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생 : 1884년 7월 12일 ~1920년 1월 24일 (36세)
국 적 : 이탈리아 ( 토스카나 지방의 리보르노 )
가 족 : 쟌느 에뷔테른과 사이에 딸 하나(쟌느 모딜리아니)
학 력 : 리보르노 미술학교 - 피렌체 미술학교 - 베니스 미술학교
생 애
그는 처절한 고독 속에서 가난과 술, 아편과 결핵에 시달리다가
1920년에 36세의 나이로 요절한 화가입니다.
그는 1908년 처음으로 앵데팡당전에 회화 6점을 출품함으로써
정식으로 화가로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지만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에 허덕였습니다.
1909년 콘스탄틴 브랑쿠시를 만나
그의 영향으로 한동안 조각을 시도하기도 하고,
세잔느의 대전람회를 보고 깊이 감명을 받아
<거지> <첼로 연주> 같은 작품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1913년부터는 몽파르나스에 거처를 정하고
키슬링·수틴·피카소 등과 친교를 맺었으며
이 무렵부터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발하여
이색적인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지요.
1918년에는 라파이예트 거리의 베르트 베이유(Berthe Weill) 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연 뒤,
방종한 생활과 음주·아편 등으로 악화된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니스로 갔습니다.
1919년 파리로 다시 돌아왔으나
이듬해인 1920년 1월 25일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모딜리아니의 재능은 데생과 조각과 유화의 세 부문에 걸쳐
빼어난 창조성을 보여준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가로서의 천재성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초상화 부문에서입니다.
1918년 남불 니스에서 요양할 때 여러 점의 풍경화를 그린 적이 있지만,
그의 회화 작업 과정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지는 않으며
정물화는 거의 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지중해의 뜨거운 햇빛과 고향의 어린시절을 그리워했던
그는 파리의 자선 병원에서 3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며
"카라 이탈리아(그리운 이탈리아) "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펌)

자화상



Jeanne Hebuterne with Necklace (1917 )

Anna Zborowska
Private collection (1919)

검은 드레스 (1918 )

(1918 )

( 1918 )

(1918 )

(1917)

유태여인 (1908 )

( 베아트리체 헤이스팅스)



Jeanne Hebuterne with Hat and Necklace (1917)

모자쓴청년 (1919)

(1915 )

(푸른 배경의 폴 알렉산드르 초상화)
모딜리아니의 첫 번째 후원자는 의사였던 폴 알렉산드르였습니다. 그는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25점이나 구입해 주었고 450개의 드로잉을 수집한 사람입니다.


(풍경 1919)
모딜리아니가 그린 풍경화는 3점이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물과 풍경을
그렸는데 나중에는 초상화와 누드로 확대되었고 특히 누드에서 그의 재능이 가장 잘 나타났다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작품속의 주인공 , 쟌느 에퓨테른느에대해 ]
모딜리아니 인물초상작품중에는 Jeanne Hebuterne의 작품들이 눈에띄는데..
쟌느 에퓨테른느는 모딜리아니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이다.
모딜리아니는 그녀를 18살때만났는데 독실한 카톨릭교구인 그녀의 집안에 유태인은 안될말이였다.
둘은 집안의 강한반대에도 무릎쓰고 서로 함게살게되었는데 1918년 둘사이에낳은딸이름도 쟌느라지었다.
그러나 2년뒤 모딜리아니가 결핵으로 요절하자 그녀의 집안에서는 그녀를 본가로 데려갔지만
그녀는 모딜라아니가 죽은지 이틀째되던날 5층건물에서 뛰어내려 비극적인자살을하게된다.
첫댓글 일관되게 표현주의 기법으로 인물 초상화를 그린 유일한 화가 모딜리아니.... 즐감하시길.. ^ ^*
고마워요, 번개부인님!!
싸이트를 적어놔야겠군요. 처음 올려서인지 분위기 파악이 잘 안되는데...ㅍ 보기편안한지 모르겠네요. ㅎ ^ ^*
모딜리아니가 조각을 공부해서 그런지.. 그림들이 다 조각 분위기가 느껴져요.^^* 쟌느와 모딜리아니...이 두 사람... 너무 닮았어요..
본인은 조각 을 무척 하고싶어했다는군요. ㅎ 천국에서도 모델이되어달라는 모딜리아니... 얼마나 사랑했으면....ㅎㅎ ^ ^*
모딜리아니 그림은 한창 감수성이 풍부했던 여고생 시절에 특히나 좋아했었던 것 같아요. 가늘가늘한 몸과 우수어린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서글픔이 어린나이에도 뭔가모를 위로가 되더라구요. 참 모딜리아니 그림에서 대부분 여인의 눈동자를 그리지않은 이유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아시는지요.? 시카고 미술관에 잔 에바테른의 눈동자가 표현되어 있는 그림을 한참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
"눈은 마음을 보여주는 창이다"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사람에 대해서 알 때 그릴 수 있다고 ...모딜리아니가 이런이야기를 하였다합니다.답이되었는지요... ㅎ 모딜리아니는 모델의 심리상태와 모델과 자신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눈이나 표정 등에 섬세한 정성을 기울려 그렸다고 하는군요. 페르소나벗기님... 함께해주셔서 감사해요. ^ ^*
너무 감사하게 퍼갑니다.
얼마든지.... ㅎ ^ ^*
쟌느가 그린 드로잉중에 모딜리아니가 아파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때 그걸 어찌해주지 못할때 드는 그 자괴감, 그런게 화악 느껴져 가슴이 먹먹했었어요.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ㅎ 보진 않았지만 느낌으로 알수있을것같아요. 박하님 오늘은 어떤 전시보러가세요... 고마워요. 함께해주셔서... ^ ^*
오늘은 안국동내려서 갤러리안단테 들려 김미로 작가님과 큐레이터분과 한참을 수다떨다가, 황급히 국립중앙 유물전보러 이촌다녀왔어요, 사당,과천까지 뛰려했으나 쥐님의 황금같은 조언으로 미뤄두었답니다. 좋은 사람들 말은 될 수 있음 귀담아 들으려구요^^
ㅎㅎ 박하님 대단하십니다. 전 종일 근무하느라 보지못했네요. 부럽슴돠. ^ ^*
이 글을 보니 몇 달 전에 봤던 모딜리아니와 에뷔떼른 전시회가 생각나네요. 주제가 둘 간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이었는데 그 때 쟌 에뷔떼른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특히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겠어요'란 말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글을 보니 그 때의 전시회 도록을 다시 보네요. 그리고 그 도록이 담지 못했던 그림들을 향유할 수 있어 무척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 다시 그들의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고양에서 했는데 꼭 서울에서 개최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그전시를 못보았어요. 쟌느가 알려지기 시작된건 그리오래지않아요. 저도 이미지를 올리면서 여러작품을 보았어요. 흔하지 안으면서도 모딜리아니의 아름다운 인물화를 고르다보니 그다지 썩 맘엔 ....ㅎ 못보셨던 그림도있다하니 무척 다행이군요. novio님 즐감하셨다니 저도 좋은데요. ^ ^*
유난히 모딜리아니를 좋아했던 고등학교때 친구 생각이 나네요...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녕 ,,, 물고기자리님. 저도 무척좋아해서 우수어린 표정를 따라해보기도 ... ㅋ 감사르 ^ ^*
모딜리아니가 남자였구나...
제일 잘생긴 미남이였데요. ㅎ 안녕.. luke 님 .^ ^*
모딜리아니 그는 결과론적으로 성공한 화가가 아닌가요. 그리고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궁핍 했지만 그림을 그릴수 있었고 자신을 목숨을 걸고 사랑하고 사랑했던 잔느......, 하나 가슴아픈일은 젊은 나이에 요절 했다는게 아쉬움이 아닐까요.
2월이던가, 몇 개월 전에 고양 아람누리에서 하는 잔느-모딜리아니 전을 다녀왔던 기억이 나네요.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느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울었었는데. 잔느를 그리고 있는 모딜리아니의 마음이 되어서 애틋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시선이 되었었어요.
잘 봤습니다...마지막 사진이 그냥 무심히 봐지지가 않네요......
퍼갑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