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바람달 열아흐레, 큰 바람 불고 맑음.
새벽에 일어났을 때는 바람이 별로 불지 않았습니다.
어제 방송에서 내일은 바람이 크게 불 거라고 했는데
그나마 잠잠해서 괜찮다고 생각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이
조금씩 바람이 거칠어지는 것이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더 거칠어지기 전에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고 산책을 나섰는데
몸이 날아갈 것 같은 엄청난 바람에
큰 나무 밑을 지날 때는 약간의 두려움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혹시나 모를 일이라고 큰 나무 곁을 지날 때에는
뿌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청주에 이 정도 바람이 분다면 다른 곳은 얼마나 심할까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살면서 보니 이곳 청주는 다른 곳에 비해
큰 비도 그다지 내리지 않고
바람 역시 다른 곳처럼 심하지는 않은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래저래 마음에 드는 곳입니다.
바람은 그렇게 종일 불었지만 산책할 때가 가장 심했습니다.
아침 먹고 읽은 책 정리를 하는 사이
노무 문제에 관련 된 것을 상의하려고
신현경 군이 전화를 해서
조광복 노무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어 조광복 노무사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저런 일이 있어 전화하는 사람이 있을 터이니
잘 알려주라고 말했는데
지금 전북 장수에 가서 정착하려고 하는 중이라고 하면서
마침 청주에서 두 사람이 제게 올 거라고
같이 오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장수에 간다는 사람은 청주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소장 안건수 군과
노무사 조광복 군이 청주에 있을 때 인연이 된 사람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서둘러 점심 먹고 길 나서서
동네 어귀에서 그들을 만나 장수로 향했습니다.
바람 심한 길을 뚫고 장수로 가는 길,
하늘은 바람만큼이나 구름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었고
‘이렇게 바람 부는 날엔 어딘가 가긴 가야지’ 하는 말이
입안에서 거듭 맴돌았습니다.
이만큼 심한 봄바람을 살면서 몇 번이나 보았을까 헤아려 보니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바람 심하던 날 산에서 듣던 솔잎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소리
어딘가를 다녀오던 길에 대숲에 부는 바람소리에
잠시 걸음 멈추고 담배 한 대 피우며 듣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장수 나들목에서 나가 ‘산서’라는 곳으로 가는 길은
큰 고개 하나를 넘어야 했는데
꼬불꼬불한 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가 만난 사람 노무사 조광복 군,
그는 일을 할 줄 아는 사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함께 하면서
참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남겼는데
그런 그가 청주를 떠나 장수로 왔다는 사실에
낮에 불던 바람이 가슴 한 쪽에 구멍을 내는
아릿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술 한 잔 곁들여 저녁 먹고
내 책 두 권을 건넨 다음 돌아오려고 밖에 나오니
깔끔한 밤하늘의 별들이 산뜻하게 반짝거리며
구멍난 가슴을 쓸어내려 주었습니다.
되짚어 오는 먼 길,
그렇게 밤늦은 시간에야 집에 들어와
하루를 산 피곤함을 녹이려 자리에 눕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