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 안산지역 10개 사회복지센터 복지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세월호 가족 곁을 찾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또 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그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갔다.
복지관 일도 차고 넘쳤지만, 밤낮, 주말을 가리지 않고 가족들에게 달려갔다. 쌓이는 업무, 고갈되는 체력보다 힘들었던 것은 “지난 사건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일도 잊을 거잖아”라는 말이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 10개 복지관은 네트워크를 형성해 세월호 가족과 안산 지역 공동체를 위한 센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강선숙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가 관장으로 있는 본오종합사회복지관이 대표 기관을 맡고 복지관에서 파견된 3명의 사회복지사가 사무국을 꾸렸다. 각 복지관장단이 운영위원회를 맡고, 사무국 외, 가족지원팀과 공동체회복팀에도 각각 사회복지사들이 파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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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우리함께' 지킴이 문미정 센터장, 강선숙 수녀, 박성현 사무국장, 이자연 사회복지사. 이들은 우리함께라는 집에서 오랫동안 삶을 잇고, 또 이어갈 것이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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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체계를 잡은 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다. 한 복지관 공간을 빌려 사무국을 마련했지만, 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곳에서 두 명이 번갈아 일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건강이 걱정됐던 강선숙 수녀가 사방으로 뛰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손을 내밀어 준 곳이 수원교구 사회복지회와 사회복음화국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안산시 단원구에 자리 잡은 ‘안산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한 복지관 네트워크 우리함께’는 지난 7월, 그렇게 시작됐다. 안산 지역공동체와 세월호 가족, 특히 세월호참사로 동생을 잃은 성인 형제자매들을 위한 공간, ‘우리함께’를 지키는 문미정 센터장, 박성현 사무국장, 이자연 복지사 그리고 이들의 든든한 지원자 강선숙 수녀의 이야기다.
‘우리함께’...온전히 그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집
들어서자마자 둘러본 공간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마련된 것이 없다는 느낌이다. 각 방마다 색이 다른 벽지에 소담하고 따뜻한 색감의 가구와 조명이 배치됐다. ‘우리함께’는 공간을 꾸미는 과정부터 함께였다고 한다. 인테리어 전문가를 통하면 며칠이면 될 일이었지만, 사무국 식구들은 물론, 이 공간에 오게 될 이들과 모여 컨셉을 정하고 한 달여 동안 매일 밤을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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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함께'를 채운 모든 것에는 다양한 마음과 사연들이 담겼다. 누군가는 쿠션을, 누군가는 피아노를, 누군가는 간식과 먹을거리를 보내 이 공간을 채운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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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이 곳은 센터나 사무실이 아닌 ‘집’이 됐다. 인근에 있는 단원고를 비롯한 지역 학생들의 쉼터와 놀이터가 되고, 때론 밥상이 된다. 아무것도 짜여진 것은 없지만, ‘우리함께’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이뤄지는 일이 생겼고, 서로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세월호 희생자의 성인 형제자매들과 우선적으로 논의를 했죠. 그들이 ‘우리는 버려진 것 같다’로 호소한 적이 있어요. 부모님들은 거리에 나가 있고, 희생자들의 동생들은 어리니까 대학생 이상의 형제자매들은 자연히 가족을 돌봐야 해요. 하지만 자신들도 힘든데, 누구도 ‘괜찮냐’고 묻지 않더래요. 그래서 사무실로 쓰는 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그들이 언제든 와서 쉬고 싶을 때, 올 수 있는 공간, 기댈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하게 된 거죠.” (박성현 사무국장)
박성현 사무국장은 “우리함께는 자체 프로그램이나 치유 활동을 마련하고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그런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언제든 자리를 내어 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때로는 학생들이 친구들과 모여 놀 수 있는 집이 되고, 때로는 회의 공간이 되고, 상담이 이뤄지는 상담소가 되기도 한다. ‘우리함께’라는 공간을 통해 전반적인 지원과 자연스런 만남이 이뤄진다. 사용 원칙도 따로 만들지 않는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공유하고 따른다.
“‘우리함께’가서 이야기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아주 당연한 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함께 살아가는 것’이죠
“참사 이후부터 그야말로 야전생활의 연속이었어요. 그 와중에 가족들과 따뜻한 차 한 잔 편히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무척 아쉬웠죠. 서로를 편히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문미정 센터장)
문미정 센터장은 ‘우리함께’를 두고 “참사 이후, 삶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만날 것인가가 가장 중요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자녀들에게 죄책감을 갖는 희생자 부모님들에게 ‘여러분이 정말 아빠고, 엄마다’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손잡고 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함께’ 막내인 이자연 복지사는 며칠 전 교통사고를 당한 희생자 자매 생각에 눈물부터 떨궜다. 유일하게 서울에서 안산으로 출근하는 그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서울과 안산의 분위기가 벌써 많이 다르다면서, “잊고 사는 것이 익숙하고, 타인의 아픔을 금방 잊는다는 것이 어떠한가를 체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자연 복지사는 가족들이 힘들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면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고 아픔을 나눌 수 있다면, 그냥 옆에 있는 것이 가장 큰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울지 않는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에요.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 줘야 합니다”
박성현 사무국장은 최근의 경험담을 꺼냈다. 한 희생자 형제는 자신의 종교 안에서 위로와 지지를 받을 줄 알았는데, 벌써 자신의 아픔이 질타와 꺼림의 대상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박 사무국장은 “새벽까지 이어진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부를 때, 달려 올 수 있어서,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큰 돈이나 프로그램으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이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고, 바로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밤늦게 전화를 하고, 나를 위해서 달려오는 사람이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똑같이 힘이 됩니다. 서로를 위하고 함께 하는 곳이 되는 거죠. 우리가 그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오히려 우리가 이곳에 살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 줘요. 그들이 오지 않으면 우리는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요.”(강선숙 수녀)
강선숙 수녀는 “최근에는 ‘모순’을 끌어안고 산다”고 고백했다.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면 안고 우는 것이 인사인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인사하는 것, 모순임을 알면서도 그 모순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심어 주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다.
처음 세월호참사가 났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매일 울면서 가족들 찾는 직원들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해 주는 것뿐이었다는 강 수녀는, 세월호 사는 내가 일하는 지역의 일, 내 직원들의 일,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한다는 영성을 가진 우리 수도회의 일이었기에, “바로 나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함께’를 통해 바라는 것은, “이 공간에서 만나는 이들의 숨소리에 점점 더 생기가 살아나는 것”이라면서, “‘우리함께’는 이 공간을 후원하고 지지하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로 움직인다. 이 모든 이들이 함께 편안히 숨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거리낌없이 “밥 줘”하며, 불쑥 들어올 수 있는 곳 지금 이곳을 찾는 학생들이 제 아이 손을 잡고 올 수 있는 곳
단원고 인근에 자리한데다, 세월호 가족협의회를 지원하고 있어 오가며 가족들이 들르기도 한다. 딱히 업무가 있어서가 아니라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다. 한 번은 인근에 살고 있는 가족 한 명이 “밥 줘”라며 방문하기도 했다. 박성현 사무국장은 “비록 김치와 밥 밖에 나눈 것이 없지만, 그 모습 그대로가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함께’의 발걸음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강선숙 수녀를 비롯한 네 명의 복지사들은 “삶이 이어지는 동안”이라고 뜻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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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한켠에 마련된 촛대와 테이블. ⓒ정현진 기자 |
이들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재원이 필요한 일이므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가족들이 그만두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해야 할 일만 본다면, 지역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흐름, 가족들의 호흡을 같이 하면서, 더 길게 가야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선숙 수녀는 “이 곳은 이미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우리 존재를 스스로 없애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박성현 사무국장은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세월호 참사를 통해 안산 지역에서는 ‘함께 산다는 것’, ‘공동체’에 대한 염원이 커지고 있다면서, “잊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시민들이 애쓰는 것에 대해 지역사회 단위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선숙 수녀는 인터뷰 중에 ‘모순’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세월호 가족들이 지극한 슬픔을 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모순이다. ‘우리함께’이야기를 하는 중에, 눈물을 닦기 위한 티슈가 한 바퀴를 돌았고 또 그만큼 웃었다.
눈물을 머금고 웃는 이들. 세월호 가족들이 숙명처럼 지니고 살아야 할 그 ‘모순’을 이들은 함께 살고 있었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떨치지 못할 슬픔에 울어야 할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울었고, ‘우리함께’를 통해 확인되는 함께 살고자하는 이들의 마음에 웃었다. 이 집에서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웃기를 그리고 이곳에서 비롯된 삶의 에너지가 온 세상을 더 크고 평화롭게 숨쉬게 하기를 바란다.
‘우리함께’를 위한 지원이나, 참여를 원하는 이들은 (우리함께 : 031-487-9773)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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