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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19:11
내비게이션을 따라갔는데도 막다른 길을 마주하거나 비포장도로를 만나서 당황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신앙 여정도 말씀 따라 선택했지만, 기대한 평안 대신에 낸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곤 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우리는 어디로부터 오는 도움을 기대해야 하는가? 공주야!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핵심 중 하나는 동족을 돌보고 그와 같이 나그네와 이방인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There may be times when, despite following the navigation, you encounter a dead end or a rough road and feel confused. Though we choose our spiritual journey according to the Word, we often encounter the harsh wall of reality instead of the peace we had hoped for. In the face of an inexplicable trial, from where should we expect help? Princess, one of the core teachings of the law given by God is to care for your fellow people and love both the pilgrims and the Gentiles in the sam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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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후 장인의 집을 떠난 레위인은 동족이 환대할 것이라는 기대와 자신이 먹을 것을 충분히 가졌다는 것을 신뢰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했다. 레위인은 다섯째 날이 되어도 보내주지 않을 기세인 장인의 무리한 환대를 거절한 채 오후가 되었음에도 무리하여 출발한다. 이 시간에 출발하면 밝을 때 에브라임에 당도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출발하고 본다. 그가 경유지로 택한 곳은 이방인의 마을 여부스가 아니라 배냐민 지파 가브아 사람들의 고을이었다.
After the sun had set, the Levite left his father-in law’s house, trusting that his fellow people would welcome him and that he had enough to eat. But the result was miserable. Even as the fifth day had passed, the Levite refused his father-in-law’s unreasonable hospitality, which seemed insincere, and set out despite the delay. Even though I knew I wouldn't make it to Ephraim while it was still light if I left now, I decided to go ahead and see for myself. The place he chose as a stopover was not the village of the Gentiles, Jezreths, but the region of the Gibeonites of the tribe of Pena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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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을 구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레위 인이지만, 이방인들과 자신을 구분할 만큼 종교적으로 신경 쓰고 있다. 하지만 이미 10킬로미터를 걸었고, 앞으로6킬로미터를 더 가야 기브아가 나오고, 6킬로미터를 더 가야 라마가 나온다. 하루에 당도할 거리로는 너무 무리다. 더구나 그는 오후 늦게야 출발하지 않았던가. 그에게 중간은 없다. 무모하다. 그런 무모한 열정이 반드시 신앙은 아니다.
Although Levi is problematic enough to the point of seeking a concubine, he is religious enough to distinguish himself from the Gentiles. But I've already walked 10 kilometers; I still have to go 6 more kilometers to reach Gibea, and 6 more to reach Rama. That's too much of a stretch for the distance we can cover in a day. Moreover, didn't he not leave until late afternoon. He has no middle ground. Reckless. Such reckless passion is not necessarily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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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과도한 환대가 싫어 도망치듯 빠져나왔지만,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예루살렘)사람들에게는 기대 했던 영접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냉대를 받았다. 레위 인으로서 정결하지 못한 이방 땅에서 호의를 기대하지 않고 무리 하게 걸어서 기브아에 도착했는데 그는 동족에게서 차가운 냉대를 받을 줄 생각도 못했다. 나그네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던 당시 풍습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Disgusted by the master’s excessive hospitality, he fled, but not only did he fail to receive the welcome he had expected from the people of Gibeah (Jerusalem), the land of the tribe of Benjamin, he was instead treated coldly. As a Levite, he arrived at Gibea by force of his own will in a land of Gentiles, not expecting favor, and he did not even imagine that he would be treated coldly by his own people. Considering the customs of the time when lodging and food were provided to travelers, this is unus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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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대접을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의 명령도 이제 그들에게는 무시해도 좋을 일이 된 것 같다. 상상 이상으로 마음이 차가워지고 사랑이 없는 시대였다. 기브아 사람들은 성읍 넓은 거리(광장)에 있는 레위인 일행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노숙해야 할 처지였다. 그때 등장한 노인에게 레위인 일행은 잠자리를 부탁한다. 그는 이 레위 인처럼 에브라임 출신이고, 이 레위 인처럼 거류민 신세였다.
It seems that God’s command, which emphasizes treating them as pilgrims, is now something they can afford to ignore. It was an era colder than we could have imagined, one without love. The Gibeans did not even glance at the group of Levites in the wide street (the square) of the city. At this rate, I was headed for homelessness. The Levite group asks the old man who then appears for a place to stay. Like this Levite, he was from Ephraim, and like this Levite, he was a fore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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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강조하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노인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 극진한 환대를 제공한다. 장인의 환대, 기브아의 냉대, 다시 노인의 환대로 이어진다. 진실로 율법에 순종하여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신앙의 이름과 공동체의 경계는 분명한데 정작 환대와 사랑이 사라졌다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는가?
Emphasizing that they were fully prepared to minimize any inconvenience, they asked for help, and the elderly person provided a hospitality beyond their expectations. It continues with the master’s hospitality, Gibeon’s coldness, and then the old man’s return. What does it mean to truly live in obedience to the Law? If the name of faith and the boundaries of community are clear, yet welcome and love have disappeared, can we still say that we are God’s people? Do you still trust God beyond expectation, even in the face of harsh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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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온 베냐민 사람들의 냉대(11-15)
에브라임 출신 노인의 환대(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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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여부스에(11a)
가까이 왔을 때에(11b)
해가 지려하는지라(11c)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11d)
청컨대 우리가 돌이켜(11e)
여부스 사람의(11f)
이 성읍에 들어가서(11g)
유숙하사이다(1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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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그에게 이르되(12a)
우리가 돌이켜(12b)
이스라엘 자손에게(2c)
속하지 아니한(12d)
외인의 성읍으로(12e)
들어갈 것이 아니니(12f)
기브아로(12g)
나아가리라 하고(1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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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종에게 이르되(13a)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13b)
한 곳에 나아가(13c)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1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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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앞으로 행하더니(14a)
베냐민에 속한(14b)
기브아에(14c)
가까이 이르러는(14d)
해가 진지라(1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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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아에 가서(15a)
유숙하려고(15b)
그리로 돌이켜 들어가서(15c)
성읍 거리에 앉았으나(15d)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15e)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더라(1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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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저물매(16a)
한 노인이(16b)
밭에서 일하다가(16c)
돌아오니(16d)
그 사람은(16e)
본래 에브라임(16f)
산지 사람으로서(16g)
기브아에(16h)
우거하는 자요(16i)
그곳 사람들은(16j)
베냐민 사람이더라(1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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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눈을 들어(17a)
성읍 거리에(17b)
행객이 있는 것을 본지라(17c)
노인이 묻되(17d)
그대는 어디로 가며(17e)
어디서 왔느뇨?(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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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에게 이르되(18a)
우리는(18b)
유다 베들레헴에서(18c)
에브라임 산지(18d)
구석으로 가나이다(18e)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18f)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18g)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18h)
가는 중인데(18i)
나를 자기 집으로(18j)
영접하(18k)
는 사람이 없나이다(1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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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19a)
나귀들에게 먹일(19b)
짚과 보리가 있고(19c)
나와 당신의 여종과(19d)
당신의 종 우리들과(19e)
함께한 소년의(19f)
먹을 양식과(19g)
포도주가 있어(19h)
무엇이든지(19i)
부족함이 없나이다(19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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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가로되(20a)
그대는 안심하라(20b)
그대의 모든 쓸 것은(20c)
나의 담책이니(20d)
거리에서는(20e)
자지 말라 하고(2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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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데리고(21a)
자기 집에 들어가서(21b)
나귀에게 먹이니(21c)
그들이(21d)
발을 씻고(21e)
먹고 마시니라(2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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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여정을 강행하다_push ahead with an unreasonable journey.
동족 기브아가 냉대하다_It's cold to give-a of the same race is cold.
한 노인이 환대하다_An old man is welco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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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참다운 율법 준수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실천적인 사랑이나이다. 거룩하신 성령님을 황폐한 이 땅 가운데 부어 주 사, 음란을 버리고 거룩함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공동체를 위해 편견과 고집을 버리고 무관심을 거두며 환대의 삶을 살기로 작정합니다.
Lord, true observance of the law is a practical form of love that welcomes the pilgrim. Pour out the Holy Spirit upon this desolate land, help us abandon immorality and restore holiness. They resolve to abandon prejudice and stubbornness, withdraw their indifference, and live a life of hospitality for the sake of the community.
2026.10.8.thu.Clay
신학 비평//
레위인은 여부스를 거부하고 이스라엘 땅 기브아를 선택한다. 이방인의 성읍보다 동족의 성읍이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사사기는 그의 종교적 확신을 잔인하게 뒤집는다. 이방인을 피해서 찾아간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오히려 아무런 환대도 받지 못한다. 기브아의 문제는 단순히 불친절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데 있지 않다. 율법을 가진 공동체가 율법의 정신을 잃었다는 데 있다. 레위인은 먹을 것과 나귀의 사료까지 준비했으므로 그들에게 큰 희생을 요구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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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도 그를 집으로 맞아들이지 않는다. 신앙의 경계는 남았지만 사랑은 사라졌다. 역설적으로 그를 발견한 사람은 기브아 토박이가 아니라 에브라임에서 온 또 다른 거류민 노인이다. 자신도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이기에 광장에 버려진 나그네를 알아본 것인지 모른다.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책임”이라는 그의 말은 기브아 공동체 전체의 무관심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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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문은 “누가 우리 편인가?”보다 “누가 실제로 율법을 살아내는가?”를 묻는다. 거룩함은 이방인과 선을 긋는 것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낯선 이를 발견하고 자기 문을 여는 데서 드러난다. 사사시대의 암흑은 율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율법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짙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