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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80)
[무림황제, 그리고 그 후] 완벽해 보이는 일이라도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지금 당혹스런 얼굴을 하고 있는 양천리가 그랬다. 신녀봉 아래 사령계와 무극계 무인들을 몰살시키고 곧바로 서능협으로 왔다. 적에게 발각되길 바라는 마음에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왔다. 아니나 다를까 적은 기다렸다는 듯 공격을 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양천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적이 사령계 무인이었던 탓이다. 중간에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혈영고루강시와 반시를 수하로 거뒀고, 이번에는 묵철마강시를 수하로 거둘 참이었다. 묵철마강시를 수하로 거둔다면 적어도 불사삼괴 일천을 거느리게 될 터이고, 통천연맹 잔여 병력과 합치면 광풍성 정도는 일거에 박살낼 수 있을 거라는 예상도 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단이 생기고 말았다. 공격을 가해 온 사령계 진영에는 묵철마강시가 존재하지 않았다. 전날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가 있었음에 분명했다. 더구나 그자는 강시에 대해 잘 아는 자일 것이다. 결국 북천지옥대 잔여 인원을 비롯한 통천연맹 나머지 병력을 투입하고 말았다.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지만 이군의 피해도 막심했다. 적 또한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동귀어진을 불사하고 달려들고 있다. 양측이 공히 같은 수가 죽어 가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으음!” 양천리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전쟁에 이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을 밝지 못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생각보다 희생이 많았던 탓이었다. 지금 상태로 가면 강시를 비롯하여 이천 정도가 남을 듯했다. 그들을 데리고 나머지 전쟁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도 없는 일이다. 우선은 눈앞의 적을 완전하게 물리친 후에 다음을 걱정해야 할 터였다. “더욱 몰아쳐라! 얼마 남지 않았다.” 부하들 틈바구니 속에서 몸을 날리며 양천리는 고함을 내질렀다. 얼마 남지 않은 적을 보자 갑자기 쉬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조급증이 일었다. 양천리는 몸 자체가 무기였다. 모든 것을 무시했다. 검이 날아오면 그대로 맞으며 상대의 목을 꺾었고, 목을 향해 날아오는 도를 무시한 채 상대를 짓이겼다. “크악!” “아악!” 그가 지나가는 자리엔 흥건한 핏물만 남았다. 강기가 서린 도검조차도 무용지물이었다. 붉은 불똥이 튀고 나면 어김없이 적이 죽어 나갔다. 마지막으로 흑검 마금성의 목을 틀어쥐어 뜯어내는 것을 끝으로 사령계 무인들과의 전쟁은 끝이 났다.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 주변을 향해 고함을 지른 양천리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정신없이 달려온 듯했다. 아니 어떤 생각도 없이 일직선으로 달려왔다. 오직 적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고, 그들의 피를 원했다. 피를 보면 이성적인 판단은 어느새 저만치 사라지고 오직 파괴본능만 눈을 뜬다. 아군의 피나 적의 피나 상관없다. 그저 피를 향해 달려갈 뿐이다. 양천리는 온통 피로 점철된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지난 며칠간 매일같이 보아 왔던 잘린 육신들이다. 하지만 더 이상 저것들은 인간의 육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푸줏간에 널린 고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점점 감정이 무뎌지고 있다는 의미일는지도. 인간이라면 혈향이 향기롭고, 혈향을 맡고 있을 때만 마음이 편할 리가 없을 터였다. “제군.” 양천리는 한숨처럼 제군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요왕.” 양천리 앞으로 다가온 제군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마혼혈시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게 있느냐?” 검은 천에 가려진 제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양천리는 물었다. 아무래도 몸의 이상이 마혼혈시의 부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저희 가문에서 처음 태어나는 요왕이십니다. 정확힌 사항은 소신도 알지 못합니다. 아마 일시적인 장애가 아닐까 합니다.” 제군의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가? 그런데 말이네, 점점 몸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 뭐랄까, 피를 보면 볼수록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랄까. 넌 그런 느낌을 알려나 모르겠구나.”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양천리는 제군의 목을 틀어쥐었다. “컥!” “말해라 제군. 내 몸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말해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요-왕-의........” “아냐, 네놈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단 말이야. 오른쪽 눈알이 먼저 굴렀어.” 차갑게 소리친 양천리는 왼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요-왕!” 잔뜩 겁먹은 얼굴로 제군은 양천리를 불렀다. 그러나. “크아악!”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제군은 처절한 비명을 토해냈다. “이제 하나 남았다, 제군. 말을 하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장님이 될 거다. 저기 있는 피들을 보지 못한단 말이다.” 제군의 눈알을 지그시 틀어쥐어 터뜨려 버린 양천리는 속삭이듯 말하며 피가 잔득 묻은 손을 들여 올렸다. 그의 손이 향하는 곳은 하나 남은 제군의 왼쪽 눈이었다. “말........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양천리의 손이 우뚝 멈췄다. 하지만 여전히 제군의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차하면 마지막 눈알을 뽑아 버리겠다는 태세였다. “요왕의 몸은 불안정합니다. 그 이유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결국 제군은 털어놓고 말았다. 제마경을 찾아 헤맸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혹여 제마경에 요왕에 대한 비밀이 있을까 해서였다. “언제까지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냐?” “저도 모릅니다. 다만.......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억제하면 할수록 파멸은 빨리 온다.” “크아악!” 제군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양천리가 천천히 제군의 머리를 돌리고 있었던 탓이었다. “지금 난 너를 죽이고 싶다. 마음껏 풀어야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해 준 놈은 바로 너다, 제군. 킥킥킥!” 이미 숨이 끊어진 제군의 목을 계속해서 돌리며 양천리는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한편에서 쉬고 있던 통천연맹 무인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 갔다. 몇몇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걱정 마라, 나를 속이지 않으면 누구도 죽이지 않는다. 나를 속이지 않으면 말이다.” 그런 부하들을 쳐다보며 양천리는 차갑게 말했다. “양천리!” 바로 그 순간 남쪽으로부터 그를 부르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속이려 했던 놈이 또 왔군.”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흘끔 고개를 돌린 양천리는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노이 왔소. 귀광두가 왔단 말이오. 놈이 부하들과 같이 쫓아오고 있소이다.” 양천리 곁으로 날아 내리며 제갈승후는 소리를 질렀다. “귀광두에게 당한 모양이군.” “그렇게 됐소이다. 하지만 놈의 약점을 알아냈소.” “약점?” “그렇소, 맹주. 놈은 강시 네 구를 거느리고 있었소. 그리고 놈의 계집 둘도 같이 있었고.” “킥킥! 강시라....... 재미있는 세상이군. 정말 재미있어. 통천연맹은 어떻게 되었나?” 비릿한 조소를 문 양천리는 제갈승후를 노려보며 물었다. “전부 당했을 거요. 제갈세가도 끝장났소. 귀광두 놈에 의해.” “안 됐군. 그럼 귀광두를 죽여야 하는 이유가 또 늘어났구먼.” “그렇소이다. 약점을 잡은 이상 반드시 놈을 없애고 말 거요. 맹주는 강시를 시켜 계집들만 잡아 주시오. 그럼 놈은 내가 맡겠소.” 제갈승후는 조금 전 자신이 왔던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귀광두를 비롯한 놈들이 올라올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럴 필요 없다, 제갈승후. 난 누가 날 속이는 걸 제일 싫어해. 그리고 참지도 못하고.” “커억! 왜?” 가슴을 비집고 타온 손끝을 쳐다보며 제갈승후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등을 뚫고 들어온 그것은 양천리의 손이 분명했다. 고개를 돌리자 목이 꺾인 채 숨져 있는 제군의 시체가 보였다. “제군도 네가?” “맞아, 저놈도 날 속였거든. 마혼혈시는 불안정하다고 하더군. 얼마잖아 인성이 마비되어 완전한 강시가 될 거라며 말이야. 놈은 내가 완전한 강시가 된 다음에 통천연맹을 날로 먹으려고 했어. 너처럼.” “병신 같은 놈! 넌 네 무덤을 판 거야, 멍청한 놈아. 날 죽이는 것을 조금만 늦췄어야 했어. 그랬더라면.........” “상관없다, 제갈승후. 나에겐 아직 천구의 불사삼괴가 남아 있다. 그들만 있으면 된다.” 속삭이듯 말한 양천리는 박아 넣었던 오른손을 힘차게 뽑아내었다. “녀석들은 날 속이지 않는단 말이다.” 손에 딸려 나온 붉은 덩어리를 한참 동안 쳐다보던 양천리는 천천히 주먹을 그러쥐었다. 퍽! 붉은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짝! 짝! 짝짝짝! “아주 멋있었다, 양천리. 정말 최고의 장면이었어.” 손뼉을 치며 나타난 사람은 백산을 비롯한 광풍성 무인들이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귀광두. 네놈을 만나기 우해 저승에서 살아 돌아왔다.” 광기를 뿜어내던 양천리의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오며 그의 몸에서 몸서리치는 살기가 흘러나왔다. 가장 죽이고 싶었던 놈. 놈 때문에 마혼혈시가 되었고, 방금 전에는 마혼혈시가 되어야 했던 운명을 저주했다. 그게 다 저놈 때문이었다. 놈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이다. 놈 때문에. “저승에서 살아온 것은 나하고 같구나, 양천리. 그런데 말이다, 다시 태어난 이유는 너와 달라. 너 같은 놈들을 없애서 세상을 바꾸라는 사명을 부여받았거든.” “잘됐구나, 귀광두. 누가 더 질긴 삶을 가졌는지 시험을 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마령군은 강시를 투입하라!” 양천리는 뒤편으로 물러서며 고함을 내질렀다. 양천리의 명령이 하달되자마자 남아 있던 불사삼괴 전원이 백산 일행을 향해 몰려들었다. “이거 너무 많은 것 아냐?” 뒤편을 흘끔 쳐다보며 백산은 인상을 찌푸렸다. “뭘 걱정하쇼. 금방 끝날 터인데.” 빙긋 미소를 지은 섯다가 강시들 사이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한걸음 내딛는 순간 그의 몸이 새카맣게 변하고 심검의 기운을 동반한 앙천마마묵독공이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섯다 주변의 강시들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도검불침한다는 불사삼괴였지만, 그들의 강함은 일반 무인들에게나 통용되는 것일 뿐, 앙천마마묵독공과 심검으로 무장한 섯다에게는 한갓 어린애에 불과했다. “저거 재미있네, 나도!” 싱긋 미소를 지은 모사가 섯다 뒤를 따르고, 검게 변한 두 사람의 신형은 종횡무진 강시의 숲을 헤매고 다녔다. 그들의 뒤를 따라 소살우와 일휘가 따랐고, 석두와 백산까지 가세하자 강시들은 썩은 짚단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개자식들!” 양천리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강해도 너무 강한 자들이었다. 지금껏 사령계를 비롯한 무극계 무인들을 없앴던 강시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아느냐, 네놈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뒤쪽 다른 무인들 틈에 섞여 있는 주하연을 쳐다보며 양천리는 비릿한 조소를 물었다. 잠시 호흡을 고른 양천리는 제혼영매대법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네 구의 강시, 그것들이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지만 강시인 이상 요왕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으리라. 일순 양천리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흘러나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이윽고 양천리의 입이 천천히 달싹거렸다. [나의 종들아, 난 너희들의 주인인 요왕이다. 내 말을 들어라. 너희들 바로 앞에 있는 계집을 데리고 와라.] 끄아! “관우 할아버지!” 느닷없이 천괄의 입에서 나직한 소리가 흘러나오자 주하연은 화들짝 놀라 천괄 곁으로 다가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런 경우가 없었다. 아니 강시가 어떤 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노릇이었다. 끄아! 주하연이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이들도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주하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네 분 할아버지들이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잘 컸다고 칭찬을 해 주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주하연은 천괄의 품속으로 뛰어들며 울먹였다. [너희들은 나의 종이다. 내 말을 따라라. 그 계집을 데리고 와라!] 반응이 오자 양천리는 전 내공을 동원하여 제혼영매대법을 시전했다. 머릿속이 깨질 듯 아팠으나 양천리는 개의치 않았다. 귀광두 놈을 잡는 데 모든 걸 걸었고,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인성을 잃기 전에 놈을 없애야 할 터였다. 지금 양천리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한 가지였다. ‘와라!’ 끄아악! “아앗! 하연아!” 갑자기 몸을 날려 뛰쳐나가는 천괄의 모습에 설련은 뾰족 고함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찌해 볼 경황이 없었다. 주하연은 천괄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상황이었던 탓에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런 그녀를 데리고 천괄이 몸을 날려 버린 거였다. “백랑!” “천괄, 멈춰!” “네놈이 멈춰라, 귀광두. 한 발만 더 움직이면 네 계집을 없애버리겠다. 네 계집을 잘 봐라. 강시에게 목을 잡힌 상태다!” 천괄을 향해 돌진하던 백산의 신형이 우뚝 멈췄다. 또다시 이런 경우가 오고 말았다. 과거에도 그녀들을 지키지 못했는데, 또 하연일 지키지 못했다. 자만이었다. 동생들이 살아 있다는 자만. 양천리 정도는 우습게 없앨 수 있다는 자만. 그 자만이 하연일 방치하고 말았다. “무릎을 꿇어라, 귀광두. 서둘러라!” 번들거리는 눈으로 백산을 쳐다보며 양천리는 명령했다. 바로 이 기분이다. 지금 이 순간 놈은 강시고, 자신은 강시를 조정하는 요왕이 된 것이다. 천붕십일천마를 강시로 거느린 진정한 요왕. “아느냐? 내가 바로 강시 지존이라는 요왕이다. 마혼혈시로 되살아난 요왕이란 말이다. 말을 듣지 않는군. 그럼 먼저 팔을 꺾어 보여 주도록 하마. 들어라......” [동요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세요, 오빠.] 망설이고 있는 백산의 머릿속에 주하연의 심어가 흘러들었다. 양천리의 생각처럼 그녀는 제압당한 상태가 아니었다. 다만 천괄을 비롯한 수신사위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하여 가만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요왕이란 말을 듣자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호심무극경 속에 등장하는, 강시의 지존이라 하였던 요왕이 바로 양천리였던 것이다. “꿇겠다.” 백산은 가만히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석두르 비롯한 나머지 형제들도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킥킥킥! 재미있구나.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을 거다, 귀광두. 지금부터 네놈을 심판하겠다. 사지를 하나씩 잘라내고, 그 다음 눈을 뽑아낼 것이다. 그 다음에는 몸을 해부하여 장기를 하나씩 드러낼 것이다. 그 장기는 두고두고 술안주로 먹을 것이다, 귀광두. 기대해도 좋다. 킥킥킥! 킥킥킥!” 양천리는 발작적으로 웃어젖혔다. 이렇듯 일이 쉽게 풀릴 줄이야. 저런 놈에게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놈이 아닌가. “기어라! 그곳에서부터 바닥을 기어 내 앞으로 와라!” 광기 어린 얼굴로 양천리는 고함을 내질렀다. 잔뜩 흥분한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는 그의 귓전으로 뾰족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그 개자식, 도저히 참을 수 없게 하는구나.” “엉?” 양천리는 놀란 얼굴로 주하연을 안고 있는 강시를 쳐다보았다. 방금 개자식이라 외친 목소리는 그 속에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네 구의 강시를 시켜 주하연의 사지는 물론이고 목까지 틀어쥐라고 명령을 내린 상태다. 그녀는 말을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상화이라야 한다. “양천리! 가족도 없겠지만 죽을죄를 두 번이나 졌다. 장차 이 나라 공주가 될 봉선군주 주하연을 능멸한 죄가 그 하나요, 그보다 더 큰 죄는 이 나라 부마도위가 되실 분의 무릎을 꿇게 했다는 것이다. 그 죄는 바로 능지처참이니라!” “건방진 년. 나의 종들아, 그 년을 찢어 죽여라!” 그러나 천괼을 비롯한 수신사위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강시지존이라 하였던 요왕의 권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미안해요, 할아버지.” 슬픈 눈으로 네 사람을 쳐다보던 주하연은 품에서 호심무극경을 꺼내 들었다. 양천리가 스스로 요왕임을 밝히는 순간 광치에게 들었던 호심무극경의 제문이 떠올랐다. 호심무극경은 강시의 움직임을 제압하는 물건일 뿐 아니라, 해강시켜 주는 역할도 하는 물건이었다. 그녀가 천괄의 품에서 가만있었던 이유는 그들을 해강시킬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언젠가는 해강시켜 주려고 했었지만 이곳과 같은 황량한 곳은 결코 아니었다. 좋은 무덤을 만들어 그들을 그곳에 눕힌 다음 장사를 지내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에 저승에서 다시 만나요.” 네 사람의 얼굴을 차례대로 쓰다듬은 주하연은 호심무극경에 내기를 주입하며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파앗! 순간 호심무극경에서 황금빛 광채가 흘러나와 천괄을 비롯한 네 구의 강시를 쏘이자, 그들은 천천히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꽃가루가 흩날리듯 가루는 바람을 타고 흘렀다. “오빠!” 천괄 일행이 가루로 흩어져 사라지자 주하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백산을 불렀다. “알았다, 다른 것들은 몰라도 양천리 저 잡것만큼은 반드시 분해를 해 주마.” 주하연으로 인하여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사진악과 천붕십일천마의 살육이 재개되었다. 분노한 그들의 손속은 가공했다. 광풍성 무인들을 비롯한 통천연맹 전여 병력은 신의 무학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어야 했다. 말없이 휘젓는 손길에 삼십여 구의 강시들이 재가 되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천여 구의 강시를 몰살시키는 데 그들은 딱 다섯 번의 손을 썼다. 그리고. “크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일곱 조각으로 나뉜 양천리의 조각은 강시들의 가루가 흩뿌려진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양천리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산을 비롯한 일곱 명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편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통천연맹 무인들을 향해 돌진하더니 사지를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광기(狂氣). 미친 듯이 살수를 쏟아 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광풍성 무인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린 말이었다. 주하연을 위협했다는 사실이 저들을 광기에 휩싸이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결국 광풍성 무인 대부분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백산 일행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은 단 세 사람밖에 없었다. 소림사 달마동에서 백산의 과거를 보았던 설련과, 조금 전 납치를 당할 뻔했던 주하연, 그리고 그들과 같은 생을 살았던 남궁미령이었다. “저들은 저럴 수밖에 없습니다. 또다시 과거를 되풀이할 뻔했으니까요. 만일 형님이 일을 당했다면 강호 무림 전체가 저렇게 됐을 겁니다. 목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들은 무림인들을 없애고 다녔을 겁니다.” 남궁미령은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잔인하다고 욕할 수가 없다. 악마라고 손가락질 할 수가 없다. 그들이 살아온 삶을 알기에. 저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악마가 되고 있다. 악마가 돼서라도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직한 한숨을 내쉬던 남궁미령도 급기야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응?” 일순 남궁미령의 표정이 흠칫 굳어졌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백산 일행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사령계 지존인 뇌우예요.” 남궁미령을 따라 고개를 돌렸던 주하연은 엷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주하연은 뇌우를 향해 알은체를 했다. “그렇군요, 오랜만이군요.” 뇌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건 단지 주하연 때문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광경에 할 말을 잃었던 탓이다. 통천연맹에서 전쟁을 치르다 왔고 천여 명에 달하는 부하들을 잃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전쟁을 수행하다 보면 희생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고 여겼다. 오히려 무인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명예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들은....... 일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온몸에 피 칠을 한 채 적을 도륙하는 모습은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피에 굶주린 야수들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제정신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겠지.” 백산 일행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뇌우는 산봉우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어둠을 뚫고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에서 기다리겠네, 묵안혈마!” 일곱 명의 손속이 일제히 멈췄다. 멀리서 들려오는 뇌우의 목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더 이상 죽여야 할 적이 남아 있지 않았던 참이었다. 백산은 고개를 숙여 제 몸을 쳐다보았다. 주변을 비롯하여 손과 발 그리고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들어라!” 세수하듯 얼굴의 피를 닦아 내며 백산은 고함을 내질렀다. “나 묵안혈마 백산은 다시 한 번 경고하겠다! 나를 화나게 하는 놈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놈들처럼 해 줄 것이다. 세상 끝이 아니라 지옥에 수더라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죽여 줄 것이다. 뼈를 갈아 마셔버릴 것이다!” “저건 우리에게 내리는 경고야.” 광풍성 무인들 뒤편에 있던 나숙선은 부르르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방금 통처연맹 잔여 무인들을 없앨 때 저들은 심검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파괴적인 힘과 잔인함으로 그들을 도륙했다. 그리고 통천연맹 무인들의 피로 온몸을 적셨다. 일곱 명이 동시에 얼굴에 묻은 피를 세수하듯 닦아 내는 모습이라니. 지옥에서 막 뛰쳐나온 악마가 있다면 바로 저 모습일 테다. 설령 신이 있다고 해도 저들만큼 강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을 터이다. 저들을 없애고 강호를 정복하겠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넘을 수 없는 벽. “우린 졌습니다, 마존!” 뇌우가 올라간 산봉우리를 쳐다보며 나숙선은 고개를 떨어트렸다. “가자!” 그녀의 귓전으로 재차 백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일곱 줄기의 검은 그림자를 그녀는 목격했다. 초조한 얼굴로 봉우리를 쳐다보던 나숙선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상상할 수 없는 신인들의 비무가 있을 터인데,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 정도의 무인이면 적어도 산봉우리 하나 정도는 없어져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산봉우리는 처음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다. 바람 소리조차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숙선의 얼굴이 일순 해쓱해졌다. 일곱 명이 동시에 내려오고 있었다. “마존!” 질겁한 나숙선은 바닥을 차며 산봉우리로 향했다. 그녀를 따라 마신가 무인 수백 명이 산봉우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 그들을 쳐다보던 백산은 광풍성 무인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돌아간다!” 설련과 주하연을 품안으로 끌어당긴 백산은 장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대장!” 백산을 뒤따라 몸을 날리던 광치가 궁금한 얼굴로 불렀다. “왜?” “거시기, 그 뇌우란 놈, 어떻게 된 거요?” “어떻게 되긴. 원래 산 속에서 비무를 하게 되면 이긴 사람이 먼저 나오는 거잖아.” “그럼 대장이 이겼단 말인데. 그런데 왜 난 싸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 “심검을 익힌 고수가 싸우는데 무슨 소리가 나겠냐. 원래 고수가 되면 소리 없이 싸우는 법을 익히게 되는 거야.” “거참! 이상하네. 아무리 심검으로 싸운다 하더라도 기운은 느껴야 할 텐데.” 광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려다. 도무지 백산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소리 없이 싸웠다고 하지만 전부가 심검을 익힌 고수들이다. 주변이 초토화되고 가루로 변할 터인데 아무런 기운도 감지하지 못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거 거짓말이지?” 의심스런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며 광치는 소리쳤다. “정 의심스러우면 가보든지.” “저 먼 곳을 뭐 하러 가냐. 남는 것도 없는데.” 뒤편 봉우리를 흘끔 쳐다보며 광치는 낮게 투덜거렸다. “남는 것도 없는데 뭐 하러 관심을 가져, 임마. 이겼으면 됐지. 그딴 데 관심 두지 말고 가서 일할 생각이나 해. 강호를 다스리려면 해야 할 일이 태산이란 거 몰라?” “맞다, 우리가 이겼지. 그런데 어째 실감이 안 나지?” 광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전쟁에 이겼고, 승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쁘다거나, 감격스럽지 않았다. 마치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실감이 나지 않는 사람은 비단 광치뿐만이 아니었다. 산등성을 따라 정상에 도착한 나숙선도 실감이 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지존인 뇌우는 말짱했다. 주변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릎을 쓸던 수풀하며, 나무나 바위들이 전부 그대로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비무를 했음직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마존.” 나숙선은 망연한 얼굴로 앉아 있는 뇌우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리 보아도 그는 비무를 치르지 않은 게 분명했다. “졌소, 아주 깨끗하게.” “어떻게.” “일곱 명이 동시에 덤비겠다는데 어쩔 거요. 항복해야지.” 조금 전 상황이 떠올라 뇌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저만상신공을 익혔고, 아직 누구에게 지리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해서 백산 일행이 올라오자 당당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누구부터 시작할 거냐고. 그러다 어이없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백산을 비롯한 천붕십일천마 여섯 명이 일렬로 늘어서더니 공력 전이를 시작한 것이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암천무(暗天舞), 광천무(光天舞), 만상무(萬狀舞), 무상무(無上舞). 지저만상신공의 사 초식은 펼쳐 보지도 못하고 패배를 시인하고 말았다. “네에?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한 사람씩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일곱 명이 합공을 하겠다고 했단 말입니까?” 나숙선은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어이없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놀랍다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설마 중원의 승자를 가리는 비무에서 합공을 받아 내라고 했다니. 하지만 그녀는 더욱 놀라운 말을 들어야 했다. “운남에 살면서 매년 찾아오란다. 형님 생일 두 번, 두 분 형수님 생일, 그리고 자식을 낳으면 돌도 챙기라고 했고, 죽은 광풍대원 제삿날에도 오란다. 또 천붕 형님 다섯 분....... 하여간 그들 생일날도 전부 와야 한 대. 안 오면 군대를 보내겠다고 하더군.” “세상에, 완전히 날강도네?” 나숙선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뇌우는 분명 형님이라고 했다. 묵안혈마 백산을 형님이라 했고, 그의 형제들을 향해 형님이라 불렀다. 마신가의 가주 지저사령계의 계주인 그가. “맞아, 나도 그렇게 말했어. 그러다가 정강이만 까졌어, 도아가면서 일곱 대를 때리더니 나이를 묻더군.” “그래서요.” “서른다섯이라고 했더니, 자기네들은 팔십이 넘었대. 그러면서 또 정강이를 차더군. 그러고 나서 반말한다고 또 정강일 차고.” “그걸 다 맞았어요?” “그럼 맞아야지 어떡하나. 일곱 명이 합공을 한다는데. 나만 죽으면 상관없는데, 백성(白城)에 남아 있는 아이들까지 없애버리겠다고 하더군.” “끄응!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뇌우 곁에 풀썩 주저앉은 나숙선은 애처로운 얼굴로 물었다. 이런 전쟁도 있구나 싶었다. 어떻게 전쟁의 마지막을 그런 식으로 장식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기는, 강소성으로 이사를 가야지.” 뇌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열 번의 생일을 챙겨야하고, 광풍대원의 제사와 백산의 전부인 세 명의 제사까지 합치면 일 년에 열 네 번의 행사를 치러야 한다. 일 년 내내 강소성만 왔다 갔다 해도 시간이 부족할 판이다. 결국 광풍성에 가서 빌붙어 살든지 아니면 그곳으로 이사를 할 터이다. “백성은 어떻게 하시고요?” “백성은 당분간 나 문주가 맡아서 운영해 주게.” 자리에서 일어난 뇌우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수히 많은 별들, 자신은 저 많은 별들 중 희미하게 빛나는 별 하나에 불과했다. 하늘 전체가 아니었다. 하늘인 자들은 조금 전 정강이에 퍼런 멍을 만들어 준 그들이었다. 천붕십일천마, 그들은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휴-우!” 장강혈사는 뇌우의 깊은 한숨과 함께 끝이 났다. 장강대혈사라 불린 전쟁이 끝나고 강호는 빠르게 재편되었다. 중원 각성에는 광풍성 지부들이 생겨나 무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장강혈사가 끝난 지 정확히 일 년 후. 황제의 칙령으로 중원을 향한 포고가 내렸다. 듣거라! 짐은 광풍성 성주이자 무림제(武林帝) 백산(白山)의 충언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기로 하였다. 오십 년 전, 그대들이 무림 공적으로 선포했던 광풍대원은 명나라 황실을 구한 충신들이었다. 이에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천하제일도 팽무도를 충렬무환공으로 임명한다. 신수신룡 남궁세우를 충렬무위공으로 임명한다. ............ ............ 칼날 도염천을 충선양화공으로 임명한다. 도치 양남천을 충선영화공으로 임명한다. 걸레 조민상을 충선영운공으로 임명한다. 쌍칼 종천기를 충선영허공으로 임명한다. 덕대 거치웅을 충선자운공으로 임명한다. 곱창 유귀남을 충선운영공으로 임명한다. 찍새 해자인을 충선운양공으로 임명한다. ............. ............ 광풍대원을 비롯한 그들을 도왔던 이들의 무덤은 강소성 자금산에 마련될 터이고, 그곳은 성역으로 관리될 것이다. 간악한 자들의 음모에서 살아남은 광풍대원 다섯 명은 무위대역공으로 임명하여 짐을 제외한 황실의 가장 어른이 될 것이며, 그들의 수장이자 짐의 사위인 묵안혈마 백산은 무림제(武林帝)가 되어 짐을 대신하여 무림을 다스릴 것이다. 무림제(武林帝)에 항명하는 자는 모반을 획책했던 자들과 동일하게 대역죄인으로 간주할 것이다. 사라랑! 사라랑! 애명환 소리가 애잔하게 울려 퍼지는 동굴 안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사부들도 그대로였고, 광풍대원들과 한수 형님도 그대로였다. 백산은 동굴 한 가운데 있는 석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안고 있던 소령을 내려 천영 앞으로 내밀었다. “이 아이가 소령이오. 당신이 보내 주었던 그 아이요. 예쁘지 않소. 잘 키울 거요.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키우겠소. 당신들도 봐야지.” 냉추렴과 소운 앞으로 소령을 보이며 백산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눈가가 젖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는 영영 오지 못할 곳이다. 이곳은 오십 년 과거이고, 이제는 저들이 아닌 하연과 설련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저 녀석들에게 무덤을 만들어 주었소. 여기보다는 훨씬 큰 곳이오. 안에 집을 짓고, 밭도 일궜소. 그리고, 섯다와 모사는 벼슬을 얻었다오. 삼공이라고 하던데 명예직이랍니다. 우습다고? 아냐, 이젠 녀석들도 머리에 먹물이 좀 들었어. 잘 하는 것 같아.” 석상을 쓰다듬으며 백산은 그동안 일어났던 일을 하염없이 늘어놓았다. 소살우가 북방에서 데려온 수신가 가주인 조자령에게 새장가를 들었다는 말을 하면서 한참을 혼자 웃었다. 천영을 대신하여 형수로 삼겠다며 세뇌교육을 시키다가 둘이 눈이 맞아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살우와 같이 하고 있는 공부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조자령에게 장가 간 소살우는 밤을 새워 공부를 하고 있다. 암기를 하지 않으면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니, 그로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나? 난 이제 간신히 소학을 뗐지 뭐.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 잘할 거야.” 백산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얼마쯤 말없이 석상을 쳐다보던 백산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젠 오기 힘들 거야. 이곳에 자주 오면 설련이나 하연에게 미안해지잖아. 나중에,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때 만나.”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던 백산은 달마동을 나섰다. 그의 눈에 황금빛 광채를 발하는 수백채의 고루거각이 눈에 들어왔다. 황실의 보조로 새롭게 지어진 소림사 건물이었다. 눈을 맞추듯 지붕을 가로질러 나아가던 백산의 시야에 산문 앞, 과거 천붕회가 열렸던 장소에 멈췄다. “무림제(武林帝)시여!” 우렁찬 고함소리가 소림사 건물을 타고 울렸다. 그리고 산문 앞에 정렬하고 있던 수천 무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백산은 그들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무림을 다스릴 광풍성 무인들이다. 앞으로 저들에 의해 세상은 굴러갈 것이다. 백산은 고개를 들어 동편 하늘을 쳐다보았다. 붉은 태양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오늘 하루를 위해 살지는 않을 것이다. 설련을 위해 살고, 하연을 위해 살고, 소령을 위해 살고, 태어날 자식들을 위해 살아야 하리라. 미래를 위해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꿈을 위해. <大尾>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면서 함께 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긴여정 재밋게 ᆢ
감사합니다
드디어 막을 내렸군요.
저녁마다 언제 뜨나 긴 기다림의 여정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즐독 ㄳ
감사합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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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기간 재미나게 흥미롭게 기대속에서 즐감하고 있었읍니다 감사드리면서 다음을 기대함니다
즐~~~감! 차기작도 기대됩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즐독 하였습니다 환절기에 건강하시고 다음작품도 기대됩니다 행복한 한주 시작 하십시요 ♡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였습니다
매일이 기다려졌는데 끝까지 너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잘 보았습니다.
즐독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미래와 꿈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 가겠습니다
늘 강건하시며 수고 하셨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ㅡ드림니다
고맙습니다 즐겁게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잘읽었읍니다.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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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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