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강원도에 삽니다.
태백 철암도서관에서 대학생 최선웅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여섯 살 막둥이가 개울가 걷다가 쉬 마려워할 때도
아이의 자존심을 먼저 생각하시던
열두 살 말썽꾸러기 첫째와 여름 자전거 여행 함께 해주시고도
진심으로 아이를 품지 못했다고 고백하시던
그리고 아이들이 20대로 살아가는 지금도
문득 문득 어찌 살아야할지 여쭙는 저에게
유창한 답 대신 그저 들어만 주시는 선생님입니다.
인제, 횡성, 영월에서 학교선생님들, 마을선생님들과
호숫가마을 이야기로 여러 번 배움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오실 때마다 빛바랜 낡은 재킷 곱게 입고 오셨고,
높지 않은 목소리로 삶의 주인인 아이들과 이웃 이야기 들려주셨습니다.
그때마다 부끄러움인지 감사함인지 눈물이 흘렀습니다.
연수에 오신 분들마다 이렇게 살 수 있구나 고개 끄덕였습니다.
추동 아이들, 그리고 고마운 어른들을 직접 만난 적 없어도
바로 곁에 살고 있는 이웃처럼 느끼고 있지요.
도서관이 책만 빌려주고 읽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삶을 연결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호숫가마을도서관이
허물어진다는게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전문업체에 맡기면 며칠이면 될 공사를
아이들과 온마을 사람들이 망치질 한번, 페인트칠 한번,
그렇게 몇 달간 마음으로 지은 도서관
먼 곳에 있는 우리들도 도서관 화장실 공사에라도 보태고 싶어
명절보너스 기쁘게 송금했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작가와의 만남 준비하라고 저금통에 마음 넣어주셨던
교장선생님과 제마음이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존경하는 호숫가마을 분들께 감히 부탁드립니다.
몇백억 예산으로 뚝딱 지어진 공공도서관이 부럽지 않은
우리 도서관을 지켜주세요.
몇 년 몇십 년 후에도 호숫가를 거닐듯
추동이야기를 이곳에서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방향도 모르고 그저 내달리고 있는 아픈 세상 속에
고운 사람내음 가득한 이곳이
아이들을 위해, 마을을 위해
지금처럼 존재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대전동구청 관계자 여러분
(동구청 홈페이지 구민참여 ‘칭찬합시다’ 에 올렸다가 내립니다. 부끄러운 방법이었습니다.),
참 좋으신 추동마을분들,
꼭 호숫가마을도서관을 지켜주세요.
오래된 나무를 비껴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마을을 지날때마다
하물며 다른 일은 어찌할까
그 깊이에 부럽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추동이, 호숫가마을이 그러하리라 믿고 싶습니다.
천천히, 마을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계실텐데
이런 섣부르고 가벼운 글이 방해가 될까봐
글을 내렸다 다시 올립니다.
부족함 그대로 도서관 구성원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너그러이 보아주세요.
(5월 28일 이른 아침,
밤사이 떨어져 사는 가족들과 도서관이야기 하다가
구청 홈페이지 글은 오해가 될 수 있다 해서 아침 일찍 글을 내리러 이 공간에 들렀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끄억끄억 울고 있습니다.
최선웅선생님과 민정씨, 그리고 함께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부끄럽고, 다행이고,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성급하여 어리석을 수 있다는 예시로 이 글을 지우지 않으려 합니다.
가볍고 거친 제가 호숫가마을도서관을 붙들고 있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습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정회원이 아니어서 글쓰기 권한이 없는 큰아들의 쪽지입니다
선웅 선생님, 잘 계셨죠? 철암 도서관에서 선생님 키 반 만치도 안 되는 개구장이 진성이가 이렇게 징그러운 어른이 되어갑니다.
그 때의 선웅 쌤 나이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그리 웃어주기만 하셨는지 참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어릴 때 제일 싫어하는 것 세가지를 꼽으라면 도서관이 꼭 3등 안에 들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계신 도서관에 가자고 조른 것도 저였어요. 전 책을 읽으러 간 적이 없어요. 그저 도서관 2층의 선웅 쌤 웃음 한 번이면 하루가 행복했어요. 저와 선생님의 도서관은 책보다 웃음이, 사랑이 많이 꽂혀 있었네요. 저는 이 멋진 마을의 주민도, 이 도서관을 직접 만든 사람도 아니기에 이렇게 돌려 돌려 속삭이듯 선생님과 이 도서관을 응원하기로 했어요. 그래야 마을에 계신 멋진 분들의 진심을 담은 말들이 더 크게, 멀리 울리지 않을까요?
선생님, 항상 자신보다 '우리'가 먼저였던 선생님, 그리고 그 우리 안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똑같은 크기로 사랑한 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호호아주머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