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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추수감사절 설교
본문: 레 23:39-43
제목: 추수와 심판대
1. 추수감사절은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는 수장절이다.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 여호와의 절기를 지킬지니”(레23:39)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23:16)
그리스도인은 자기 힘으로, 자기 소유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자기 소유로, 그리고 우상 신의 도움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선물(복)로 사는 사람들이다.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곧 영생으로
영원한 천국에서 왕 노릇 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와 생수로 살았다.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 가나안을 향해 갔다.
이스라엘의 그 모든 노정은 바로 우리 믿음생활(인생)의 노정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범사에 하나님께 그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이다.
추수감사절은 연말에 밭에서 거두어 수장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는 절기이다.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연말에 감사하고 결산하는 것이다.
수장절은 이레 동안 지켰고, 시작하는 첫 날에도 여덟째 날에도 성회로 모였다.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대회”로 지켰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성회가 되어야 한다.
절기를 지키며 감사하는 방법도 하나님은 정해 주셨다.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신16:16-17)
한 해 동안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으로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 은혜를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하신다.
예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 드리는 예물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훈련하고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교회들이 타락하면 이를 악용하는 일들이 항상 있어 왔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보다, 예물에만 탐욕을 부리고 착취를 일삼았다.
종교가 타락하면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정신이 팔리게 되어 있다.
성도들도 탐욕으로 드리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공의로, 드려야 한다.
교역자들도 탐욕으로 예물을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예물을 탐욕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공의로 사용해야 한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119:36)
예물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드리지 말라고 하신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7-8)
왜, 내게 하나님의 은혜가 능히 넘치지 못하느냐?
왜,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지 못하느냐?
왜,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지 못하느냐?
그 해답이 이 말씀에 나와 있다.
예물을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지 못하고, 그 마음에 정한 대로 드리지 못하고,
마지못해, 인색하고, 억지로 드리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예물은 교회 운영과 교역자들의 생활과 하나님 나라의 일에 쓰게 하신다.
보상으로, 은혜를 넘치게 하시고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게 하는 복을 주신다.
구약시대에 성도들의 십일조와 예물이 인색할 때 제사장들이 흩어지고 성전도 무너지게 되었다.
결국은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과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하나님께서 복 주셨음을 인정하였으면,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마음이 자라게 될 것이다.
은혜가 넘치고 항상 넉넉하고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굳건해지고 더욱 아름답게 성장하고 성숙하게 될 것이다.
2. 추수감사절은 ‘구원과 연단’을 감사하는 초막절이다.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이레 동안 --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레23:40-43)
초막절이라 하는 그 첫 번째 뜻을,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신다.
43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을(를)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그 때를 알라는 것이다.
초막절 때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구원의 위대한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 한 해의 수확이 있게 된 것이다.
풍성한 수확 가운데 잊기 쉬운 것이 구원의 역사이다.
구약에서 구원에 대한 표현은 항상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것이다.
교회도 세상(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불러낸 자들의 모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흑암의 권세에서 구별해내어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에 한 해 동안의 수확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즐거워하면서,
동시에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고난 받으신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초막절을 지키는 두 번째 뜻이 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초막을 짓고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왜, 추수를 감사하는 수장절에 집도 아닌 초막생활을 하며 초막절을 지키게 했을까?
초막은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겪은 광야생활의 고난과 연단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 받은 후 광야의 초막생활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구원은 너무 귀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고 출발일 뿐이다.
구원 받은 후 우리는 자라야 하고 성숙해야 하고 대장부같이 믿음이 견고해져야 한다.
갖난 아이로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광야 초막 생활을 통해 자라고 굳건해져야 한다.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8:14-16)
광야 초막생활의 목적은 우리를 온전케 하여 “마침내 (가나안)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모든 선한 일에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다(히13:21).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다(롬8:29).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다.
유행하는 형통신학, 기복신앙은, 광야 초막생활 없이 복을 받는다는 속임수이고 미혹의 영이다.
광야, 초막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하고 성장해야 한다.
진리의 말씀과, 진리의 성령을 따라,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
몸에 밴 어린 시절들과, ‘조상이 물려준 헛된(망령된) 행실들’(벧전1:18)을, 버려야 한다.
이 변화와 순종의 삶이 우리 스스로 되지 않기 때문에,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통과하게 하시고,
다윗의 표현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통과하게 하시는 것이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초막생활은 세상으로부터 구원 받은 자가 광야생활의 훈련과 연단을 거침을 상징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는 것이요,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여’ 사는 길로 가는 것이다.
초막생활의 목적을 알면, 우리는 고난 중에도 ‘그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할 수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를 통과하면서도,
모든 것을 잃게 하는 ‘시글락 위기’를 겪으면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
초막생활 중에도 우리 주님은 우리 목자가 되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만나도 주시고, 생수도 주시고, 옷도 헤지지 않게 하시고, 발도 부르트지 않게 하신다.
이레 동안 초막에서 살며 초막절을 지키게 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추수감사절은 ‘심판대의 결산’을 준비하는 절기이다.
해마다의 추수감사절은 초막생활의 은혜를 통해서 수확한 것을 ‘우리가’ 결산하지만,
마지막 심판대는 일생 동안의 초막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수장한 것을
‘주님이’ 결산하시고, 상급을 결정하신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주님 재림하셔서 행하시는, 인간들에 대한 최종 결산의 재판정이다.
일생 동안 그 몸으로 행한 선과 악에 대해 각각 심판이 행해진다.
악은, 육신의 생각으로, 사람의 지혜로, 땅의 것으로 행한 것들이다.
그것들이 나무나 풀이나 지푸라기로 판명 되어, 불에 타고 해를 받는 심판을 받게 된다.
선은, 영의 생각으로, 말씀으로, 성령의 지혜로, 행한 것들이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고, 지극히 영원한 영광으로 보상해 주신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3:10-15)
사도들이 지혜로운 건축자로 닦아 둔 그리스도의 터 위에 무엇을 세울까 조심해야 한다.
다른 터는 없다. 바벨탑은 터부터가 잘못 되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공적들은 불에 타고 해를 받고 겨우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직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이 터 위에 건축한 사람들은 그 공적에 대해 상을 받을 것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시119:72)
성경은 진리의 보물 창고이다. 성령의 서재이다. 금 은 보석보다 더 좋은 것이 말씀이다.
원수보다 모든 스승보다 노인보다 나를 지혜롭게 해주는 것이 주의 법 곧 말씀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된 모든 성경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게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신다.
결산을 받으실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
이 말씀을 명심하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
주님은 내 말이 영이고 생명이라고 하셨다.
이 영과 생명인 말씀을 떠나면, 공중의 권세잡은 자에게 사로잡히게 된다.
생명인 말씀을 떠났으니, 사망이요, 그 끝은 멸망이다.
신비주의자 경건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은 한결 같이 생명의 말씀을 떠난 사람들이다.
어리석은 영적인 체험과 사람의 지혜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을 큰 문, 넓은 길로 멸망으로 인도하는 거짓 선지자들이요 일만 스승들이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그 마지막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다.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3)
한 해를 결산하는 추수감사절은 마지막 추수와 결산을 준비하는 예비의 심판대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육신들의 잔치요, 또 한 번 악을 행하고 쌓는 절기가 되고 말 것이다.
내가 어떤 터 위에서 무엇을 건축하며 살았는지, 결산하고 돌이키는 날이 되어야 한다.
바벨탑을 쌓느라 수고한 공적들은 그만 쌓기로 결단하여야 할 것이고,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이젠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기로 결단하여야 할 것이다.
말씀으로 사는 것이 선이고 상을 받는 공적인 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는 날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 추수를 위해 과연 무엇을 수확하고 수장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착실히 준비하자.
광야의 초막생활을, 믿음과 인내로 살고, 우리 성품의 온전함을 이루어 가자.
이 영원한 수확을 위해, 오늘 우리의 일상생활을 과감히 조정하고 결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