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로 지구를 38바퀴나 돌았다. 전북출신 철도 기관사 이강남 씨(57·철도공사 서울기관차승무사업소·사진)의 이야기다.올해로 39년째 철도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씨의 열차 운행 기록은 155만㎞. 지구(둘레 4만120㎞)를 38.6번 돈 기록이다. 그 것도 단 한번의 사고도 내지 않은 무사고 운행 기록이다. 사고가 한번 나면 무사고 기록은 처음부터 다시 계산된다.국내에서 최장의'일반 열차 무사고 155만㎞'는 올해 철도공사(코레일)의 기네스 기록에 등재되기도 했다.지난 1973년(당시 고교 3년) 부기관사로 철도공사(구 철도청)에 입사하고 1979년에 기관사에 합격해 열차 운행을 시작한 그는 이후 기록을 갱신해 왔다. 지난 1987년 무사고 40만㎞, 1993년 무사고 70만㎞에 이어 1998년에는 기관사들의 꿈의 기록인 무사고 100km를 돌파했다. 이 기록으로 그는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외에도 철도청장 표창(4회)과 장관·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했다.'나란히 놓여 있는 레일 위를 달리는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열차운행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간단치 않다고 말한다."일반 도로와 달리 변화가 없는 레일을 몇 시간동안 달리게 되면 인간은 쉽게 피로해지죠. 더구나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더욱 심해지는데, 장시간 똑같은 길을 운행하는 기관사들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차역을 그냥 지나치거나, 속도를 줄일 타이밍을 놓쳐 선로를 이탈하기도 합니다. 수백명의 승객을 생각한다면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죠."그는 이 같은 대기록 달성은 어린 시절 단련된 정신력이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그는 "어렸을 적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 신문배달을 했죠. 신문배달이라는게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등 궂은 날씨나 상황에 상관없이 일정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맡은 일은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자연스레 몸에 배었습니다"고 설명했다.전주가 고향인 그는 지난 1968년부터 4년여간 전북일보 북전주지국에서 신문배달원 및 업무부장으로 일했다. 학업을 병행했던 그는 전주숭실고등공민학교를 거쳐 전주영생고를 장학생으로 다녔고, 방송대(행정학)를 졸업했다.그의 40년 가까운 무사고 운행도 서서히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 내년 6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남북이 통일되면 가장 먼저 열차를 몰고 백두산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바람은 이루지 못했다는 그는 "은퇴후에는 부동산중개업을 시작할 계획"이라면서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이 되는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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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방송대인을 만나다] |
이강남(행정 졸) 동문 / 강민지(무역 3) 학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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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4 오후 2:3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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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남(행정 졸) 동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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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는 인생의 긴 레이스에 큰 힘을 줘
서울 은평구 서울기관차승무사업소에서 이강남(행정 졸, 58세) 동문을 만나던 날 함박눈이 쏟아졌다. 이 동문은 무사고 운전 155만 킬로미터를 달성한 철도기관사다. 지난 39년 동안 달성했는데, 지구 38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다. 올해에는 한국철도공사 기네스 기록에도 올랐다.
이 동문의 안주머니에는 플라스틱 커버가 씌워진 종이가 있다. ‘활잡규’라고, 직접 만든 ‘무사고 운전법’이란다. “‘활’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자, ‘잡’은 운전 중 잡생각을 하지 말자, ‘규’는 규정을 지키자는 의미예요. 평균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열차를 조금의 실수 없이 운전하려고 만든 표어죠. 운전 중에는 항상 종이를 운전대 근처에 올려놓고 수시로 확인합니다.”
이 동문은 지난 1973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당시 철도청(현재의 한국철도공사)에 입사해 부기관사가 됐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신문배달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런 소년이 공무원이 되자 가족 모두가 기뻐했다. 1979년 부기관사에서 기관사로 승진했다. 몇 년 안 돼 본격적인 기관사가 되자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는 말에 방송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입사동기 중 유일하게 방송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1981년의 일이다.
“과락 없이 공부하려고 노력했어요. 당장 다음 달에 기차 몰고 어디로 운행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유 있게 공부할 순 없었거든요. 다행히 회사에서 학습 휴가를 내줘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죠. 그래서 1986년에 졸업할 수 있었어요.”
이 동문은 당시 배웠던 민법을 토대로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단다. 대학원 공부도 하고 싶었지만, 철도기관사 일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아 포기했다. “대학원 진학을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방송대 재학만으로도 제 인생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승진도 빨라졌고, 집중력도 좋아졌고, 삶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어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났죠.”
이 동문은 무사고 100만 킬로미터를 돌파한 이후로 홍조근정훈장과 대통령 표창, 철도청장 표창 등을 받았다. 현재 이 동문의 목표는 정년인 내년까지 사고 없이 안전 운행하는 것. 승객을 위한 철도기관사의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한단다. 물론 마지막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운행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아들에게 ‘아빠는 늘 비싼 기차 공짜로 빌려서 우리나라 곳곳을 유랑 한단다’라고 말한 적 있어요. 책임감을 갖고 즐기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달리고 싶어요. 내년에 기관사로서 운행이 끝나면 또 한 번 저만의 레일을 찾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볼 계획입니다.”
김수진 기자 neunga99@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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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북일동 신문배달원에게 겨울 잠바를 기증하는 장면, 이외에도 대전 종교단체에 선행 등 선량한 이웃이 우리회원이라는 점에 큰 자긍이 됩니다! 본인의 의지를 묻지 않고 미당이라 판단하여 무단 전재, 게시하여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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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6월 국보급철도인 은퇴하시는 날!!
식장에 많이들 달려 가십시다!
좋습니다.
은퇴후 생애관리 집사람과 꼭 상의 잘하세요!
6개월 쉬고 꽃피는 봄날 강남공인중개사 개소하기로
옆지기에 통보 재통보 인준받았죠~세월도 낚고 추억도 낚고~
은평구 수색역앞에 착지(뉴타운 재개발 시행예정지)~무진장님만? 초대!hh
자랑스럽습니다. 주관이 분명하시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시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웁니다.
기쁘게 살뿐이죠 모자람투성이 인걸요`카페운영하시랴 활동하시랴 수고 많으십니다
축!! 등불님 같은 분이 또 계셨군요^^
전 카페지기만큼 만이라도 학규마을에 힘을 써야는데 부족하네요
훌륭하십니다.....홧팅...
관우의 눈섭을 가지신 미남~호정님 잘 계시죠? 전주 최은희씨와 옆에 있으면 좋은데...h.h.h.
존경합니다 철도님!!!
얼굴을 잊겠수다
무진장 애쓰시는 촌장님이 대수롭지 않는 기관사의 사진까지 올리시다니요. 저 가진 것 없어요.
막걸리 2통값 빼고요h.h.h.. 전 철도후배들이 손대표님의 길을 평탄케 하도록 뛰는 날을 기다립니다.학규마을님들 홨팅!
존경합니다. 학보사에도 나오고...
동문이라서 더 반갑네요. 어쩐지 왠지 모를 친숙함이 느껴지던데...
이제서야 이유를 알겠네요.저는 90학번이고...
제 남편은 아직도 밤에 신물배달을 하고 있어요. 제 남편만 열심히 사는 줄 알았더니
훌륭하신 분들이 너무 많은 듯 하네요.
2회졸업이고요. 5학년졸업을 했지요 (83학번)
후배님과 함께 손대표님의 길을 같이 감에 막걸리 한잔 예약~
장하다 내 후배. 대견하다. 퇴직하면 대표님 대통령 만드는데 같이 초고속으로 달리자 꾸나.
선배님의 열정처럼 마을민들의 열정을 백배늘리고
전국적인 조직을 확대함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데
구체적이고 실천가능한 목표들을 정해서 나가야
승리의 깃발을 올릴수 있을 것입니다.
철도제비님 훌륭 하십니다 . 참으로 열심히 달려 오셨습니다. 은퇴후에 모습이 또한 기대 됩니다.
아름다운 일에 머물며 은퇴후에는 경건과 불욕심 그리고
반성의 시간과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살아야죠^^*
오는 6월 27일(목), 이강남님(철도제비)의 은퇴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좀더 일정과 형식이 확정되면 조촐한 축하연이라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37년 직장을 뒤로하시는데 만감이 교차하시겠습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무사운전을 우선 학규마을의 이름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