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과오의 유형 - 일반적 주의 의무
김선중 변호사의 의료법률 컬럼
가. 의료수준
의료과오소송에서 문제되는 의료인의 과실은
통상 일반 불법행위에서와 같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위반,
즉 의료인이 진료행위를 함에 있어서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요구되
어지는 진료상 주의의무의 위반이다.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의사에게는 그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가 요구되고,
따라서 의사로서는 환자의 상태에 충분히 주의하고
진료당시의 의학적 지식에 입각하여 그 치료방법의 효과와 부작용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 치료를 실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의의무의 판단기준은
‘진료당시의 임상의학의 실천에 의한 의료수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의료상의 주의의무에 있어서는 의학이 기준으로 된다.
여기서 말하는 의학이란 통상의 의사에게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시인되고 있는 의학,
즉 이른바 의학상식이다.
그리고 의료과오는
의학이 환자에게 응용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의학은 이른바 임상의학을 의미한다.
따라서 병리학적인 엄밀성은 요구되지 않는다.
그리고 임상의학은 통상의 의사에게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의학이어야 하기 때문에,
예컨대 일부의 대학, 연구소, 병원 등에서만 알려져 있는 의학에는
원칙적으로 의사가 따를 필요는 없다.
한편 의학은 계속하여 발전하는 것이므로, 의사에게는
날마다 발전하는 의학의 수준을 따라가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과실판정의 기준이 되는 의학은 사고발생 당시의 수준에서 본
의학이다.
사고 당시 학문상의 의학수준 내지 선진적인 치료수준과
실천적, 평균적인 의료수준과의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경우,
의료수준은 후자의 의미로서 작용한다.
또한, 의사의 주의의무의 기준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의사가 놓여 있는 환경이나 전문과목, 진료당시의 사정도 아울러
고려되어야 한다.
통상의 의사라고 하더라도 일반의와 전문의 사이에는
주의의무의 정도에 차이가 있고,
대학병원, 전문병원과 일반개업의 사이에는
주의의무의 판단기준이 동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긴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 개업의의 경우에도
사후 예상되는 사태에 대비하여 관계 의료기관과의 연계를 도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원을 시키는 등의 대응을 생각할 수 있으므로,
의료수준의 차이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의의무의 구체적 내용은 위험성에 대한 결과 예견가능성과
회피가능성에 있다.
한편 의사가 환자에게 부담하는 진료채무의 성질은
질병의 치유와 같은 결과를 반드시 달성하여야 할 「결과채무」가 아니
라, 환자의 치유를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현재의 의학수준에 비추어 필요하고도 적절한 진료조치를 다하여야 할
채무 이른바 「수단채무」라고 보아야 하므로,
진료의 결과가 나쁘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바로 의료상의 과실이 있다고
추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진료의 결과가 불가항력적이라는 사실만으로
의료상의 과실이 없다고 추정하여서도 곤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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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인과관계와 입증책임의 완화 문제
(1) 의사에게 의료과오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의사의 과실 외에, 의사의 과실과 환자의 생명, 신체 등에 대한 침해(손
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행위는 고도의 과학 및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고,
의료행위에서의 거의 모든 정보는 의료종사자 쪽에 편재되어 있으므로
환자 쪽에서 인과관계를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 대법원은 의료과오소송에서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원고인 환자 쪽이 부담한다는
전통적인 규범설 또는 법률요건분류설의 테두리는 유지하면서,
다만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전제가 되는 간접사실이 인정될 경우)
현재의 나쁜 결과(손해)의 발생이 의사 쪽의 의료과오로 인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인과관계의 추정(일응의 추정)」을 통하여
환자 쪽의 입증경감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역학적 인과관계의 사고를 도입하여,
시간적 접착성, 수술부위와 후유장해 부위의 동일성 등을 함께 고려하면
서, 원고인 환자 쪽이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과오」
(이를테면 대법원 1995.2.10. 선고, 93다52402 판결에서 설시한,
의사가 수술의 일부분을 다른 의사들에게 맡기고 늦게 수술에 참여함으
로써, 수술 도중 피부 및 근육을 절개해 놓고 기다린 시간이 다소 많이
경과하였다는 정도의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와 「과실과 결과발생 사이에는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
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이를테면 환자에게 의료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과의 원인이 될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입증하면,
기본적으로 그 과실과 나쁜 결과 발생과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일응 추정
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995.2.10. 선고 93다52402 판결, 법원공보 1995. 1281면,
이 판결은 입증책임의 완화와 관련한 대표적인 판결로서, 이러한 대법원
의 태도는 1995.12.5. 선고 94다 57701판결, 1999.9.17. 선고 98다
62893 판결, 2000.1.21. 선고 98다50586 판결 등을 통하여 최근까지도
계속 견지되고 있다.)
요컨대 시술상의 상식적인 잘못과 그 직후에 있어서의 증상악화가 원고
에 의해 입증되면, 일응의 과실과 그에 기한 결과발생을 추정함에
지장이 없고, 의학상의 전문지식을 가진 피고 쪽에서 그 잘못은
오히려 의학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이라든가, 또는 그 잘못과 증상악화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않는 한 피고의 책임을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의료과오소송의 특성상, 환자인 원고 쪽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려는
판례의 태도에는 원론적으로 수긍이 간다.
그러나 특히 환자 쪽에서 일반, 상식적인 과실 자체도
적극적으로 지적, 입증하지 못한 경우, 의사 쪽에게 결과발생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에는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단지 환자 쪽의 입증경감이라는 측면만 강조한 나머지
의사에 대해 사실상의 결과책임, 절대적 책임을 과하는 셈이 되어,
결국 의사들로 하여금 책임을 두려워 한 방어적 진료, 위축진료나,
불필요한 검사 등의 과잉진료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의학과 의료기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되고,
그 피해는 다시 국민 모두에게 되돌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치료가 긴급을 요하는 때에는 위험이 많은 불만족한 상태에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현대의학의 수준으로도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운 의료사고의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의료과오소송에서는 환자 쪽의 입증경감을 도모하면
서, 아울러 임상현실을 심리에 적극적으로 반영함으로써,
환자와 의사 사이에 입증상의 공평과 균형이 유지되고,
피해자의 보호와 의학의 발전이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