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자의밥값
마성 스님/ 동국대 강사, 팔리문헌연구소장
----------------------------------------------------
남방불교의 승려들은 지금도 걸식에 의존하거나 신도들의 청식(請食)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찰에서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승려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남방불교에서 신도들이 사찰에서 음식을 얻어먹는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원래 출가자는 사의법(四依法; 걸식·분소의·수하좌·진기약)에 의해 생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출가자의 이러한 삶의 원칙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많이 변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방불교에서는 아직도 그 전통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태국의 아침은 스님들의 탁발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정도로 걸식이 널리 행해지고 있다. 반면 스리랑카의 경우는 탁발의 전통은 점차 사라지고, 신도들에 의한 청식(請食)이 일반화 되었다. 청식이란 신도의 집에 스님들을 초대하여 공양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붓다는 출가자가 걸식에 의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청식도 허락하였다.
현재 스리랑카의 사찰은 신도의 공양과 청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아침공양은 정해진 신도가 집에서 음식물을 마련하여 사찰로 가져온다. 그러면 스님들은 그 음식물을 나누어 먹는다. 점심공양은 청식이 대부분이다. 어떤 경우이든 공양을 마치고 나면 그 음식물을 베풀어 준 단월(檀越=施主)을 위해 축원해 주고 법문을 해주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되어 있다.
붓다가 세상에 살아 있을 때부터 신도의 청식을 받고 난 뒤에는 반드시 공양을 베풀어 준 신도를 위해 법을 설해 주었다. 그러한 전통이 스리랑카 승단에서는 지금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이것은 재가자의 재시(財施)에 대한 답례로써 출가자의 법시(法施)인 것이다. 불교교단은 2,500년 동안 이러한 재시와 법시의 관계로 유지되어왔다.
필자가 스리랑카의 사찰에 머물고 있을 때 알게 된 일이다. 필자가 머물고 있던 사찰은 비교적 규모가 큰 사찰이었고 신도의 숫자도 많았기 때문에 1년 내내 걸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1년 365일 아침과 점심 두 끼의 공양은 730회 뿐이다. 그런데 신도는 약 3만 가구쯤 되기 때문에 스님들에게 한 끼의 공양을 올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님들에게 공양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연말이면 다음 해 공양을 먼저 신청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할 정도다. 먼저 공양을 신청하는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있던 사찰에는 약 20명의 스님들이 있었는데, 신도 집의 공양에 참석할 때는 언제나 긴장된다. 공양 후 반드시 법문을 해주어야 하는데, 누구에게 배정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공양을 베푼 시주가 어떤 특정한 스님을 지목하여 법문을 청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최고의 장로가 지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먼저 승단을 대신해서 자신이 법문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약 15분간의 짧은 시간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조리 정연한 법문을 설해야 한다. 그래야 대장로들과 동료 스님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공짜 밥이 아닌 것이다. 반드시 밥값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스님들은 공양을 하면서도 오늘 이 사람들에게 무슨 법문을 해줄까를 미리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 법문 내용을 다른 스님들이 듣고 있기 때문에 매일 똑같은 법문을 되풀이 할 수도 없고,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난 법문을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러한 법문을 통해 그 스님이 얼마나 공부가 진척되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간혹 1년 내내 단 한마디의 법문도 남에서 설하지 못하는 스님들도 있다. 그런 스님들은 신도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필자도 다른 스님들의 도움으로 공짜 밥을 얻어먹고 단 한 번도 법을 설해주지 못했다. 물론 언어장벽 때문이었지만 결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록 싱할리어로 법문을 해줄 수는 없었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어로라도 법문을 해주기 위해 미리 원고를 작성하여 외웠다. 혹시 나에게도 밥값을 하라고 지시가 떨어지면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귀국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필자가 머물고 있던 사찰의 주지스님은 스리랑카 최고의 설법가로 알려져 있는 매우 유명한 스님이었다. 그런데 주지스님은 특별한 법회가 아니면 제자들에게 법문을 시켰다. 매월 음력 보름의 포살일(布薩日)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법문을 듣기 위해 강당에 모인다. 그런 법회에 출가한지 몇 해 되지 않는 사미승에게 법문을 시킨다. 그러면 그 스님은 한 달 전부터 법문을 준비하고 또 다른 스님들 앞에서 수차례 예행연습까지 한다. 그러나 막상 법회 당일에는 준비한 만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내려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한 사람의 훌륭한 스님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다.
한편 스리랑카에서는 신도 집에 초대받아 가면, 현관 입구에서 그 집의 주인 남자가 직접 발을 씻어준다. 맨발로 수행하는 스님들이 많고, 비록 샌들을 신었지만 먼지투성이기 때문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물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그들의 오랜 관습이다. 이것은 그들이 수행자를 맞이하는 예의이자 성스러운 의식이다. 이런 세족의식(洗足儀式)을 받을 때, 과연 자신이 이 분들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가를 반성하게 되고, 더욱 더 수행 정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선방에서도 간혹 밥값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일이 있다고 한다. 시주의 은혜로 살아가는 승려가 수행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것은 밥도둑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출가자의 의무는 재가자에게 법을 설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신도로부터 재시를 받고 법시를 베풀어 줄 수 없는 사람은 참으로 비참하다. 그런 사람은 재가로부터 공양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출가자는 밥값을 다하기 위해 더욱 정진해야 한다.▣
(불교포커스 정법칼럼 마성단상 입력 : 2007년 05월 29일 14:27: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