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한 편의 시>: 박철 시인의 「솜씨」
김완, 김완 혈심내과, kvhwkim@chol.com
1
강에서 좀 먼 곳
낚싯바늘 만드는 솜씨를 보았다
깊게 골이 패이고
송이처럼 뭉툭한 손이었다
강철선을 구부려 그라인더에 갈고
끝이 보이지 않게
미늘도 곧추세웠다
거기 내가 걸려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한 곳 여린 뼈 같은
촉수를 바라보다가
당신의 손끝을 생각했다
2
지워지지 않는 날카로움 두려워하지 않는 이 없으나
오랜 세월 내 곁에서 멀리 떨어진
당신의 솜씨는 또 어느 굵은 손이 빚었을까
그 손이 남긴 무늬, 빚어낸 충격
당신의 눈빛과도 같은
거기 내가 걸려도 죽지 않을 것 같았다
3
들길 한가운데 낚싯바늘 건네는 솜씨를 보았다
하늘 아래 높은 곳
바람을 움켜쥔 손이었다
무엇이든 낚을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여기에 걸린답니다
쇄빙선처럼
누군가를 위해 목숨 바친 세월
사는 동안 내가 나와 헤어질 수 없었으니
나는 나의 솜씨에 걸리는구나
그걸 깨우치기까지
몇 해 몇 리를 보냈는지 모른다
4
그리하여 이즈음 마땅히 나를 걷어 올리자
망막을 가르는 섬광 하나가 허공을 휘휘 돌고
당신과 나 그리고 그분은 아직 떠난 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여직 당신의 당신 안에 있었다
모든 당신은 신神이다
어제도 광야에서 잊지 않고 손톱 끝에 올린 말
우리는 달아날 수 없다네!
여기서 나는 한 토막의 얘기를 전하려 한다
5
누구나
낮과 밤이 되어
어김없이 돌아서듯
모두
집으로 간다
흙으로 간다
돌아가기 전
누군 주연이고 누군 조연이고
누군 물고기이거나 강가에 앉았어도
무대일 뿐이다
- 「솜씨」 전문
1에서 5까지 연에 숫자를 붙인 시입니다. 5에서는 다시 의식적으로 3연으로 나누었습니다. 강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낚싯 바늘을 만드는 사람을 만나 그 과정을 구경했나 봅니다. “깊게 골이 패이고/송이처럼 뭉툭한 손이었다”라는 싯귀로 “강철선을 구부려/그라인더에 갈고/끝이 보이지 않게/미늘도 곧추세웠다/거기 내가 걸려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라는 표현이 인생의 경험이 풍부한 나이 지긋한, 솜씨 좋은 장인인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당신의 손끝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워지지 않는 날카로움”, 과거의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내 곁에서 멀리 떨어진/당신의 솜씨는 또 어느 굵은 손이 빚었을까”라고 떠올립니다. “그 손이 남긴 무늬, 빚어낸 충격” 모든 시간의 흔적은 상처의 기록이니까요. “하늘 아래 높은 곳/바람을 움켜쥔 손”을 지닌 그는 조물주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늘’의 절대성과 ‘바람’의 허무까지 한꺼번에 장악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낚싯 바늘을 만드는 손, 당신의 손, 당신의 솜씨를 만든 손, 어느 누구도 조물주가 만든 낚시 바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당신은 누구인가 신神은 어떤 자인가 존재의 심연에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 바친 세월/사는 동안 내가 나와 헤어질 수 없었으니”에서 평탄하지 않은 세월을 보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의 공감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고백은 수많은 실패와 상처의 시간을 들춰내야 하는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수많은 시간의 흔적과 상처의 기억들 속에서 깨우침을 얻습니다. 당신과 나 그리고 그분(=조물주)과의 관계, 죽음과 삶의 문제를 파악하였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우리는 달아날 수 없다네!”라는 것입니다. 운명으로부터, 덧없는 삶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정리하듯 5연에서 다시 한번 간결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누구나 ‘주연’이건 ‘조연’이건 ‘물고기’ 였거나 ‘강가에 앉았거나‘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솜씨’ 좋은 시「솜씨」 한 편이 탄생하였지요?
시집『새를 따라서』의 해설을 쓴 홍기돈 평론가는 “시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순간의 현장이 아니라 그 끝에 자리하고 있는 어떤 깨달음의 순간이다.”, “지극한 깨달음에 구한 시(=구경적究竟的 삶의 형식)”, “지극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시선이 닿는 곳 도처에서는 생명의 에너지가 포착된다”라고 말합니다.
시인 박철
서울 출생. 『창비1987』에 「김포」 등 15편의 시를 발표아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실에 돈 갖다 주기』 『험준한 사랑』 『사랑을 쓰다』 『불을 지펴야겠다』 『작은 산』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등이 있음. 13회 천상병시상, 12회 백석문학상, 18회 노작문학상, 16회 이육사시문학상 수상
#김완_시인_내가_읽은_한편의_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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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늘
낚싯바늘에 가시랭이 모양으로 된 갈고리.
미늘은 한번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게 된 이치를 뜻하기도 한다. 한편 기와나 갑옷덮개조각처럼 윗조각의 아랫부분이 아랫조각의 윗부분을 덮어 누르게 달려 있는 것을 ‘갑옷미늘’이라 한다. 이는 물고기의 비늘과 흡사한 것이다.
부모의 학력 수준이 자녀에게 세습되는 사회에서, 하류 서민들에게 교육은 대를 이어 족쇄를 채우는 미늘일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늘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 말 풀이사전, 초판 1쇄 2004., 10쇄 2011., 박남일)
솜씨
1.
명사 손을 놀려 무엇을 만들거나 어떤 일을 하는 재주.
2.
명사 일을 처리하는 수단이나 수완.
[국어사전]
촉수 (觸手)
[촉쑤]발음듣기
1
하등 무척추동물의 몸 앞부분이나 입 주위에 있는 돌기 모양의 기관. 촉각, 미각 따위의 감각 기관으로 포식 기능을 가진 것도 있다.
2
물건을 쥐는 손. 보통 오른손을 이른다.
3
사물에 손을 댐.
지긋하다
[지그타다]발음듣기
접기
형용사
1
나이가 비교적 많아 듬직하다.
나이가 지긋하다.
2
참을성 있게 끈지다.
그는 어디를 가나 지긋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늘 금방 가자고 조른다.
붙이다
[부치다]
동사
1 맞닿아 떨어지지 않게 하다. ‘붙다’의 사동사. 봉투에 우표를 붙이다.
2 불을 일으켜 타게 하다. ‘붙다’의 사동사.연탄에 불을 붙이다.
3 조건, 이유, 구실 따위를 딸리게 하다. ‘붙다’의 사동사.계약에 조건을 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