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사기21:1
우리는 종종 내 고집과 감정대로 다 저지릅니다. 중단 없는 폭주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베냐민 지파를 학살했으면서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눈물을 흘립니다. 결국 사적 감정으로 행한 경솔한 맹세에 스스로 발목이 잡히고 맙니다. 공주야! 이스라엘 연합군은 베냐민을 진멸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광야로 도망간 600명의 남자뿐이다.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은 한 지파가 거의 없어질 위기에 처했음을 자각하고 해법을 찾는다.
We often act on our stubbornness and emotions. Only after accepting the worst report card from their relentless rampage do they finally seek God. The people of Israel, having massacred the tribe of Benjamin, weep as if they were the victims. In the end, he traps himself in a reckless oath made out of personal feelings. Princess, the Israelite coalition has annihilated Benjamin. Only 600 men escaped into the wilderness to survive. After the war ended, Israel realized that one of its tribes was on the brink of extinction and sought a solution.
-
그러나 마련한 해법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멀어져 있는 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베냐민을 치도록 허락하셨지만 진멸하라고 명 하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자기 눈에 옳은 대로 베냐민을 과도하게 심판하더니 이제 와서는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며 원망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베냐민 지파에게 딸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자기 맘대로 서원하여 자초한 일이기도 한데, 전혀 반성이 없다.
However, the solution they devised paradoxically shows how far they have strayed from God's will. God allowed Israel to attack Benjamin, but He did not command them to annihilate it. But after excessively judging Benjamin in his own eyes, he is now shifting the blame onto God and shedding tears of resentment. He brought this upon himself by making a vow to the tribe of Benjamin not to give his daughter, yet he shows no remorse whatsoever.
-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울었고 다음 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지만 정작 자신들의 죄악에 대해서는 울지 않았고, 진심으로 회개한 자신은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였다. 번제보다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던가. 이것이 사사기의 영적 현실이다. 하나님께 하소연 하는 일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미스바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자를 죽이기로 한다. 그들이 죽이려는 대상을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로 표현하여 자기들 계획이 마치 하나님의 계획인 것처럼 선언한다.
They sat and wept before God until evening, and the next day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but they did not weep over their own sins, and those who had repented sincerely were not presented to God as living sacrifices. Isn't God more willing to accept obedience than burnt offerings. This is the spiritual reality of Judges. When their appeals to God failed, they decided to kill those who had not attended the assembly at Mizpah. They declare their plan as if it were God’s plan by portraying the target of their killing as one who has not come before the LORD.
-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화개와 화목을 앞세우고는 직후에 어떻게 다른 형제를 죽일 계획을 세운단 말인가. 자신들이 베냐민을 진멸한 것에 대해서는 화개하지 않은 채 자기 바깥에서 원인과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미스바 총회에 불참한 야베스 기르앗 주민 중에서 남자들만 죽이고 여자를 남겨 베냐민 남자들에게 줄 계획을 세운다. 상식을 저버린 기괴한 계획이다. 미스바 총회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 그 백성을 진멸하고 처녀만 남긴다.
After offering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placing peace and harmony first, how could they then devise a plan to kill another brother. Without being angry that they had destroyed Benjamin, they try to find the cause and solution outside of themselves. They devise a plan to kill only the men of the inhabitants of Jabesh Gittah who did not attend the assembly and leave the women for the men of Benjamin. It was a bizarre plan that defied common sense. Find those who did not participate in the assembly of Mizpah, annihilate their people, and leave only virgins.
-
한 동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동족을 과도하게 다룬다. 이번에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 하고서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 처녀의 수를 세어보니 400명뿐이다. 200명이 부족하다.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했지만 죄만 쌓고 뜻은 이루지 못하였다.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없고 오직 자기 뜻에만 몰두한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멸망시킨 베냐민 지파를 위해 통곡하면서 왜 또 다른 동족을 학살했을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후회와 진정한 회개는 무엇이 다른가?
To solve the problem of one people, another people are treated excessively. I did not ask God this time either. Even after doing as one wishes, the desired I cannot achieve it. Counting the virgins, there were only 400. We're short by 200 people. They did what was right in their own eyes, but only accumulated sin and failed to achieve their purpose.They lack zeal for God and are absorbed only in their own desires. Why did Israel, while weeping for the tribe of Benjamin that they had destroyed, massacre another people of their own?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regret that refuses to admit one's own faults and genuine repentance?
-
이스라엘의 미스바 맹세(1-5)
야베스 길르앗을 진멸한 이스라엘(6-12)
-
이스라엘 사람들이(1a)
미스바에서 맹세하여(1b)
이르기를(1c)
우리 중에 누구든지(1d)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1e)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1f)
하였더라(1g)
-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2a)
거기서 저녁까지 (2b)
하나님 앞에 앉아서(2c)
대성통곡하여(2d)
-
가로되 이스라엘의(3a)
하나님 여호와여(3b)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3c)
어찌하여 한 지파가(3d)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3e)
-
이튿날에 백성이(4a)
일찍이 일어나서(4b)
거기 한 단을 쌓고(4c)
번제와(4d)
화목제를 드렸더라(4e)
-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5a)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5b)
총회와 함께하여(5c)
여호와 앞에(5d)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5e)
누구냐? 하니(5f)
이는 그들이(5g)
크게 맹세하기를(5h)
미스바에 와서(5i)
여호와 앞에(5j)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5k)
반드시 죽일 것이라(5l)
하였음이라(5m)
-
이스라엘 자손이(6a)
그 형제 베냐민을(6b)
위하여 뉘우쳐(6c)
가로되 오늘날(6d)
이스라엘 중에(6e)
한 지파가 끊쳤도다(6f)
-
그 남은 자들에게(7a)
우리가 어떻게 하면(7b)
아내를 얻게 하리요(7c)
우리가 전에(7d)
여호와로 맹세하여(7e)
우리 딸을(7f)
그들의 아내로(7g)
주지 아니하리라(7h)
하였도다(7i)
-
또 가로되(8a)
이스라엘 지파 중(8b)
미스바에 올라와서(8c)
여호와께 이르지(8d)
아니한 자가(8e)
누구냐 하고(8f)
본즉(8g)
야베스 길르앗에서는(8h)
한 사람도 진에 이르러(8i)
총회에 참예치(8j)
아니하였으니(8k0
-
백성을 계수할 때에(9a)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9b)
하나도 거기 없음을(9c)
보았음이라(9d)
-
회중이(10a)
큰 용사 일만 이천을(10b)
그리로 보내며(10c)
그들에게 명하여(10c)
가로되 가서(10d)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10e)
및 부녀와 어린 아이를(10f)
칼날로 치라(10g)
-
너희의 행할 일은(11a)
모든 남자와(11b)
남자와 잔 여자를(11c)
진멸할 것이니라(11d)
하였더니(11e)
-
그들이(12a)
야베스 길르앗(12b)
거민 중에서(12c)
젊은 처녀(12d)
사백 인을 얻었으니(12e)
이는(12f)
아직 남자와(12g)
자지 아니하여서(12h)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12i)
그들이(12j)
실로 진으로 끌어 오니라(12k)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12l)
-
베냐민이 사라질 위기다_Benjamin is about to disappear.
섣부른 해결책을 마련하다_come up with a hasty solution.
섣부른 진멸을 자행하다_commit hasty destruction.
-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의적 결정, 자의적 판단, 자의적 열정은 신앙이 아니나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통치가 핵심인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에서 죄를 버리지 못하여 통곡하는 인생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Lord, arbitrary decisions, arbitrary judgments, and arbitrary passions that depart from God’s Word are not faith. Reflecting once again on the fact that God's reign transcends time and space, I realize that it is more important to live in faith of His presence and acknowledge His sovereignty. May we not become a life that weeps in despair, unable to cast away sin in the land You have promised to give us.
2026.10.13.tue.Clay
신학 비평//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를 거의 진멸한 뒤에야 자신들이 저지른 비극을 깨닫는다. 살아남은 남자는 고작 600명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초래한 참극 앞에서 하나님께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는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자리에서 통곡하는 역설이다. 문제는 눈물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부재다. 그들은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지만, 자신들의 과도한 폭력과 경솔한 맹세를 근본적으로 돌아보지 않는다.
-
베냐민을 향한 연민은 있었지만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 의식은 희미했다. 후회는 결과를 슬퍼하지만 회개는 그 결과를 만들어 낸 자신을 문제 삼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해결 방식이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를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미스바 총회에 불참한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을 학살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처녀 400명을 베냐민 남자들에게 넘기려 한다. 한 지파를 살리기 위해 또 다른 공동체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정의의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새로운 폭력이 생산된다.
-
여기서 사사기의 신학적 모순이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했다는 사실을 절대화하면서도, 그 맹세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생명을 지켜야 할 언약 공동체가 오히려 맹세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파괴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의 경솔한 결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특히 야베스 길르앗의 여성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전쟁의 원인도, 맹세의 당사자도 아니었다. 그런데 남성 지도자들이 만들어 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된다.
-
베냐민 지파의 생존이라는 집단적 명분 속에서 여성들의 의사와 존엄은 철저히 배제된다. 공주야! 이스라엘의 가장 큰 실패는 전쟁에서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 비극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못했다는 데 있다. 문제를 일으킨 자기중심적 판단으로 다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니 폭력은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사기 21장은 눈물과 제사가 반드시 회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직면하고,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회개 없는 후회는 과거를 슬퍼할 뿐이지만, 진정한 회개는 미래의 행동을 바꾼다. 이스라엘은 베냐민의 멸망을 슬퍼했지만 야베스 길르앗의 멸망은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이 왕이 없던 시대의 비극이다. 그러나 사사기가 고발하는 문제는 단순히 왕의 부재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자기 소견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는 인간의 오만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열심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자신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는 열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