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토끼띠 해, 진정 다사다난했던 2011년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금년 한 해에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우선 수 십 년간 한 나라의 운명과 민중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서 국제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 영웅호걸들이 한 많은 이 세상을 마감하였거나, 권력의 정상에서 물러나는 격동의 과정을 겪었다.
가장 가까이로는 지난 74년 후계자로 내정되고 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공식적으로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어 무려 37년간 권력의 정상에 머무르다 12월 17일에 서거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1969년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뒤 42년간 중동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 독자노선을 유지하다 국가 내분에 의해 지난 10월 20일 사망한 리비아의 카다피가 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1942년 동갑내기로 평소에도 절친으로 알려져 있는데 같은 해 사망하는 기연을 보여줬다.
아울러 국가수반은 아니지만 2001년 9.11테러의 배후이자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지난 5월 미군에 의해 사살됐으며, 국내적으로 한국 근대화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되는 ‘철강 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지난 12월 13일 서거했다. 상기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평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다 한 시대를 화려하게 풍미했으며, 갖가지 역사적 흔적을 남긴 채 종국에는 조용히 이승을 하직했다.
반면에 목숨은 건졌지만 수 십 년간 권력의 최정상에서 천하를 호령하다 ‘아랍의 봄’ 당시 시민혁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들이 있다. 지난 1월 튀니지의 젊은 청년의 생활고로 인한 분신 자살 후 ‘재스민 혁명’의 도화선으로 23년의 권좌에서 물러난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 30년간 권력을 누리다 지난 2월 실각 후 현재 재판 진행중인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 지난 33년간 예멘을 통치해오다 지난 11월 국내외 사퇴압박에 굴복해 물러난 예멘의 살레 대통령 등이다. 그들이 집권한 세월은 최소 20년 이상의 강산이 두 세 번씩 바뀌는 짧지 않은 세월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집권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민중의 환호와 괴로움의 아우성이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영원할 것 같은 그들도 조용히 세상을 떠나거나, 말없는 민중의 뒤편에서 인생의 쓴 맛을 되새기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와 승패 영욕은 신비하여 알 길이 없도다’ 라고 설파하였다. 오늘 필자도 최근의 변화무쌍한 영웅호걸들의 말로를 접하고 이런 저런 역사책을 읽으면서 고금왕래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따라서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영웅호걸들의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후세의 역사가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수 천 년의 역사과정 중 되풀이되고 있는 남은자와 떠나는 자의 아쉬움과 연민의 정에 대해서 옛 선인들은 어떻게 느끼고 표현하였는지에 대해 몇 가지 시와 사례를 들어 보고자 한다.
영웅호걸은 간 곳 없고, 겨울 풀만 무성하구나!
당나라 대 시인 두보(杜甫)는 <공손대랑제자무검기행(公孫大娘弟子劍舞器行>에서 인생의 영화와 허무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었다.
선제에게 시녀가 얼마이던가 경국지색이 팔천여 명이다.
공손(公孫)의 검무가 천하에 이름을 떨치었네
50년이란 긴 시간도 눈 깜짝할 사이
명군은 떠나가고 왕실이 풍전에 묻히었네
이원(利園)의 제자들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차디 찬 겨울을 비치도다
아울러 <관화마도 (觀畵馬圖)>라는 시에서는
지난날 신풍궁(新豊宮)으로 행차 할 때 그 위용은 참으로 당당했었지 금빛 용마에 깃발을 날리며 위풍 당당히 동쪽으로 향하였지
3만필 천리마가 말발굽을 구르는 장엄한 장면 이 그림의 말과 얼마나 흡사한가?
군이여, 보이는가 금빛 알곡더미 송백(松栢)숲에 용은 어디 가고 찬바람만 부느뇨?
라고 화려함 뒤에 남겨진 인생무상함의 단초를 읊었다.
당 시대의 이교 (李嶠)는 < 분양행 (汾陽行) > 이란 시에서 직접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인간의 흥망성쇠에 대해 이렇게 읊고 있다.
부귀와 영화가 얼마나 오래 갈까? 산천을 돌아보니 눈물이 옷섶을 적시누나.
분수를 호령하던 옛사람은 보이지 않고 해마다 가을이면 기러기만 날아간다.
당 현종 이융기 (李隆基)는 이 시를 읽고 처연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서안에 위치한 자은사(慈恩寺) 탑에는 형숙(荊叔)이 새긴 한 수의 절구가 있다고 한다. 비록 글자는 아주 작지만 글자체가 힘있고 매우 감동적이다. 그 절구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나라의 산하는 지금도 의구한데 진시황의 능에는 초목만 무성하구나
낮은 구름에 석양의 놀이 천리에 물들어 있으니 가는 곳 그 어디나 상심만이 앞서누나.
이 시의 기저에 깔린 뜻은 그 함의가 깊고 감정이 절절히 넘친다. 그리고 왠지 인생의 철리(哲理)가 깊이 들어 있는 것 같아 공감이 간다.
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누구나 한 해를 보내다 보면 지나간 한 해에 대한 이런저런 사연과 결과에 대해 아쉬워하고, 특히 년 초에 세운 자신의 소망과 목표에 대한 부족함으로 스스로 계면쩍어 할 경우가 많다. 그렇다. 금년은 모두에게 어려웠던 다사다난했던 한 해 인 듯 하다. 마치 큰 변화가 예상되는 대자연의 전조(前兆)에 대지가 꿈틀거리듯이 요동치는 한 해였다.
2012년은 임진년 (壬辰年), 흑룡의 해라고 한다. 흑룡이란 임진년에서 임(任)은 ‘검은색’을 나타내며 진(辰)은 ‘용’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용은 용기를 가지고 하늘로 비상하는 상상 속의 동물로서 희망과 용기 등의 행운을 상징하며, 용이 되어서 하늘로 승천 하려고 준비하는 용들을 ‘잠룡’이라고 하는데 2012년 임진년에는 여러 나라에서 승천을 준비하는 잠룡 들이 많다. 즉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중국, 러시아, 대만, 인도 등의 주요 국가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아울러 갑작스런 김정일의 사망에 따라 권력 승계자가 된 잠룡 김정은 역시 내년에는 실질적으로 승천 할 수 있을지도 주목거리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내년은 국제정치의 비전문가인 필자가 보기에도 너무나 어려운 고차원 방정식이 퍼즐 게임에 가까운 듯하다. 그냥 종합적으로 금년 보다 결코 더 유리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며 언제 어떻게 변할 줄 모르는 백두산 정상의 날씨만큼이나 예측불가 일 수 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의 시작이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다가 오고 있는 신호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옛 속담을 되새겨 볼 시점이다.
고국을 떠나 이곳 중국 땅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조국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마음의 정성을 다하여 조용한 헌신과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