌아왔다.
561
총통 두 자루를 부어 만들었다. 조방장 김완(金浣) 및 조계종(趙繼宗)이 와서 봤다.
562
우수사가 김인복(金仁福)의 목을 베어 효시했다.
563
이 날은 공무를 보지 않았다.
564
5월 3일 (기사) 맑다. [양력 5월 29일]
565
가뭄이 너무 심하다. 근심되고 괴로운 맘을 어찌 다 말하랴! 공무를 보지 않았다.
566
경상우후가 와서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저물어서 들어왔다.
567
총통 두 자루를 녹여 만들었다.
568
5월 4일 (경오) 맑다. [양력 5월 30일]
569
이 날은 어머니 생신인데 헌수하는 술 한 잔도 올려 드리지 못하여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나가지 않았다.
570
오후에 우수사가 사무보는 집에서 불이 나서 다 탔다.
571
이 날 저녁에 문충공(文村公)이 부요(富饒)에서 왔다.
572
조종(趙琮)의 편지를 가져 왔는데, 조정(趙玎)이 4월 초하루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슬프고도 애달프다.
573
우후가 앞산마루에서 여귀(제사 못받은 귀신)에게 제사지냈다.
574
5월 5일 (신미) 맑다. [양력 5월 31일]
575
이 날 새벽에 여귀에게 제사를 지냈다.
576
일찌기 아침밥을 먹고 나가 앉아 있고, 회령포만호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여러 장수들이 와서 모였다. 그대로 들어가 앉아서 위로하고 술을 네 순 배를 돌렸다. 경상수사가 술이 거나하게 취했으므로 씨름을 시켰더니, 낙안군수 림계형(林季亨)이 으뜸이다.
577
밤이 깊도록 이들로 하여금 즐겁게 마시고 뛰놀게 한 것은 내 스스로에게 즐겁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생한 장병들의 노고를 풀어 주고자 한 것이었다.
578
5월 6일 (임신) 아침에 흐렸다가 저녁나절에 큰 비가 왔다. [양력 6월 1일]
579
농민의 소망을 흡족하게 채워주니 기쁘고 다행한 마음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580
비가 오기 전에 활 대여섯 순을 쏘았다. 비가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581
땅거미질 무렵 총통 만들 때에 쓰는 숯을 쌓아두는 창고에 불이 일어나 홀랑 다 타버렸다. 이는 감독관(監 官) 놈들이 삼가지 않은 탓이다. 새로 받아들인 숯에 묵은 불이 있는지 살피지 않아 이런 재난을 보게 된 것이다. 참으로 한탄스럽다.
582
울(蔚)과 김대복(金大福)이 같은 배로 나갔다. 비가 엄청 나게 쏟아져 잘 갔는지 못 갔는지 모르겠다. 밤새도록 앉아서 걱정했다.
583
5월 7일 (계유) 비가 내렸다. 저녁나절에 개었다. [양력 6월 2일]
584
이 날 걱정한 것은 울(蔚)이 가다가 잘 도착했는지 아닌지였다. 앉아서 밤새도록 걱정하고 있을 적에 사람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에 열고서 물어보니, 이영남(李英男)이 들어왔다. 불러 들여 조용히 지난 일을 이야기했다.
585
5월 8일 (갑술) 맑다. [양력 6얼 3일]
586
아침에 이영남(李英男)과 함께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봤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다.
587
몸이 몹시 불편하여 두 번이나 구토했다.
588
이 날 영산 이중(李中)의 무덤을 파낸다는 말을 들었다.
589
저녁에 조카 완(莞)이 들어왔다. 김효성(金孝誠)도 왔다. 비인현감(신경징)이 들어왔다.
590
5월 9일 (을해) 맑다. [양력 6월 4일]
591
몸이 몹시 불편하다. 이영남과 함께 서관(西關: 황해도와 평안도)의 일을 이야기했다.
592
초저녁에 비가 뿌리더니 새벽까지 왔다. 부안 전선에서 불이 났으나, 심하게 타지 않았다니 다행이다.
593
5월 10일 (병자) 맑다. [양력 6월 5일]
594
나라제삿날(太宗의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몸도 불편하여 종일 끙끙 앓았다.
595
5월 11일 (정축) 맑다. [양력 6월 6일]
596
새벽에 앉아서 이정(李正)과 함께 이야기했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597
비인현감 신경징(申景澄)에게 기일을 어긴 죄로 곤장 스무 대를 쳤다. 또 순천 격군과 감관 조명(趙銘)의 죄를 곤장쳤다.
598
몸이 불편하여 일찍 들어와 끙끙 앓았다.
599
거제현령 ∙ 영등포만호는 이영남(李英男)과 같이 잤다.
600
5월 12일 (무인) 맑다. [양력 6월 7일]
601
이영남(李英男)이 돌아갔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신음했다.
602
김해 부사(白士霖)의 긴급보고가 왔는데
603
"부산에서 왜놈에게 붙었던 김필동(金弼同)의 편지(告目)도 온 것에도 풍신수길이 비록 정 사(正使)는 없다지만 부사(副使)가 그대로 있으니, 곧 화친하고 군사를 철수하려고 한다"
604
고 했다.
605
5월 13일 (기묘) 맑다. [양력 6월 8일]
606
부산의 허낸만(許乃隱萬)의 편지(告目)가 왔는데,
607
"가등청정이란 놈이 벌써 초10일에 그의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갔고, 각 진의 왜놈들도 장차 철수해 갈 것이요, 부산의 왜놈은 명나라 사신을 모시고 바다를 건너 가려고 아직 그대로 머물고 있다"
608
고 했다. 이 날 활 아홉 순을 쏘았다.
609
5월 14일 (경진) 맑다. [양력 6월 9일]
610
김해부사 김사림(白士霖)의 긴급 보고 내용에도 허낸만(許乃隱 萬)의 편지(告目)와 같다. 그래서 순천부사에게 통보하여 그로 하여금 차례로 통보하게 했다.
611
활 열 순을 쏘았다. 결성현감 손안국(孫安國)이 나갔다.
612
5월 15일 (신사) 맑다. [양력 6월 10일]
613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우수사는 오지 않았다.
614
식사를 한 뒤에 나가서 앉아 있다가 들으니 한산도 뒷산 마루로 달려 올라가 다섯 섬과 대마도를 바라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말을 타고 올라가서 이를 보니 과연 다섯 섬과 대마도가 보였다.
615
저녁나절에 작은 개울가로 돌아왔다. 조방장 ∙ 거제현령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날이 저물어서야 진으로 돌아왔다.
616
어두워서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서 잤다. 밤바다에 달은 밝고 바람 한 점 없다.
617
5월 16일 (임오) 맑다. [양력 6월 11일]
618
아침에 송한련(宋漢連)의 형제가 물고기를 잡아 왔다.
619
충청우후(원유남) ∙ 홍주판관(박륜) ∙ 비인현감(신경징) ∙ 파지도권관(송세응) 등이 왔다. 우수사(이억기)도 와서 보고 돌아갔다.
620
이날 밤 비가 많이 올 것 같더니 한밤에 비가 왔다. 이 날 밤 정화수(井花水)를 마시고 싶었다.
621
5월 17일 (계미)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6월 12일]
622
농사에 아주 흡족하다. 점을 쳐보니, 풍년이 들것 같다.
623
저녁나절에 영등만호 조계종(趙繼宗)이 들어와 봤다.
624
혼자 읊조리며 수루에 기대어 있었다.
625
5월 18일 (갑신) 비가 잠깐 개긴 했으나, 바다의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양력 6월 13일]
626
체찰사의 공문이 들어왔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나가 앉았다가 활을 쏘았다.
627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 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그러나 진지를 전보다 줄어들었다고 하니 걱정되어 눈물이 난다. 봄철 누비옷을 가지고왔다.
628
5월 19일 (을유) 맑다. [양력 6월 14일]
629
방답첨사(장린)가 모친상(母喪)을 입었다는 말을 듣고 우후를 가장(假將)으로 정하여 보냈다.
630
활을 열 순을 쏘았다. 땀이 온 몸을 적셨다.
631
5월 20일 (병술) 맑고 바람도 없다. [양력 6월 15일]
632
대청 앞에 기둥을 세웠다.
633
저녁나절에 나가니 웅천현감 김충민(金忠敏)이 와서 봤다. 양식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벼 두 휘(스무말)을 체지(영수증)로 써 주었다.
634
사도첨사가 돌아왔다.
635
5월 21일 (정해) 맑다. [양력 6월 16일]
636
나가 앉았다가 우후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637
5월 22일 (무자) 맑다. [양력 6월 17일]
638
충청우후 원유남(元裕男) ∙ 좌우후 이몽구(李夢龜) ∙ 홍주판관 박륜(朴崙)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639
홍우(洪祐)가 장계를 가지고 감사(監司)에게 갔다.
640
5월 23일 (기축)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6월 18일]
641
충청우후 등과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642
아침에 미조항첨사 장의현(張義賢)이 교서에 숙배한 뒤에 장흥으로 부임했다. 춘절(春節)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643
이 날 밤 열시쯤에 땀이 예사롭지 않게 흘렀다. 이 날 저녁 새 수루의 지붕을 다 잇지 못했다.
644
5월 24일 (경인) 아침에 찌푸린 걸 보니 비가 많이 올 것 같다. [양력 6월 19일]
645
나라제삿날(文宗의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저녁에 나가 활 열 순을 쏘았다.
646
부산 허낸만(許乃隱萬)의 편지(告目)가 들어왔다.
647
"좌도의 각 진의 왜놈들이 몽땅 철수하고, 다만 부산에만 머물러 있다"
648
고 했다.
649
명나라 수석 사신이 갈려서 새로 정해진 사람이 온다는 기별이 22일 부사에게 왔다고 한다. 허낸만(許乃隱萬)은 술쌀 열 말, 소금 열 말을 주고서 맘껏 정보를 잘 탐지하라고 했다.
650
어두워서 비가 오더니 밤새도록 퍼부었다.
651
박옥(朴玉) ∙ 옥지(玉只) ∙ 무재(武才) 등이 화살대 백쉰 개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652
5월 25일 (신묘)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6월 20일]
653
홀로 다락 위에 앉아 있으니, 온 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우리나라 역사를 읽어 보니 개탄할 생각이 많이 난다.
654
무재(武才) 등에 게 흰 굽으로 활을 바룬 것이 천 개, 흰 굽 그대로 인 것 팔백일흔 개
655
5월 26일 (임진) 짙은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양력 6월 21일]
656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안장 있다가 충청우후 및 우후 등과 함께 활을 쏠 적에 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활 열 순을 쏘았다.
657
이 날 어두울 무렵 날씨가 찌는 듯했다. 땀이 줄줄 흘렀다.
658
5월 27일 (계사) 가랑비 종일 그치지 않았다. [양력 6월 22일]
659
충청우후 ∙ 좌우후가 이곳에 와서 종정도를 내기했다.
660
이 날 어두 울 무렵에도 찌는 듯하여 답답했다. 땀이 온 몸을 적셨다.
661
5월 28일 (갑오) 궂은비가 걷히지 않았다. [양력 6월 23일]
662
전라감사(홍세공)가 파면되어 갈렸다고 한 말을 들었다. 가등청정(加藤淸正)이 부산으로 도로 왔다고 한다. 모두 믿을 수 없다.
663
5월 29일 (을미) 궂은비가 저녁 내 내렸다. [양력 6월 24일]
664
장모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665
고성현령 ∙ 거제현령이 와서 보고는 돌아갔다.
666
5월 30일 (병신) 흐렸다. [양력 6월 25일]
667
곽언수(郭彦守)가 들어왔다. 영의정(류성룡) 및 상장군 ∙ 우참찬 판부사정탁 ∙ 지사 윤자신(尹自新) ∙ 조사척 ∙ 신식(申湜) ∙ 남이공(南以恭)의 편지가 왔다.
668
저녁나절에 우수사에게 가서 보고 종일 무척 즐기다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