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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과 내재 3 , 플라톤 vs 루크레티우스, 강신주 『철학 vs 철학』 2016
제1부, 2장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p.65) #빗방울 #클리나멘 #우발적마주침
플라톤, 제작자(데미우르고스)는 선재하는 질료와 설계도(형상)로 사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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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본질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 생겨나는 것일까? 플라톤의 우주발생론에 따르면 어떤 사물의 본질은 미리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내 눈앞에 “나무 의자”가 있다고 해보자. 플라톤에 따르면 구체적 나무 의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목수(제작자), 나무(질료), 설계도(형상)가 미리 존재해야 한다. 여기서 나무 의자의 본질은 설계도, 즉 형상이 된다. 의자의 설계도는 의자로서 형상, 즉 인간이 앉을 수 있는 것으로서 의자의 본질을 결정한다. 사물에 앞서서 그 사물을 사물이게끔 하는 것이 바로 의미, 본질, 형성이다. 제작자의 이미지는 플라톤의 우주론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p.65).
루크레티우스의 원자론- 원자의 우발적 마주침에 의한 우연적, 사후적 생성의 세계
그러나 이와 다른 사유방식이 존재한다. 바로 루크레티우스의 원자론이다. 그는 자연을 응시하면서 우주의 발생을 설명하는 다른 이미지를 떠올렸다.
빗방울의 하강과 마주침, 생성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거의 평행으로 빗방울들은 땅으로 떨어진다. 하나 하나의 빗방울은 작고 무기력하다. 그러나 모이기 시작하면 거대한 자태와 위력을 갖게 된다(p.66). 빗방울은 모여서 웅덩이도 만들고, 시내도 만들고, 거대한 강줄기도 만든다. 비의 이미지를 통해서 루크레티우스는 플라톤의 제작자의 이미지를 논박한다. 빗방울이 작은 시내가 될지, 커다란 강이 될지, 또는 대양이 될지 빗방울 자체만으로는 이미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빗방울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질료이다(p.67).
루크레티우스는 사물의 본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신들이 가진 무게라는 속성 때문에 원자들이 허공을 관통해 아래로 떨어질때, 절대적으로 예견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들에서 그것들은 자신들의 직선 경로로부터 아주 조금, 단지 한순간의 위치 이동이라고 이야기될 수 있는 작은 정도로, 틀어진다. 만일 그것들이 직선 경로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모든 원자들은 빗방울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허공을 관통하여 아래로 떨어지게 될 것이며, 일차적 성분들 사이에 어떤 충돌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며, 어떤 타격도 생기기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자연은 결코 어떤 것도 만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루크레티우스는 세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원자들은 빗방울처럼 평행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등속 직선운동한다. 여기서 평행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은 원자들 사이에 어떤 마주침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미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원자들이 영원히 평행으로만 떨어진다면, 세계와 만물은 결코 발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루크레티우스는 또 다른 가설을 세운다. 어느 순간 이 원자들 가운데 어떤 원자가 평행에서 조금 이탈된 운동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평행에서 어긋나서 발생하는 미세한 차이를 그는 클리나멘(clinamen, clināre, 경향)이라고 주장한다. 클리나멘은 사전에 미리 결정되지 않고 오직 사후에만 발생한다(p.68).
클리나멘이 발생하면, 즉 평행으로 등속 직선운동하던 원자들 중 하나가 평행 궤도에서 약간 벗어나게 되면, 그 원자는 다른 원자와 마치게 된다. 이렇게 마주친 두 원자는 또 다른 원자와 마주치게 된다. 마침내 이런 일련의 현상들로 인해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진다. 작은 눈덩이가 다른 눈덩이와 계속 마주치면서 거대한 눈사태를 만들어내는 현상과 닮았다. 플라톤의 우주 발생론이나 기독교의 창조론은 세계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제작자나 창조주가 있고 신의 형상이나 이데아에 따라 세계가 창조된다. 그러나 루크레티우스는 제작자나 창조주 또는 형상과 같은 선재된 본질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세계는 물질적인 원자들의 우발적인 마주침으로 생겨난다. 그리고 본질은 무의미의공간 속에서 우연히 생성된다(p.68). 20세기 뛰어난 유물론자인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는 무한한 원자들 사이의 우발적인 마주침이 플라톤과 기독교 사유를 전복시킬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의 최종 목표는 역사적 필연성을 주장하는 낡은 역사 유물론을 폐기하기 위해서 우발적 마주침을 강조했다(p.68). 낡은 유물론은 공산당이 역사의 의미를 미리 알고 있기에 그에 따라 사회를 개조해야 한다는 소비에트 공산당의 입장이었다. 겉으로는 경제를 강조해서 유물론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산주의는 플라톤의 제작자나 기독교의 하나님과 너무나 유사하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제도권 공산주의가 표방하는 유물론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한다. 낡은 유물론은 마주침이 발생하는 현실을 무시한테 선재된 본질, 또는 필연성을 강조하는 가장 위험한 적이다(p.69).
알튀세르 마주침의 철학, 마주쳐서 응고
알튀세르의 『마주침의 철학』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돈많은 사람(자본가), 벌거벗은 노동력(노동자), 테크놀로지, 시장 등 많은 요소들이 (루크레티우스의 원자들처럼) 마주쳐서 응고되어야만 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자본주의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일국사회주의에 따르면 경제적인 것(즉 하부구조)이 정치적인 것 및 사회적인 것(즉 상부구조)을 모두 결정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이런 경제적인 것은 플라톤의 제작자나 형상, 기독교의 신과 같은 형이상학적 실체와 같다. 일국사회주의는 공산당이 이러한 신의 계시와 명령을 읽어낸다고 자신했다. 나머지 국민들은 공산당이 제시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마르크스 정신의 핵심은 우발성의 유물론이다. 일국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유로운 연대를 추구하려는 마르크스의 코뮤니즘을 왜곡 시키는 것이다. 그는 일국사회주의의 경제결정론을 극복해야 했다. 알튀세르는 마주침의 유물론이 이념 또는 선재된 본질, 결정된 역사법칙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자유와 혁명의 역능을 새롭게 부여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p.71).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다양한 요소들의 우발적 마주침으로 응고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마주침을 시도함으로서 지금과 매우 다른 세계를 응고시킬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행동과 다른 무엇인가 새로운 행위를 시작하지 않으면 클라나멘은 발생하지 않는다.
https://naver.me/56aPLImM
『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강신
주, 오월의봄, 2010.
#2. 22.03.15(화) 2.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
가 : 플라톤 VS 루크레티우스
. 근대 진행 : 분업화, 전문화로 우주 탄생에 대한 관심 저하(물리학자. 천문학자의 관심 분야)
. 근대 以前 : 어떤 학문이든 통일적인 전체 지향, 전 세계, 우주 탄생에 대한 성찰 有
우주를 알아야 생물의 삶과 인간의 삶 이해-->
자신의 삶 이해
. 서양 우주 발생론 : 『성경』<창세기>편, 우주창조 7일째 휴식- 전능한 신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신의 모습, 노동의 존재로 그림 인간중심주의(인간은 만물의 영장) 이후 전지전능
초인격적 존재로 정당화 초월주의 (vs. 스피
노자의 범신론 : 만물에 신이 내재)
• 동양(중국) 우주 발생론 : 우주의 아들 天子, 우
주(天)를 인격적으로 이해--> 이후 天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 내재화, 전한시대 《회남자》(우
주 발생은 신이 아니라 氣, 음양 원리(하늘은
양, 땅은 음), 기의 입장에서 인간과 만물은 동일) 氣는 만물에 내재--> 자연주의
| 플라톤 : “우주는 제작자가 만든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주저 《과정과 실재》에
서 "2000년 동안 서양의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했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만큼
플라톤의 철학적 사유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
든 서양철학의 밑바닥을 관통하는 주된 흐름이
었다고 볼 수 있다. (중략) 그 중 가장 중요한 텍
스트를 고르라고 한다면, 오늘날 대다수 학자들
은 예외 없이 《국가》를 꼽곤 한다. (p.60)
어쨌든 서양 중세시대 지성인들이 플라톤의 우
주발생론에 ‘데미우르고스’, 즉 ‘제작자’의 계기
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데미우르고스라는 개념이 아직 기독교
를 낯설게 여겼던 당시 유럽인들에게 창조주로
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득하는 데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플라톤의
우주 발생론과 기독교의 관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신이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것으로 상정된
반면,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는 모든 것을 창조
할 수 없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데미우르고
스는 ‘형상과 질료 자체는 창조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p.63)
(플라톤 이후 서양 철학의 사유 패턴 공유)
데미우르고스-형상-질료(=제작자-설계도-재
료: 세 가지 원인) | --> 칸트의 이성-오성-감성(인
식론) --> 변주와 반복
(서양 철학의 내적인 논리 구조=플라톤의 세 가지 원인 패턴)
능동적인 주체-불변하는 법칙-유동적인 타자---
> 서양철학은 모두 이 세 가지 변별적 요소의 함
수로 파악 가능
예) 정신분석학 이론가 라캉 : 상상적인 것-상징
적인 것-실재적인 것==>주체-법칙-타자로 독
해 가능
플라톤의 원인론은 서양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를 규정하는 구조적 원리로도 기능한다. (p.64)
① ‘설계도’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입장 : 플
라톤, 아퀴나스
② '설계도'는 '재료'에 따른다는 입장 : 스피노
자, 니체, 마르크스
③ ‘설계도’는 ‘제작자의 마음'에 따른다는 입장
: 흄, 칸트
④ '설계도'와 '재료' 모두 '제작자'에 근거한다
는 주장 : 기독교, 헤겔
| 루크레티우스 : “우주는 원자들의 마주침이
만들었다.”
아테네 저잣거리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장인을
응시했던 사람이 플라톤이었다면, 대자연의 하
늘에서 내리는 비를 응시하고 있었던 사람은 루
크레티우스였다. (p.65)
'비 이미지'로 루크레티우스는 플라톤의 '제작 이
미지'에 반기를 든다. 작은 시내가 될지, 커다란
강이 될지, 혹은 대양이 될지, 빗방울들의 운명
은 사전에 미리 결정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가
받아들인 유일은 원인은 빗방울처럼 자발적으
로 움직이는 질료들, 정확히 말해 원자들과 그것
들의 운동뿐 이었기 때문이다. (p.67)
(루클레티우스의 우주발생론 : 클리나멘)
클리나멘 : 평행에서 어긋나는 미세한 차이, 거
의 느껴지지도 않을 것 같은 미세한 편차
클리나멘은 '사전에 미리 결정되지 않고 오직
'사후에만 발생한다. 평행에서 이탈한 원자들끼
리 우발적으로 마주치며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
진다. ----> 루클레티우스의 우주발생론은 플라
톤의 우주발생론이나 기독교의 창조론에서 가
장 멀리 떨어진 관점
(가장 탁월한 유물론자 알튀세르, 낡은 유물론
공격)
자본주의가 발생하려면 '돈 많은 사람(자본가)',
'벌거벗은 노동력(노동자)', ‘테크놀로지(시장)'
등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루크레티우스의 원자
들처럼, 마주쳐서 응고되어야만 한다. 그 가운
데 하나의 요소라도 결여된다면, 우리가 알고 있
던 자본주의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p.69)
일국사회주의자 스탈린- 공산당이 신의 계시와
명령을 읽을 수 있다고 자임, 결국 플라톤의 제
작자 형상이나 기독교의 신과 같은 형이상학적
실체임,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 루크레티우스
의 우발성의 유물론 내재된 마르크스의 유물론
을 심하게 왜곡함
대부분의 철학사가들이 클리나멘에서 인간의 자
유의지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찾으려고 했던 것
이 이런 이유에서였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이 자유의지 아닌가. (p.71)
한마디로 본질의 철학에서 사랑의 슬로건은 “우
리 만남은 숙명이야!”라고 정리된다면, 생성의
철학에서 사랑은 “행복할 때까지만 만나자!”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것이다. (p.73)
(동양의 사유 전통: 사유의 선재성과 사후성)
노자 : 有名萬物之母,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
의 어머니이다.” (有,名萬物之母" 유는 모든 만
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최진석), 의미의 선재
성
장자 : 物謂之而然, “사물은 사람들이 그렇게 불
렀기 때문에 그렇게 구분되는 것”, 의미의 사후
성
<단상>
“2000년 동안 서양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
에 불과했다.” 이유를 알 것 같다. 서양철학의 역
사는 기독교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
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의 철학은 기독교를 정당
화하는 도구로 끊임없이 활용되었던 것이다. 사
물에는 이미 본질이 내재되어 있다는 플라톤의
철학만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모두 설명할 수 없
다. 그래서 현대에는 플라톤에서 유래한 '본질
의 철학'은 거의 종적을 감추고, 양자물리학 등
'생성의 철학'이 각광받고 있다.
현대 과학 문명이 발전했던 이유는 루크레티우
스의 클리나멘처럼 "우연의 마주침”들을 끊임없
이 연구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학자와 탐험가들
이 “새로운 마주침"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우
리들은 지금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고 자유를 누
리고 있다.
두 철학을 어떤 비중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플라톤을 따르면
숨겨진 의미를 찾는 탐구자가 될 것이며, 루크레
티우스를 따른다면 새로운 마주침, 혹은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는 여행을 지속해야만 할 것이
다’(p.73)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느 한쪽 만을
따를 수는 없고 둘을 조화롭게 받아들인다면 삶
이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