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글 쓰기가 말하기보다 쉽다고 한다.
그러나 글을 써본 사람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특히 젊은 날 긴 사연의 연서를 앞에 두고 한 고민은 영원히 기억속에 존재할 것이다.
그러면 글을 짓고 마지막 손질을 하는 수정 작업을 왜 '퇴고'라고 하게 되었는가?
물론 이 이야기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일화이지만 '퇴고'가 글 지은 뒤의 손질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가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기 위하여
그 이야기를 한번 적어 보기로 한다.
때는 서기 800년경 중국 당나라의 어느 작은 읍내 길. 시인 가도(賈島)는 노새의 등에
흔들리면서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쉴 사이 없이 묘한 손짓을 하였다.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았으나, 그는 방심한 채 노새가 가는 대로 몸을 맡긴 것 같았다.
가도는 노새를 타고 가는 도중 시 한 수가 머리에 떠오른 것이었다.
이응(李凝)의 유거(幽居)에 제(題)함이라는 것으로
閒居隣竝少 한가하게 사노라니 사귄 이웃 드물고
草徑入荒園 풀밭 사이 오솔길은 황원으로 뻗었네
鳥宿池邊樹 저녁 새는 연못가의 보금자릴 찾는데
여기까지는 줄줄 내려왔는데 결구(結句)를
僧敲月下門 스님은 달빛 아래 절간 문을 두드린다.
이렇게 해야 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敲(두드린다)'를 '推(밀다)'로
할 것인지 여기서 딱 막혀 버렸던 것이다.
이 두자를 입에 내어 중얼 거리면서(아마 율격(律格)을 맞춰 본 것이리라)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는
시늉도 해보고는 하였다.
이렇듯 작품의 세계에 빠져 골몰하고 있던 가도는 저쪽으로부터 고관(高官)의 일행이 오는 것도 몰랐다.
여전히 중얼거리며 손짓을 하면서 가다가 급기야 노새는 그 행열을 뚫고 들어가 부딪치고 말았다.
"무례한 놈! 어떤 놈이냐?"
"비켜라! 권경윤(權京尹) 한퇴지(韓退之)님을 무엇으로 보는 거냐!
위병(衛兵)들은 저마다 소리치며 노새 위의 가도를 잡아다가 한퇴지 앞에
꿇어앉히었다. 가도는 놀라서, 작시(作詩)에 마음이 팔려 무례함에 이르렀다는 사정을 말하고
사죄하였다.
퇴지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더니,
"자네, 그것은 '고(敲)'로 하는 것이 좋겠네."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한퇴지는 가도의 둘도 없는 시 친구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상소잡기에 실려 있는 시화(詩話)이거니와 여기에서 작문의 기술이 끝나고
재차 읽어 가면서 고치는 일련의 작업을 '퇴고(推敲)'라 부르게 된 것이다.
詩人 靑山流水
첫댓글 오, 참으로 유익한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주어 담을 수 없듯이 독자에게 읽힌 글은 그대로 독자의 몫입니다.작품에 꼭 맞는 언어가 있을 것임을 가려내야 한다고 봅니다.
어서 오세요. 후리지아님. 관심 주시니 고맙습니다.
퇴고란 문장을 다듬고 어휘도 적절한가를 살펴서 고치는 일인데 수필을 쓰는데 유익한 글입니다. 청산유수님 창작 글 올리시고 등급 받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사색도 하고 글도 쓰고 싶은데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는군요. 기회되는 대로 찾아뵙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