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면 거제 해물로 만든 육수에 육전을 고명으로 얹은 거제도 냉면
어머니와 함께 떠난 짧은 3박 4일 봄 여행, 벌써 마지막 밤이 됐다. 첫날 전남 보성을 거쳐 순천과 여수를 지나 마지막 숙소는 거제시에 있는 장승포다. 여수에서 오후 5시 넘어 거제로 출발해 거제 숙소에 도착하니 해는 다 넘어가고 어둠이 깔려 있을 때였다. 거제 숙소는 관광지가 아닌 조용한 구 시가지 대로변에 있는 곳이었다.
순천과 여수에서는 저렴한 가격임에도 좋은 위치에 있는 깨끗한 숙소를 구할 수 있었는데 거제는 순천과 여수에 비해 괜찮은 숙소를 잡기가 힘들었다. 더 많은 비용을 주고 예약한 숙소였는데 숙소 상태는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겨우 입실한 방의 욕실에서는 하수구 냄새가 올라와 불쾌했고 결국 다른 방으로 바꿔달라고 해야했다.
'음식'하면 전라도인데 3일동안 전라도에서 푸짐한 밥을 먹다가 경상도인 거제로 넘어오면서 식사 메뉴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푸짐함'으로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기 때문에 여기서는 거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를 골랐다. 거제 해물로 육수를 만들고 육전을 고명으로 넣어 만든 '냉면'집을 찾아갔고 제주 여행을 가야 가끔 먹는 '성게 미역국'집도 찾아 갔다.
남해 바다의 상당부분은 '한려해상 국립공원'이다. 이번에 여행한 곳들의 바다 역시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곳들이었다. 거제에서의 첫 번째 코스는 '옥포대첩 기념공원'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조 25년 임진년(서기 1592년) 5월 7일 임진왜란 때 맨 처음 왜적을 무찌르고 대승첩을 거둔 옥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옥포대첩 기념공원에 있는 기념관앞에 도착하니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이제 막 출근한 직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잠시 기념관 바깥을 구경하다가 9시가 되자마자 기념관안으로 들어가 옥포대첩 기념관을 관람할 수 있었다.
옥포대첩 기념공원을 나와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갔다. 최근 이 유적공원에는 '모노레일'이 새로 생겼다. 오래 걷기 힘든 어머니와 함께 모노레일을 타려고 계획했으나 여행의 마지막 날이 토요일이라 주말 관광객들이 몰려 모노레일 티켓이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매진되어 있었다. 아쉽게 입장권만 사서 산속에 조성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돌아보았다.
▲ 거제포로소용소 포로소용소 마지막 관람코스였던 '평화탐험체험관'에서는 전쟁 현장을 실감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6.25 전쟁 당시 거제시 고현, 수월지역에 설치됐던 포로 수용소 일대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99호로 지정 보호하며 조성된 유적공원이다. 전쟁 당시 사용됐던 무기들에서부터 당시 포로들의 생활 모습등을 엿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특히 마지막에 들어갔던 '평화탐험 체험관'에서는 실제 전쟁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웅장한 전쟁 소리와 함께 총도 직접 쏘는 것처럼 만져볼 수 있게 돼 있었는데 전쟁 소리 자체가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어머니께 '전쟁소리가 무섭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니께서 어린시절 6.25 당시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 해주셨다. TV나 책에서만 봤던 끔찍한 이야기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더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게다가 내 생일은 양력 6월 25일이다. 어릴적부터 친구들과 내 생일이 6.25라는 사실을 웃으며 놀리듯이 이야기 했는데... 여행을 할 당시에는 며칠 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으니, 이런 상황에서 6.25 전쟁의 역사가 담긴 포로수용소에 와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추억의 아이템이 잔뜩 있었던 해금강 테마박물관
▲ 족욕 거제 알로에테마파크에서는 알로에 족욕으로 발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두운 분위기의 포로수용소를 나와 좀 밝은 분위기의 거제시 농업개발원과 알로에테마파크로 갔다. 거제시 농업개발원은 넓은 땅에 여러가지 농작물들 연구하는 비닐하우스와 테마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힐링 허브랜드', '거제 동백원' 등으로 다양한 테마의 볼거리가 있었다. 알로에 테마파크는 그다지 볼게 없었는데 알로에 족욕이 가능했다. 며칠간 많이 걸어 다닌다고 피로해진 발을 알로에겔을 넣은 따뜻한 물에 담그고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거제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가는 2번째로 큰 섬이다. 섬이다보니 역시 바다가 좋다. 거제에는 모래로 된 백사장이 있는 해변보다 동글 동글 잘 다듬어진 돌들로 해변이 이뤄진 '몽돌해변'이 유명하다. 몽돌해변도 특성에 따라 여러곳이 있다. 우리는 거제를 한바퀴 돌면서 여차 몽돌해변과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 2곳을 들러 바다 구경을 했다.
거제 이곳 저곳을 다니다보니 벌써 해가 넘어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선대' 전망대에서 바다 구경을 하고 해금강 테마박물관을 마지막으로 들렀다. 거제에 올 때마다 지나만 가보고 한번도 안으로 들어가보지 않은 곳이었는데 '88올림픽 30주년 기념전시'가 열리고 있다기에 들어가 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박물관이었지만 옛 추억이 가득한 아이템들이 많았다. 1층에는 옛날 학교 교실, 미용실, 다방, 약국등을 재연해놓은 공간들이 있었고 2층에는 88올림픽 기념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1층을 돌아보며 옛 추억에 잠기셨던지 연신 사진을 찍으며 '여기가 제일 재밌다'고 말씀하셨다. 아쉬운 여행의 막바지에 어린아이처럼 신나 하는 어머니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 거제에는 동글 동글한 돌이 예쁜 몽돌해변이 많다
거제에서 우리집까지는 '거가대교'를 지나 세계 최대 수심을 자랑하는 '해저터널'을 거치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해가 넘어가 어두워지기 시작한 시간 여행을 마무리 하며 집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주말연속극이 시작하는 오후 8시에 딱 집에 도착했다.
지난해 가을 여행을 다녀온 뒤 허리 아파 병원에 입원하셨던 어머니를 보며 올 봄 여행을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봄이 찾아왔고 올 봄 여행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하는 4일간 날씨는 비가 오지 않고 화창한 날씨였다. 지금껏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간 중에 제일 좋았다. 집에 온 다음날부터 연신 이틀간 비가 내렸고 여행의 피로를 집에서 풀기에 좋았다.
비가 그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행 언제 다녀왔나' 싶을 정도로 시간은 흘러 벌써 일주일이 다 지났다. 여행을 다녀오면서 찍어온 수십 장의 사진을 보고 또 보며 가을을 기약한다. 이번 가을에도 아무 일 없이 어머니와 또 어딘가로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