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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창의포럼에서는 『먼나라 이웃나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만화가 이원복 전 덕성여자대학교 총장을 초청했다. 그는 1946년생으로 5남 2녀중 막내로 대전에서 출생, 1962년 경기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소년한국일보에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966년 서울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으나 물리, 화학, 수학 등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여 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 주로 만화를 그리거나 친구들과 명동을 기웃거렸다. 독일 유학 중이던 형의 도움으로 ‘81년 서독 뮌스터대학교 디자인 학부로 유학하여 ’86년 Dipl. Designer 학위를 받고, 동교 철학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유학시절 장학금과 소년한국일보 연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여 돈을 모아 고물차를 사서 여행을 많이 했다. 이 시기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구상하였고, ‘81년부터 소년한국일보에 『먼나라 이웃나라』 유럽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84년 덕성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부임하여 예술대학장, 석좌교수를 거쳐 2018년까지 제 10대 총장을 역임했다. ‘85년 독일 뮌스터시와 코스펠트시 초청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한국도서잡지위원회 금상, 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 금상 및 간행물 윤리상을 수상한바 있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대학 객원교수, 대전엑스포 및 하노바엑스포 전시자문위원, 한국만화·애니메이션 학회장으로 활동했다.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비롯하여 『자본주의 공산주의』, 『현대 문명진단』, 『신의나라 인간나라』,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등 수많은 저서가 있으며 『먼나라 이웃나라』는 영어판, 프랑스,어판, 중국어판 등 7개국 언어로 번역 출판되어 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자그마한 체구, 말쑥한 진회색 양복차림에 사선줄무늬 넥타이 그리고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 금테안경의 노신사가 사회자의소개를 받으며 단장으로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이원복입니다’ 로 말문을 열었다. 강의 요청을 받을 때는 항상 물어본다. ‘무엇에 대해 강의를 할까요?’ 지금까지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돌아온 답이 있다. ‘아무거나.’ 왜 그러냐니까 만화가니까 그냥 재미있고 아무거나 들을만한 얘기를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인거 같다. 굳이 특별한 주제를 안 정하니까 사실 강의를 하는 입장에선 무지무지 편하다. 오늘의 주제는 사실 처음으로 공개하는 강의다. 7월 달에 러시아를 다녀왔다. 대륙횡단을 했다. 시베리아를 다녀온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먼 나라 이웃나라≫ 러시아 편을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이 75년에 처음 해외를 나가기 시작해서 거의 44년 동안 돌아 다녔는데 당신이 한 여행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여행이 무엇이었냐.’ 그렇게 물으신다면 저는 두 개의 여행을 들고 싶다. 하나는 1989년에 갔던 구소련 때의 여행, 둘째는 그로부터 정확히 30년 뒤인 2019년 7월 달에 다녀온 러시아 여행이다. 같은 나라지만 많이 다르다.
< 깜짝 놀라는... 한국인... 해외여행 통계... >
오늘 이야기는 여행담이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게 남 여행하는 이야기다. 여행담 대신 여행 중 느꼈던 여러가지 일들을 이야기 하겠다. 작년에 한국인이 몇이나 해외여행을 갔는지 아시는가. 정확하게 2869만 명이다. 물론 세 번 나간 사람도 있고 열 번 나간 사람도 있고 못 나간 사람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한번 나간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거의 전 국민의 56%가 해외에 나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일본 사람들은 몇이나 해외여행을 다녀왔을까? 1800만명이다. 인구는 우리의 세 배인데 말이다. 미국은 54%, 호주가 51%다.
그러면 세계 제일의 여행 챔피언이 누구일까. 바로 독일이다. 독일사람 1억 8000만 명이 여행을 다녀왔다. 인구 8000만 명의 나라에서 무려 234%가 해외여행을 간 거다. 우리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여기 비교 기준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국경이 있는가? 국경이 하나있다. 말하자면 북한이다. 하지만 사실 거긴 국경이 아니다. 왜냐면 대한민국의 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대한 한반도와 그 부속영토로 한다.’라고 적혀있기 때문에 헌법 상 북한도 우리 영토다. 공식적으론 국경이 하나도 없는 거다. 독일은 국경이 무려 9개다. 독일 서쪽 끝에 아헨이란 도시가 있다. 그곳에 한 꼭짓점이 있는데 이 꼭짓점이 어떤 지점이냐면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이 세 나라가 만나는 곳이다. 그것을 트라이랜더렉, three country point라고 부르는데 거기 돌맹이 하나가 있다. 여러분들 거기가서 노래 한번 해보시라. 산골짜기에 다람쥐~ 하면서 세 바퀴 도시라. 그러면 9개국 다녀오신 거다. 독일사람 234%가 여행했다 해도 국경 하나 없는 대한민국 사람 2869만 명이 나간 거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30년 전 해외에 나간 우리나라 국민이 121만 명인 거에 비해 지금 무려 24배가 늘었다. 세계에서 제일 글로벌라이징 된 그리고 글로벌라이징 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인데 의외로 우리자신을 우리가 너무 모른다.
< 여행지의...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
질문 하나 더 하겠다. 여기서 동방 정교회 신도 계시는가? 그러면 여기 무슬람 계신가? 보시라. 완전히 편파적이다. 서구적인 기독교, 가톨릭 아니면 개신교, 여기 성공회 신도도 드물 거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세계 지도를 펴놓고 보면 너무 빈곤하다. 조금 안다는 것이 우리가 여행을 줄창 다녀온 서유럽 일부, 그리고 동남아 일부, 일본 그리고 중국 일부다. 그 다음 어디를 아시나.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등을 아시는가? 폴란드 동쪽부턴 거의 모른단 이야기다. 요즘 우리나라도 여행 트렌드가 굉장히 바뀌고 있다. 한동안은 서유럽 여행이 굉장히 유행했다가 트렌드가 점점 동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아드리해 쪽 오스트리아, 그 다음에 크루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쪽으로 인기가 있다가 이제 발칸 반도 쪽으로 해서 요즘에는 또 코카서스 지방이라고 조지아랑 아르메니아가 핫하게 뜨고 있다.
앞으로 크게 뜰 장소가 러시아다. 러시아 땅덩어리가 얼마나 큰지 아실 거다. 1700만 평방 km다. 대한민국의 170배다. 소련이 분해돼서 15개의 공화국으로 나뉘어서 그렇지 옛날에는 2200만 평방 km였다. 그런 거대한 나라인데 현재까지 대한민국이 알고 있는 지역은 겨우 쌍뻬떼르 부르크, 모스크바 정도다. 그 외엔 가보신 분들이 거의 없다. 유튜브에 보면 가끔 시베리아 횡단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미리 말씀드리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출발해 모스크바까지 가는 거리가 정확하게 9,288km다. 쉬지 않고 꼬박 6박 7일이다. 뭣도 모르고 그게 낭만적으로 보여서 젊은 혈기에 그걸 타잖는가. 그러면 7일 간의 감옥생활이다. 비데 있고, 티비 있고, 게임기 있고, 컴퓨터 있고, 핸드폰 있고... 그런 골방이라면 나가라도 안 나간다. 그런데 여섯 명 자는 침대 칸, 네 명 자는 침대 칸에 일주일 간 갇혀 지내면서 바깥 풍경을 한번 보시라. 자기 전에 본 풍경, 깨어나서 본 풍경, 밥 먹고 나서 본 풍경, 일주일 내내 똑같다. 징기스칸이란 인물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독일 근교까지 왔을까. 굉장히 의문스러웠는데 이번에 가보니까 알겠더라. 땅을 대패로 밀었다. 시베리아에서 러시아 국토가 물론 산도 있는 지방이다. 중간에 가로 막고 있는 것이 우랄 산맥이라고 하나 있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한라산보다 낮다. 이 우랄 산맥의 에버리지 고도가 500m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완전히 기마민족인 몽골족들에게는 고속도로인 거다. 그냥 거침없이 달려가 버린다. 이런 식으로 참 세계는 넓고 볼 것은 많다.
< 구 소련... 국제공항의... 카트... >
왜 1989년에 다녀온 소련 여행이 인상 깊었었을까? 세상... 그런 나라는 처음 봤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동구권이 붕괴되기 전이기 때문에 동구권에 못 갔지 않나. 거기 가게 된 이유가 있다. 1987년에 6.29선언이 일어나니까 그 동안 막혀있던 노동운동이라든지 사회운동 등으로 난리법석이 났다. 사회가 굉장히 혼란했다. 그때 ‘지금 우리나라에선 사회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사회주의를 한다고 난리고...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자본주의 한다고 난리인데 이 두 가지 시스템을 비교해서 만화로 좀 만들어주세요’ 하는 요청을 받았다. 제 아무리 사회주의 칼 막스의 고향인 독일에서 10년을 있다 왔다지만 정확하게는 잘 모르지 않나. 어떻게 모르면서 다른 이데올로기를 비판 내지 비교를 하나. 요청한 사람에게 얘기했다. ‘사회주의 국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나보고 글을 쓰란 얘기냐.’ 그래서 처음으로 비용 지원을 받아서 국가안전기획부의 허락과 교육을 받고 당시 금단의 지역이었던 소련을 들어가게 됐다. 그게 1989년 12월이었다.
딱 들어갔는데... 그 때 가장 크게 놀란것은 국제공항이었던 소련 모스크바 공항의 음침함과 스산함.... 더 크게 놀란 것은 한국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모스크바 공항의 모든 카트에 찍힌 삼성 마크였다. 그 때만 하더라도 이른바 배운 사람들에게는 기업인들에겐 적개심을 느껴야하고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동정심을 보여야 멋있는 거 같은... 그런 것이 사회 트렌드였다. 나 역시 그 중의 하나였는데 딱 들어와서 보니깐... 기업들은 이미 적지 안에 들어와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었던 거다. 대기업하고 재벌은 다르다. 왜냐면 대기업이라는 것은 소기업이 가장 크게 목표로 하는것 아닌가. 소기업, 중소기업이 커서 되는 것이 대기업인데 대기업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 때 동행했던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멋진 말을 하나 했다. ‘대기업 10개만 있으면 우리 한국이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다.’ ‘왜 그러냐.’ 했더니 ‘호박이 한번 구르나 좁쌀이 백번 구르나 간 거리는 호박이 많다.’ 고 했다. 그게 바로 대기업이다.
< 설렁탕... 4그릇... 2시간... 기다리다...>
그때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테이블은 4개인데 종업원은 20명이었다. 사회주의 국가 헌법에 모든 인민은 직업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실업자가 있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 공장이 안 되니까 자동차 기술자를 데려다 식당에 꽂아 넣는다. 그 다음에 놀란 것이 종업원이 20명이나 되는데 주문을 안 받는다. 예를 들어서 ‘설렁탕 네 그릇이요.’ 하는데 주문 들은 척을 안 한다. 그때 느낀 것이 사회주의 국가란 뭐냐, 결론은 ‘모두의 것은 아무의 것도 아니다.’ 라는 것이다. 애걸복걸하면서 설렁탕 네 그릇을 주문하니까 그제야 겨우 알아듣고 주방에 냅다 소리를 친다. ‘설렁탕 네 그릇!’ 그러면 쿠커들이 또 한참을 수다를 떤다. 일을 안 한다. 수다 다 떨고 나서 그 다음에 설렁탕 퍼내오는 거다. 설렁탕 한 그릇 먹는데 거의 두 시간 걸린다. 놀라운 일이다. 그 때가 ‘89년도니까 소련이 아주 어려웠을 때다.
또 다른 일화가 있다. 길거리에 가게가 쭉 있는데 사람들이 전부 다 검은 비닐 백을 하나씩 들고 쭉 줄을 서있다. ‘당신 왜 서있냐. 뭘 팝니까.’ 묻는데 모른다고 한다. ‘아니 왜 모르면서 줄을 서있어요?’, ‘뭔가 하나라도 사갈 수 있으니까...’ 여러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가면 굼 백화점이라고 있다. 아주 휘황찬란한 건물 양식으로 되어있는 백화점인데 거기에 에르메스, 루이비통 아주 난리가 났다. 아르마니 어쩌구 난리법석... 파리에 있는 거 여기에 다 있는데 가게 3분의 1이 비어있다. 물건이 없어서 텅텅 비었다. 그 당시에 ‘아, 내가 사회주의에 살면 굉장히 고민을 안 하고 살겠구나.’ 하고 느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 참 불쌍하다. 맨날 고민해야 된다. 비누 하나 사는데도 고민한다. 애경 비누 살까, 룩스 비누 살까, LG생활건강에서 나온 거 살까? 고민하다가 가격 비교하고 그런다. 사회주의 국가... 생활용품점 가니까 비누가 산더미처럼 쫙 쌓여있다. 거기 포장지에 뭐라고 써져 있느냐. 비누.... 고민할 필요 없다.
< 2019년 러시아.... 대륙횡단 여행... >
그런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이 붕괴되고 이번에 가서 보니깐 완벽히 새로운 변신을 하고 있더라는 얘기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것은 나도 처음 본 현재 러시아의 속살이다. 자~ 우리가 대개 러시아 대륙을 횡단한다하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를 생각한다. 난 생각을 다르게 했다. 만약에 대한민국 한반도가 통일이 돼서 우리가 열차 편으로 모스크바에 간다면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 거치고, 하얼빈 거쳐서, 최후의 리스본까지 기차로 갈 수 있단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실적으로 여행자의 입장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차를 타고 갈 것이냐, 아니면 평양으로 해서 만주코스를 택할 것이냐 하는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막혀있다는 거다. 북한 철길이 열리면 서울, 인천으로 해서 다롄, 뤼순 그 쪽으로 비행기를 타고 간다. 여기까지 배 타고 갈 이유가 없다. 비행기를 타고 가서 다롄에서 단둥, 거기서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간 다음에 만주리 라고 하는곳이 있다. 여기가 엄청나게 중요한 도시다. 중국이 동유럽에 수출하는 화물의 60%가 지나는 도시로 엄청나게 큰 자유무역 지역이다. 만주리 옆에 자바이칼스크가 있고 그 다음에 치타가 있다. 동물 치타가 아니다. 이 치타라는 곳이 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러시아에서는 완전히 세상의 끝이었다. 만주리에서 이렇게 쭉 가는 거다. 현재는 북한 철길이 막혀있기 때문에 단둥역에서부터 기차역이 시작된다.
< 만주철도를... 건설한 러시아... >
혹 만주철도 아시는가? 이것을 동청철도라고도 하는데 누가 놓았느냐 하면 옛날 청나라 시절 러시아가 놓았다. 1895년 청일 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조선을 완전히 장악해 청나라를 쫓아낸다. 그러면서 일본이 만주를 넘보기 시작하니까 러시아가 일본을 막아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 러시아 정부가 청나라 정부에 가서 ‘우리가 일본이 요동반도를 넘보는 거를 막았으니 대신 만주철도를 건설할 수 있는 권리를 다오.’ 해서 만주철도 개설권을 얻었다. 러시아가 만주철도를 가지려 한 이유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블라디보스토크하고 뤼순항, 이 두 항구를 얻기 위해서다. 세계 지도를 보면 러시아가 어마무시하게 크다. 왜 이렇게 큰 줄 아시는가? 결국은 부동항, 얼지 않는 항구를 얻기 위해서 뻗어나가다 보니까 저렇게 된 거다. 이 큰 러시아 대륙에 부동항이 딱 한 군데 있다. 무르만스크라고 핀란드 끝 북극해 쪽에 있는 항구다. 서쪽에서 흘러오는 해류 때문에 유일한 부동항이 거기다. 근데 너무 멀어서 부동항이 있어봤자 너무 멀어 운송의 잇점이나 국방강화의 효과도 없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러시아의 숙원은 계속해서 남하해서 부동항을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1848년 이후에 우수리스크 북쪽인 하바롭스크 쪽... 1860년대 2차 아편 전쟁 때 은근슬쩍 블라디보스토크를 뺏었다. 당시엔 극동 쪽의 유일한 부동항이었다. 그런데 러시아가 남쪽으로 내려오면 유럽 쪽에서는 흑해인데 흑해는 오스만 제국이 있지 않나. 때문에 못 내려가고 그 다음에 중국 쪽엔 청나라가 있고, 그 밑에는 인도가 있어 못 내려오니까 유일하게 원하던 곳인 아프카니스탄 쪽으로 내려와서 지금까지도 그 난리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극동 쪽에서 제일 중요한 부동항이 바로 이 블라디보스토크인데 치타가 여기다. 그래서 이 만주철도를 러시아가 놓은 거다.
근데 일본이 1931년까지는 하얼빈 아래까지만 지배했다가 러일전쟁에서 이긴 다음 결국엔 이 만주철도를 차지한 거다. 자,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러시아의 철도하고 일반 유럽 대륙의 철도는 스탠다드가 다르다. 열차 사이의 표준 궤가 있는데 러시아 철도는 광궤다. 넓은 철도라는 말이다.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철도의 넓이가 1345mm다. 러시아 철도는 1520mm다. 그러니까 8.3cm가 넓다. 프랑스와 스페인도 프랑스는 표준 궤인데 스페인은 1680mm다. 넓게 한 거다. 그럼 왜 이렇게 넓이를 달리 했느냐. 대개 열차 간의 철도 넓이를 달리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침략을 막기 위해서다. 1812년에 러시아가 바로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았다. 그 직후에 열차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 1807년에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략한다. 두 나라 다 프랑스한테 된통 당했으니까 바로 옆에 강대국인 독일이 있는 러시아로서는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철도 넓이를 8.5cm 넓힌 거다. 전부 다 8.5cm 넓은 1520mm 로 해놨는데 일본이 이걸 다 차지했다. 일본은 중국 전체 그 철도에 철로가 표준 궤니까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서 이걸 전부 1345mm로 바꿨다. 때문에 실제로 경험해보면 웃지 못 할 스토리가 많이 생긴다.
< 개 고생... 열차 바꿔타기... >
그러면 여기서 상상해보시라. 아주 느려빠진 완행열차로 러시아까지 간다. 여기서 바퀴 폭이 다르니까 어떻게 해야 되나.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짐을 몽땅 싣거나 옮겨 태우고 아니면 바퀴를 바꾸는 거다. 이런 작업을 하면 보통 국경 넘어가는데 10시간이 걸린다. 10시간 동안 승객에게는 옵션이 있다. 너 열차에 남아 있을래, 밖에 역사에 있을래.... 역사에 나와 있으면 10시간 된통 심심하고 아무것도 할 일없고, 기차에 남아있으면 뭐가 문제가 있느냐하면 열차가 정차하면 화장실도 못 쓰고 냉난방이 다 꺼진다. 어떤 분이 용감하게 열차에 남아있었던 적 있던 모양이다. 열차에 남아있다 개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지 말고 육로로 가보자.’ 해서 육로로 갔다가 정말 큰 고생을 했다. 우리가 지나 온 경로가 만주리부터 치타,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를 보고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리스크, 옴스크, 튜멘, 예카테린부르크, 카잔, 니즈니 노보고로드, 모스크바였는데 거의 서울에서부터 시작해서 9,000km가 넘는 여정이었다. 시베리아 철도를 놓기 시작한 것이 1891년부터 1916년까지 25년간이다. 25년간 놓은 철도는 노보시비리스크부터 블라디보스토크다. 그러니까 반 이상의 거리가 이미 놓여있었다는 얘기다. 만약에 남북 철도가 연결돼서 화물차로 우리가 모스크바까지 짐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경제효과가 있느냐! 경제효과는 사실 상 제로다. 세계에서 제일 큰 화물선인 컨테이너 화물선이 한 번에 실을 수 있는게 컨테이너 23,652개다. 이것을 갖다가 우리가 열차로 나눠 실으면 컨테이너 세 개를 한 열차 한 량에 실을 수 있다. 23,652개의 컨테이너 열차에 나눠 실으면 열차 길이가 부산에서 왜관까지 간다. 155km가 된다. 사실상 거대한 짐을 갖다가 열차로 보낸다는 것은 의미가 없고 상당히 양이 작은 분량이던가 아니면 시간이 비교적 촉박한 화물들은 열차로 보낼 수가 있다.
인천공항에서 1시간 20분 만에 다롄에 도착했다. 사실 굉장히 가까운 거리다. 사실 중국은 거의 우리 수준 이상으로 왔다. 다롄을 왜 갔냐하면 다롄에 붙어있는 곳이 뤼순(여순)이다. 여순항은 아주 중요한 군사지역이다. 러일전쟁의 결정적 승패를 가른 여순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또 여순은 안중근 의사가 갇혀있었고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 곳이다. 203고지라고 해서 러시아군대와 일본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그 유적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3고지라고 하는 것은 그 언덕의 높이가 666피트. 203m의 높이이기 때문에 203고지라고 이름이 붙어있는데 러일전쟁 역사에서 가장 큰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 여기였다. 이곳에 러일전쟁 때 썼던 일본군들 대포가 남아있다. 여기에 바로 안중근 의사가 갇혀있었던 감옥이 남아있는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 단둥... 압록강... 신의주... >
이제 단둥을 한번 보자. 뤼순에서 차량으로 3시간 30분거리에 있고 압록강이 흐르고 있다. 신의주 건너편에 있는 중국의 도시인데 여기서 북한하고 비교해보면 진짜 할 말이 없어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같은 공산당이고 북한도 공산당 이름만 노동당이라고는 하지만 공산당인데 같은 공산체제를 갖고 있는 그 두 나라가 이렇게 차이를 보일수가 있는가. 어떻게 보면 이게 북한의 비극인지도 모르겠다. 단둥의 중국쪽은 화려하고 지금 굉장히 돈냄새가 많이 나는 곳이다. 그 건너편은 신의주이다. 이곳 압록강에 끊어진 다리가 있다. 1950년에 6.25 전쟁이 터졌고 10월달에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미군이 후퇴하면서 끊어놓은 다리다. 지금은 굉장한 관광지로써 쓰이고 있는데 관광객들이 거의 100% 중국인이고 약간의 한국인들이 있다. 우리의 참 비참했던 슬픈 역사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다리다.
단둥에서 바라본 신의주는 굉장히 을씨년스럽고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고 너무나 비교가 된다. 단둥 쪽은 굉장히 융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중국인이 경영하는 한국식당인 아리랑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북한아가씨들을 여기서 종업원이라고 한다. 외화벌이하는 사람들이다. 이곳에 한국수출입상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 단둥역에는 모택동상이 있는데 중국에는 지금도 어디가나 항상 이 모택동의 동상이나 그림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천안문 광장에 있는 그 어귀에도 모택동 사진이 붙어있다.
<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 >
중국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한다. 세 사람의 지도자를 기리는데 그 세 사람이 누구냐면 마오쩌둥(모택동), 저우언라이(주은래), 덩샤오핑(등소평) 이 세 사람을 든다. 초기의 혁명에 가담한 사람들이다. 중국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냐면 마오는 산이고... 저우는 물이고... 덩은 길...이라고 한다. 그게 무슨 뜻이냐니까 이 모택동이 죽인 사람이 약 5,000만명이다. 여러 가지 전쟁에서 1,000만영 죽였고, 문화혁명에서 2,000만명 죽였고 그 다음에 대약진운동에서 2,000만명 굶겨죽였고... 그런 엄청난 과오를 저질렀는데 중국사람들은 7가지를 잘못했어도 3가지를 잘했으면 됐다는 거다. 모택동이 지금도 존경을 받고 있는 이유는 중국이라는 나라만큼 자본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나라가 없고 만약에 중국이 서양적인 자본주의를 했다면 전 국민이 지금 기아와 기아선상을 헤맬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란다. 중국은 멘탈리티 구조 자체가 사회주의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택동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끝까지 지켜냈기 때문에 산같이 움직이지 않는 이념의 산이라는 얘기고... 저우언라이는 중국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중에 하나인데 제갈량 다음으로 제일 훌륭한 제상중의 하나라는 얘기다. 왜 그러냐하면 저우언라이의 특징이 뭐냐면 한번도 제 1인자가 되어보려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영원한 허브로서 위와 아래를 잇고... 좌와 우를 잇고... 상과 하를 잇는... 물처럼 다 이어주는 그런 연결역할을 했기 때문에 중국이 오늘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덩샤오핑은 이 마오와 저우언라이의 그 산과 물을 따라서 이제는 중국이 가야할 길을 제시했다는 얘기다. 개혁개방이라고 하는 길을 제시했기 때문에 지금 중국에서는 이 세 사람이 가장 중요한 지도자로 여겨지고 있다. 저우...하고 덩...은 잊혀졌지만 이 마오쩌둥은 영원히 잊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다.
< 하얼삔... 1,000마리 호랑이와... 월드와이드 러브... >
단둥역에서 4시간 중국 고속철도를 타고 하얼삔으로 갔다. CRH라는 것이 China Railway High-speed. 그러니까 KTX같은거다. 여기는 시설이나 속도면에서나 KTX하고 비교해봐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아주 대단한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는 열차이다. 그래서 거의 1000km 가까운 거리를 4시간에 주파한다. 하얼빈역인데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장소는 남아있다고 하는데 찾아보기가 어렵고 왜냐면 하얼빈도 역이 여러개 있다. 하얼빈 본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다. 여긴 완전히 한국사람들을 겨냥해서 돈벌이 하기 위한 거 같다. 거의 한국분들만 주로 온다. 여기에 보면 테마파크가 있어서 여기에 호랑이파크가 있는데. 여기한번 가보면 재밌다. 세계에서 제일 큰 시베리아 호랑이 파크다. 자기들 말로는 천마리를 사육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가면 수백마리는 구경할 수 있다. 호랑이가 참 잘생겼다. 관광객들이 이렇게 무장한 버스를 타고 가면서 돈내면 또 고기 주는 이벤트로 한다. 호랑이들 떼거리로 다니고 있고 고기 얻어먹으려고 덤비는 호랑이들이 보인다.
그런가하면 이 하얼빈만 하더라도 건축이나 이런 것 들이 굉장히 북방적인 독특한 양식을 띄고 있다. 여기도 굉장한 대도시이다. 교통의 요지이고 쑹화강 이 흐르고 있다. 우리가 지금 글로벌시대를 산다고 하는데 옛날 그 일제시대때만 하더라도 굉장한 글로벌시대였던거 같다. 왜 그러냐면 그때 나온 이광수의 유정이란 소설 들어보셨나? 유정... 아마 젊은 분들은 잘 모를텐데 유정이란 소설을 보면 주인공인 최석이다. 다 때려치우고 스캔들에 휘말려서 도망간데가 바이칼호수다. 시베리아 횡단철도타고 바이칼까지 갔는데 남정임이라고 하는 연인이 동경에서 그 소식을 듣고 이 최연인을 따라서 바이칼호수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 당시만 해도 굉장한 월드와이드한 러브 아닌가? 그런가하면 우리가 알고있는 윤동주 시인도 만주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이런식으로 그 시대에는 국경개념이 많지 않았는데 6·25 후에는 남한에만 갇혀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많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 러시아 정교... 양파지붕... 그리고 아카펠라... >
하얼빈 중심가에는 러시아 정교 성당이 있다. 러시아의 정교회 전통 건축양식의 특징은 양파모양 지붕이다. 근데 양파지붕이라고 그러면 안 된다. 양파를 먹는걸 왜 교회 꼭대기에 올려놓겠나. 양파가 아니라 이건 왕관이다. 크라운... 예수님이 쓰신 그 왕관을 상징하는 것이다. 러시아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정교 교회 건축양식이 바로 이 왕관지붕이다. 이것이 딱 하얼빈 한복판에 있다는 얘기는 당시에 하얼빈이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러시아의 성당을 보면 동구권도 그렇지만 대단히 건축양식이 아름답다. 왜냐하면 이 정교회에서는 로마가톨릭하고 달리 우상숭배를 안하기 때문에 절대 어떤 조각품을 사용 못하게 한다. 그 안에 들어가도 절대 어떤 조각품이 없다. 가톨릭교회인 노트르담 사원이나 성당에 들어가 보면 우중충하고 예수상, 무슨상, 성모마리아상 조각과 성화, 성경그림 등이 몇개 붙어있다. 그런데 정교는 일체의 조각을 금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림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가 굉장히 아름답다.
또 가톨릭교회와 정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가톨릭교회당 성당에 가보면 가운데 예배를 보는 의자가 있다. 그런데 정교회에는 의자가 하나도 없다. 정교는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못 보게 돼있다. 건방지게 어디 하나님 앞에서 앉아서 예배를 보느냐. 러시아에서는 180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보통 황실에서 하루에 예배시간이 6시간이었다. 정치 안하고 예배만 봤던 거 같다. 그만큼 신앙이 깊었다는 거다. 그래서 전부 서서 해야 되고 정교회 보면 쭉 빙 돌아가면서 엉덩이를 약간 걸칠 수 있는 시설이 있긴하다. 그것은 노약자나 임산부를 위해 2시간 이상 오래 걸리는 기도시간에 걸치고 앉아라. 하는 정도이지 앉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징은 일체 악기를 쓰지 않는다.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로만 아카펠라... 사람의 목소리로만 한다. 성당에 가보면 파이프오르간이 있고 성가대가 있고 어떤 때는 오케스트라 와서 연주하고 난리법석을 치는데 정교에서는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로만 하게 돼 있다. 그러다보니까 모두가 서서 아주 엄숙하게 굉장히 더 분위기가 성스럽고 신비해보이는 그런 특징이 있다.
< 만주리에서... 국경넘다가... 생 고생을 하다.... >
하얼삔에서 본격적으로 만주리까지 12시간 30분 철도 여행이 시작된다. 완행열차다. 만주리라는 곳은 인구 한 10만명 정도 밖에 안 되는데 크기는 서울 전체 크기보다 크다. 만주리는 러시아 자바이칼스크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곳이고 완전 자유개방지역으로 중국에서 동유럽으로 보내는 모든 화물의 60%가 여기를 지나간다. 그러다보니까 여기는 엄청난 교역도시이고 대단히 번창한 상업도시가 돼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건물만 봐도 돈 냄새가 많이 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곳에서 러시아 자바이칼스크까지 가려면 열차를 들어올리고 바퀴를 빼고 다시 집어넣는 하기때문에 열차역에서 8시간~10시간을 기다려야 된다. 근데 그걸 경험한 사람이 일행 중에 있어 ‘그러지말고 우리 육로로 가자. 육로로 가면 2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우리가 육로로 갔는데 그게 자충수였다. 완전히 거기서 피를 봐도 그런 피를 본 적이 없다. 개고생했다. 왜냐면 여기가 교역도시다 보니까 러시아에서 넘어오는 보따리장수들 천국이다. 그래서 한사람 앞에 보따리장수 규격이 있는데 2개씩을 들고가는데 먹이사슬이 또 있지 않나. 중국도 물론이겠지만 러시아의 부정부패 라는건 말을 못할 정도다. 보따리에 한 개당 얼마씩 암묵적으로 내는 세금이 있는 모양이다.
< 사회주의의... 민 얼굴... >
처음 부딛힌 곳이 세관이다. 말하자면 이곳 국경에서 여권검사하고 나면 이미 그곳은 국제공간, 보세공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차를 안 타고 육로로 가면 2시간이면 된다고 해서 8시 출발기차인데 4시에 떠나면서도 굉장히 걱정을 했다. ‘너무 일찍 간거 아니냐. 괜히 가서 또 별 볼일 없는데 가서 기다리는거 아니야?’ 하면서 일찍 가자고 서두른 사람을 욕했다. 자! 육로로 건너갔다. 어떻게 됐냐면 러시아 국경에 가니까 관리자가 한국 사람을 처음 봤다는 거다. 어느 미친 한국 사람이 이 육로로 오냐고.... 전부 다 기차타고 가는데 당신들은 진짜 한국사람 맞냐고 한다. 한국여권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하더라. 근데 한국에 대한 관심은 있어 거기에 한글판 글자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통역가이드까지 합해서 6명인데 한사람 당 30분씩 검사를 하는거다. 무슨 검사를 하냐면 젊은 그 세관원이 딴 검사는 안하고 한글만 비교한다. 이 글자는 ‘이응’이 여기있어. 이걸 어떻게 읽느냐. ‘이’라고 읽냐? 그거 참 신기하다... ‘이거 어려운데’ 하면서 30분을 보낸다. 예외가 없다. 이게 무얼 말하냐 하면 사회주의 국가는 지금도 자본주의 물이 들어왔어도 ‘모두의 것은 아무의 것도 아니고 같은 월급받는데 남보다 일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지금 기차 타야되는데 큰일났다. 발을 동동 굴러도 It's your problem. 그거 니 문제지 나하고 무슨 상관있냐. 이거다. 국경 통과하는데 정확하게 3시간 넘게 걸렸다. 3시간 넘게 걸렸는데 문제는 뭐냐면 딱 마지막 한명이 한 30분 더 걸린거다. 마지막 사람을 남겨놓고 증검사하는 관리가 시계를 보더니 나 퇴근시간이라고.... 그러면서 이 친구를 자물쇠로 가둬놓고 퇴근해 버린거다. 사람 가둬놓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 얘는 보내주고 가야될거 아니냐. 그러니까 It's not my problem. 여기에 자본주의 물이 들어오려아직도 멀었다는 예기다.
나중에 보니까 이 친구가 가고 그 다음 교대가 오는데 30분이 걸린다. 30분 후에 겨우 풀려나왔는데 열차시간까지 30분 남았다. 거리는 5분 거리다. 5분 거린데 문제는 워낙 보따리장수가 많고 부정부패가 횡행하다 보니까 이 자바이칼스크 보세구역을 완전히 철조망으로 둘러놓은 거다. 그래서 어떤 사람도 걸어 나갈수가 없다. 허가받은 버스나 자동차로만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근데 거의 100%가 보따리장사들이니까. 보따리장수들도 전부 각기 다른 지방에서 왔을거 아닌가. 가는 목적지가 다 다르고 이 사람들이 숫자도 그렇게 많지 않고 그러니까 사람이 다 차야 가는거다. 우리는 5분만 가면 자바이칼스크역에서 기차를 탈 수 있다. 근데 이 사람들을 다 모아서 타야되는데 그게 보통 에버리지 3시간 걸린다. 그러니까 결국 6시간 걸렸다. 겨우 역에를 갔는데 이미 기차는 4시간 전에 떠난 상태였다. 그러니까 어떡하겠나? 급히 수소문해서 미니버스를 대절해서 약 500km인가 400km 되는 거리를 열차를 따라잡기 위해서 밤새도록 달렸다. .
< 아가씨... 검은빵... 그리고 보드카... >
자바이칼스크에서 치타까지 약 300km의 거리인데 기차로 11시간 걸린다. 서울서 대구까지가 약 300km다. 왜냐면 기차가 계속 마주오는 기차와 교행을 해야 되니까 그렇다 세상에서 그렇게 마주오는 기차가 많은데는 처음이었다. 러시아에서의 수송은 거의 100%가 항공 아니면 열차로 와야된다. 러시아 사람들 얘기가 러시아에서 가장 좋은 것이 3가지가 있고 나쁜 것이 3가지가 있는데 좋은거 3가지가 뭐냐면 아가씨, 검은빵 그리고 보드카... 이 3가지가 러시아의 자랑이라고 한다. 근데 러시아에는 3가지의 수치도 있다는데 그게 뭐냐면 남자... 그다음에 기후... 그다음에 도로. 라고 한다. 러시아는 너무 땅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도로로는 대책이 안 서는 거다. 여기서 부산까지가 420km인데 거기 인구 10명 살아봐라. 길을 낼수가 있겠나? 아주 황당한 경험이 있는데 노르웨이 에서 차를 몰고 가다보니 도로가 딱 끊어지고 조그만 호수가 나오는데 길이가 한 20m 밖에 안되는데 다리가 없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판떼기 위에다 차를 올려놓고 끄는 바지선이 있더라. 그걸로 옮겨가야 된다고 하는데 거기가 노르웨이였다. 거기 건너가보니 큰 도시라고 했는데 가보니까 집이 10채가 있다. 너희들 다리를 왜 안 놓냐라고 하니까 집 10채 있는데 하루에 차가 몇 대 지나간다고 여기다 다리를 놓냐는 것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자바이칼스크에서 치타까지 엄청나게 운송이 많기 때문에 이 길이 좋아졌다. 다만, ‘러시아’ 라는 나라를 어떻게 보면 되냐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따라 거기에만 사람이 몰려있지 나머지는 다 비어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시베리아 횡단철도 따라서 나오는 도시들만 보면 러시아의 속살을 다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근데 러시아라는 나라는 17,000,000평방km인데 거기가 우랄산맥를 중심으로 해서 73%가 시베리아다. 그 다음에 27% 가까이가 유럽인데 인구는 70% 이상이 유럽에 다 몰려있다. 그래서 우랄산맥 서쪽은 바글바글하는데 우랄산맥 동쪽은 다 비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 때문에 러시아라는데는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하바로포스크... 치타부터 모스크바까지 시베리아 횡단철도만 따라가면 러시아는 다 보는거다. 우리는 드디어 자동차로 5시간 걸려서 열차를 치타에서 드디어 따라잡았다. 치타 여기는 말하자면 시베리아 끝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곳이다.
< 러시아 정교... 독자의 길을 걷다... >
일반적인 러시아 십자가와 정교 십자가의 특징이 다르다. 러시아 십자가 아래에 빗금이 하나 더 있다. 러시아 정교에서는 십자가 아래 빗금이 기울어진 이유는 하나는 천국을 상징하고, 하나는 지옥을 상징한다. ‘너는 천국갈래 지옥갈래 ’ 라고 하는것이다. 이런 형의 십자가가 있는 것은 러시아정교 뿐이다. 정교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스리디아 정교, 그리스정교, 루마니아 정교, 불가리아 정교... 이들이 로마 가톨릭이랑 다른 이유가 옛날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로마 교구, 콘스탄틴 교구, 안디우크 교구, 예루살렘 교구, 그 다음에 알렉산드리아 교구가 있었다. 근데 이슬람이 팽창하면서 동쪽에 있는 4개 교구가 전부 이슬람의 오스만의 지휘에 점령당하고 로마만 점령 안 당했다. 그런 이유로 로마교구는 독자적으로 발달해서 이슬람의 영향을 안받고 거기서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이런 식으로 질서있는 계급을 만들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슬람교에게 지배를 받은 다섯 개 동방정교는 굉장히 발전이 더덨다. 이슬람교는 상당히 특징이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종교이다. 왜냐 이슬람, 가톨릭, 유대교 전부 똑같은 신을 모신다.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전부 그 뿌리가 같다. 유대교가 뿌리다. 단지 한 쪽은 야훼라고 부르고... 한 쪽은 여호와라 부르고... 한 쪽은 알라라고 부르는 것 뿐이지 하느님은 똑같은 하느님이다. 그러니 너희들 하고 싶은대로 한 명을 모셔라. 단, 이슬람이 종주국이니까 우리 체면을 세우기 위해 지배받은 정교에게 두 가지 옵션을 걸었다. 첫 번째가 옵션이 우리 회교사원보다 너희들 교회를 크게 짓지마라. 지배당하는 놈들 교회당이 우리 것보다 크면 가오가 안서니까 우리보다 적게 지어라는 이야기다. 또 한 가지는 너희들끼리 교회당끼리 연결이 되면 우리 오스만 제국한테 반란을 일으킬 수 가 있으니까 후에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말라고 했다. 그래서 정교는 각자 독자적이게 발달을 한다. 왜냐 Connection이 안되니까. 그래서 세르비아 정교, 루마니아 정교, 불가리아 정교, 크로아티아 정교, 알마니아 정교, 그리스 정교, 러시아 정교 다 따로따로 발전하게 된것이다.
일반적으로 정교 교회당이 작은 이유가 교회를 크게 못 짓게 했다. 그러다보면 재밌는 것이 하나 있는데 처음에는 그 이슬람교를 개종시키기 위해서 종교의 자유는 허하지만은 굴욕적인 조건을 이슬람교도가 걸었다. 너희들 정교 교회당 출입구를 1m이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명령... 교회의 문을 1m이상 높게 하지 말라는 것은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기어들어갔다 기어나오라는 이야기다. 모욕을 주는거다. 근데 여기서 인간의 아이디어가 발동한다. 땅을 1m파고 교회를 짓는다. 그렇게 재미있는 교회당들이 많다.
< 러시아 정교의... 탄생... >
998년에 블라디미르 1세라고 하는 뛰어난 군주가 러시아 정교를 받아들였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러시아가 조금 조금씩 틀을 잡아가니까 ‘이제 우리도 미신같은 원시 종교가 아닌 국교가 있어야 될거 아니냐’ 해서 하나의 통일된 우리를 업셋할 만한 좋은 종교를 가지기 위해 말하자면 TF팀을 구성한다. 우리가 받아드릴 종교의 샘플이 4가지가 있는데 가서 연구를 해오라고 했다 이슬람교, 유대교, 정교, 그리고 로마 카톨릭... 이렇게 4가지를 갖다가 TF팀을 보내 연구를 시켰다. 카톨릭교를 갔다온 사람은 카톨릭 교회말로 최고의 종교다. 근데 우리는 안된다. 왜 안되냐 말이 너무 많다. 맨날 교리 문답한다고 말만하지 기도도 안하고 만나기만 하면 시쳇말로 썰만 푼다는 이야기다. 너무 말이 많은 종교이기 때문에 러시아 사람한테는 맞지 않는 종교라고 했다. 카톨릭 아웃!... 다음에 유대인은 유대교는 어떠냐? 그건 안된다. 왜 안되냐면 집도 없이 쫓 겨난 민족의 종교를 우리가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받아드리냐고 했다. 유대교 아웃!... 그 다음에는 정교는 남겨두고 이슬람교는 어떠냐? 이슬람교야말로 신앙 중에 최고 신앙이다. 엄숙하고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엄청나게 좋은 종교인데 그럼 우리 이슬람교로 갈까? 근데 문제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술 먹지 말라고 한다. 그 추운데 술 먹지 말라고 얼어 죽으라는 이야기냐. 또 하나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그런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 추운데 돼지고기 안먹고 보드카 안 마시면 어떻게 해서 우리가 견디냐고 했다. 이슬람 아웃!... 이래서 정교를 받아들인거다. 이슬람교의 교리가 그들에게 안 맞았기 때문인것이다.
치타에 가면 여기 성당 모습들이 참 아름답다. 치타역에서 이제 횡단열차를 타고 이동해 보자. 그 풍경이 끝내준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일주일내내 자작나무만 본것도 처음이다. 그리고 우랄산맥이 최고 고지가 500m이기 때문에 산이 있는것 같지도 않다. 언덕빼기도 아니고 무슨 동산도 아니고 거의 도착할 때까지 산이 거의 안보인다. 열차 안에는 뜨거운 물이 항상 있다. 식당차도 있고, 풍경이 스펙타클이다. 혹시 바이칼 지방에서 우리민족이 유래했다는 말 들어보셨나? 그 바이칼에 가보면 바이칼호수 오른쪽이 소위 뷰라트 몽고쪽 공화국이다. 몽고민족의 공화국인데 뷰라트 공화국에 그 개국신화가 나무꾼과 선녀다. 우리와 똑같다. 나무꾼과 선녀가 그들의 건국신화인데 우리에게는 동화로 전수되어온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 동양의 파리... 이르츠츠크... >
이제 치타에서 19시간 걸리는 이르츠츠크에 도착하면 그 색깔도 찬란하고 아름다운 성당들이 보인다. 근데 의자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가톡릭이나 개신교 교회는 이런 장식이 전혀 없는데 비해서 여기는 전부 그림으로 성화 내지 성경스토리라던지 그런 이야기들 천국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곳에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이 있다. 데카브리스트는 최초의 러시아 혁명이다. 쳐들어갔다가 1812년에 나폴레옹이 패망한 다음에 1815년에 러시아황제가 러시아 군대를 이끌고 파리에 입성을 한다. 근데 러시아 장교들이 파리의 너무나 앞선 문화를 보고 기절을 해 러시아에 들어와서 일으킨 혁명이 10월 일으켰다고 해서 데카브리스트 혁명이다. 여기 이르쿠츠크는 이제 돈이 많은 도시다. 동양의 파리라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 삼성도 들어와 있다. 여기에 보면 우리나라 모습하고 좀 비슷한 흔적들을 볼 수가 있는 곳이 많이 있다. 특징인 것이 중고 한국버스가 그렇게 많다. 여기 보듯이 ‘신흥고속관광’ 이라고 써있는 버스는 중고차를 수입한건데 이런 버스가 심심치 않게 많다. 이곳에서는 한글을 절대 안 지운다. 일종의 선진국의 상징이다. 여기서 보면 한국버스가 어디서나 눈에 띤다. 이곳에 바이칼 호수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오래되고 깊은 담수호수다. 남북길이가 636km에다가 길이가 미국 오대호 합친만큼 수량이 많다. 세계에서 수량이 제일 많은 호수고 제일 깨끗하고 아름다운 호수로 알려져있다. 유람선 위에서 보면 정말 아름답다. 여기에 오물이라는 바이칼 호수에서 사는 생선이 있는데 드시면 아시겠지만 맛은 더럽게 없다. 짜지가 않아서 염장하지 않은 조기같은 밍밍한 그런 맛인데 보드카하고 마시기가 제일 좋다고 한다.
< 러시아의 놀라운... 세가지... 정체성... >
이르쿠츠크에서 18시간 가면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도착한다. 금광이 발견되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룬 시베리아에서 3번째 큰도시다. 이 열차는 정말 탈만 하다. 크라스노야르스크 가보면 자본주의의 많은 것들이 속속들이 들어가 있다. 지금 러시아를 보면은 거의 옛날의 사회주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근데 한 가지 놀라운건 러시아에 세 가지의 정체성을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차리즘’ 이라는 거다. 두번째 정교가 있고... 세번째는 애국심이다. 이 세 가지를 러시아의 정체성이라 이야기한다. 차리즘이라는 것은 지배자다. 절대적인 지배자... 그 차리즘이라는 것은 차르라는 황제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복종을 의미한다. 충성과 복종... 다시 이야기해서 정치권력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복종이다. 자 그렇다면 정교라는 건 무엇인가. 정교라는 것은 하나님의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복종이다. 그럼 애국심이라는 것은 뭐냐. 이건 이 사람들이 가장 즐겨쓰는 말이 ‘마츠로샤’ 라는 말을 쓴다. 어머니 러시아, 어머니 조국 러시아... 그래서 이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을 나폴레옹 전쟁이라고 이야기 안하고 대조국 전쟁이라고 한다. 마츠로샤 애국심이라는 건 나를 낳아주고 내가 묻힐 땅 자연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순종과 복종이다.
종합해보면 권력에 대한 복종과 순종, 신에 대한 복종과 순종, 그리고 자연에 대한 복종과 순종... 다시 이야기해서 순종과 복종은 러시아인들에 너무 당연한 것이다. 차르가 무너지고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황제가 물러나고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오고 이것은 평등사회, 사회주의 사회,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사회가 절대 아니다. 이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하고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민주주의는 모든 인민이 주가 되는 세상이고 그러니 개인이 없는거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모든 개개인이 주인이 된다.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레닌이 늘 즐겨서 한 말이 뭐냐니까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개뿔도 쓸모가 없다. 민주주의가 단 한가지 소용이 있다면은 혁명의 명분으로는 쓸모가 있다. 혁명의 명분... 민주주의 한다고 혁명을 한다. 소위 민주정권이라고 하는 볼셰비키정권에 들어왔는데 그 다음에 누가 들어왔나. 새로운 차르인 레닌이 들어왔다. 레닌이 죽으니까 그 다음 차르인 스탈린이 들어왔은가. 쭉 내려와서 현재는 차르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진 푸틴이 들어왔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을 해야되나.
< 마무리말... >
러시아라는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지금도 가보면 어느 도시에 가도 대낮인데도 교회마다 신도들로 가득 차있다. 일요일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정교를 얼마나 소련에서 공산주의정권 때 탄압을 했느냐면 지금으로 치면 명동성당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만약 개신교로 친다면 여의도순복음교회같은 모스크바에서 제일 큰 본당 교회를 폭팔했다. 폭탄으로 콩가루를 만들어서 없앤 다음에 거기에 공공노천 수영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압을 하고 이 종교에 대해서 끝까지 인민 탄압을 했는데 이게 소련 무너지고 난 다음에 그거 다시 다 부수고 정교를 다 복원시켰다. 아주 깨끗하게 옛날보다 더 화려하게 말이다. 파리의 노트르담사원이나 서구라파 기독교 그 교회에 가보면 기도 드리는 온 사람들은 80대 노인네 할머니나 관광객 밖에 없다. 거기에 비해서 이 러시아 정교에 가보면 젊은 청소년들부터 시작해서 모든 연령대 신도들이 와서 대낮에도 경건히 예배를 드리는 걸 보면 정교라는 것이 러시아인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러시아의 3가지 정체성 이야기에서 보듯이 러시아 국민들 자체가 민주주의가 아닌 순종에 익숙해져 있다는 말이다. 그걸 아는 정치가가 푸틴이다. 푸틴은 ‘우리는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영국과 미국을 따라하지 않을거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는 서구적 민주주의를 절대 안한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당연히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하는 것이다. 근데 그런 잣대를 가지고 우리가 중국, 러시아를 보면은 절대 이해 못한다. 바로 이렇게 복종과 순종이 체화되어 있는 러시아나 중국에 대해 개개인 의 자유와 인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가 잣대를 잘못대고 있는거다. 야기하다보니까 1시간 30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경청해주시어 감사하다.
(KIST 이동주 님의 후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