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사 불화기행] <10> 홍천 공작산 수타사 지장시왕도
벌 집행하는 무시무시한 옥졸인데 인간미 넘친다?
지장과 시왕, 명부 제존 망라
도명존자 무독귀왕 협시하고
관음 등 8대보살도 함께 등장
안정된 구도와 강렬한 필선
세부적 표현과 기법 뛰어나
경기 화승 설훈스님 제작
대선사 무외스님이 증명
18세기 후반 사찰위상 짐작
죽음은 끝이 아니다. 생전의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되기에, 불교에서 죽음은 또 다른 삶을 향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 ‘명부(冥府)’가 자리한다. 이곳에는 고통 받은 중생과 함께 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 계시며, 죄업을 심판하는 시왕(十王), 재판을 보조하며 기록하는 판관(判官), 망자를 명부에 데려오는 사자(使者), 지옥의 형벌을 직접 가하는 옥졸(獄卒) 등도 있다.
이번 회에서는 지장보살과 시왕을 비롯한 명부의 제존(諸尊)을 한 화면에 함께 그린 불화,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를 한 점 소개하려 한다.
수타사 지장시왕도, 1776년, 비단에 채색, 186×205cm, 설훈스님이 그렸고 대선사 무외스님이 증명했다.
강원도 홍천에는 산세가 수려하기로 유명한 ‘공작산’이 있다. 산 정상에서부터 뻗어 나간 능선이 마치 공작의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울창한 숲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비경을 이루는데, 그 산기슭에 고찰 수타사(壽陁寺)가 자리한다. 절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아미타불의 무량한 수명’을 상징하는 절이다.
이곳에는 조선 세조 때 간행된 한글 경전 월인석보(月印釋譜), 명장(明匠) 사인(思印)스님이 주조한 17세기 동종(銅鐘), 조소 사천왕상과 목조 관음보살상, 삼층석탑, 옛 스님들의 부도, 그리고 여러 점의 불화가 전해진다. 그중에서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는 수타사를 대표하는 불화 명작 중 하나이다.
수타사 지장시왕도는 1776년 4월에 제작된 것으로, 세로 186㎝, 가로 205㎝의 비단에 그려져 있다.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명부의 제존(諸尊)이 총망라되어 있다. 총 70여 분에 이른다. 우선 중앙의 상부에는 주존 지장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육도(六道)를 윤회하며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성불(成佛)도 미룬 위대한 보살이다. 관세음보살과 더불어 불자들에게 열렬히 숭배되는 보살 중의 보살이기도 하다.
본래 ‘지장’은 지복(地服), 즉 자궁(子宮)을 뜻하는 범어 ‘Ksitigarbha’의 한자 번역어로, 지신(地神) 숭배에 근거해 성립되었고 4세기경 중국 북량(北凉)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수대(隨代)에 지장삼부경(地藏三部經)인 <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의 한역과 확산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 때 전해진 후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성행했다.
지장보살의 형상은 민머리 위에 투명한 두건을 쓰고 석장을 쥔 모습이다.
수타사본의 지장보살은 깎은 민머리에 투명한 두건을 쓴 채 사자(獅子)가 표현된 높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보배로운 구슬인 보주(寶珠)를 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긴 석장(錫杖)을 쥐고 있다. 지장보살은 ‘안으로는 보살행을 숨기고 밖으로는 성문의 모습(內秘菩薩 外現聲聞)’으로 표현되는데, 이 그림에서도 이러한 면모가 잘 표현되어 있다.
지장보살의 양옆으로는 좌·우 협시인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시립하고 있다. 도명존자는 중국 양주 개원사의 승려로 778년 사자(使者)에 의해 명부에 가게 되었는데, 이는 용흥사 승려 도명을 착각한 것이어서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온 일이 있었다. 명부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지장보살을 친견하게 되었는데 그때 본 바를 세상에 알렸다고 전해지는 분이다. 우협시 무독귀왕은 한 브라만의 딸이 어머니를 찾으러 지옥에 갔을 때 그녀를 대동하고 지옥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지장보살의 우협시가 되었다고 전한다.
지장삼존의 주변에는 시왕이 좌우 대칭으로 각 5위씩 자리하고 있다. 홀을 들고 있는 분들도 있고 합장한 분들도 있다. 시왕은 망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10명의 왕’으로, 중국에서 당말(唐末) 편찬된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에 근거한다.
시왕은 명부의 심판관으로서의 기세가 느껴진다.
이에 따르면, 망자는 초칠일(初七日)에는 진광왕, 이칠일(二七日)에는 초강왕, 삼칠일(三七日)에는 송제왕, 사칠일(四七日)에는 오관왕, 오칠일(五七日)에는 염라왕, 육칠일(六七日)에는 변성왕, 칠칠일(七七日)에는 태산왕, 100일째는 평등왕, 1년째는 도시왕, 3년째는 오도전륜왕을 차례로 지나면서 재판을 받는다고 한다. 다음으로 지장보살과 시왕의 앞쪽으로는 구름으로 경계를 나누어 판관, 사자, 옥졸 등이 층단을 이루며 위계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이 그림에는 지장보살의 주변으로 총 8위의 보살도 등장한다. 지장보살도에는 주로 ‘육광보살(六光菩薩)’이 표현되는데, 수타사본에서는 육광보살에 두 분이 더 추가된 셈이다. 여덟 분의 보살, 즉 ‘팔대보살’은 아미타불이나 석가모니불의 설법도(說法圖)에서 많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구성을 지장보살의 ‘설법’ 장면에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보살들의 옆에는 제석천과 범천, 그리고 사천왕이 자리하고 있다. <지장보살본원경>이나 <사천왕경(四天王經)> 등을 보면 이 천신들이 지장보살을 옹호하고 받드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에 근거한 것이다.
본래 지장보살을 비롯한 명부의 제존은 다양한 구성으로 시각화된다. 특히 그림의 경우, 지장독존도, 지장삼존도, 지장천신도, 지장시왕도 등 구성 형식이 매우 다양하다. 이 중에서 수타사의 그림은, 앞서 설명했듯이, 지장보살과 명부계 존상을 모두 한 화면에 묘사한 ‘지장시왕도’이다. 이러한 구성은 지장보살 신앙과 시왕 신앙이 결합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이후 매우 활발히 제작된 형식 중 하나이다. 수타사 지장시왕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타사 지장시왕도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이렇듯 많은 존상들이 한 화면에 그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존인 지장보살이 명확하게 시야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이는 ‘크기’와 ‘배치’ 때문이다. 불화에서는 존상의 크기 정도를 통해 그 위계를 가시화하곤 한다.
이 그림에서도 지장보살은 가장 크게, 좌우 협시와 시왕 등은 그보다 작게, 그리고 전면에 배치된 판관과 명부 사자, 옥졸 등은 좀 더 작게 표현했다. 또한 지장보살은 중앙의 상부에 모셨고, 주변으로 멀어져갈수록 위계가 낮아진다. 이러한 장치로 인해 한눈에 보아도 주제가 명확히 인지되는 것이다.
이 그림의 우수성은 근접해 가서 보았을 때 다시 한번 확인된다. 세부적인 표현과 기법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각 존상들의 성격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려서인지, 지장보살의 풍모에서는 위엄과 존격이 여실히 전해지며, 시왕의 상호에서는 명부의 심판관으로서의 기세가 확인된다.
옥졸은 벌을 집행하는 무시무시한 존재이지만 해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반면 벌을 집행하는 옥졸들은 무시무시한 존재들임에도 표정에서는 왠지 인간미가 느껴진다. 불자들을 배려한 해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필선은 간결하면서도 뚜렷하다. 지장보살의 상호와 복식을 보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면서도 유려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모든 존상의 옷에 문양을 세밀하게 그려 넣는 등 그림 전체에서 어느 하나 소홀함이 없다.
이 그림은 화승 관허당 설훈(寬虛堂 雪訓)스님이 주도해 그렸다. 설훈스님은 그림을 잘 그리기로 세간에 정평이 나 있던 분으로, 18세기 말 서울·경기지역을 대표하는 불화사(佛畵師)이다. 설훈스님의 그림은 현재 경기의 청계사, 신륵사, 현등사에서 볼 수 있으며, 그 외에 경북 의성 고운사, 예산 문수사 청련암, 합천 해인사 등에서도 확인된다. 아마도 전국 각지로 초빙되었던 것 같은데, 수타사 지장시왕도 역시 원정 불사 중 일례로 보인다.
또한, 이 불화의 최종 감수, 즉 증명(證明)의 소임은 대원당 무외(大圓堂 無外, 1714~1791)스님이 맡았다. 무외스님은 강원도를 주 근거지로 활동한 18세기의 대선사(大禪師)이다. 그 외에도, 화기를 보면, 많은 수타사 스님들이 이 그림의 제작을 위해 각기 역할을 다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장시왕도는 18세기 수타사의 위상을 확인시켜주는 역작이며, 동시에 조선 후기 불화의 명품으로 꼽을만한 수작이다. 현재 수타사 성보박물관 전시실에 모셔져 있다.
[불교신문3588호/2020년6월10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