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옥수수, 자본주의의 검은 피가 되다

[땡칠이]

슬픈 옥수수, 자본주의의 검은 피가 되다

권은중 |『한겨레 라이프』에디터, 『요리 인류사』저자

 

 

“멕시코 아즈텍의 종교는 인간의 피를 들이마셨고 철학은 죽어갔다.

천문학과 수학에 대한 지식은 상실되었으며 오직 남은 것은 태양과 옥수수뿐이었다.”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Heinrich Eduard Jacob), 『빵의 역사』

 

 

우리는 모두 옥수수다

​
현대인의 혈관에는 옥수수가 흐른다. 한때 세계 최대 소비 곡식이던 쌀이나 밀은 옥수수에  밀리고 있다. 중남미 안데스산맥이 원산지인 옥수수는 현대인과 끈적끈적한 관계다. 먹는 것이 몸을 만들고 생각이 몸에 깃든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 삶은 옥수수로 채워져 있다.

​
자본주의의 외양은 눈이 부실지 모르지만 현대인의 일상은 초라하다. 복잡하고 튼튼한 개미집과 개미의 삶이 별개인 것과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아침밥을 먹고 출근하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 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보건복지부)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24.1퍼센트가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1 직업이나 학교 때문에 원거리 통근·통학자가 늘어난 데다 예전처럼 아침을 차려줄 전업주부는 줄고 있는 탓이다. 전·월세 가격 상승 탓에 주거비에 대한 부담이 늘면서 맞벌이 가정이 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
아침을 굶게 되면 과식이나 육식의 가능성이 높다. 고기를 먹어야 든든하다는 통념 탓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사람의 고기 섭취량은 30년 동안 4배가 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식품수급표 2013’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하루 전체 에너지 공급량은 1980년 2486킬로칼로리에서 2013년 3056킬로칼로리로 570킬로칼로리(22.9퍼센트) 증가했지만 국민 1인당 연간 육류 공급량은 13.9킬로그램에서 49.2킬로그램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2

​
우리가 접하는 고기와 우유는 대부분 사료로 키운 가축의 살과 젖을 가공한 것이다. 가축의 사료는 대부분 옥수수로 만든다. 쌀이나 밀보다 싸기 때문이다. 덕분에 옥수수는 밀과 쌀을 따돌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식이다. 심지어 전체 생산 곡식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
2014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곡물 작황 및 식량 상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세계 식량 생산량이 사상 최고였던 2013년(25억 2,600만 톤)과 거의 비슷한 수준(25억 2,300만 톤)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체 곡식 가운데 40.3퍼센트인 10억 1,800만 톤이 옥수수다. 옥수수가 10억 톤 이상 생산된 것은 처음이다.3

​

옥수수를 먹던 신대륙 민족 95퍼센트가 사망

​
옥수수가 인류의 삶과 밀착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옥수수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고추나 담배처럼 16세기 중국에서부터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옥수수가 인류의 역사 전면에 등장한 것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신대륙 발견 이후다. 그전까지 옥수수를 먹는 아메리카 대륙 사람들은 밀과 쌀을 먹는 유리시아 대륙 사람들과 전면적으로 조우한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1002년 바이킹인 레이브 에릭손[Leiv Eriksson]이 그린란드를 거쳐 캐나다 뉴펀틀랜드의 한 섬에 정착하기는 했지만 1년도 안 되어 다시 그린란드로 돌아갔다).

​
두 대륙의 만남은 한쪽 대륙에게는 완전한 비극이었다. 콜럼버스가 끌고 간 스페인 군인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의 대표적인 국가인 아즈텍과 잉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른 이름도 없는 무수히 많은 부족국가와 집단도 대부분 멸망했다.

​
멸족의 표면적인 원인은 학살이다.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이끌던 168명의 스페인 무장 세력은 8만 명의 잉카 군대와 전투를 벌여 수만 명의 병사를 죽이고 왕 아타우알파(Atahualpa)를 포로로 잡았다. 전투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스페인 선교사의 기록에 따르면 스페인 무장 세력은 선주민들을 정말 개미처럼 학살했다.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국가가 168명의 무장 세력에 의해 괴멸된 것이다. 앞서 1521년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가 아즈텍을 멸망시킨 과정도 비슷하다.4 역사가들은 서양인이 말하는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선주민 가운데 95퍼센트가 사망하고 단 5퍼센트만이 생존했다고 추정한다.

 

 

​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철제 무기와 말을 앞세워 적은 수로 수만 명에 달하는 잉카 군대를 물리치고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았다.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들의 스페인 군대와 그들이 끌고 들어온 전염병에 의해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

반대로 서양인들에게는 신대륙은 기회의 땅이었다. 유럽인들은 신대륙에서 가져온 귀금속과 노예무역으로 자본을 축적했고 그 자본을 발판으로 산업화에 성공해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이루었다. 그들은 인류 최악의 학살극을 우월한 백인이 열등한 다른 인종을 지배한 것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왔다.

​

신대륙인을 죽인 것은 총과 칼이 아니라 말과 소

 

그렇다면 유럽인은 어떻게 손쉽게 신대륙의 선주민을 학살하고 기존 국가들을 완전하게 파괴할 수 있었을까? 유럽인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도 식민지화했지만 모든 식민지의 백성을 다 죽이지는 못했다. 이집트와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그들은 지금도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는 그의 책 『총, 균, 쇠』에서 두 대륙이 비극적인 조우하게 된 이면을 분석했다. 그는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고 전제하면서(이는 서구의 인종우월주의자들과 그의 뉴기니 친구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남미가 유럽에 정복당한 직접적 이유는 총과 칼 같은 무기 기술, 병원균, 정치 조직 등이라고 지적했다.5

​
다이아몬드 교수는 “스페인의 총과 칼 그리고 말은 석기와 청동기를 사용하던 신대륙인들을 학살하기 충분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철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기병은 헝겊 갑옷에 곤봉과 청동검 따위를 들고 있던 신대륙 사람들의 눈에는, 오늘날로 치면 탱크처럼 보였을 것이다. 8만 명의 아타왈파 대군을 불과 168명이 도륙한 것도 크고 빠른 말의 역할이 컸다.

​
게다가 1500년대 스페인은 무적함대(아르마다)라는 이름처럼 바다에서뿐 아니라 육상에서도 천하무적이었다. 스페인이 육지에서 막강한 전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유럽 국가 최초로 총을 전진 배치한 덕이다. 그전까지 전쟁의 중심은 말이었다. 주인공은 곤살로 데 코르도바(Gonzalo de Cordoba)라는 하급 장교였다. 그는 남부 이탈리아로 파견되어 프랑스군에게 몇 번 패배한 뒤 튼튼한 참호 속에 화승총 부대를 배치해 기병과 창병을 상대하는 전법을 도입했다. 1503년 곤살로의 새로운 체계는 체리뇰라에서 맞붙은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검증받았다.

​
체리뇰라 전투는 작은 규모였지만 이 전투는 전쟁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루었다. 곤살로는 1515년 전사했지만 그가 확립한 스페인의 새로운 전투 체제는 1525년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괴멸시켰고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를 포로로 잡으면서 전쟁사에 뚜렷한 흔적이 남겼다. 이후 유럽의 모든 군대의 지휘관들은 기병이나 창병 대신 화승총 부대 배치를 최우선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6 1592년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도 마찬가지였다.

​
하지만 다이아몬드 교수는 신대륙과 구대륙의 ‘궁극적인 차이’는 칼과 갑옷의 차이가 아니라 식량 생산과 가축화의 상관성 탓이라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것이 신대륙 사람들을 사실상 절멸에 가깝게 사망시킨 천연두를 같은 전염병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전파한 전염병은 대부분 가축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연두는 소를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소가 보유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면서 생겨났다. 낙타가 보유한 메르스 바이러스가 박쥐를 통해 사람에게 전염된 과정과 동일하다.

​
구대륙은 농경의 시작과 함께 말과 소, 낙타 등 13종의 대형 포유류(45센티미터 이상)를 가축화했지만 남미에서는 라마 1종밖에 없었다. 1만 년 전부터 이런 대형 포유류와 접촉해온 구대륙인들은 이런 병균들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었다.7

​

옥수수, 이보다 키우기 쉬울 수는 없다
​

다양한 종의 식물 재배와 가축화가 이루어진 유라시아 대륙은 고대부터 국가를 만들 계기가 있었지만, 아메리카 대륙은 그런 계기가 없었다. 근대 이전 국가 성립의 핵심은 잉여생산물을 통한 자본축적이었다. 자본축적을 통해 고대 국가는 왕족은 물론이고 관료, 군인, 기술자(과학자)같은 전문직을 부양할 수 있었다. 산업혁명 전까지 대부분 국가가 성립할 수 있는 핵심은 농업생산력에 있었다. 동양의 중국과 인도 등이 강력한 고대국가를 형성한 것에 견줘 유럽이 대부분 도시국가로 남아 있었던 까닭은 쌀에 비해 밀의 농업생산력이 낮았기 때문이다.

​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신대륙 사람들의 주식인 옥수수의 부양 능력은 쌀과 밀에 견줘 떨어지지 않는다. 농촌경제연구소의 2015년 해외곡물동향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밀의 에이커(1에이커=4046.9제곱미터)당 수확량은 44.3부셸(1부셸=27.2킬로그램)에 그쳤지만 옥수수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밀보다 3배 이상 많은 에이커당 166.8부셸이었다. 옥수수가 유전자조작 종자라 생산량이 많다고 할 수 있지만 같은 GMO 비중이 높은 대두는 46부셸에 불과했다.8

​
심지어 안데스 지역에는 주요 작물 가운데 부양 능력이 가장 뛰어난 감자와 고구마까지 있었다. 높은 농업생산력을 가진 옥수수를 먹던 아메리카인들은 왜 유럽인들과 맞서 싸울만한 국가를 건설하지 못했을까? 농업생산력이 떨어졌던 유목국가인 몽골이 유라시아를 정복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
신대륙 국가와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큰 차이는 이들이 대부분 제정일치 국가였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 유라시아 국가 대부분은 왕권이 신권을 누르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이미 기원전에 제정일치가 끝났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자마자 자신을 신의 반열인 황제에 올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유럽도 십자군 전쟁 이후 교황권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대립하고 교황청을 아예 프랑스 아비뇽에 두었다. 교황들은 1309년부터 1377년까지 아비뇽에서 프랑스왕의 지배하에 있었다.

​
중국 통일은 철기 문명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주나라를 섬기며 대의명분을 추구하던 춘추시대에서 주나라를 무시하며 모든 나라가 전쟁에 나선 전국시대로 전환한 것은 철기 문명 탓이었다. 기원전 1400년 중동의 히타이트가 최초 도입한 철기는 유라시아 각지로 전파되었다. 각 지역의 세력들은 청동기와 달리 싼 가격으로 쉽게 많은 병사를 무장시킬 수 있는 철기에 매료되었다. 철기는 그들에게 형이상학적인 신이 아니라 다른 나라를 정복하게 해주는 전쟁의 신이었다.  

​
암흑의 시기로 불리던 중세가 끝나던 1300년대 유럽에서는 또 다른 신인 ‘화약’이 강림했다. 이슬람 세력과의 십자군 전쟁(1095~1272년)이 끝난 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1337~1453년)이 시작되었다. 화약을 사용한 대포와 총이 전쟁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직업군인인 용병들이 나타났다. 직업군인과 신무기 등장으로 기존의 전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
1415년 영국군의 장궁 공격에 번번이 당하던 프랑스군은 적에게 점령당한 프랑스 북서부 항구도시 아르플뢰르(Harfleur) 성을 대포로 무너뜨리면서 백년전쟁의 일방적인 수세에서 벗어났다. 아르플뢰르 공성전으로 중세 이전에 존재해오던 공성전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9 총과 대포 같은 신무기는 페스트와 도시의 발달로 중세 봉건제가 해체되는 상황에서 왕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귀족과 종교인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왕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왕권을 강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왕들이 ‘하늘의 섭리’ 따위의 말을 경청할 리 없었다.

​

옥수수를 위해 인간의 심장을 바치다

​
반면 신대륙의 지배 세력은 달랐다. 신대륙의 제국인 아즈텍과 잉카제국은 활발한 정복 사업으로 중남미의 매우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14세기 멕시코에 자리 잡은 아즈텍은 멕시코의 텍스코코 호수의 섬에 테노치티틀란을 세운 뒤 멕시코 중앙 계곡의 서부와 남부 지역을 정복하여 아스테카제국을 건설했다. 비슷한 시기 잉카제국 역시 수도 쿠스코를 중심으로 지금의 에콰도르에서부터 칠레까지 정복했다.10

​
대규모 정복 사업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유라시아식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건설보다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즈텍은 1년에 2만 명 가량의 사람을 제물로 바쳤고 이를 위해 전쟁을 벌였다. ‘포로=제물’이었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이미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노예를 제물이 아니라 노동력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대규모 정복 사업을 벌였던 것과 대비된다.

​
아즈텍과 잉카 두 나라의 공통점은 태양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했다는 점이다. 아즈텍인은 자신들이 존속 기간 300~600년에 불과한 다섯 번째 태양의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깃털달린 뱀’이란 뜻의 케찰코아틀의 도움으로 인간이 태어났지만 다섯 번째의 세계도 이전처럼 태양이 사라지는 대재앙으로 멸망할 것으로 믿었다. 케찰코아틀은 세상을 먹어치우려는 게걸스러운 여신을 막기 위해 뱀으로 변신해 여신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여신의 몸은 각각 땅과 하늘이 되었다. 여신은 신체가 분해되었지만 죽지 않았다. 여신은 인간의 피를 목말라 했고 그녀는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옥수수를 비롯한 지상의 열매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원하는 음식은 인간의 심장이었다.11 태양이 사라진다는 것은 황금빛 옥수수밭도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
아즈텍은 인신 공양을 행하기 위한 여러 개의 대신전을 수도에 세웠고, 끊이지 않고 산 제물을 잡아다 바치기 위해 강한 군사 조직을 만들었다. 전쟁으로 정복한 지역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다가 살아 있는 사람의 가슴을 절개하여 심장을 꺼내고 살아있는 심장을 신을 위한 제물로 바쳤다. 1년에 약 2만 명의 포로를 잡아다가 제물로 바쳤다.12

​

 

아즈텍의 인신 공양을 묘사한 그림. 희생자의 심장이 피를 흘리며 태양 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잉카 역시 인신 공양을 했다. 그들은 농업의 신 치코메코아틀 신전에 젊은 처녀를 바쳤다. 열흘 동안 벌어진 축제의 마지막 날 어린 옥수수 여신인 엑클로멘을 상징하는 젊은 여성의 목을 베고 그 가죽을 벗겼다. 성직자들은 벗긴 가죽을 쓰고 비의 신이 오기를 기도했다. 백성들 역시 “오 하느님, 마법의 왕자시여, 옥수수는 진정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13

​
유라시아 대륙인들이 쇠칼을 만들어 서로의 땅을 빼앗으려고 혈안일 때 높은 농업생산력을 가진 아즈텍과 잉카인들은 인신 공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왜 신대륙인들은 인신 공양에 빠져 있었을까? 학자들은 옥수수가 가진 기적의 생산 조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
옥수수는 밀이나 쌀처럼 노동집약적 곡식이 아니다. 심지어 쟁기질도 타작도 도정도 필요 없다. 심는 법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남자 농민이 큰 막대기로 땅에 구멍을 뚫으면 그 구멍에 부인이 씨앗을 심는다. 1년에 2번 씨앗을 심으면 50일 안에 열매가 열린다. 옥수수는 빨리 익을 뿐 아니라 익기 전에도 낱알을 먹을 수 있다. 한 알을 심으면 보통 150알 이상을 거둘 수 있으며 심지어 800알을 얻기도 한다. 이것은 계절에 따라 7~8일 정도만 일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약적 노동에서의 자유로움이 결국 지나치게 전제적인 신정국가에 이르게 한 것이다.14

​

옥수수, 자본주의라는 진격의 거인을 만들다

​
아메리카의 옥수수는 유럽으로 건너가서는 전혀 다른 역사를 일구었다. 호기심 많은 콜럼버스에 의해 최초로 유럽으로 건너간 옥수수는 감자와 함께 근대적 자본주의를 태동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두 식물의 가장 큰 공은 빠른 식량화를 통한 인구 팽창이었다. 페스트의 확산으로 급감했던 유럽 인구는 17세기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이후 2억 명 가량이던 지구 인구는 1650년 약 5억 명으로 2배가량 늘었고 이후 폭발적 성장을 해 1850년에는 10억을 기록했다. 중국의 인구 증가도 옥수수가 전파됐던 16세기 청나라 때부터였다.

​
유럽에서 최초로 옥수수에 주목한 나라는 전쟁광 스페인이 아니라 전통의 부호 이탈리아였다. 중남미의 인신 공양 행위를 유럽 최초로 지켜보고 기록했던 스페인 사람들은 남미에서 가져온 옥수수를 불길한 음식으로 취급해 아예 먹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무역으로 부를 일군 도시국가 베네치아는 달랐다. 베네치아를 비롯해 이탈리아 농민들은 노동력 투입 대비 높은 옥수수의 생산성에 매료되었다. 그들은 시칠리아에 옥수수를 키워 식량으로 삼고 대신 옥수수에 견줘 가격이 2배 이상 비싼 밀을 시장에 팔았다. 17세기 베네치아는 생산된 곡물의 15~20퍼센트를 수출한 반면 프랑스는 2퍼센트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곡물을 소비했다.15

​
밥이 되고 돈이 되는 옥수수는 자연스럽게 부국강병에 골몰하던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사유재산과 대의 민주주의라는 열망을 품고 미지의 땅인 미국으로 건너간 유럽인들의 주식 역시 옥수수였다. 미국 이민 초기 밀 농사는 잘 되지 않았다. 배고픈 이민자들에게 따뜻한 옥수수를 건넨 것은 포카혼타스로 대표되는 인디언들이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도 옥수수를 예찬했다.

​
옥수수가 도입된 이후 서구에서는 소농의 경제력이 빠르게 향상되었고 계몽주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를 비롯한 사상가들이 등장하면서 사유재산 옹호론이 깊게 뿌리내렸다. 로크는 사유재산의 추구야말로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라고 말했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대혁명은 계몽주의 사상이 정치적으로 확산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후 개인의 재산권과 이를 토대로 한 시장경제를 정부가 보장하면서 유럽에서는 각종 혁신이 들불처럼 번졌고 이 혁신은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동력이 되었다.16

​
같은 옥수수로 서양과 중남미는 전혀 다른 역사를 썼다. 이런 차이는 정치·과학·농업·기술의 격차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유럽의 성공을 경쟁과 과학, 재산권 등에서 찾았던 니얼 퍼거슨이나 수차나 풍차 등의 에너지와 기술 수단에서 찾았던 린 화이트 같은 학자들도 있었다. 19세기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며 근대 사회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베버의 눈으로 보면 합리성이 결여된 미신적 사술에 빠진 민족의 패망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유럽 이외의 종교는 수동성과 이 세상으로부터 탈출을 갈망했으며 행동이나 방법 대신 소란스러운 축제나 명상을 통해 자아의 철저한 상실을 지향한다고 비판했다. 반명 유럽 종교는 이 세상을 실제로 지배하고자 했으며 지배 욕구는 체계적이고 방법적인 형태를 띠었다고 말했다.17 유럽인들은 신의 섭리에 부응하기 위해 자아 상실의 축제 대신 저축과 투자를 했고 이윤을 남겼다며 종교개혁을 자본주의의 시작점으로 본 것이다. 베버는 그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
“자본주의적 생활 방식은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에서 비로소 그 철저한 윤리적 토대를 발견했다. 즉, 현세적인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은 전력을 다해 재산 낭비적 향락에 반대해 왔고 소비, 특히 사치품의 소비를 봉쇄해 버렸다. 반면에 이 금욕은 재화 획득을 전통적인 윤리적 장애로부터 해방시키는 심리적 결과를 낳았다.”18

​
19세기 철도와 같은 운송 혁명이 일어나면서 자본주의의 중심축은 국가가 아니라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서 시작된 주식회사로 옮겨갔다. 이들 회사는 중앙 집권형 상의하달식 명령 및 통제 메커니즘을 갖추기 위해 수직 통합된 거대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세기 전후로 석유·가스와 같은 에너지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들 기업은 은행과 합병하며 중앙정부도 상대하기 거북할 만큼 몸집을 키웠다.

​
서양이 이룩한 자본주의는 쌀과 옥수수를 먹던 서양 이외의 세계에서 볼 때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베버처럼 자본주의를 낭만적으로 바라봤던 사람들은 수천만 명이 죽는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 등의 어두운 면을 예상하지 못했다. 또 관료제의 총화인 기업 역시 제국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윤 추구를 위해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도전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도 내다보지 못했다. 자본주의적 과잉생산과 에너지 자원의 각축은 전쟁의 불길한 기운을 몰고 다녔다.

​
거대 기업들은 파시즘 국가가 거의 사라진 세계대전 이후에도 자원 개발과 이윤 추구를 위해 지구 구석구석을 파헤치고 있다. 심지어 생명까지도 기업 이윤 추구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고기와 GMO 농산물이다.

​
좀 더 많은 고기를 싸고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기업가들은 옥수수에 주목했다. 잉카와 아즈텍문명을 만든 옥수수의 특징, 성장 속도가 빠른 데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자본가들은 놓치지 않았다. 자본가들은 옥수수를 더 싸게 생산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했다. 옥수수는 1990년대 말 콩과 함께 가장 먼저 유전자 조작 제품이 만들어진 농산물이다.

​
GMO 옥수수를 최초로 발명한 기업은 미국의 다국적 농업생물공학 기업인 몬산토다. 몬산토가 옥수수 유전자 조작에 이용한 Bt균(바실루스 투린기엔시스)은 생물학 무기에 사용되는 탄저균(바실루스 안트라시스)과 같은 속이다. 몬산토가 곰팡이 유전자를 옥수수에 넣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것은 해충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제왕나비 같은 해충이 GMO 옥수수를 먹을 경우 성장이 억제되거나 죽는다. 하지만 나방뿐 아니라 잠자리, 개구리, 쥐 등 먹이사슬로 연결된 다른 종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19

​
대부분의 육우는 이제 더 이상 풀을 먹지 않는다. 곡물인 옥수수를 먹고 20~30개월 만에 도축된다. 풀을 먹기 위해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해왔던 4개의 위는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다. 고열량인 곡물 덕분에 소들은 지방간을 비롯해 소화기 기관에 장애가 생긴다. 가장 흔한 질환으로 혹위-간장 농양 합병증이 있다. 미국에서 도살하는 소 가운데 8퍼센트의 간에서 농양이 발견됐다.20 수소는 태어나자마자 거세되고 암소는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호르몬을 맞고 죽을 때까지 젖을 짜내야 한다.

​
이런 고통은 천연두로 아메리카인들을 절멸시키는 공로를 세웠던 소만 받는 것이 아니다. 값싼 옥수수 가루로 만든 액상과당은 설탕 가격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청량음료와 가공 음식에는 설탕 대신 액상과당이 들어간다. 우리나라 대형 마트에서 판매되는 500개의 상품 중 옥수수 첨가 제품은 372개로, 약 7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1 자본주의가 스스로 합성한 검은 피, GMO 옥수수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셈이다.

​
아즈텍 멸망 후 멕시코로 건너온 스페인 사람들은 현지에서 앓던 설사와 고열 등의 병을 ‘목테수마의 복수’라고 불렀다. 아직 GMO 농산물의 폐해가 구체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세계보건기구가 지난 10월 말 가공육을 석면과 같은 1급 발암물질로, 붉은 살코기를 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판 목테수마의 복수는 옥수수를 통해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인물과 사상 2016.1

작가

인물과사상 편집부

출판

인물과사상사

발매

2016.01.01.

평점

리뷰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