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박해일 영화 <한산:용의 출현> 27일 개봉...학익진, 거북선 관심
1592년 7월 8일 이순신장군이 한산대첩에서 학익진으로 대승을 거둔
임진왜란 3대 대첩중의 하나이다.
한산도 앞바다
한산대첩의 출전로
이순신장군은 적장 와키자카 야스히로를 견내량에서 한산도 앞 넓은 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을 펼치며 포격전을 펼쳐 왜군 70여척을 침몰 파괴 시켰다.
이순신 장군(박해일 분)과 와키자카 야스히로(변요한 분)
와키자카 야스히로는 이 전투에서 도망가다가 한산도 앞바다 무인도에 갖혀 15일동안 미역을 먹으며 견디다가 땟목을 만들어 겨우 탈출했고 후손들조차 그날을 기억해 미역을 먹는다는 이야기가 내려 올 정도이다.
육지에서 계속되는 대패에도 불구하고 한산대첩에서 이순신이 대승을 거두면서 일본 수군은 서쪽으로 돌아 군량미들을 공급하려던 지원계획이 계속 좌절되고 일본 수군들이 이순신에 대한 공포심까지 갖게되는 전투다.
일본수군...이순신이 공포의 대상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산대첩의 패배로 이순신장군에 대해 알게되고 그 후 여러차례 이순신을 죽이려는 시도까지 하지만 결국 한산대첩이야 말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을 일거에 꺽어버리는 전투가 되었다.
한산대첩의 핵심은 적군을 좁은 견내량에서 유인하고 이어 60척에 달하는 조선수군의 판옥선이 학모양의 진영인 학익진을 펼치며 조선수군의 강점인 여러가지 대포로 포격해 적을 일거에 박살내는 것이었다.
학익진을 구상하는 이순신
와키자카 야스히로는 용인전투등에서 승리하는등 조선군을 우숩게 여겨 이순신이 5척의 배로 유인을 하자 쉽게 따라와 조선 수군을 공격했다.
이순신을 얕봤다가 미역장군이 된 와키자카
그러나 쫓기던 5척은 한산 앞바다에 대기중이던 60여척의 판옥선과 합류하면 학익진을 형성한다.
학익진 바다의 성
바다위에 60여척의 배가 둥글게 진을 친 모습은 마치 바다위에 순식간에 성을 쌓은 듯한 모습이었다.
조선수군은 장거리 포가 있었다
그 성에서는 사거리가 매우 긴 조선의 포가 불을 뿜었대고 쫓아가던 일본수군은 갑자기 나타난 바다위의 성에서 퍼붓는 포격과 함께 용머리를 가지고 달려드는 거북선이 충파 공격과 포격으로 혼비 백산하여 도망가게 된다.
거북선이 돌격하여 부딪혀 전석을파괴하는 모습
배에 접근하여 근접전을 벌이는 일본수군의 전략이 학익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결국 본대를 뒤에 두고 생각없이 조선수군을 쫓았던 와키자카의 부대는 완전히 궤멸되고 만것이다.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 수군은 이순신과 전투에서 23전 23패 전패를 기록했다
영화 <한산>에서 하일라이트가 되는 것이 당연히 학익진과 거북선의 공격이다. 이 공격을 받은 일본 수군들은 다리를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조선수군에 대해 공포감을 가지게 된다.
한산 포스터
이순신 장군이 펼친 한산 앞바다의 <학인직>은 과연 영화에서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학익진 작전회의 ..조선수군의 복장이 고증되어 있다
그 강력한 힘과 긴장감, 그리고 거북선의 무서운 돌격력등이 실감있게 구현될 것인가?
그것이 이 영화에 키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린 스크린에서 제작 장면.. 바다수전을 얼마나 리얼하게 그렸는지 궁금하다
또한 일본 수군을 격멸하기 위해 유인전 학익전등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략전술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는 지 박해일이 보여주는 이순신은 어떤 이순신의 모습일지도 궁금하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 수군을 상대로 23전 23을 거둔 명장중의 명장이다. 그야 말로 일본 수군에게 참패중의 참패를 안긴 장군이다. 이순신장군으 23개 전투는 하나 하나 뛰어난 전략으로 승리흘 하였다.
용감하지만 뛰어난 지략을 가진 이순신장군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선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일본인에게는 정말 가슴 아프게 다가서는 무서운 칼날인 것이다. 조선에 대한 열등감을 느껴야 할 정도로 말이다,
많은 영화 시사평에서 그 같은 기대가 담긴 국뽕 영화라고 하니 27일 영화 개봉이 정말로 기다려진다. 이순신장군의 학익진의 거대한 현장으로 가는 것 말이다
[출처] 김한민, 박해일 영화 <한산:용의 출현> 27일 개봉...학익진, 거북선 관심|작성자 가브리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