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하며 노닐기를 사모하는 객이 있어 / 客有慕逍遙之遊
세속의 이해득실 마음에서 내려놓고 / 斂衝氣之機
우주를 굽어보고 우러러보니 / 俛仰宇宙
가슴속은 한없이 넓고 넓도다 / 跌宕襟期
우연히 붕어가 수레바퀴 자국 괸 물에 빠져 / 偶見轍中之鮒
큰길에서 퍼덕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 橫於中逵
고기가 머리 들고 헐떡거리며 / 魚乃擡首呴喁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직시하며 / 直視瞠眙
이렇게 말하였다 / 而言曰
아!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 되었소 / 嗟乎遲子之來久矣
내 본래 천성이 어리석고 / 性本冥頑
운명마저 기구하여 / 命舛數奇
무리와 떨어져서 / 離群絶類
이곳에서 곤액을 겪고 있다오 / 困阨于玆
물이 얕아 몸을 다 담글 수 없고 / 蹄涔不足以有容
거품으론 몸 충분히 적시지 못하는데 / 涎沫不足以爲滋
모래바람 불어닥쳐 눈을 못 뜨고 / 風沙莽其眯目
이글대는 햇볕이 살을 태우니 / 炎景爍兮曝肌
입을 벌려 보려 해도 벌릴 수 없고 / 口欲呿而不擧
꼬릴 자꾸 흔드느라 지쳐 간다오 / 尾頻掉而益疲
처음에는 제멋대로 몸을 틀어 보았지만 / 初蜿蟺而自肆
뜻대로 되지 않고 더욱 위태로워지니 / 卒蹭蹬而愈危
힘이 없어 비틀비틀 / 躨跜無力
못 버티고 휘청휘청 / 踸踔難支
살이 타고 물이 말라 / 乃焦乃涸
마침내 가지처럼 삐쩍 말라 버렸다오 / 竟就枯萎
우물 안 개구리도 잘난 척하고 / 井蛙猶以自大
진흙 속 미꾸리도 거만 떨건만 / 泥鰌得以相欺
서강을 바라봐도 미칠 길 없어 / 望西江兮莫及
옮겨 줄 이 없는 것을 슬퍼했다오 / 悲無人兮轉移
죽을 지경 되었지만 아는 이가 없으니 / 濱於死而莫之悟
가련토다 실낱같이 위태로운 목숨이여 / 哀性命兮如絲
때때로 분이 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 / 有時扼腕
예전에 살던 못을 떠올려 보면 / 思想舊池
크고 작은 고기들이 / 洪纖鱗族
짝을 지어 헤엄치고 / 朋遊群嬉
마름 뜯어 먹으면서 / 含蘋唼藻
모두 행복했었는데 / 咸得其宜
나만 무슨 죄가 있어 / 予獨何辜
이 지경에 이르렀나 / 而至於斯
그대 지금 몇 됫박의 물로 나를 구해 / 今子救我於升斗之水
맑은 물결 출렁이는 강물에 놓아주면 / 放我於淸泠之波
여유롭게 꼬리 치며 자유자재로 / 則悠揚撥剌奮迅逶迤
아가미와 비늘로 물살 가르고 / 磨顋拂鱗
지느러미 살랑살랑 흔들어 대며 / 鼓鬣揚鬐
혹은 못에 잠겨 있고 / 或潛在潭
혹은 기슭에서 뛰어오르며 / 或躍緣崖
삼강과 오호를 / 三江五湖
마음대로 오가리라 / 任其所之
가벼운 물결 타고 오르내리고 / 乘輕潮而上下
하얀 물결 밀치고 거슬러 올라 / 排雪浪而追隨
이무기와 짝이 되어 힘을 빌리고 / 侶蛟螭而藉力
새우와 거머리로 배를 채우며 / 飽蝦蛭以療飢
깊은 못에 조용하게 잠복했다가 / 沕深淵以遵晦
큰 골짝에 마음껏 돌아다니리 / 縱大壑而發施
그러다가 뭉실뭉실 구름 일고 안개 피면 / 勢將噴雲泄霧
모습을 변화시켜 / 變化容姿
천길의 용문에 올라 / 登千尺之龍門
꼬리를 잘라내고 높이 치달려서 / 期斷尾以高馳
삼춘의 가뭄을 해갈시키고 / 蘇三春之旱霓
만백성의 고통을 구제하리라 / 救萬姓之瘡痍
그대는 나를 구제할 생각이 있는가 / 子將有意於拯救之乎
그리하면 건어물전에 진열되는 신세 면하고 / 庶將得免於枯魚之肆
조화에 힘입어서 위의를 되찾으리라 / 賴造化以爲儀
객이 빙긋 웃고 나서 이렇게 답하였다 / 客乃莞爾而答曰
하늘과 땅 사이에 / 天地之間
온갖 사물들이 있어 / 品彙紛滋
길흉이 섞여 있고 / 吉凶繆戾
영욕이 엇갈리니 / 榮辱參差
물은 각각 만나는 바가 있고 / 物各有遇
만남에는 때가 있는 법 / 遇各有時
그러니 얻은들 무엇을 기뻐하고 / 得何爲喜
잃은들 무엇을 슬퍼하겠소 / 失何爲悲
영향력을 행사하여 옮겨 주고 발탁함은 / 吹噓轉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니오 / 非我所爲
그러고는 객이 끝내 말이 없으니 / 於是客卒無語
붕어도 길게 한숨을 쉬고 / 魚亦噫嘻
지척의 천문을 우러러보며 / 望天門之咫尺
은택이 내려지기만을 바랐다 / 思潤澤之下施
註: 이 부(賦)는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나오는 '학철부어(涸轍鮒魚)' 고사(故事)에 근거를 둔 작품인데 학철부어의 고사는 다음과 같다. 장주(莊周)가 길을 가다가 수레바퀴 자국에서 괴로워하는 붕어를 만났는데, 붕어가 “나는 동해의 소신(小臣)인데, 당신이 약간의 물만 가지고도 나를 살릴 수 있을 거요.”라고 하였다. 장주가 “좋다. 내가 지금 남쪽의 오월(吳越)의 왕을 만나러 가는 중인데, 서강(西江)의 물을 밀어 보내서 그대를 맞이하면 되겠는가?”라고 하자, 붕어가 버럭 성을 내면서 “나는 늘 살던 물을 잃어버려 몸 둘 곳이 없는 것이오. 몇 되나 몇 말의 물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인데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하니, 차라리 건어물전에 가서 나를 찾는 것이 낫겠소.”라고 하였다. 이 고사는 흔히 극한 궁지에 몰려 다급하게 구원을 청하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포부를 펴지 못하고 곤궁한 처지에 몰린 지식인을 비유하였다. 즉 곤궁한 처지를 괴로워하며 출세하여 자신의 능력과 포부를 펼치기를 갈망하는 사람과, 세속적인 부귀영달을 초탈하여 크나큰 자연 속에 자유자재로 노닐고자 하는 객(客)을 등장시켜,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대응 방식과 가치관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출전: 고전번역원 역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