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명장, 고 김성은 장군’
통영상륙작전의 주역, '귀신잡는 해병'이란 칭호도 얻어.
독실한 크리스천, 부대원 사랑으로 감싸주고 포로생명도 소중히 여겨

1950년 6.25일. 북한인민군은 새벽 미명을 틈타 3.8선을 돌파 남침을 개시해,
불과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7월 20일 대전을 거쳐 8월 중순 낙동강까지 진격한다.
낙동강 전선에서 대치상황이 계속되자 8월 16일, 인민군은 통영을 점령하고 전략요충지인 거제도로 진출,
최후의 보루 부산을 점령하려는 작전을 세운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그 때, 김성은 중령이 이끄는 해병대원 500여명은
17일 새벽, 이미 인민군에게 장악된 통영 장평리에 기습적으로 상륙.
통영의 관문인 원문고개와 전략요충지 망일봉을 탈환함으로써 거제도와 부산을 지키고 6.25 전세역전의 교두보를 마련한다.
"이곳이 해병대가 모여서 통영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집결 장소입니다.
이 사거리가. 그래서 해병대가 처음 상륙하고 발을 디딘 곳, 통영상륙작전을 이긴 곳입니다"
통영상륙작전으로 적은 469명이 사살됐고, 83명이 포로로 잡혔다.
반면 아군의 피해는 전사자 19명, 부상자는 47명에 불과했다. 10배가 넘는 전과를 올린 셈이며,
무엇보다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 우리 군의 단독작전으로 남한의 마지막 보루인 부산과 거제도를 지켜냈다는 큰 의미가 있다.
외신들은 이 작전을 보도하며 ‘귀신도 잡을 작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별명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이 빛나는 작전에 감춰진 사실이 하나 있다.
이 작전을 승리로 이끈 고 김성은 장군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
김성은 장군의 어머니 안명주 권사는 ‘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죄인을 용서하는 것 뿐’이라는 신앙의 가르침으로 아들을 양육했다.
이 때문에 김성은 장군은 부하들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전쟁포로들의 생명도 소중히 여겨 누구도 무고하게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했다.
무엇보다 통영상륙작전을 펼치기 직전, 하나님께 드렸던 그의 기도는 역사에 길이 남을 신앙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그래요.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다윗이 골리앗을 대적하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도와주세요"
김성은 장군은 통영상륙작전 이후, 맥아더 장군과 합류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으며,
9.28 서울수복작전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2007년 별세할 때까지 해병대 사령관과 최 장수 국방장관을 역임하며 국가안보에 일익을 담당했다.
우연치 않게도, 김성은 장군이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이 통영 앞바다는
이보다 360년 앞선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무찔러 나라를 지킨 한산대첩이 일어났던 곳이었다.
통영을 일컬어 ‘구국의 성지’, ‘국난 극복의 보루’라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6.25 전세 역전의 첫 단추였던 통영상륙작전.
이 작전을 승리로 이끈 고 김성은 장군의 신앙과 애국심은 정전 60주년이 되는 오늘까지 이곳 통영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믿음의 지휘관 故 김성은 장로를 기억하며



2013년, 올해도 신록의 계절인 5월을 마무리하고 6월에 접어들며 어느새 절반 가까이 지나고 있다. .
6월은 현충일과 6ㆍ25 한국전쟁 기념일이 있는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다.
말 그대로 나라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 공헌하거나 몸 받쳐 희생한 유공자들을 예우하여 국민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기간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해 한국교회도 고인이 된 한 명의 장로를 기억한다.
일평생 '예수 사랑, 나라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아름다운 실천적 삶의 본이 됐던 믿음의 지휘관,
故 김성은 장로(신일교회)를 이르는 말이다.
해병대 창설 주역인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직분 '장로',
나라가 맡긴 해병대의 '장군'과 국방부의 '장관'을 완벽하게 수행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950년 6ㆍ25 한국전쟁 당시에는 '해병대 통영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해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을 탄생시킨 해병대의 전설이기도 하다.
군 관계자는 김성은 장군이 지휘한 '해병대 통영 상륙작전'은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국면 반전을 꾀한 대표적인 승리, 전략적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한다.
또 그해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발판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한국 해병대 최초의 단독상륙작전으로 기록했다.
통영상륙작전 승리로 김성은 부대 전 장병 500명은 1계급 특진의 영예와 국방부 장관의 부대표창도 받는 영예를 얻었다.
특히 뉴욕타임즈 마거릿 히킨즈 기자는 당시 한국 해병대의 활약상을
'그들은 귀신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용감했다'(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고 표현해
여기서 나온 별명이 '귀신 잡는 해병'으로 굳어지게 됐다.
영원한 해병의 위상이 높아진 시발점으로 보인다.
호국보훈의 달을 지나 매년 8월 통영상륙작전의 전승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해병대전우회 관계자도
"김성은 장군이 지휘한 통영상륙작전은 민ㆍ관ㆍ군이 함께한 아름다운 승리였다.
그리고 김성은 부대의 승리는 기도하는 지휘관을 통해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승리였다"고 확신했다.
이와 관련 김성은 장로는 생전 "부모의 신앙 유산을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골리앗을 이기게 하신 다윗의 하나님을 확신했다.
우리 부대도 하나님만 의지했기에 승리를 확신했다"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연약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이겼고,
김성은 부대는 하나님의 부대였다"고 고백했다.
우리나라 전쟁사에 큰 공로를 세우고, 하나님 군대의 지휘관으로 일평생 나라의 안보를 걱정하며 나라 사랑,
예수 사랑에 앞장섰던 영원한 해병, 김성은 장로. 그는 2007년 5월 16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영원한 천국 해병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회고록을 통해 그 이름은 예수 안에서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었다.
또 김 장군의 나라 사랑, 예수 사랑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그의 자녀 3형제의 노력과 열정은
이 땅에서 값진 땀 방울이 되어 민족의 평화와 부흥을 위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김성은 장로의 장남, 김영환 장로(명성교회)도 6월 호국보훈의 달이 되면 고인이 된 아버지가 더욱 그립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늘 나라 사랑, 예수 사랑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부대의 승리는 하나님의 승리였다는 군인정신,
'목회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고의 지휘관이다'라는 철저한 신앙관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
김 장로는 "아버지는 군 최고의 책임자였지만 최고로 겸손했고, 나라 사랑, 예수 사랑하는 데는 목숨을 아끼지 않으셨다.
치열한 전장 맨 앞에서 하나님만 의지했고, 전역 후에도 교회의 장로로 순종과 섬김의 삶을 사셨다"고 회상했다.
또 아버지는 "군부대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예배당을 세웠으며
전역한 다음에도 하나님께서 주셨던 땅을 팔아서 약수동에 신일교회를 세웠다.
전역 후에는 가는 곳곳마다 나라 사랑, 예수 사랑을 강조하며 복음을 전하셨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말 김영환 장로가 아버지의 유품이 전시된 통영상륙작전기념관을 찾았다.
전시관 내 아버지의 동상을 묵묵히 바라보던 김 장로는
"조국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도 아끼지 않으시며 조국을 지키신 우리 아버지는 진정 하나님만 의지했다"며,
"아버지가 가신 길을 따라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예수님을 잘 믿는 후손이 되도록 열심히 살겠다"고 전했다.
'예수 사랑은 나라 사랑이고, 나라 사랑은 예수 사랑의 길'이라 강조한 김성은 장로의 아름다운 유산.
그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이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나라를 사랑하고 예수를 믿게 하는 다음세대에 큰 축복이되길 기대해 본다.

첫댓글 귀신잡는 해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