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교육이나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들이 전쟁터에 전투병으로 나간다면 어떨까? 그들이 그 엄혹한 현장으로 내몰린다면.
오늘날 노동현장에 마치 그렇게 나가는 노동자들을 많이 본다. 그런 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사전 교육이나 연습 없이 곧바로 위험한 노동현장에 투입되는 노동자들. 그 피어린 노동현장은 과연 누구를 위한 자리인가? 알사(가명. 방글라데시 29세)는 공장에서 일한 지 20일만에 크게 다쳤다.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그 작업장에 투입되었다. 플라스틱공장에서 그는 포장작업을 했다. 사전에 안전교육이나 실습은 없었다. 기계를 이용해서 일을 하다 왼손이 기계에 말려들어가는 바람에 손바닥 살이 다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손가락 3개가 부러졌다. 병실에서 만난 그는 아직도 마취 기운이 좀 남아있는 상태였다. 몇 시간에 걸친 응급수술을 받고 병실로 방금 전 올라온 거다. 그와 눈인사만 하고 병실을 일단 나왔다. 그가 더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다. 옆방에 입원한 인도 노동자를 먼저 만났다. 알사는 한국말을 곧잘 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그가 한국어를 잘 하는 걸 보면 여기 오기 전에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짐작이 갔다. 영어도 곧잘 했다. 그에게 먼저 사고경위를 물었다. 지난밤 그는 기계 앞에서 밤새워 야간작업을 했다. 매일 12시간씩 하는 야간노동이었다. 사고는 야간 노동이 다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새벽 5시쯤 나고 말았다.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한 손이 망가진 거다. “My family is poor. My family is poor.” 침대에 누운 채 다친 과정을 설명하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눈물이 베갯잇을 적셨다. 그가 이 말을 하며 흐느껴 울 때 나도 눈물을 흘렸다.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곁에 앉아있던 나는 몸을 굽혀 그를 안아주었다. 그가 거듭해서 사용한 단어 'poor '를 나는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였다. 첫째는 ‘가난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불쌍하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의 고향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버스로 8시간을 들어가야 되는 오지였다. 거기엔 그를 의존하는 빈한한 가족 5식구가 살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오자마자 졸지에 한 손을 크게 다쳐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의 꿈이 깨져 불쌍하다는 것이리라.
알사가 저녁 식사를 마치는 모습까지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상념에 빠졌다.
자문자답도하며. “약탈적 자본주의사회의 민낯을 나는 오늘도 목격한 거지?”
“전쟁터 같은 노동현장에서 피 흘리고 쓰러진 사람을 두 눈으로 또 본 거야”
“ 자본주의는 역시 노동하는 사람들의 피를 먹고 사는구나”
“해마다 산재로 죽는 외국 노동자가 2천명이 넘지. 죽는 사람이 그 정도니 장해를 입는 노동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100만 이주노동자들의 산재율은 그 5배나 되지” “천만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모자라 100만명을 더 끌어들여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시키며 생명을 약탈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지?”
“오로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돌아가는 사회는 미친 사회지?”
“생명의 극대화를 위한 새로운 사회 -하나님나라는 아직도 멀기 만한 건가?”
"민주적인 노조 조직률이 10%도 안 되는 걸 보면 그 나라 아직 멀었지?"
“부자 편에 선 교회나 종교들이 번창하는 걸 보면 그 나라는 요원한 거지?”
대표 김달성목사
첫댓글 안타까운 사연이네요~~ 우리는 좀 더 이방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될것 같아요~~
일제시대 아픔을 잊지 말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