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6일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인간 존중과 인권의 신장은 복음의 요구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기로 하였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 주일로 시작하는 대림 제2주간을 2011년부터 ‘사회 교리 주간’으로 지내 오고 있다. 현 시대의 여러 가지 도전에 대응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의 ‘새 복음화’ 노력이 바로 사회 교리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깨우치려는 것이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1,1-8
1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2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기록된 대로,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5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6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7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나는 어려서부터 자존심과 긍지로 똘똘 뭉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명예와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참아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정말 가난하게 살아도 떳떳하고 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는 행동은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동생들을 모두 돌봐야 하고 아버지를 대신해야 하는 책임감에 버거워하던 때였습니다. 신경은 아주 날카로워져서 누가 동생들 얘기를 하기만 해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성당에 봉사를 하러 갔는데 중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수녀님에게 대들고 있었습니다. 수녀님이 야단을 치니까 동생은 억울하다고 수녀님에게 대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동생을 야단치며 불러 세워서 뺨을 아주 세게 때렸습니다. 감히 수녀님에게 대든다고 동생을 때린 것입니다. 동생은 형에게 잘못했다고 빌면서도 ‘저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동생의 뺨은 빨갛게 부풀어 올랐고 울면서 집으로 갔습니다. 나는 수녀님에게 용서를 청했고, 수녀님은 절대로 그게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무섭게 화를 내는 바람에 또한 용서를 청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 밤새워 괴로워하면서 가슴아파했습니다. 내 교만한 자존심이 동생을 아프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동생은 학교에서 조퇴하고 얼굴이 하얗게 되어 집에 왔습니다. 일이 터진 것입니다. 그날 뺨을 맞을 때 동생은 고막에 상처를 입었고, 그리고 중이염에 걸려 아주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 후 변변히 지료도 받지 못한 동생은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동생들이나 나의 아이들은 나에게 많이 맞고 자랐습니다. 먹을 것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여유 있게 가르치지도 못하면서 매를 때리고, 소리치며 야단을 치고, 내 자존심만 세우느라고 동생들과 나의 아이들은 그렇게 고생하며 자랐습니다. 벌써 40년이나 지난 옛날 얘기입니다. 나이 50이 지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자존심 때문에 폭력을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폭력이 생각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다른 사람을 상처 주는 짓은 해서는 안 된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지금도 동생이나 아이들이 교직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성질이 나도 화가 나더라도 절대로 때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약간 길어서 외울 수는 없어도 이 말의 의미는 아주 많이들은 말이기도 합니다.
‘반기자는 촉사가 개성약석이요. 우인자는 동념이 즉시과모니 일이벽중선지로하고 일이준제악지원하나니 상거소양의리라.’
(反己者는 觸事가 皆成藥石이요. 尤人者는 動念이 卽是戈矛니 一以闢衆善之路하고 一以濬諸惡之源하나니 相去宵壤矣리라.)
<자기를 반성하는 사람은 부딪히는 일마다 다 약이 되고, 남을 원망하는 사람은 움직이는 생각마다 다 창이 되리라. 하나는 그로써 모든 선의 길을 열고, 다른 하나는 그로써 모든 악의 근원을 파거니와, 그 서로의 거리는 하늘과 땅 사이로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살펴서 반성한다면 모든 것이 내 몸에 아주 좋은 귀한 약이 되는 것이고, 남의 과실을 헐뜯고 진심으로 충고하지 않고, 책망만 한다면 위선자로서 자신을 해치는 독약을 마시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의 잘잘못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항상 내 몸을 돌이켜 보아서 잘잘못을 반성하라.’(법구경)는 말입니다. 그래서 ‘뉘우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도 용서해 주실 수 있는 권한이 없다.’(신곡)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주님의 기도에서 먼저 용서하고 뉘우치기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회개하고 하느님나라를 맞이하라고 말합니다. 그 일이 주님의 길을 곧게 만드는 요한의 일이라고 이사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회개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생각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권의 그 존엄성을 기리는 인권주일입니다. 북한 동포의 인권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과 우리 사회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인권 존중을 겸손하게 묵상하는 날입니다. 요한의 겸손을 묵상하면서 헛된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자신을 반성한답니다. 이제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나에게 그 자존심이 무엇이기에 아직도 반성할 줄 모르고 고개를 세우고, 뒷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사는지 모릅니다. 내 맘에서 평생을 붙어살고 있는 교만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고개를 숙이는 법을 깨닫도록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사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자신이 굶는 것이고,
환자들을 걱정하는 나머지 밤중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무시를 당할 때 오히려 웃음으로 관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자기를 제일 심하게 박해한 그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입니다.
- 성 마리아 로사 몰라스 -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베드로 2서의 말씀입니다. 3,8-14
8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올 것입니다.
그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스러지며,
땅과 그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11 이렇게 모든 것이 스러질 터인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거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을 하면서,
12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축일;12월 6일 성 니콜라오 주교
St. NICHOLAS of Myra
San Nicola di Mira (di Bari) Vescovo
Also known as
Klaus; Mikulas; Nicholas of Bari; Nicolaas; Nicolas; Niklas; Santa Claus
Died:c.346 at Myra; relics believed to be at Bari, Italy
Canonized:Pre-Congregation
역사적으로 입증할 만한 ’확증’이 없다는 것은 성니콜라오가 보여 준 헌신처럼 대중들이 성인들을 받아들이는 데 필연적인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동방 교회에서나 서방 교회에서나 니콜라오 성인을 공경하며,
동정 성모 마리아 다음으로 그리스도인 예술가들이 많이 다루는 사람은 바로 니콜라오 성인이라 한다.
역사적인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은 니콜라오가 4세기에 소아시아 지방인 리치아의 도시 미라의 주교였다는 사실뿐이다.
그렇지만 다른 많은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니콜라오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그리스도인들이 지금까지 행하고 있는 그에 대한 공경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전해진 다채로운 이야기 속에 표현된 공경이다.
아마도 니콜라오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결혼할 나이에 있는 세 딸에게 지참금을 준비할 수 없었던 어느 가난한 사람에게 그가 베푼 사랑일 것이다.
니콜라오는 세 딸이 창녀촌으로 끌려가야만 하는 처지를 보다 못해 세 차례에 걸쳐서 그 사람에게 창문으로 돈주머니를 몰래 던져주어 딸들이 모두 결혼할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이 같은 전설은 수세기에 걸쳐서 니콜라오 성인의 축일에 선물을 주는 관습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성니콜라오의 이름이 언어의 변천 과정을 통해 산타클로스가 되었으며, 이것은 이 거룩한 주교가 보인 자비심의 표양을 더욱 널리 세상에 전파시켰다.
현대 역사는 성니콜라오에 대한 전설을 보다 면밀하게 관찰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전설적인 애덕이 가르치는 교훈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며 재물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검토해 볼 수도 있고 참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재물을 좀 더 폭넓게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도들의 선익을 각자의 환경을 따라 도모해 주려면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 환경 속에서의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특히 사회 조사의 적절한 수단을 이용해서 알아내야 할 것이다.
연령이나 신분이나 국적의 차별 없이 원주민이나 외국인이나 나그네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을 보살펴 주어야한다."
(’주교들의 교회 사목직에 관한 교령’ 6항)-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오늘 축일을 맞는 니콜나오 형제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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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며 주위를 돌아봅니다.
부족했지만....
지금까지 훨씬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주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오늘 제 묵상에 함께하신 수산나 자매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