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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hns139gx4d4
위 동영상에서 듣는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 두 노래는 목포를 노래하지만 민족의 노래로 승화해서 한겨레, 한민족이 함께 부른다. 「목포의 눈물」은 잘 알아도 「목포는 항구다.」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당대 최고의 작사가 조명암이 쓴 가사에 이난영을 있게 한 오빠 이봉룡이 곡을 붙여 1942년 이난영이 부른 훌륭한 노래 였지만 불행이도 조명암이 월북해서 북한의 최고 예술인 대접을 받다보니 금지곡에서 풀렸어도 제일 늦게 풀린 노래다. 그래서 그 노래가 생소함이 있는 줄 안다. 2016년 6월 13일 가요무대에서 이 두곡이 부각되었다. 앞에 나오는 목포의 눈물은 스튜디오 녹음이 아니라 1957년 고복수 가수 은퇴장에서 부른 노래라는 점을 이해 애 주셨으면 합니다. 스튜디오 녹음은 목포는 항구다. 끝 부분에 있습니다. 이난영 탄생! 100년, 목포의 눈물 82년!
이난영! 목포의 눈물! 그가 탄생한지 100년이 되고 그 노래가 불린지 82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두노동자 아버지와 남의 집 살이 어머니 따라 제주도에서 '불사조'로 시작된 16살 때의 노래인생, 19살 때의 목포의 눈물을 만나 오늘의 이난영이 있게 되었다. 「목포의 눈물」 이난영의 그 노래는 단순한 가요가 아니라 민족의 혼이 담겨있는 국민의 노래 민족의 노래다. 82년의 생명을 이어온 노래! 한겨레, 한민족은 그 노래를 들으며, 부르며 마음을 달래며 즐거워했다. 이난영에 관한 글은 춘하추동방송이 문을 열면서 올리기 시작해서 아나운서 임택근과 더불어 제일 많은 글을 올렸기에 더 쓸 얘기가 없을 법 하지만 그가 탄생한 6월을 맞아 또 한편의 글을 올린다.
해방 후에는 우리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노래로 자리 매김한 목포의 눈물이 특히 호남인 들에게는 가슴 깊이 새겨져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누구 입에서 부터인지도 모르게 이 노래가 울려 퍼진다. 프로야구 해태타이거즈가 출전할 때면 입을 모아 이 노래를 부르며 응원했다. 이난영 탄생 100년을 계기로 목포시에서는 그를 기리는 많은 행사들이 열렸고 1959년부터 미국 땅에서 최초의 한류열풍을 일으킨 주인공 「김시스터즈」의 리더 김숙자님도 현장을 찾아 여러 행사에 참여했다. 70대 중반의 김숙자님이 젊은 모습 으로 신세대 미미 시즈터즈와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는 장면이 아름답습니다. 5월 30일부터 6월 4일까지 6일간 펼친 기념행사는 유품 기획전시를 비롯해서 시민 대토론회, 김숙자 토크 콘서트, 관현악 경연대회, 모창 경연대회, 헌정무대와 난영가요제, 시립예술단체 합동 공연 등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목포시민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찾아주셨다. 박홍률 목포시장을 비롯해서 참여자들은 함께 노래 부르며 의미를 되새기며 즐거워했다. 기념행사의 피날레를 장식한 ‘찬란히 빛나리. 목포의 이난영’ 공연은 시립교향악단, 무용단, 합창단, 소년소녀합창단, 연극단, 국악원 등 6개 시립예술단체가 연합해 선보인 기획공연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며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에 앞장 서 참여한 미미 시즈터즈가 “신세대 걸 그룹도 함께 부르는 목포의 눈물은 슬프지만 희망이 느껴지는 묘한 힘이 있다”고 했듯이 이 노래는 세월이 흘러도 지역을 뛰어넘고 세대를 초월해서 누구나 함께 부른다. 목포시는 ‘이난영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이난영 생가 터를 공원으로 확대조성하고, 원도심에는 ‘이난영 로드’로 명명된 탐방로도 개설될 예정”이라며 “이난영과 함께하는 목포의 문화관광 사업은 지금부터 시작” 이라고 했다. KBS는 13일 오후 10시부터 방송된 가요무대를 '불멸의 가인 이난영 탄생 100년' 이라는 제목으로 특집방송을 했다. 모두가 함께 부른 ‘ 목포의 눈물’을 시작으로 김연자의 ‘목포는 항구다.’로 이어져 하춘화, 문연주, 김용임, 김란영, 안다미, 김수찬, 권민정, 금잔디, 윤수현, 민수현, 문희옥, 서지오, 권성희 등이 출연해 '해조곡' '봄 아가씨' '아버지는 어데로' '다방의 푸른 꿈' '알아 달라우요' '명랑한 젊은 날' '진달래 시첩' '고향은 부른다' '바다의 꿈' '희망' '고향' 등을 열창했다. 마지막엔 여성 출연자 전원이 나와 '목포는 항구다',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막을 내렸다. 이난영의 딸 김숙자가 무대에 오르지 않았지만 그의 인터부와 어머니와 함께 부른 노래 등이 인서트로 방송되었다.
전남 목포 출신의 이난영은 1916년 6월 6일, 전라남도 목포시 양동 126번지 속칭 양동 6거리에서 태어나 1965년 4월 11일일 세상을 떴다. 본명은 이옥례라고 하지만 호적상으로는 이옥순(李玉順), 목포공립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1930년 어머니 따라 제주도에 가, 극장 막간 가수로 노래를 불렀다. 그의 데뷔곡은 1931년의 불사조다. 그가 이난영이란 예명을 쓴 것은 막간가수로 활동하면서 부터로 토월회, 태양극단을 이끌었던 박승희로부터 받은 것이다. 박승희는 조선조 말 박정양 대감의 아들로 당대 이름 있는 연예인이었다. 태양극단에 있던 이난영이 오케레코드 이철사장과 만난것은 어쩌면 큰 행운 이었다. 1934년 조선일보사 향토의 노래 공모에서 3,000명의 응모자를 물리치고 1등으로 당선된 목포의 문학청년 문일석의 ‘목포의 노래’를 오케 (O.K) 레코드사 이철 사장이 목포의 눈물로 바꾸어 음반을 내놓자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 이난영은 일약 대 스타가 되었다. 이철사장은 유일한 한국인 레코드사 사장이었다. 1935년 JODK 경성방송국을 통해 일본 본토와 만주, 대만까지 연결된 방송망을 통해서 이난영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1934년 왕수복에 이어 두 번째로 이루어진 전 일본을 향한 방송이었다. 그 시절 그 방송은 별 중의 별, 스타 중의 스타만이 할 수 있는 방송이었다. 이난영은 스타 중의 스타가 된 것이다. 1935년 민족잡지 삼천리지 에서 가수 인기투표를 한 적이 있다. 이난영은 왕수복, 선우일선과 더불어 3대 가수로 인정을 받았다. 이난영이 그 시대를 대표 하는 만능 연예인 김해송과 결혼 한 것은 왕성한 가수 활동을 하던 1937년의 일이다. 목포의 눈물이 대 히트하고 그로부터 이난영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레코드사의 영입경쟁대상이 되기도 했다. 목포의 눈물은 민족의 한을 안은 민족의 노래였다. 이 노래가 히트하면서 일본 경찰이 가사를 문제 삼았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이 구절이 문제였다. 가사로 보면 일본으로서는 크게 문제를 삼을만한 내용이었다. 노래 작곡을 한 손목인은 가사가‘원한’이 아니라 남녀사랑을 상징하는 ‘원앙’이라고 둘러 붙혀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일화가 있다. 더 자세한 얘기는 이미 써 올린 글로 가름한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이분이 울먹이며 목이 메여 노래 하시는군요. 이러한 설명들이 요즘 세대 들에게 이 시대의 노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난영씨의 따님이신 분들이 다들 노인이 된 지금그분의 고향인 목포에서 그분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어 길이 길이 기리며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관런글 보기 영문자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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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보 목포의 눈물 작곡 손목인 유달산에서 라스베이거스에서 니난영과 세 딸 김시스터즈 목포와 삼학도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