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시장/나를 팝니다.
우리 문학의 살아있는 전설, 인간시장!
주인공 장총찬이 매 장마다 새로운 사건을 접하고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 '한국판 루팡'이라고 불릴만큼 한 편 한 편 통쾌함을 선사한다. 부패한 개신교 목사들, 권력의 손에 좌우되는 법관들, 약자를 괴롭히는 조직폭력배 등 우리 주변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불합리한 상황들을 해결해가며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소설이다.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던 공무원 연금제도가 개정되었고, 정부는 기업에 대하여 임금피크 카드를 내밀었다. 공무원들이 처음부터 고액연봉을 바랐던 것도 아니고 다만 안정된 고용과 다소간의 노후보장을 바랐을 것이다.
초창기의 공무원 연금법의 제정과 재원확보 계획은 오늘의 현실에 이를 것이란 예측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원위기를 가져오게 한 요인 중에는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전혀 수익이 나지 않는 정부정책 사업에 연금기금을 끌어다 쓰기도 하였고, 관리자들은 자신들과 사적으로 우호적인 기업에 충분한 검토도 하지 않고 투자를 함으로써 때론 원금 회수도 불가능 하였거나 투자승수를 제대로 쌓지 못한데 있다.(제돈 아니니 먼저 본 님이 임자라는...)
그 결과로 근로자인 공무원들에게 피해가 돌아왔다. 공무원도 국민의 공복이라는 겉옷을 입기 이전에 한편으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국가를 상대로 하는 고용계약의 한 축에 있다는 것임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며칠 전의 일이다. 오래 전부터 알고지내는 사람이 자신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아무래도 대학을 가기 힘들 것 같아 취업을 해야 하는데 소개해 줄만한 곳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대학을 간다더니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지금 입시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아이가 국립대학에 합격을 하였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휴학을 한 줄로 알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휴학이 아니라 자퇴를 하고 말았다며 나에게 미리 의논을 할 것을 그랬다고 아쉬워하였다.
2월 말경 나는 재입학 제도가 있음을 알고 대학에 있는 후배에게 문의를 하였더니 제도는 있으나 기간이 지나버려 다음 학기를 기대하라고 하였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재입학 자체를 포기하고 재수를 하여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가겠다는데, 실력이 따라주지 않을 것 같아 취업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고 하였다.(애가 그 누구처럼 황소고집을 피운다니. 그 쇠심줄 같은 고집이 장래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그의 말에 지금은 청년 취업이 매우 어려우며(탈북보다 취업이 더 어렵다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대학졸업장도 없고, 자격면허 마저도 갖지 못한 청년층이 취업을 해보았댔자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한 달 임금이래야 잘 받아도 150만원 안쪽인데, 그 돈 받아서 식대며 교통비, 통신요금과 자신을 가꾸는데 필요한 돈을 지출하고 나면 과연 한 달에 얼마나 저축하며 살겠느냐고 반문 하였었다.
그러자 그는 그러다가 일찍 시집이라도 보내버리겠다고 하였으나 나는 결혼을 하려해도 결국은 같은 부류의 처지에 있는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어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며 차라리 기술을 배우도록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였었다.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여도 미국의 빌게이츠와 워런버핏, 요즘 떠오르는 중국의 신흥재벌 알리바바의 설립자 마빈처럼 개인의 능력이 극대화하여 세계적인 기업가가 되지 못한다면, 반도체 회사에서 새로운 제품을 설계하거나 조선소의 일류 용접공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기를 갈망할 것이다.
용접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오래 전 일이 생각난다. 모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을 다니며 알게 된 친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일을 하며 공부를 계속하였다고 하였다. 노력 끝에 돈을 벌어 중견 회사도 차렸고, 그 분야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에서 초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돈이나 지위를 떠나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였다는 생각에 그가 매우 부러웠었다.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일자리를 마음대로 구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당연히 임금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임금격차인데, 평균연봉이 1억 원이 넘는다거나, 자식에게 고용을 대물림 하려는 귀족노조들은 일자리 나눔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집단방어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어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는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우선은 고용 활성화를 위하여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부라고 각인의 입맛을 맞출 수는 없다. 다만 어떠한 정책이든 네가 나 되어 보란듯이 철저하게 상대방의 위치에 서서 바라보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노사정협의회가 작동되지 않음을 이유로 정부가 독자적으로 대법원 판례를 근간으로 취업규칙을 변경 하려 하고 있으나, 결국엔 힘센 세력에 밀려 또 다시 불쌍한 비정규직들에 대한 불이익을 가져 오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요즘은 생산시설을 확대하면서 기계화되거나 자동차 부품업체와 같이 생산시설의 해외진출이 늘어나고, 외국인에 의한 국내 일자리 잠식이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고용보호완화는 얼마나 일자리를 창출하는가?’ 에 대한 ‘자유경제원’의 발표(2015. 5)에 의하면, ‘정규직 보호와 규제완화 없는 임시직만의 부분적 유연화는 임시직 증가라는 제한적 효과만을 가져오고 있다. ..... 그리고 고용효과를 크게 하려면 정규직과 임시직 모두에게 적용되는 전반적인 유연화가 필요하며, 전반적인 유연화와 함께 정규직과 임시직의 고용보호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하고 있다.
잠잘 곳 있고, 배 곪지 않아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다. 통신이 발달하다보니 앉아서도 세계 곳곳 타인의 여유로운 소비문화를 엿보며 살아간다.
문제는 임금의 많고 적음보다는 격차에 있는 것 같다. 남들이 소비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도 같아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지인들에게 위를 보고 살지 말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게 씨가 먹히지 않는다.
문득 생각나는 구절이 있었다. ‘소비는 영혼을 잠식한다.’ 2007년도 서울환경영화제 출품 에니메이션 제목이다. 주된 줄거리는 우리의 욕망은 진실로 우리의 것 인가,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로부터 강요되는 것인가? 영화는 우리가 이 사회와 문화에 종속된 노예라면 결국 탈출할 길은 없는지 반문하고 있다.
사람들은 늘 많이 소비하는데서 만족을 느끼고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날이 올까?(뭐든 해본 사람이 더한다고 있으면 마다할까만...)
엇 그저께 들은 애기. 평생을 소똥냄새 맡아가며 축산업을 하는 아버지가 돈 쓰기를 취미로 하는 망나니 아들에게 한 달에 500만원씩의 용돈을 주었는데도, 돈을 더 달라며 앙심을 품고 아버지를 살해하였다는 그릇된 소비행태는 결국 자식을 잘못 가르친 아버지에 화를 미쳤다는 패륜아의 막장드라마가 동네사람들에 회자됐다.
퇴직한 사람들의 재취업 실패담을 많이 들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겨우 6개월 정도를 채우고 만다. 친한 친구 중에도 가족 떠나 서울로 취업차 떠났던 친구는 관악산 산귀신이 되고 말았고, 대학생 자녀를 두고 운 좋게 재취업한 친구는 재수 없게도 마누라가 아파 대신 기센 손주와 씨름을 하는 할아범 신세가 되고 말았단다.
50초반 실직한 사람이 우울증에 시달리며 아내 구박에 바깥으로 내몰리고, 기반 있음에도 실직을 비관 목숨을 끊는 사회 병리현상이 뉴스를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취업은 생존의 수단이다. 그러나 급박하다고 서두르고 숫자 늘리자고 헤아리지 못하면 결국엔 후회하고 원망의 대상이 된다.
세계노동기구(ILO)의 ‘세계고용 및 사회적 전망 2015(WESO)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의 노동자 1/4만이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이라고 한다.
특히 선진국에 비하면 사회안전망이 매우 취약한 우리나라에서는 실직자들에 대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참고로 덴마크의 경우 실업 4년차까지 임금의 90%를 지급한다고? 그저 부러울 따름이고...)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이 급증하면서 불안정한 근로형태가 늘고 있다고 하였다. 지금도 지속적인 세계화로 인해 국가별 분업구조 형성으로 일자리가 양극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해법은 교육을 통한 개개인의 노동생산성 향상을 유도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이 모범정답이란다.
그럼에도 모든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이다. 물건이 좋으면 살사람이 찾아라도 들 것이고, 정승도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 자신을 내 보이라.
'나를 팝니다.'
인간시장에서 나는 얼마의 가격 매김을 받을 수 있을까?
기본 나이에다 플러스 요인은 돈 들이어 받은 교육과 습득한 지식, 연식과는 별개로 많은 운동량으로 다져진 하드웨어, 각종 경험과 위기관리 능력, 미래를 존중하는 창의 여유로움이 있고,
마이너스 요인으론 소모된 체력(감가삼각?), 약해진 의지, 자맥질 하는 눈높이, 근원 성실하지만 부정 비리로 치부하고 약자위에 군림하는 자들을 지극히 경멸하는 DNA 소지, 잘못된 습관들을 대입하여 산정...
그리고 내장된 기본 소프트웨어는 이렇다. 다리 뻗어 잠잘 자리 있으면 족하고, 삼시세끼 질보다 양에 만족하며 세상 빚지기 싫어하는 인생이다. 꾸준히 노력하고 탐구하지만 때론 세상을 떠도는 이방인이고, 기약없는 대기자 같음을 느낀다.
가격이 정해지고 거래가 성사되면 만족할 것인가?(농사철 죽어라 부려먹고 철지나니 고기값으로 팔려가는 소꼴은 아닌지...) 아무튼 각박한 세상이다. 막상 네가 없어야 내가 산다는 냉혹한 현실. 그럼에도 왠지 양심이란 건 남아있어 젊은이들의 등골을 휘이게 하며 손가락질 받는 고령화 집단의 일환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마저 가졌으니 또 어떻게 살아 간다니 오호통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