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바이크를 접했던 때는 20세기의 끝자락 99년...
청룡 빽VF가 대세였던 시절을 막 넘기고, 밥통 달고 카울 내린 엑시브가 등장하던....그쯤 되던 무렵이었습니다. -_-; 지금 엑시브 99년식을 보면 나이 좀 먹은 중고겠구나 싶듯이 92년식 MX가 그 정도의 중고차로 자주 보이던 무렵..
특히 학교의 캠퍼스는 국산 중고차들의 향연을 보는 듯 했는데 여러가지 차종들을 보며 배우고 느낀 점도 많고 추억도 많았습니다.
그때 대딩들은...비록 고딩을 막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엑시브류를 선호하는 계층과, 크루즈류를 선호하는 계층이 나뉘어 있었죠. 특히 저 다니던 학교에서는 크루즈가 인기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비교적 싼 시세(60~70만원대)에 중고를 구할 수 있었고, 편한 자세에 연비 좋고 부속값 싸서 뻔한 학생들 경제 사정에 등하교용으로 막 타기 좋았거든요. 그 흐름에 동참하야 저도 첫 애마로 대림 VS를 맞았었고..-_,-;
아무튼 그 시절의 125cc는 소형바이크다운 미덕을 고루 갖춘 명차(?)들이 많았습니다. 내구성의 제왕 VF는 말할 것도 없고.. 일명 "알차"를 선망하는 학생들의 엑시브.. 간혹 보이는 TN, 감마, MX, 아...대림의 CG125도 본 듯 합니다. (대체 언제꺼야..-_-;;) 크기도 무게도 활용도와 유지비도 125cc 다운 모습이었지요. 그때부터의 제 기억에 있는 국산 바이크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물론 특정 기종에 대한 호불호는 주관적이고 편파적입니다.-_,-;
1. "꾼"들이 알아준 명차 MX125.
VF도 아직 없었던 시절... 효성이 2스트록 GP스프린터와 MX로, 동급최강의 강렬한 파워(?)로 매니아층을 만들던 시절...하지만 그 시절도 효성은 완성도 부족으로 인한 MX의 킥스타터 불량 등 혹평받는 부분은 지금이나 그때나 비슷했습니다.-_-;;; 이 시절 GP나 MX기종의 엔진 소착이 자주 일어났는데, 이때부터 효성 엔진의 내구성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굳어진 게 아닌가 합니다. 이 시절을 겪어 본 나이 좀 드신 분들은 효성차 하면 "잘 가다가 갑자기 엔진이 붙는 수준"의 내구성으로 인식이 각인되어 있지요. -_-; 물론 MX를 아직까지도 잘 타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연히 준 정비사 수준의 햏력충만-_-; 사나이들입니다. 이런 사람 아니면 탈 수가 없지요.
2. 125cc의 교과서 등장!! 코리안 스탠다드 VF125. (DREAM)
그러다가 89년에 전무후무의 히트작(?) 드림(VF)이 나오고... 많이도 팔려나갔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만큼 모든 성능이 우수한 균형잡힌 125cc는 없었다고 여겨질 정도로 VF는 그야말로 코리안 스탠다드 바이크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가볍고 연비 좋고, 혼다 엔진의 신뢰성에 정비하기 좋고 빠르고...게다가 초기 엔진에는 일제 부품도 많이 들어갔는데, 이 시절의 VF는 지금도 택배 현역으로 도로를 질주하고 있을 정도로...최상의 신뢰성을 보여준다 합니다. 심지어 16년이 지난 지금도 신차로 나오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여기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일본에 CB400이 있다면 한국엔 VF125가 있는 거죠. -_-;;;
지금 눈으로는 마치 구형 폭스바겐 비틀을 보는 듯 왜 저렇게 클래식하냐 하는 느낌이 들지만.. 뭐 디자인만이 진리는 아니니까요. 당시 청소년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고 "청룡쇼바 빽뷔엡"은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의 상징물이 되어, 그야말로 VF는 택배 아저씨들의 제식장비인 동시에 폭주족들의 제식장비이기도 했습니다.
3. 한국에 크루져가 등장하다.
지금이나 그때나 "도전정신"의 효성은 93년에 갑자기 쌩뚱맞은 신차를 내놓습니다. 125cc 최초의 크루져....크루즈!! 편안한 승차자세와 낮은 시트고, 길다란 포크트래블(170mm로 기억합니다)에서 오는 승차감을 세일즈포인트로 내세워...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장거리여행/레져바이크" 컨셉으로 판매전략을 세운 것 같습니다. VF만큼은 아니었지만 크루즈도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처음 시도되는 크루져 스타일. 125cc답지 않은 풍만한 볼륨감!!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원했던 편안한 자세와, 그분들의 선망의 대상 "하레이"를 닮았다는 점이 주효했지요.(하지만 할리보단 사실 가와사키 발칸500을 참고한 흔적이 많습니다) 시트는 또 어찌나 푹신한지 타다가 잠이 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여행용 바이크까지는 되지 못했고 럭셔리한 택배바이크로 각광..-_-;;받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번에도 마무리 부족으로 "악질내구성" 딱지는 떼지 못합니다. 그 후로도 엔진을 4밸브화하고 오일쿨러를 설치한 업글버젼 크루즈2가 등장하고, 크롬 커버에 스포크휠 사양의 크루즈 클래식도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음-_-....이었습니다. 그 뒤로 크루즈2는 라이벌 VS125와 함께 몇 년간 꾸준히 팔리다 단종되었습니다.
4. 대림의 대답, VC125 어드빤스~
효성이 크루즈로 재미를 보자, 대림에서도 응수할 신모델을 발표합니다. 크루즈와 비슷한 차체구성을 가진 어드밴스가 등장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최민수씨가 멋진 가죽자켓을 입고 찍은 광고 포스터는 매우 인상적이었지요..^^ 전체적으로 보면 믿을 수 있는 VF엔진으로 만든 크루져 버젼이라는 인상입니다. 특이한 건, 크루즈와는 다르게 스텝이 상당히 뒤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포지션은 할리의 다이나 계통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데... 좌우로 체중을 싣기엔 좋지만 당시 한국은 스포츠라이딩의 개념이 원시상태였고 125cc로 그런 걸 하는 사람도 없었으니 당연히 그 시절의 라이더들은 이 요상한 포지션을 외면했습니다. 포지션 뿐만 아니라 풍만한 크루즈에 비해 왠지 없어보이는 디자인도 큰 약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림은 보완된 VS125를 내놓게 되지요. 근데 이놈은 크루즈를 제치고 크루져계의 VF가 되어 택배시장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습니다... 요즘도 신차가 보입니다. 두려울 정도입니다. 덜덜덜..-_-;;
5. 포스트 청룡VF-_-;, 스즈끼 GSX혈통의 막내 엑시브의 등장!
효성의 시도는 로드스포츠 모델에도 신차종을 등장시켰습니다. 94년에 고출력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국내 최초의 DOHC 엔진을 달고 엑시브가 출시된 것입니다. 당시 TV 선전까지 한 걸 보면, 효성의 의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고작해야 신문광고인 지금보다 차라리 그때의 바이크 시장 사정이 나았던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더 친숙했었던 것 같아 씁쓸해집니다. 하기야...예전에 VF로 배추를 나르시던 아저씨도 요즘은 포터 트럭이나 심지어 SUV를 굴리시더라구요.
어쨌든 엑시브가 등장하자, 무엇보다 뽀다구를 중시하는 젊은이들은 GSXR을 연상시키는 2연장 헤드라이트와, 트윈스파 프레임처럼 꾸밀 수 있는 각파이프 프레임에 매료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시장의 특성상 순수 스포츠 모델로 개발한다는 것은 역시 무리였고, VF와 비슷한 포지션의 하프카울 네이킷 정도의 실용차 개념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수많은 커스터머-_-들은 포스트 청룡VF의 시대를 엑시브로 멋지게 장식합니다. 하지만 이 고출력 DOHC 엔진의 잠재력은 아직 웅크린 채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는데..
6. 또 다시 대림의 대답-_-;; VF의 페이스리프트 모델 VR, 삽 들고 등장!!
음...항상 대림은 시장 개척보다는 대답만 해온 인상입니다.-_-;; 엔진이나 차체에 변화가 없으니 마이너체인지라 할 건데기도 없고, 그저 카울만 바뀐 VF라고밖에... 카울 금형비만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뭐 그런대로 팔렸습니다. 이번엔 VS와는 다르게 대답이 좀 시원찮았고, 지금은 단종되었죠. 엑시브에 열광한 계층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대림이 실수로 낳은 자식입니다.-_-; 눈치 보며 따라만 가다가 삽질한거죠..
7. 효성이 또 일을 저지르다. 달리는 변기통, 그랑프리.
한국 이륜차사에서, 항상 새로운 용도와 개념을 가진 장르를 제시해 온 것은 효성이었습니다. 스쿠터 장르에서도 그들의 도전이 있었는데, 그동안 스쿠터라 하면 50cc배기량에 뿌연 연기를 뿜으며 시속 60킬로 정도로 위태위태 달리던 간이교통수단의 이미지였다면 그랑프리가 추구하는 것은 출퇴근이나 업무용으로 승용차를 타는 직장인들이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본격 시티커뮤터의 역할입니다.
디자인은 "피하시오 핵사공(가명)" 을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흡사하고, 기계적 완성도에 대해서는 최초로 고강도 플라스틱으로 시도해본 오일펌프가 잘 망가짐으로써 금새 베어링 겔겔거리는 소리가 나는 등 또 다시 완성도와 내구성 부족으로 인한 혹평을 받게 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만든 글록이란 권총이 있는데, 이놈은 총신과 해머 등 주요 부품을 제외하면 몸체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일종의 무게감소를 위한 소재 혁신이지만 효성은 대체 왜 애꿎은 바이크의 오일펌프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서 욕을 사서 들어먹는지 안타깝습니다.
긴 휠베이스와 듬직한 무게가 주는 승차감도 흠잡을 데 없었고, 실용적인 적재공간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사업소에서조차 기피대상 1호로 찍힐 정도의 무시무시한 카울들은 정비성을 형편없게 만들어, 이 기묘한 스쿠터 역시 크게 히트하지 못한 희귀기종으로 남고 맙니다. 아무튼 몇 년 후에 후륜 디스크브레이크와 더블 쇽을 장비한 그랑프리 플러스라는 업그레이드 버젼도 나왔지만 그저 그렇게 팔리다가, 지금 효성의 125cc 스쿠터 라인은 엑시드 1개 기종으로 정리된 듯 하군요.
요놈 엑시드는 125와 150 두 버젼이 있는데, 대단한 임팩트는 없지만 대림 트랜스/포르테와 대적하기 위해 탄생한 효성 스쿠터의 야심작입니다. 특히 150버젼은 좀 더 강해진 토크빨로 예상외로 빠르게 가속하는데, 시내바리에서 매우 원츄에요...-_-b
8. 이윽고 국산 스쿠터의 명작이 등장하다. 대림 트랜스.
대림이 이번엔 스쿠터 장르에 야심을 품고 회심의 일격을 날립니다. 국내에 4스트록 스쿠터의 기폭제 역할을 한 트랜스 RV를 내놓은 것이죠. 그랑프리의 실패 요인을 분석하여, 대림은 중형스쿠터급의 길다란 차체와 솟아있는 플로어를 배재하고 철저히 한국 스쿠터 사용자들의 사용 용도에 맞추어 아담한 차체와 평평한 플로어패널 형태로 개발되었습니다. 디자인은 마치 스포츠바이크를 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날렵하고 세련된 모습입니다. 거기다 사소하지만 편리한 가방걸이라든지, 시계, 비상등 등의 옵션들을 풍부하게 갖추어 일대 바람을 몰고 옵니다.
그동안 변속에 익숙치 못해서 스쿠터만 타야 했던 계층 중에 스쿠터의 작은 배기량과 소착의 가능성이 큰 2스트록 엔진이 불만이었던 사람들을 포함해서, 기존의 메뉴얼바이크를 타던 사람들까지 편리한 자동변속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RV의 단점을 보완한 트랜스UP이라는 업그레이드판을 내놓았는데 말 그대로 엄청시리 팔렸습니다. 스쿠터의 VF랄까.... 시티백을 논외로 하면 VF, VS, 트랜스, 이 삼두마차는 그야말로 90년대에 대림을 먹여살린 차종들이 아닐까 합니다.
9. 레져용 바이크를 제대로 한 번 보여주지. 대림 마그마.
대림이 VS를 내놓긴 했지만 크루즈가 추구했던 여행/레져용 바이크라기보단 그저 자세 편한 택배바이크 이미지였던 것이 사실이라면, 야심작 마그마는 한번 제대로 그쪽 사상을 추구해보고자 만든 바이크입니다. 메커니즘은 VF때나 별 달라진 것이 없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미러 휠, 국산 바이크 타이어의 광폭화에 불을 붙인 130mm 타이어, 플랫 핸들, 연료통에 박힌 계기반과 미끈하게 빠진 연료탱크... 혼다 마그나250의 그림자가 너무 짙긴 했지만(이름까지 비슷-_-;) 디자인 완성도 면에서 프레임까지 원색으로 깔끔하게 도색된 마그마는 분명 가치 있는 존재였습니다.
다만 125cc의 배기량이면서 150kg에 육박한 건조중량은 주행성능을 둔하게 만들었고, 단지 폼을 위해 양쪽으로 뽑은 듀얼 머플러는 중형차 엔진에 대형차 껍데기를 씌워 파는 졸부같은 자동차 문화와 함께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후속 차종의 완전히 염치를 상실한 디자인에 비하면 양쪽으로 뽑은 머플러 정도는 애교였지요... 지금은 단종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이쁜 디자인 때문에 125cc라는 배기량이 안타까웠던 차종입니다. 250cc로 나왔다면 정말 제대로였을 텐데.
10. 크로스(X) 가문 2세, 변태 바이크 RX 등장하다.
98년의 어느 날입니다. 효성은 국내에서는 경쟁 차종이 없는 이상한 초 마이너 장르를 만들어버렸습니다. 비교대상이 있다면 자사의 단종 모델 MX 정도. 국산 최초의 도립포크와 링크식 모노쇽을 달고서 말이죠... 라이더들은 금빛 포크를 보며 감탄했습니다. 높은 지상고는 즉시 시내바리의 최강자로 등극하게 했고, 타는 재미도, 노는 영역도 넓은 정말 재미있는 바이크였습니다. 출력에 걸맞는 강력한 브레이크하며... 지뢰밭같은 시내도로를 거의 날라다닐 정도의 서스펜션. 하지만 성능이나 내구성이 외제 모터크로서에 비견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고, 냉정히 말하면 예전의 MX보다 많이 낫군...쯤 되는 위치였습니다. 격한 점프를 하려면 차대 보강 킷트 장착이 필수이고, 순정 상태로는 비포장 등산로나 오솔길을 즐겁게 투어링하는 모습이 어울리는 바이크인 것입니다. 많은 라이더들이 좋아라했던 드문 녀석. 지금은 단종됐지만, 더 현실적인 무대에 어울리는 트로이라는 후속기종이 벌써 팔리고 있군요. 세월 참 빠릅니다.
11. 갈 데까지 간다. 아저씨들이 바라는 거, 다 돼있수다.
군대에서 졸병을 너무 잘해주다보면, 어느날 문득 개념을 상실해버리고 "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그마의 성공을 보고 개념을 쌈싸먹은 대림은 멀쩡한 정신으로 감당 못할 익스트림 디자인 바이크를 만들어버립니다. 잊을 수 없는 그 이름...데.이.스.타.-_- 낮별...이름답게 쌩뚱 그 자체. 마그마가 마그나의 패러디 버젼이라면, 데이스타는 할리의 이미테이션 포켓바이크입니다.-_- 마그마보다 더 무거워진 153kg의 몸무게는 125cc의 한계를 보여주며.. 억지로 늘어난 프레임에 배터리 넣고 전장류에 모노쇽까지 다 넣었는데도 뭔가 심하게 허전해서 뭘 만들어 넣을까 고민하다가 할리의 별체식 트랜스미션을 흉내낸 유치한 멕기 플라스틱쪼가리를 붙여버렸습니다.
에어클리너 커버 역시 팻보이를 연상시키는 둥근 커버를 달았는데, 결정적으로 실린더가 1개 뿐이라서 엔진 뒤에 참 쌩뚱맞게 붙어있습니다. 머플러는 할리의 샷건 스타일을 흉내내야겠는데, 배기관이 1개이니 그게 안되지요. 그래서 그냥 대놓고 Y자로 갈라서 엔진의 크기에 비하면 대포만한 머플러를 2개나 떡 떡 붙여놨습니다. 갈라진 부위에는 또 멕기딱가리. 연료탱크는 아래쪽 엔진과 같이 보면 열기구처럼 보일 정도로 빵빵~해졌습니다. 운동성을 위해 출력향상이 전제된 것이 아니라, 뚱뚱해진 바이크가 오르막에서 빌빌대면 안되니까 압축비를 높이고 오일쿨러를 달아서 쑈부를 봤습니다. 하지만 무게 때문인지 3단 기어가 잘 나간답니다. 아, 가스쇽 승차감은 그런대로 괜찮았던 기억이 납니다. 끗.
12. 대림이 125cc 엔진으로 다 돼있는 바이크 만들 때, 한편에선 신기루가...
효성에서 미라쥬가 나왔습니다.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의 V2기통 엔진...흥분에 휩싸여 찬 겨울밤에 동네 센터에 일부러 찾아가서 카탈록 한 장 받아왔던 기억이 나는군요. 면허제도 때문인지 아니면 찔러보기인지 125cc가 먼저 나왔는데, 고회전시 진동이 적다는 것 외엔 큰 감흥이 없었고...오히려 저속토크 부족으로 항상 고회전 운전을 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허~참 저런 희한망측한 크루져도 한국이니까 나온다 싶었죠. 솔직히 돼있수다와 다를 거 없게 느껴졌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250cc 엔진을 얹은 본래 주인이 등장하자 이게 아주 제대로다 싶었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맞는 덩치에 힘좋은 엔진, 민첩한 핸들링, 우수한 연비. 외국 시승기에서도 동급의 일산바이크를 눌러버리는 한국의 고성능 스탠다드 크루져. 주력 기종이 될 만한 역작입니다. 택배용으로도 힘이 충분하고 투어용으로 써도 장거리를 가뿐하게 주파하는 성능은 국산 바이크의 새로운 경지를 느끼게 합니다. 지금은 생산한 지 몇 년이 지나 완성도 면에서도 안정된 수준에 도달한 느낌이네요.
13. 엑시브 스포츠버젼, HSRC GSX125 SP/RR
효성 레이싱 컴퍼니에서 엑시브에 피렐리제 스포츠투어링 타이어와 풀카울을 달고 라이딩 포지션을 손봐서 만든 125cc 스포츠바이크입니다. 엔진을 비롯한 기본적인 구성은 엑시브와 같지만, 최초로 시도되는 세퍼레이트 핸들과 본격적인 자세로 큰 반향을 일으킨 기종이죠. 젊은이들은 이제 어설픈 사제 카울에 의존하지 않고도 "순정으로도 뽀대나는" 국산 바이크를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본격 스포츠바이크로 보기엔 역시 엔진과 브레이크는 여전히 빈약하고 작은 연료탱크로 니그립이 용이하지 못하다는 점 등, 차 자체의 완성도나 활용도는 지금의 코멧250보다 못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놈이 전문가들의 손을 거치고, 튜닝을 하면 엑시브전에서 활약하는 레이서로 돌변합니다. DOHC 엔진의 잠재력은 이때 발휘되는데, 무려 14,000rpm까지 올라가는 레이싱 버젼은 마치 폭주하는 에반겔리온처럼 엑시브의 잠재된 진짜 모습을 보여줍니다. 풀튜닝된 엑시브는 250cc들과 나란히 주행할 정도의, 배기량을 초월하는 성능을 낸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구성을 상당히 희생해서 얻는 출력이라 일반 라이더들이 이렇게 튜닝해서 타기는 좀 어렵지요. 하지만 DOHC 헤드를 달고 있으면서도 VF 동급의 실용차 취급 당하던 엑시브의 통렬한 한풀이는 이걸로 충분히 이뤄진 느낌입니다.
14. 희소해서 카리스마.
EXIV SP에 대한 대응으로 대림이 만든, VR의 페이스리프트 버젼. 우긴다면 3세대 VF라 볼 수도 있겠지만... 아마 VF 생산라인에 카리스마 카울을 갖다주면 카리스마 한 대가 떡 만들어져 나오는 듯 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대림. 사진 몇 장이 인터넷에 돌다 지금은 소식도 없고 실제로 달리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국내에서는 그 희소성으로 비모타 테지와 경쟁하는 기종.
15. 250cc 트윈엔진으로 만든 두 번째 바이크. 코멧 250.
미라쥬 엔진으로 만든 네이키드. 예전의 GSX250E같은 실용 네이키드와는 거리가 있는, 고출력 세팅된 엔진에 2단 시트와 도립 포크를 달아 스포츠 컨셉을 강조했습니다. 처음 출시됐을 때 결함이 너무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매체에서도 너무 평가절하되어 이미지가 별로 안좋은 바이크지만 또한 매력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고차원의 주행성능이야 튜닝을 거치면 되니 가격대비 성능으로 봐서 "탈만한 바이크"인 것은 분명하고, 유일했던 스포츠모델 엑시브 SP보다 많은 면에서 진보했는데도, 그 기간동안 꾸준한 페이퍼라이딩으로 턱없이 눈이 높아진 사람들의 비교 평가 기준은 400급 외제바이크였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겠지요. 125cc 버젼도 있지만 경쟁작인 로드윈에 비해 큰 메리트가 없는 것이 흠입니다. 디자인도 그렇게 밉지는 않지만 푹 꺼진 낮은 시트와 비대한 연료탱크, 시트카울이 마이너스 요소입니다.
16. 한동안 삽질하던 대림이 냉수 마시고 정신 차려서 만든 네이키드, 로드윈.
이놈과는 좀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놈을 처음 A모지에서 봤을 때, 표지엔 당당하게 대림 Loadwin이라고 적혀있더군요. 뭐? 로드윈? 짐 싣기 대장이라는 건가... 대림이 국내 현실을 직시한 건가...그런 건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알고보니 Roadwin 이었습니다. 스펠링도 제대로 못적는 A지 기자들 이 ㅅㅂㄹㅁ..-_-
각설하고, 로드윈의 실체를 알고 나는 순간,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라는 생각이 번쩍 들면서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국내 사정 어려운 걸 알지만 그동안 유독 스포츠 모델에서 안쓰러운 삽질을 계속하던 대림이 간만에 역작을 하나 만들어 나온 것이죠. 130kg의 건조중량은 드디어 대림 기종이 125cc의 본 모습으로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게 합니다. 과장되지 않은 차체에 "숙성의 극"에 도달한 125cc엔진, 튼튼한 프레스제 프레임과 고급스런 부가 장비들을 보면 왜 진작에 이렇게 안만들었지? 싶을 정도로 반갑습니다. 네이키드라는 이유만으로 코멧125와 비교되는 경우가 많지만, 알고보면 효성의 엑시브페밀리 수요까지 집어삼킬 정도의 저력이 있는 웰메이드 바이크 로드윈!
특히 국내에서는 이례적으로 모리와키 머플러를 비롯한 다양한 옵션품이 준비되어 있어 선택이 폭이 넓어졌습니다. 전용의 모리와키 머플러는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출력의 증가와 함께 진동감소의 효과도 상당해서 평가가 좋더군요. 옵션 중의 하나인 작은 윈드스크린은 크기도 적당하고 모양도 예뻐서 로드윈 뿐만 아니라 코멧650이나 CB400등의 다양한 네이키드에 장착되는 유용한 아이템이 되었지요. 한편, 여전히 "이놈이 250cc만 되었어도..."라는 아쉬운 목소리가 많은데 이에 대한 대림의 답변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17. 미칠듯한 습히드로 비행하는 혜성!!!!.... 코멧 육오공.
지금, 다시 처음 부분으로 돌아가서 1번부터 죽 다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17번을 다시 보세요. 국산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깐깐한 태도로 의심하는 눈초리가 많지만 이 정도 되면 코멧650은 실로 국산 바이크계의 쾌거라고 할 만 합니다. 모 잡지의 편집장도 "효성, 공부 많이 했나보다. 이 가격이면 차라리 외제 400cc 중고를...이라는 사람들과 맞서 싸울 정도가 된다."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호주나 미국 등지의 시승기를 보면 더욱 든든해지는 존재. 뭐 긴 말 필요없다고 봅니다.
18. 최단기간 최다판매 신기록 갱신. 프리윙250...
국내 최초의 빅 스쿠터... 요새 들어 대림이 들이킨 냉수가 지리산 광천수인지 아주 약빨이 제대로입니다. 그간 VF갖고 찐따짓 하던 것도 관두고, 효성이 총대 지고 가고 그 뒤에서 확인된 곳만 사격을 날리던 대림이 냉수 한 잔 들이키더니 적극적인 자세로 "빅스쿠터"라는 장르를 선보인 것입니다. 간만의 역작이죠. 대만제 엔진을 사용한다는 점이 와전돼서 "중국산 부품으로 조립한 저급품"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대만은 중국이 아닐 뿐더러-_- 대만 스쿠터는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수준입니다.
물론 저렴한 가격에 걸맞게 카펫이 없는 플라스틱 바닥 트렁크 등등 좀 싼 티 나는 부분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소한 것 몇 가지로 평가절하할만한 스쿠터는 결코 아닙니다. 커져가는 국내 빅스쿠터시장에 시기를 잘 맞추어, 동급 외제에 비해 저렴한 가격 경쟁력과 "믿을 수 있는 대림"이란 이미지로 높은 판매고를 기록중인 베스트셀링 웰메이드 스쿠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상 제가 기억하는 국산 바이크들이었습니다. 650급 크루져와 400급 오프로더 등으로 라인 확장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효성, 뛰어난 품질관리로 "믿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대림... 앞으로도 국산 메이커들이 계속 좋은 모델들을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글을 맺겠습니다.
첫댓글 오~ 대단하십니다... 글을 읽으면서 맞아맞아 하게 되는군요 . 효성꺼 좋아하긴 하나... 내구성만 생각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는...
잘 읽었습니다 ^^ 스크랩 해 갈게요 ^^;
오오옷...멋진데요 오도방 국사네요~~~
불후의 명작 시티 100 시리즈도 소개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큭 저도 바이크좋아한지 02년때부터였는데 앞에껀 잘모르겠네요-0ㅡ;
국산바이크60년대부터생산[기아혼다]80년대 대림효성생산시작.......기아혼다가 지금의대림에흡수.
제하고 연배가 비슷하신것같군요..위에 열거하신 기종들을 다타봤기에 공감이 더갑니다..하나 아쉬움이 있다면,효성의 전설 감마와 티엔도 소개좀 해주셨으면 했네요..엑시브의 원조모델들인데 말이죠..^ ^
글이 환상입니다...보면서 눈물까지 훔쳤다는...^^ 꼭 제 맘속에 들어왔다 나가신분같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탔던 MX, TN, VF, RX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ㅎㅎ 시티100과 GF-125가 빠져서 쬐끔 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