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 사주가 흔합니다. 매우 유사한 사주는 더 많죠.
동일 사주에 대한 접근법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유사한 사주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동일한 사주가 동일한 운을 받으며 살아왔는데, 서로 극과 극의 다른 삶을 살고 있더라."
이와 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때, 역술인이 가져야 할 태도는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학술적으로 보면, 그런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명리는 변별력(辨別力)을 가진 학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똑같은 사주를 극과 극으로 달리 해석해야 한다면, 명리는 배울 가치도 없고 존재할 가치도 없는 학술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명리의 무용(無用)함이 스스로 증명되는 것이지요.
똑같은 사주 및 똑같은 운을 가진 두 사람의 사주를 대할 때
"한 사람은 이 글자를 쓰며 살고, 다른 한 사람은 저 글자를 쓰며 산다면, 서로 극과 극의 다른 삶을 살게 된다."라고 판단하려는 역술인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만, 필자는 그런 관점을 단호히 부정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자기 팔자를 다 쓰며 살지, 특정한 한 글자만 쓰며 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주로서, 한 사람은 인수를 써서 유명한 학자의 삶을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식상을 써서 비참한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인생이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
이런 논리가 통한다면, 그런 명리를 배워 어디에 쓰겠습니까?
명리에는, 똑같은 사주를 극과 극으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동일한 사주가 동일한 운을 받으며 살아왔는데, 서로 극과 극의 다른 삶을 살고 있더라."
이에 대해 필자는
"반드시 한쪽 사주의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라는 경험과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댓글 ㅎ
사람이 말이지요
특히 이 바닥 사람들의 정형적인 공통점 입니다
나이가 들어 황혼으로 갈수록
팔자로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데
이론적 베이직들이 얼마나 터무니 없고
바보같은 짓들을
행해 졌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 파격이나 별볼 일 없는 자들의
인생, 시간죽이기들 밖에 안된 인생들이랍니다
뒤로 이어봅니다
동일 사주란 분별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현 역계에 비춰보면
간혹 그런 논제를 가지고 버젓이 인터넷에 얼버무리는 인간들 많지요?
다들 귀문을 차거나 제정신들이 아닌 자들이랍니다
그런 자들이 책임성도 없는 공간에서
나불거린 행위지요
어느 책 한귀퉁이에
뭐라뭐라 적혀 있다고 글자 몇 글자 가지고 사주를 푼답시고
어물쩡 대던 인간들 무수히 많지요?
이 바닥에 ㅎ
푼돈 1~2만원이라도 줍고 싶은 나약한 인간들에 불구하지요?
고수들은 다 죽고
강의한답시고 게나고동이나 설쳐되는
이 바닥
이미 다 죽은 바닥입니다
모두들 각성해야.. 하지만 그게 쉬울까요.. 신랄한 비평.. 감사 합니다!
명리학이 한계에 부딧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동일사주의 다른 삶
그 이유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느다고 하면 명리학 발전에 장애가 되겠죠
그래서 명학의 한계를 이해한 선배들이
구성학을 첨가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저도 동감입니다. 하지만 동일사주의 다른삶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정의한 네 제가 연구해보니까
명리학이 허황된 장면이 많이 연출이 됩니다
그런데에도 명리학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까닭은
사람의 운명에 대해 희기를 명리학만큼 밝히고 또한,
근접하게 예측할 수 있는 학문이 없다는 점입니다
@갑진 전적으로 동감 합니다! 우리 다 같이 노력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동일 사주가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은 부모가 다르고 조상이 다르고 형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DNA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내담자의 연월 구조에 나와있는 부모나 조상 그리고 형제의 상황이 내담자의 구조에 맞게 갖추어져 있는 지 문진해야 합니다.
전적으로 동감 합니다! 이 세상에 똑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바둑의 9단을 입신이라 호칭한다.
입신도 그 수가 많아서 천차만층이다.
신진서는 현재 세계제일이다.
그도 에이아이한테는 두점을 놓고 둔다.
모는 수를 보지 못해서 지는 것이 아니고,
취사선택에 차오가 있어서 진다.
인간사는 바둑보다 더 복잡하다.
수많은 변수를 다 보는 술사도 없다,
하물며 그보다 더 어려운
취사선택이야 말할 것이 있으랴.
역학자는 좀 겸손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서있는 경지가
어디 쯤에 해당하는가를
반문해 보는 것이
지혜있는 학자가 아닐까 한다.
동일 사주라도 다른 인생을 삽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제 글은 그걸 틀렸다고 주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인생이 똑같아야 한다는 주장의 글도 아닙니다.
같은 인생은 불가능하죠.
다만 동일 사주가 서로 약간의 생활 수준 차이는 있을지언정
극과 극의 반대되는 인생으로 살 수는 없다는 뜻의 글입니다.
한 사람은 지극히 성공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밑바닥으로 떨어져 실패하는 그런 극과 극의 현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명리는 그걸 구분할 수 있는 학술이 아닙니다.
동일 사주가 극과 극으로 살더라ㅡ라는 말은 아마 잘 못된 표현일 것입니다
동일 사주에
같은 운인데
서로 극과극으로 살았다는 말은
한명은 길운으로
한명은 흉운으로 살았다는 말인데 그럴수는 없는 것이 역학이론 이니까요
크기는 달라도 길이었는가 흉이었는지는 같이 나와야 겠지요
이게 안되면 관법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같은 날 같은 시에
궁궐의 왕과 궁궐의 문지기가 남자 자손을 출산했다고 해요
두 자손이 20여년이 지나서
왕의 아들은 세자를 거처 왕이 되어 있고
문지기 자손은 문지기들의 대장이 되어 있다고 할때
이때
역학선생님들은
두 남자를 극과 극으로 서로 반대로 길흉운으로 살았다고 통변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요
또 다른 역학선생님은 두 남자가 모두 길운으로 흘러서 각각 자신들의 위치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가게 되었다고 통변하는 사람과
어느 역술가의 통변이 맞을까요
표현에
통변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이재용의 자손과
거지의 자손이
한날 한시에 태어 났어도 ㅡ
동성이면
길흉의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길운이었으면
한명은 1조 부자가 100조 부자가. 되어 있을수 있고
거지 자손은
억대부자가 되어 있었다고 해도
두분 다 길운으로 흐른것은 마찬가지이니까
재산 차이가 하늘과 땅차이라는 이유로
극과 극으로 살았다고 통변하면. 잘못된 표현이겠지요
@채은(무한도전)
일간의
길흉오행을 찾아내지 않고 통변하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예.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문제이죠.
문지기의 자손이 농사만 짓는 가난한 촌부로 살다 죽었다면
재관을 다룬다는 그 명리를 배워 과연 어디에 쓰겠습니까?
@인당 전우창
농사로도 재관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면 해결되는 것이죠
농토가 많으면 재관을 얻은 것이니까요
@채은(무한도전) 예. 바로 그거지요.
1. 사주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 운명의 60~70퍼센트 정도입니다.(사주 초학자나 직업 술사에겐 김 빠지는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2. 같은 사주가 쓰는 글자가 달라서 다른 운명을 살았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고, 고금의 사주책 어디에도 그런 주장은 없습니다.
간혹 사주가 같은 남녀를 동일사주라고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운의 흐름이 다르므로 이건 소위 동일사주가 아닙니다.
3. 애초에 사주가 볼 수 있는 운명의 영역이 제한적이므로(무용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사주로 판단하고 사주에 의지하는 것은 인생을 사는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정확하고 바른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가 어떤 십신을 쓰며 사는지에 따라 서로 극과 극의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하며
그런 관점으로 동일 사주를 보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다 옳으신 말씀들 인 듯.. 감사합니다.
그리고요
같은 부모가 쌍둥이 자매를 낳았어도
살아가는 방법은 서로 다를 확률이 많지만
재관에 대한 성취 과정은 비슷할 겁니다
선택한 직업에 따라 재관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발전했는가
망했는가는
같은 결과가 나와야 맞습니다
동일사주가 그릇이 같아야 정상이죠
그런데 그릇크기가 다르면 명리학의 영엮이 아닙니다
왕과 농부가 재관의 성취가 같을 수가 있나요.
재관의 그릇이 전혀 다르죠
왕이 느끼는 희기와 농부가 느끼는 희기가 같을 수 있겠나요.
희기의 높낮이가 다르지만 스스로 만족한다는 것은 종교적 입장이고
명리학은 객관성에 의거합니다
즉 재상과 농부의ㅡ재관은 동일하더라도
그 위세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또한 누구는 병들고 죽었는데 다른 사람은 생존해 있다고 하면 생로병사가 전혀 다른 겁니다.
생로병사가 다르게 니타나는데
희기가 비슷하다고 하여 그게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리학이 아닙니다.
동일사주가 죽는 날이 똑같이 나오는 확률보다 다르게 나오는 확률이 더많습니다.그래서 누구는 죽었는데 아직도 살고 있다면 이게 극과 극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희기가 비슷하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깉습니다
동일 사주라도 다른 삶을 사는 경우는 지극히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사주는 선천이고 대운은 후천이요.
동일사주라도 살아가는 환경은 다를 것입니다.
환경이 다르니 생각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리라 봅니다.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니 결과도 다르게 나타날것이구...
즉 만물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각기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날 동일사주로 하나는 부자집 교육자 아들, 하나는 가난한집 농부아들로 태어났다면
그사람의 앞으로 인생이 같을까요? 절대 같지 않을것이라 봅니다.
동일사주에 부친이 하나는 부자이고
하나는 가난하다면
육친법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댓글 내용이 다 좋아서, 공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일사주에서 편재가 병재가 된 경우에,
어느 사람의 부친은 요절했고
다른 동일인의 부친은 장수를 하였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다른 육친의 전개가 나타날까요?
제가 연구한 바로는,
물상대체에 비밀이 있습니다
즉 어느 사람의 재물복이라는게 500근이라고 한다면
500근을 한꺼번에 사용하면 그 사람은 재물복이 제로가 되기 때문에 요절하는 겁니다
그래서 명리학에서도 재성을 수명으로 보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500근의 재물복을 누릴 틈이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은 수명이 장수할 수가 있다는 점이죠
마찬가지로 부친의 편재가 500근이라면
부친이 500근의 재물을 바람을 피거나 첩을 두거나 혹은 도박으로 유용햇다고 하면
그 부친은 재물복이 제로 이므로 수명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다른 동일인의 부친이
재물복이 500근이지만 병약하여
재물을 쓸 틈이 없었다던지.
하다면 그 부친은 수명이 길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 재물을 다 쓰고 난 후에 죽어야 하니까요
이게 사주학의 비밀이죠
그러한 물상대체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이게 참 까다로운 간명법입니다
박도사 간명지 보시면
재물복이 오천석이네
이런 간명말투가 나오죠
이건 정말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간명이 나오는 겁니다
팔자를 볼 적에
그 사람의 재물은 몇 근이다
소유한 재물이 근수가 다 하면
너는 죽는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니까요
대신에
절제하거나 금욕해서 또는 승가에 귀의한다고 하면
재물을 쓸 여유가 많지 않아서 재물의 근수가 남아 있으면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개운법이라는 게 탄생하는 겁니다
타고난 재물복은 일정량 정해진 겁니다
그래서
부친이 요절할 수도 있고
부친이 장수할 수도 있다는 것은
편재의 재물을 어떻게 쓰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부친이 편재를 못쓰고
아들이 도박에 혹은 투자 실패로 망해 먹으면
오히려 부친은 건재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편재가 병재가 되는 것은 맞출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걸 맞추기가 보통 여러운게 아니더군요
즉 부친이 편재를 말아 먹을 것인가?
아니면 아들이 편재를 말아 먹을 것인가?
이걸 잘 아는기업에서 성공한 재계 위인들이
재물에 대해 사회환원을 많이 합니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수준 높은 게시글과 많이 생각하게 하는 댓글들
정말 멋지네여~
특히 마지막쯤에서의 갑진님 댓글에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