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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원문보기 글쓴이: 이야고보
2013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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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3,1-9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묵상하다가 보면 씨가 떨어지는 곳에 마음이 머뭅니다. 새가 씨를 와서 먹어 버린 길바닥과 돌밭과 가시덤불이 자라는 그곳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나는 편견과 선입견이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조금 알고 있는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잘못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전문가인 척 혹세무민(惑世誣民)으로 잘 모르는 사람을 현혹시키는 꼴입니다. 꼭 집어 말한다면 바로 그 꼴입니다. 그것은 내가 경험하고 체험한 것을 기준으로 내 선입견과 편견이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내 주변의 환경이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환경의 가시밭을 제거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1. 길은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거나 차가 다녀서 단단하게 굳어져 있습니다. 등산을 하다가 보면 등산길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은 곳과 닿지 않은 곳은 현저하게 차이가 납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다닌 길로 가야만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길이 생깁니다. 길은 사람들의 경험과 의견과 지혜가 집결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익숙한 것만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이 정도(正道)라면 탓할 사람이 없습니다. 사도(邪道)라면 큰일입니다. 사교(邪敎)집단은 사람들을 현혹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악의 구렁으로 몰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邪道)를 걷고 있다면 새롭게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邪道)를 정도(正道)로 잘못알고 있다면 이것은 큰일입니다. 빨리 고쳐서 사도를 정도로 만들거나 올바른 정도로 개종해야 합니다. 새들이 뿌려진 씨앗을 가져가지 않도록 좋은 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복음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편견과 선입견이 좋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길의 용도로 좋지 않다면 파 헤쳐서 좋은 밭으로 만들어야 하고, 길의 용도로 쓸 만하면 바르고 넓은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2. 돌밭은 돌이 많은 밭을 말합니다. 돌은 단단해서 부서지지도 않고, 비가 오면 흙은 쓸려 내려가고 돌만 남게 됩니다. 큰 돌은 땅에 깊이 박혀 빼 내기도 힘이 듭니다. 돌은 사고의 경직성(硬直性)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고(思考)나 사상을 유연성이 없이 고집하면 사고의 경직화현상을 초래합니다. 종교인들에게 이 사고의 경직화 현상이 아주 두드러집니다. 각 종교인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힐난하고,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외면하고, 진리와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 경직성이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뽑아내거나 의식의 전환을 가져오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진리를 두고 무조건 바꾸라는 것은 아닙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할 때에는 과감하게 전환을 시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낡고 맞지 않는 의견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환경은 변하고 있습니다. 3. 가시밭은 장애가 많은 환경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식자우환(識字憂患)도 그 중 한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자우환은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① 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知識)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되는 경우 ② 도리(道理)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不利)하게 되었을 경우 ③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때 식자우환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조금 아는 지식으로 진리를 다 아는 것처럼 진리 안의 진실을 외면하고 겉 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가시밭에 가시가 무성한 것입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묵상을 하면서도 조금 아는 지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알면 고쳐서 바로잡아야 올바른 것입니다. 그러나 고치지 못하고 이렇게 매일 헤매며 살고 있습니다. 매일 묵상을 하면서 그 문제가 항상 꼬리를 잡고 늘어집니다. 주님의 말씀을 방해하며 사는 매일을 용서해 주십시오. [詩:최민순신부/曲:김베드로/音:하나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