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는 우리나라 전국에서 예외 없이 발생했다.
제4호 태풍 뎬무(DIANMU)가 11일 오후 동해상으로 빠져나감에 따라 막대한 피해를 입지 않고 사실상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우리로선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나라 국토면적중 산이 70%나 차지하고 있다. 태풍이 부딪치는 한라산 남쪽과 지리산 부근과 서울, 경기북부지역은 산세가 높은 지역이다. 산비탈이나 경사진 곳일수록 공기가 올라오면서 비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매년 많은 비를 동반하여 피해을 주었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는 올 여름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이 1~2개 더 올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추석 전후로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끼친 경우도 많았다. 수확 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가을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그로 인한 피해가 있을 것 같아 걱정된다.
서울 경기북부 등 여름철 상습수해 지역주민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부족으로 부실한 하수관리, 비상통신시설미미, 허술한 대책만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지형적인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산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어릴 적 기억은 잘 알 수 없지만, 공직 생활동안 내경험으로는 예산군은 1995년과 2005년에 큰 홍수피해를 당했다.
1995년, 2005년에 산업업무 담당 할 적에 큰 피해를 맞았다. 그것도 번갈아 8~9월이면 집중후우로 피해가 제일 심한 오가면과 신암면에서다.
1995년 7월 예산군청 지역경제과 근무하다가 행정7급으로 승진되어 오가면사무소 발령받았다.
그해 8월24일 예산군에서는 일기예보에 많은 비가 내리고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어 직원들에게 비상대기 근무하도록 지시를 하였다. 오가면사무소에서도 남자직원들은 집에 가지도 못하고 사무실이나 숙직실에서 10여명이 비상근무하며 새우잠을 잤다.
다음날 새벽 집중호우 피해가 속출하다는 마을 이장님들의 긴급한 전화가 사무실로 여러 번 왔다. 전 직원들에게 비상근무를 알렸다. 밤새 사무실에서 비상근무한 직원들과 삽과 마대를 준비 청소차량 대동 예산무한천 제방과 접하고 있는 오가면 신원리 지역으로 달려갔다.
제방위로 물이 범람 제방이 낮은 곳에는 물이 넘치고 있었다. 여러 곳에서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큰물이 내려가는 것을 처음 보았다. 오가 신원리 주민들과 오가면사무소 직원 총동원되어 물이 넘치는 제방에다 마대에 흙을 넣어 물이 넘치지 않도록 작업을 몇 시간동안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상황이 급박하여 예산군청에 지원요청 하였지만 차량진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지원해주지 않았다.
예당저수지 하류 무한천제방이 4~5m의 일정한 높이로 유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마을에서 차량통행 등으로 곳곳이 낮아져 많은 비가 내리면 물이 넘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였다.
그날 새벽 삽교천 상류의 예당저수지에서는 5백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자 수문 26개를 모두 열어 방류했다. 그로인한 엄청난 피해발생 예상을 하지 못했다. 집중호우가 내리기전 "저수율 58%로 유지하는것이 최선책이었으며, 저수율을 절반이하로 낮춘다면 농업용수관리에 차질이 있어 더 이상의 방류를 못했다."는 아쉬움을 관계직원은 세월이 흐른 후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오가 신원리 주민들과 신암 탄중리 주민들은 관계자 간부를 무릎을 땅바닥에 굽히게 하고는 성난 감정을 폭발했다.
사실 제방이 처음 무너진 곳은 무한천제방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 제방이었다. 하천제방 물이 넘쳐 제방이 물을 먹어 그곳이 침하되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사람들이 막기에는 나약한 존재였다. 순식간에 착착 제방이 벌어지더니 제방 일부가 이내 무너져버렸다. 엄청난 양의 제방물이 무너진 신원리 마을로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그 순간 돼지새끼들은 비닐하우스로 올라가 있었고, 소들은 그 자리에서 눈을 크게 부릅뜨고는 제방에 나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할 수없이 사람들이 물속으로 들어가 억지로 물 밖으로 소를 끌고 나왔다.
하천제방 무너지는 순간 그곳 현장에서 나는 아찔했다. 이 많은 농작물, 축산, 비닐하우스 피해담당자라 피해조사는 물론 보상금까지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오가초등하교 강당에서 밤샘 비상근무를 하였다.
그날 오가초등학교 강당 의자에 앉아 집중호우피해로 이재민 발생한 상황을 메모한 것이 있다. 현재 그것을 보관하고 있어 내용을 적어본다.
1995년8월25일, 오가초등학교강당. 무한천제방 붕괴, 65세대 150명 이재민발생, 실종자 1명
TV에서나 보아왔던 호우피해 이재민들을 직접 마주하고 있으려니 나로서는 무척 당혹스럽다. 지금 저녁12시, 밤이 깊었는데도 오늘 갑자기 이재민을 당한 지역주민들은 잠을 자지 않고는 삼삼오오 앉아 있다. 내일 태풍이 지나가고 마을에 물이 빠져나가면 제방붕괴작업, 축산에 갇혀 사투를 벌이며 겨우 목숨을 건진 소, 돼지, 부서진 비닐하우스를 다시 복구할 수 있을까?, 농작물의 처참한 피해, 내일 피해복구 작업하려면 피곤하니 일찍 잠을 권하는 할머니, 사진기가 있으면 찍어두어야 한다며 예기치 못한 상황을 농담을 섞어가며 푸념하는 아저씨, 도로에 가로수가 쓰러져 교통장애가 발생했다는 위급한 전화, 농장에서 일하던 박ㅇㅇ(35세)가 급류에 떠내려가 실종되어 모래 속에 묻혀 언제쯤 찾을까하는 걱정과 의구심, 칭얼대는 어린아이 울음소리, 예당저수지 농지개량조합에서 수문을 26개 동시 열어 피해가 발생했으니 내일 그냥 않나둔다며 벼르면서 욕설을 퍼붓고 있는 아저씨, … …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며 반수이상이 잠을 못 이루고 있다.
다음날 1천2백여ha에 달하는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오가면 신원리, 신암면 탄중리 마을에 나가 보았다. 제방급류와 함께 내려온 흙더미 속에 묻혀 지붕만 둥그렇게 드러낸 집, 미처 축사 우리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해 몰사당한 수백 마리 돼지, 닭, 쓰러진 비닐하우스에 나돌아 다니는 쪽파, 호박, 거의 뿌리가 뽑혀져 쓰러진 사과나무 등이 나를 반겼다.
1995년 오가면 신원리, 신암면 탄중리 집중호우로 쓰라린 피해를 맛보았던 주민들은 몇 년이 지나서도 예산군과 전국에서 집중호우로 큰 피해당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마을이 있으면 찾아가 일손을 주와 주며 성금도 기탁하였다.
피해당시 전국에서 수해복구와 구호물품을 보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은 이 지역 주민들은 나보다 더 잊지 못할 것이다.
매번 8~9월 한두 차례 찾아오는 불청객 태풍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힘을 소진하고 벗어났으면 한다.
올 농사 풍년이 들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체험현장이 눈에 들어올듯 난감한 태풍--, 집중호우-- 늘 감사한 자연이지만 때로는 무서운 괴적을 낳기도 하지요. 아무쪼록 피해없는 가을 풍년을 기원합니다.
일기예보에 민감하며, 기후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생활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