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빨리 그리고 늦게 그 죄를 깨닫고 회개(悔改) 하느냐?
가 문제(問題)가 되고 있습니다.
내 경우 같이 무척 무디고 나는 미련(未練) 한 사람이었습니다.
주께서 빨리 깨달으라고 수십 번의 기회(期會)를 주셨는데
나는 그것을 빨리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내가 나를 봐도 무척 어리 섞은데
주께서 나를 보실 때에 얼마나 답답해 하셨겠습니까?
분명(分明)한 것은 절대로 주님은 우리들을
포기(抛棄)하시지 않고 기다리신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몹시 사랑 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잘못이라도 저지르게 되면
곧 바로 매로 치신다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무척 인자(仁慈) 하시고 노(怒)하시기를 더디 하시며
오래토록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구원(救援)은 우리에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必要) 한 것은 인내(忍耐)와 믿음뿐입니다.
오래 참음 과 기도(祈禱)와 간구(懇求)는
우리에게 필수적(必需的)인 것입니다.
주님은 내 아버지 이십니다.
아버지와의 대화(對話)의 통로(通路)는 기도(祈禱)입니다.
아주 작은 일로부터 큰일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아버지와의 대화(對話)의 통로(通路)는
항상(恒常) 열려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항상(恒常)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성삼위(聖三位一體)와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 허물(虛物)이 없었던 나를 모함(謀陷)해서
나를 감옥(監獄)에 가둔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 후에 그들의 소식(消息)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랫글중에서)
구원(救援)의 빛 그리고 어리 섞은 나!
글 조 처음
내 평생(平生)을 살면서 내 평생(平生)에 主와 함께 하기를 원(願)했고
내 평생(平生)의 오직 주 만 섬기려 했습니다.
내 어릴 때부터 그것을 지키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애(生涯)에서
어찌 굴곡(屈曲)이 없이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勞力)을 했어도
나를 에워싼 주위(周圍)의 환경(環境)과
나의 삶의 생활(生活)이 그렇게 만들지를 못했었습니다.
내가 나를 돌아 봐도 미련(未練)하고
어리 섞은 사람인데
남이 나의 모든 것을 보고 어찌 말을 아니 했습니까?
매일(每日) 같이 살면서 회개(悔改) 하고
또 참회(懺悔)를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나의 그런 마음을 내가 나를 돌아 봐도
형편(形便)없는 사람인데
主께서 나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시고
무엇이라 하셨을까요?
우리 속담(俗談)에 청개구리가 있지 않아요?
主께서 山으로 가라 하시면 나는 바다로 갔습니다.
지금 생각(生覺) 하면 나 같은 죄인(罪人)을
무엇이 관데 이렇게 눈물 나게
사랑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끝없이 방탕(放蕩)한 세월(歲月) 속에서 주(主)께서는
나의 손을 잡아 주시고 질벅한 진흙탕에서
발을 빼게 하셨습니다.
어느 때는 경찰서(警察署) 유치장(留置場)에 나를 가두시고
또 어느 때는 나를 깊고 깊은 산속에다
나의 몸과 영혼(靈魂)을 담게 하셔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깊고 넓은 사랑하심을 모르고
내가 잘나서 사는 줄 알고
오만(傲慢) 하고 교만(驕慢) 했었습니다.
주(主)께서는 부족(不足)하고 미련(未練)한
이 죄인(罪人)을 포기(抛棄) 하시지 않으시고
끝까지 나를 죄악(罪惡)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어느 때는 바닷가의 모래 언덕에서
그리고 또 어느 때는 산위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은혜(恩惠)는 참으로 놀랍고도
또 위대(偉大) 했습니다.
그렇게 위대(偉大)하시고 놀라운 主의 사랑하심을
나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남의 비닐하우스 속에서 밤을 지새우며
새털 같이 많은 세월(歲月)을 허비(虛費) 했습니다.
내가 정신(井神)을 차리지 못하니까?
마지막에 나를 감옥(監獄)에 집어넣고
햇빛을 한 동안 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어두운 감옥(監獄)에서 한 가닥의
주의 밝은 빛이 내게 비쳐 왔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나도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성경(聖經)과 찬송가(讚頌歌)가
합본(合本)이 된 것을 내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죄를 짓고 여기에 들어 왔는지
알지 못하는 안수(按手)집사(執事)라는 사람이
내게 다가 와서 예배(禮拜)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나는 반신반의(半信半疑) 하게 그 에게 대처 하면서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후에 나의 죄가 크게 없음이
입증(立證)되어 나는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나를 여기에 보낸 사람들을
고소(告訴)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법은
공정(公正)치 못했습니다.
감옥(監獄)에서 나온 나는
또 방황(彷徨)을 계속했습니다.
항상(恒常) 벼랑의 끝을 걸었고
잠은 모르는 교회(敎會)에 몰래 들어가서
방석(方席)을 깔고 밤을 지새웠습니다.
눈이 짓무르고 입술이 부릅트고
콧물이 입술의 침과 함께 범벅이 되고
몸이 만신창(滿身瘡)이 되어 이루 형용(形容)키 어려웠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뉘우치고
회개(悔改) 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사람이 구원(救援)이라는
두 단어(單語)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 평생(平生)을 뒤돌아보며 바보스럽고
후회(後悔)서러운 삶이 그렇게 허전(虛傳)하며
다시 돌이 킬 수 없고 또 다시 그 자리로
돌아 갈 수 없음을 한탄(恨歎)하면서 후회(後悔)!
또 후회(後悔)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恩惠)는
참으로 위대(偉大)하시고 놀라운 분이십니다.
내가 성남(城南) 부근의 비닐하우스에 기거(寄居) 하고 있었는데
그 날 집에 돌아 와 보니 그 집이 간곳이 없어 졌습니다.
그 비닐하우스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불을 질러 방화(放火) 모두 불타버리고 잘 곳도
편히 쉴 곳도 없어 졌습니다.
어디를 가서 또 어떻게 방황(彷徨)을 해야 할지
그 곳에 털썩 주저 않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나에게 다가온 젊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다가오자마자 “아버지” 이렇게 말 하며
모두 부둥켜 않고 울었습니다.
큰 아들이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집에 가요 왜? 여기서 생고생(生苦生)을 하십니까?”
이 말 한마디에 가슴이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무슨 염치로 또 어떻게 얼굴을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너희들에게 갈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들은 어머니가 집에서 식사(食事)를 차려 놓고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속으로는 무척 반가웠지만 그놈의 자존심(自尊心) 때문에
두 아들에게 무엇이라고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 하니 이런 일들이 우연히 일어 날 수 있습니까?
주의 은혜(恩惠)가 아니고 어찌 이렇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었겠습니까?
집에 돌아오자 모든 가족(家族)들이 내가 또 가출(家出)을 할 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 했습니다.
내 처(妻)에게 그리고 또 내 자식(子息)들에게
늘 미안 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게 싸였던 태산(泰山) 같이 많았던 일들이
모두 해결(解決)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찾아 세상(世上)을 두루 다니시고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草場)에 누이시고
안정(安定)을 하시게 하시니 어찌 그 은혜(恩惠)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나는 항상(恒常) 이 말씀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고 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比喩)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羊 百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 15:3-4)☚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빨리 그리고 늦게 그 죄를 깨닫고 회개(悔改) 하느냐?
가 문제(問題)가 되고 있습니다.
내 경우 같이 무척 무디고 나는 미련(未練) 한 사람이었습니다.
주께서 빨리 깨달으라고 수십 번의 기회(期會)를 주셨는데
나는 그것을 빨리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내가 나를 봐도 무척 어리 섞은데
주께서 나를 보실 때에 얼마나 답답해 하셨겠습니까?
분명(分明)한 것은 절대로 주님은 우리들을
포기(抛棄)하시지 않고 기다리신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몹시 사랑 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잘못이라도 저지르게 되면
곧 바로 매로 치신다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무척 인자(仁慈) 하시고 노(怒)하시기를 더디 하시며
오래토록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구원(救援)은 우리에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必要) 한 것은 인내(忍耐)와 믿음뿐입니다.
오래 참음 과 기도(祈禱)와 간구(懇求)는
우리에게 필수적(必需的)인 것입니다.
주님은 내 아버지 이십니다.
아버지와의 대화(對話)의 통로(通路)는 기도(祈禱)입니다.
아주 작은 일로부터 큰일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아버지와의 대화(對話)의 통로(通路)는
항상(恒常) 열려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항상(恒常)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성삼위(聖三位一體)와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 허물(虛物)이 없었던 나를 모함(謀陷)해서
나를 감옥(監獄)에 가둔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 후에 그들의 소식(消息)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주동(主動)한 사람은 아무 이유(理由) 없이
재산(財産)이 흩어지고 그의 부인(婦人)은
아무 연고(緣故)도 없이 문고리에
목을 메달아 자살(自殺)을 했습니다.
또 한사람은 대전(大田)에서 흉한(兇漢)에게
칼에 찔려 사망(死亡)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볼 때에 주 하나님께서
어찌 나를 사랑 하시는 게 아닐까요?
주께서는 내 원수(怨讐) 앞에서 상을 베푸시고
음식(飮食)을 진설(陳設)하시고
내게 잔이 넘치게 하시니 감사(感謝) 할뿐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怨讐)의 목전(目前)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주께서는 우리를 항상(恒常) 도우십니다.
그리고 마귀(魔鬼)로 부터 보호(保護)하심과
도우심이 항상(恒常) 계시고 내 곁에 항상 계십니다.
구원(救援)의 빛과 구원(救援)의 확신(確信)을
우리는 반드시 아무 의심(疑心)이 없이 믿어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우리의 참 소망(所望)이며
우리의 평생(平生)의 소원(訴願)입니다.
믿음으로 구원(救援)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感謝) 합니다. 종(種)
[찬양 : 주찬양전도단 도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