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이 깊어갈 무렵 양반집 마님이 사랑채에 있는 서방님께 야식으로 들여보내던
음식이 추탕이다. 한낮에는 하인들이나 소작농이 먹는 천한 음식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척하다가 한밤중에 남들이 볼세라 몰래 들여보내던 음식이다.
드러내놓고 먹기에는 점잖지 못하고 남의 이목이 꺼려지기는 하지만 정력에 좋다니
은밀하게라도 서방님께 드리고 싶었던 음식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부터 추탕이
정력에 좋다고 믿었다. 가을이면 살이 통통하게 올라 단백질이 풍부해진 미꾸라지가
식욕을 돋우고 기운을 보강해준다고 믿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추탕을 먹었다.
동네 가까이 추탕 집이 있어 아버지 따라, 좀 자라서는 친구들과 함께 먹곤 하였다.
안감내에 ‘곰보추탕’ 집이 있었고 신설동 경마장 옆에 ‘형제추탕’ 집이 있었다.
‘곰보추탕’은 서울 동쪽 청량리, 망우리 방향에서 온 손님이 우마차 세워놓고
이른 아침 해장들을 했다. 장작 땔나무를 소에 실려 왔는데 추탕집 앞에서 흥정이 끝나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문안으로 팔러 들어갔다. 그때 시끌벅적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추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이름도 서울은 추탕, 지방은 추어탕이라 했다.
추어탕은 지방마다 끓이는 방법이나 맛이 다 다르다.
서울식 추탕! 서울식 추탕은 양지 육수를 사용해 큰 가마솥에서 깊고 진한 맛을 낸다.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두부, 유부에 양파, 대파 등등 풍부한 재료를 씀으로써 맛을 냈다.
서울 추탕의 가장 큰 특징은 쇠고기나 내장으로 국물을 낸다는 것과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째로 넣는다는 것이다. 미꾸라지가 통째로 들어가 있으면 엽기적인 음식이라며 손사래 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여성분들이 손사래 치며 싫어한다. 그러나 엽기적이라고 싫다는
서울식 추탕을 두서너 번 먹고 사귀면 오히려 싫다던 이분들이 더 찾는 것이 서울식 추탕이다.
얼큰하고 진한 맛에 그만 반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몸살이나 감기로 누워 있으면 어머니께서 직접 곰보추탕 집에 가시어 냄비에 들고
오셨다. 그 추탕을 먹고 나서야 생기를 얻고 일어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 건강을 위해 냄비 들고 거리를 다니는 것쯤이야 뭐가 창피하냐 - 뭐가 문제가
될 것이 있느냐 하시며 나르셨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돌아가신 후에 알았다. 일정 때, 6.25 어려운 시기에
9남매를 키우셨으니 당신께서 생전에 당신의 인생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많은 식구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늘 노심초사(勞心焦思)하신 당신께서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겠는가. 올봄에 추도 57주년을 지냈다. 지금도 생전 어머니의 하해(河海) 같은 자애(慈愛)가
얼마나 컸는지 생각하면 나는 불효막심하다.
서울식 추탕 이야기로 돌아와서 지금은 뚝배기에 담아 먹지만 옛날 서울 추탕은 놋그릇에
담아 팔았다. 놋그릇에 담긴 추탕은 지금 보기 어렵다. 놋그릇에 담긴 얼큰한 서울식 추탕
한 그릇 먹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남도식 추어탕! 이름도 추탕이 아닌 추어탕이다.
남도식 추어탕은 남원추어탕, 경산도 추어탕, 그리고 원주 추어탕이 있다.
지역에 따라 끓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데 남원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삶아 갈고 으깬 다음
야채를 넣고 끓이는 방식이다. 남도 특유 음식 맛이 난다. 칼칼한 원주식 추어탕은 부추와
미나리를 많이 넣고 끓인 것을 다시 손님상 즉석에서 끓인다는 것이다.
이식 저식 추어탕 음식이 있었다는 것은 서민들이 그만큼 전국적으로 흔히 먹던 음식이
었다는 반증이다.
추어탕은 반드시 산 미꾸라지로 요리하여야 한다. 미꾸라지는 7월에서 11월까지가 제철인데
이때 가장 살이 찌고 맛이 좋다. 그래서 가을철 음식으로 많이 먹는다.
현재는 양식으로 미꾸라지를 키우기 때문에 계절 관계없이 먹는 음식이 되었다.
요즈음 서울식 추탕 끓이는 곳이 별로 없고 남원 추어탕이 대세(大勢)이다.
서울식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먹는 것도 부담스럽고 너무 맵게 먹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서울식 추탕은 현재 다동 ‘용금옥’과 평창동 ‘형제추탕’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이다. 옛날 나의 이야기 하나이다. 다동 용금옥에 추탕을 먹으로 갔다.
용금옥(湧金屋)이 한옥(韓屋)이라 주방에서 일하는 것이 빤히 보인다.
80년도 초 일이니까 당시 미꾸라지가 귀하고 비싸 그런지 삶은 미꾸라지를 세어서 뚝배기에
넣는 것이 아닌가? 미꾸라지를 세다니? 영업하는 주인아주머니, 입장에서는 고루 분배한다는
차원이겠지만 미꾸라지를 세다니? 그걸 보고 정이 똑 떨어졌다. 나는 뚝배기에 미꾸라지가
들어가고 아니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 용금옥에 가지를 아니하였다.
음식이란 모름지기 자기 어머니 음식이 최고이다. 천하의 미인이라도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잡을 수 없듯이 아무리 맛없는 어머니 된장찌개라도 이를 따라잡을 음식은 세상에 없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음식이 혀에 베이고 몸에 익힌 탓이리라. 어머니가 해준 음식이 세상
어느 음식보다 최고인 것은 몸에 깊게 베인 까닭이다.
추어탕은 입맛 없고 몸이 피로해 처져 있을 때 먹으면 좋은다.
나는 인천 국제성모병원 앞 ‘추오정 남원 추어탕’집에서 먹곤 한다. 병원 신체검사 받으러
갈 때마다 이 집에 들러 추어탕을 먹는다. 곧잘 끓인다.
하여 이 집은 언제나 손님이 바글바글하다. 손님에게 친절하고 맛있고 성의있게 음식을
만들어 영업하면 그 집은 절로 잘되게 마련이다.
바야흐로 때는 맛깔스럽게 끓인 추어탕 한 그릇 먹고 싶은 계절이다.
첫댓글 추어탕은 제게 익숙하지않은 음식인데, 그건 진짜 추어탕 맛을 못 봐서 그렇다던 분이 생각납니다. 진짜라는 말 이면에는 가짜가 많다는 뜻인데....
선생님 글을 읽으니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한번 먹어볼까 싶기도 합니다.
네, 음식이 어려서부터 먹던 것은 괜찮은데 어려서 먹지 않던 것
어른이 돼서 먹자하면 잘 좋아지지 않습니다.
저는 아버지 따라 어려서부터 먹었습니다. 대신 보신탕은 아니 먹습니다.
눈 딱 감고 두세 번 드러보세요. 그러고도 싫으면 맞지 않는 겁입니다.
요즈음 여자분들도 많이 드십니다. 피부에도 좋다하니까요...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