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 둘이 어머니 댁에 다녀왔습니다. 아내는 다른 일정이 있어 이번엔 빠졌습니다. 덕분(?)에 모처럼 피를 이어받은 3대가 오붓하게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영하권으로 떨어진 추위에 어머니께선 민물매운탕이나 곱창전골같이 바글바글 끓여 먹을 수 있는 뜨끈한 음식을 선호하실 텐데 ‘민’자나 ‘곱’자만 꺼내도 딸아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곱창구이는 잘 먹으면서도 곱창전골은 입에 대지를 않고, 초밥은 좋아하면서도 생선매운탕은 아예 먹으려 하지 않는 딸아이의 식성이 문제입니다.
딸아이에게 선택권을 넘기니 설렁탕이 먹고 싶답니다. 어머니께선 손녀딸이 먹고프다니 흔쾌히 그러자 하십니다.
설렁탕/봉희설렁탕
: 봉희설렁탕은 백김치, 배추김치,깍두기 등 김치 삼총사가 특히 맛있는 설렁탕집으로 명성이 자자했었다.
어머니 댁에서 가장 가까운 설렁탕집은 36년 전통의 봉희설렁탕(since 1981)이지만 지난여름... 아! 그날도 아내가 빠졌었군요. 암튼 지난여름 설렁탕을 먹으러 갔었다가 봉희설렁탕에선 그 집을 빛나게 했었던 김치 삼총사 중 하나였던 백김치가 2017년도부터 행방불명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에 삐진 나는 '백김치를 돌려됴!‘라는 글을 카페에 올렸었습니다. 암튼 이번엔 패스~
어머니 댁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설렁탕집은 35년 전통의 모래내설농탕(since 1982)입니다. 봉희설렁탕과 모래내설농탕 사이에도 다수의 설렁탕집이 있겠습니다만 내 머릿속에 각인된 설렁탕집들 중에서 어머니 댁을 기준으로 거리 순으로 배치하면 봉희설렁탕, 모래내설렁탕, 중림장(since 1972), 이문설농탕(since 1907), 마포옥(since 1949) 순입니다.
모듬수육/어머니대성집
: 어머니대성집의 영업시간은 오후 6시 30분부터 익일 오후 4시까지. 정기휴일은 일요일 오후 4시부터 월요일 오후 6시30분까지
수육만 놓고 보자면 여러 설렁탕집들을 제치고 50년 전통의 해장국집인 어머니대성집(since 1967)의 것을 압도적 1위로 꼽습니다. 내 취향에는 이집의 모둠수육이 서울에서 가장 낫습니다. 대개의 설렁탕집 수육은 육수를 내는데 너무 힘을 쓴 탓인지 고기가 퍽퍽하고 별맛이 없기 십상인데 이집의 것은 내가 기억하는 한 늘 야들야들 촉촉한 상태로 제공 받았었습니다.
수육+내포/청진옥
: 소머릿고기+내포의 구성
어머니대성집의 개점시각이 오후 10시에서 오후 6시30분으로 앞당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내장수육을 먹으러 갔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날이 정기휴일(일요일)이라 문전에서 되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안으로 80년 전통의 청진옥(since 1937)에서 모둠수육과 해장국을 먹었었습니다. 이집의 모둠수육도 먹을 만한데 해장국에서 슬며시 풍기는 약재냄새는 내 취향이 아닙니다. 수육과 더불어 해장국 역시 어머니대성집의 것이 서울에서 가장 내 취향에 맞습니다.
이궁...모래내설농탕에 대한 썰을 푼다는 게 어찌하다 보니 여러 음식점을 언급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내용은 모두 한 개인의 취향에 한정된 것이니 너무 유념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설농탕/모래내설농탕
: 특설농탕은 고기가 매 숟갈질마다 건져질 정도로 많이 들어 있다. 소머리고기도 일부 섞여 있다.
모래내설농탕에서 어머니는 해장국을, 딸아이는 설농탕을 주문했습니다. 나는 모둠수육을 먹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머니와 딸아이가 협조를 안 하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듬뿍 담아 특설렁탕을 주문했습니다. 고기는 좀 퍽퍽했지만 육수가 구수하니 좋았습니다. 주차가 용이한 것도 이집의 큰 장점입니다.
어머니의 컨디션은 좋아 보이시는데 소화를 제대로 못 시키시니 식욕만큼 잘 드시지를 못하십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특히 좋아하실 만한 후식을 먹으러 갔습니다. 소시적 어머니께서 쑤어 주시던 녹두죽과 팥죽이 생각나던 참이라 어머니께 단팥죽을 대접해 드려야겠다고 염두에 두던 참이었습니다.
단팥죽하면 우선 떠오르는 곳이 삼청동의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인데 거긴 주차가 몹시 불편하니 패스~
단팥죽/연남살롱
말차푸딩/연남살롱
카푸치노/연남살롱
차선책으로 모래내설농탕에서 가까운 연남동에서 단팥죽을 먹을 수 있는 두 집을 미리 물색해 두었습니다. 그 중 한 곳인 연남살롱에 마침 빈자리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단팥죽을, 딸아이는 말차푸딩을, 나는 카푸치노를 주문했습니다.
연남살롱
연남살롱은 협소한 공간에 자리배치를 오밀조밀하게 해놓은 젊은이들의 아지트같은 공간인데 우리가 입장하여 평균연령을 확 높임으로써 물을 흐려놓은 것이 아닌지 염려가 됐습니다...만 아재도, 할머니도 마땅히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단,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하는 것이 룰입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여러분~ 이젠 누리시라구요.
첫댓글 좋구먼...
나는 천둥 번개 친구삼아 김치전과 매콤편육에 쐬주 한 잔 하고있구먼 ㅎㅎ
한참 바쁜 시기에 헐레벌떡 보내느라 정신이 없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