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 리필’ 사장님의 불황 극복법
- 박리다매식 판매 전략
- 입지 선정과 차별화 아이디어가 성공 열쇠
서울시 창천동 대학가의 한 주점 앞에 일정 금액을 내면 주류를 무제한으로 제공한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7월 18일 서울 신촌 대학가는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보내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학생 김혜리(21)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김씨 일행이 향한 곳은 창천동의 술집 ‘포석정’.
1인당 5500원을 내면 3시간 동안 다양한 막걸리를 제한없이 마실 수 있어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소주와 맥주 역시 1인당 8900원에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
개별 주문도 가능하다. 막걸리는 3000원, 소주는 3500원이다. 무한 리필을 선택할 경우, 1인당 2병 이상을 마셔야 이득인 셈이다. 대부분의 고객은 자신이 낸 돈보다 적은 양의 술을 마시지만 무한 리필 메뉴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김씨는 “많이 마시지 못하더라도 단체로 왔을 때 푸짐하게 즐길 수 있어 무한리필 메뉴를 선택한다”며 “개별 가격을 따지면 손해일 수 있지만 왠지 이득 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포석정을 운영하는 정두진(35) 사장은 “막걸리는 원가가 저렴하고, 조금만 마셔도 포만감을 느낀다는 점에 착안해 사업을 구상했다”며 “막걸리는 마진이 50% 이상 남는다”고 말했다. 대신 인건비나 식자재 비용은 아끼지 않는다.
애초 정 사장은 가게가 자리 잡는데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봤지만, 훨씬 앞당겨 이익을 내고 있다. 정씨는 “무한리필은 재료 비용이 높아 마진은 작지만 그만큼 손님들이 많으니 손에 쥐는 돈은 오히려 많아졌다”고 말했다.
서울 흑석동 재래시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수제돈까스와 떡갈비 전문점 ‘흑수돈’. 1인당 7000원을 내면 음식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어 시끌벅적한 시장 안에서도 유난히 손님으로 붐비는 곳이다.
가게 안에는 ‘언제나 더 해드리고 싶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흑수돈 박영진(42) 사장은 같은 자리에서 20년째 정육점을 운영 중이다. 그는 “용돈이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들을 배불리 먹이겠단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박리다매는 많이 팔면 되기 때문에 굳이 비싸게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무제한=싸다’는 심리 작용
흑수돈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7000원을 내고 음식을 주문하지만 떡갈비 1장(170g) 가격은 2000원이다. 손님 입장에서 무제한 메뉴를 선택하면 떡갈비 3장 반 이상을 먹어야 이익이다. 그럼에도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연신 “싸다”고 말한다. ‘무제한’이라는 용어 자체가 심리적으로 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손님 중에는 ‘본전’을 찾기 위해 과하게 주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박 사장은 환경부담금을 내걸었다. 무제한이지만 음식을 남기면 2000원을 추가로 내야하는 것이다. 그는 “소비자들의 과도한 욕구를 절제시킬 뿐 아니라 이윤을 남기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흑수돈의 한 달 매출은 약 6000만원이다. 바로 옆 정육점을 겸업한 것도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돼지고기 값이 치솟는 요즘 같은 때에는 고기 시세를 바로 반영할 수도 있고, 원가도 줄일 수 있어 1석2조라는 게 박씨의 전언이다. 실제로 돼지고기값이 오르면서 식당 매출이 오히려 급증했다.
여기에 일반적으로 콩·옥수수 식용유를 사용하는 다른 돈까스 가게와 달리 원가가 더 비싼 해바라기씨유를 사용해 질을 높였다. 박씨는 “해바라기씨유 한 통(18L 기준)이 일반 식용유보다 7000원 정도 비싸 첫 3개월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며 “좋은 식용유를 써서 맛이 좋다는 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수익이 점차 늘었다”고 말했다.
‘케이크 무제한 제공’을 내건 서울 서교동의 카페 ‘어메이징 그레이스’도 대학가에서 인기가 많다. 이 가게의 하루 매출은 평균 400만원, 주말에는 800만원을 웃돈다. 이 일대 카페의 하루 매출이 대략 100만~150만원인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2배 이상 많이 버는 셈이다.
사장 김지수(33)씨는 고객이 원하는 디저트가 무엇인지 직접 설문조사를 해 케이크를 주메뉴로 선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케이크를 무제한 제공한다는 입소문은 금세 퍼졌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대학생 이주원(23)씨는 “뷔페가 아니고서야 다양한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며 “커피 가격도 다른 카페와 별 차이가 없어 이왕이면 이곳으로 온다”고 말했다.
김지수 사장은 “음료보다는 케이크에 드는 비용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케이크의 원가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며 “이미 포화상태인 커피전문점 사업에서 경쟁력을 찾기 위해 케이크로 차별화했다”고 밝혔다. 그는 케이크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대신 음료는 사람 수대로 주문하는 방식으로 수익률을 높였다. 김씨는 “케이크 무제한이라는 문구가 사람들을 끌지만 결국 주력상품은 커피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무한 리필’ 마케팅은 소비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요즘 각광받는 아이템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가격 파괴’와 ‘1+1 마케팅’이 결합해 진화한 형태다. 물론 무한 리필 전략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돈암동의 한 일본식 술집은 1인당 1만1000원에 술과 안주가 모두 무제한인 곳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여대 앞 상권임을 고려한 아이디어였다. 문제는 인근 여대생들뿐 아니라 먼 지역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부터다. 손님이 늘수록 오히려 손해를 봤다. 결국 늘어나는 식자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무리한 가격경쟁으로 폐업하는 곳도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 소장은 “박리다매가 가능한 규모의 경제가 전제되어야 하고, 입지 선정과 저렴한 이미지를 보완할 수 있는 인테리어 등의 부수적 부분 역시 중요하다”며 “시차별로 가격에 차이를 둔다든지 지속적으로 고객을 관리하는 등의 부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소장은 “원가와 손익분기점이 높기 때문에 경쟁점포가 생겼을 때 즉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저가에 고품질을 제공한다 해도 소비자가 그만큼 만족감을 느끼는지가 중요한 만큼 무조건 가격이 싸다는 것만을 내세우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무제한을 내세우는 외식 마케팅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한정된 가격에 최대의 양을 얻을 수있기 때문에 저소득층과 젊은 층의 수요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불황의 대안으로 떠오른 사업방식이지만 사업자의 과당 경쟁과 소비자의 과소비를 부추길 수 있는 만큼 양측 모두 합리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