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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요일이라서 평소에 출근하시던 귀하신 여러분들도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반갑습니다.
산신 기도 매월 음력 7일입니다.
산신기도는 다른 기도와 마찬가지로 발원을 하고 또 가피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산신기도는 부동산 기도 또 돈 기도 사업 성취 번창 기도를 많이 합니다.
또 내일 8일은 약사재일, 약사기도는 마음과 몸의 건강 인연 환경 세상 삶이 더욱더 건강해지고 풍요롭게 하는 기도입니다.
또 음력 9일 독성기도는 특히 합격 당선 창조를 위한 기도를 주로 많이 올리고 있습니다.
음력 18일은 지장기도죠.
지장기도는 우리 육신 생명의 뿌리이신 조상님들을 위해서 기도를 올리는 기도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함께 이롭게 하는 기도다.
지장경에는 그렇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산신기도는 먼저 대비주 21독을 하고 또 산왕경도 21 독을 했습니다.
대비주를 지송하면서 마음이 점점 밝아지고 마음이 점점 맑아져서 밝고 밝고 맑고 맑은, 밝음의 우리 본래의 마음자리에 머물게 되죠.
이 밝고 고요한 이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오늘 하루만 그렇게 사시면 됩니다. 오늘 하루만. 또 내일은 내일도 오늘 하루만 그렇게 사시면 매일 매일 밝고 고요한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이 밝고 고요해져서 본래의 성품이 드러나는데 그 성품 가운데는 무한한 지혜와 또 사랑과 능력과 가능성이 본래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밖에서 구할 필요가 없고 또 남들에게 구걸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 안에 다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지혜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지령지성 산왕대신입니다. 시방법계 지령지성 산왕대신이다.
이러한 우리 참 생명이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하면 나이는 영원하다는 거예요. 영원하다.
그래서 우리의 참 성품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것들을 발휘하고 또 성취해 내신 분, 이미 본보기를 보여 주시는 분이 산왕대신이잖아요.
산신기도를 올리는 우리들도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그 산왕대신의 성품 가운데 우선 용맹심이 있잖아요.
용맹심은 두려움이 없는 무외입니다. 무외(無畏).
두려움이 대비주를 독송할수록 두려움이 다 걷혀서 두려움이 없어져 버린 본래의 용맹심입니다.
우리 본래의 용맹심은 아무 두려움이 없는 그런 용맹심이라는 거예요.
용맹심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가 번뇌의 적이 있다면 번뇌의 적을 무찌르고 또 어떤 재앙, 업장의 적을 무찌른다.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찔러 놓고 보니까 본래로 무찌를 번뇌도 없고 번뇌에 시달리는 나도 없더라.
바깥 대상도 비었더라.
이것이 법공(法空)입니다.
그 바깥 대상으로 인해서 지고 이기고 스트레스받고 하는 그 나도 본래 비었더라.
이게 아공(我空)입니다.
본래 아공 법공입니다.
이게 고요의 자리 밝음의 자리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밝고 고요한 본래의 성품으로 용맹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까 옛날 어른 스님들은 그렇게 비유합니다.
십만 대군이 몰려옵니다.
십만 대군이 몰려오는데 십만 대군을 상대해야 할 장수는 나 혼자 밖에 없어요.
칼 한 자루밖에 없습니다.
이 칼 한 자루를 가지고 십만 대군을 무찌를 수 있는 이것이 용맹심이라는 거예요.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옵니다.
그런데 칼 한 자루로 사방으로 이렇게 하면, 칼 한 자루를 휘두르면 완전히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겠죠. 용맹심으로 그죠.
그러면 사방에서 날아오는 그 화살들이 칼에 휘감겨서 다 후두두둑 떨어져 버리고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없는 마치 적군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마치 뭐 그냥 짚단 베듯이 넘어간단 말입니다.
이 정도로 용맹심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두려움을 벗어버리면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거예요.
어떤 문제 어떤 해결 거리가 있더라도 이러한 용맹심으로 나아가면 해결해 놓고 보니까 본래 문제가 아니었더라.
해결해 놓고 보니까 본래 이것이 기회였고 가피였더라. 이 말입니다.
이 정도로 용맹심입니다.
그래서 산신기도 올리신 분들은 그래서 대인 공포증이니 뭐 일에 대한 두려움이니 또 어떤 상황이 너무 악화되어 있다.
그래서 좌절하고 절망 그 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이 용맹심을 회복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상황이 지금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이것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상황이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지 않은 사람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일이 술술 잘 풀리는 상황에서 일 해결해내는 것은 당연히 좋습니다.
그렇지만 상황이 악화되어 있는 그 가운데서도 산왕대신의 그 용맹심, 우리 용맹심이기도 합니다.
그 용맹심을 발휘해서 해결해 버리는 이것이야말로 오늘 산신기도 올리신 우리들의 삶입니다. 해결해 놓고 보니까 본래 문제가 없었더라. 이 말입니다.
나의 힘을 키워주는 그런 계기였더라.
이렇게 해석이 바뀔 수 있습니다.
마음이 밝고 밝고 고요하고 고요해지게 되면 중생의 눈, 소극적인 눈, 우월감 열등감의 눈, 잘 난 눈 못난 눈, 그 모든 눈, 모든 색안경이 싹 벗어지잖아요.
새로운 눈을 뜨고 바로 보는 거예요.
이제 바로 봐.
본래 부처님으로서 부처님의 눈으로 바로 본단 말입니다.
바로 보니까 정윤이 오늘 첫돌이잖아요.
앞당긴 첫돌 불공 올렸는데 첫돌인 정윤이를 바로 보니까 아주 어리고 이제 일 년밖에 못 살았네.
그러니까 나보다는 뭐 지금 삼십 년이나 더 어리단 말입니다.
그렇게 어리게 보이는데 눈을 뜨고 바로 보니까 나하고 동갑이야. 나하고.
뭔 말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까?
제가 어떻게, 첫돌 맞이하는 정윤이하고 엄마하고 동갑이란 말입니까?
우리가 회사에 취직을 합니다.
입사 동기잖아요. 동기야.
나이가 똑같애. 회사 들어온 나이는 똑같애.
군대도 가잖아요. 나이 차이가 두 살 세 살 나더라도 같은 날 입대하면 동기야.
같은 기수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윤이하고 엄마하고 만났잖아요.
만난 날이 똑같잖아요. 그럼 동기야. 똑같아.
이렇게 말씀드리지만 본래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자리에서는 정윤이나 정윤이 엄마나 정윤이 할머니나 우주나 다 나이가 없다 이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이 가문에 태어난 것은 엄마가 훨씬 빠르죠.
정윤이는 이제 한 살밖에 안 됐습니다.
우리 가족을 바로 보는 그런 부처님의 눈으로 바로 보는 입장은 무엇인가?
모자라서 야단치고 ‘내 뜻을 따라라.’
하고 통제하고 또 뭔가 세상이 두려운 곳이다 하는 그러한 깔려있는 신념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돼.’
금지하고 이렇게 하는 삶이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면 본래 나와 마찬가지로 무한한 지혜와 자비와 가능성과 능력을 갖춘 존재로 보면서 친구처럼 대하는 거예요.
도반처럼 대하는 거예요.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시죠?
우리 OOO보살님은 따님이 친구 같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딸은 어떤가 하면 딸은 "그러면 마음먹자."
이제 통제 안 하고 대 자유다. 내 멋대로 할래.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죠.
이 세상에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이시고 이 세상에 태어난 지가, 짬밥이 하루 볕이 무서워.
회사 들어가 봐요. 1년 선배가 하늘같지.
그런데 이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으로서는 하늘같이 따르고 공경하고 존경하지만, 그 위에서 부모님이나 윗사람들은 아랫사람들을 또 도반처럼 보는 거예요. 친구처럼.
그러면 그 전에 내 뜻대로 주무르려고 하고 통제하고 금지하고 야단치고 하는 관계에서는 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꼼짝 못 하고 "네" 합니다.
말 잘 듣습니다.
그런데 부모님 뜻대로 하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있을 때는 책임이 부모님한테 돌아갑니다. 마음으로부터.
부모님 뜻대로 따랐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이 자립이 자꾸 늦어지는 거야.
대비주로서의 삶이 어려워요.
그런데 부모님이 친구처럼 대하고 도반 (道伴)처럼 대해서 자식이라도 나이가 어리더라도 서로 의논하고 그 뜻을 맞춰주고 도와주는 그런 관계에서는 그 아이가 자녀가 부모님을 그냥 무시하고 부모님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길 줄로 우리가 우려하는 경우가 있죠.
그렇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럴수록 어떤 마음이 싹이 트고 본래 마음이 자라는가 하면 존경과 사랑과 감사가 점점 늘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녀로서는 부모님을 존중하고 곤경하고 모시는 그런 마음을 내고 부모로서는 자식을 정말 대등하게 도반으로 친구로 부처님으로 대하는 이것이 바로 뜬 우리들의 눈으로 자식을 보고 부모님을 보고 또 대하고 이런 가족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다른 관계도 마찬가지겠죠.
알고 보니까 나와 마찬가지로 절대자들이더라.
알고 보니까 다 나와 마찬가지로 유일자들이더라.
알고 보니까 한 분 한 분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조상님들의 사랑 그 덩어리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난 귀하고 귀한 가장 귀한 존재더라. 하는 거예요.
이렇게 바로 우리 정윤이를 보고 부모님을 보면 이미 그렇게 살고 계신는데 참 행복합니다. 그죠.
하~~! 정말 감사하고 이 존재 자체로 저렇게 다 어지럽혀도 얼마나 이쁩니까? 그죠?
기저귀 갈 때도 이뻐.
이런 눈이 바로 본래 우리 근원의 자리 자비궁전 지혜자리에서 일어나는 마음이에요.
이런 마음이 우리 본심입니다.
이것이 여기서 나오는 마음이 진심(眞心)이에요.
이것만 진짜야. 요것만.
그런데 나중에 어떤 일이 있다고 해서 미워하고 어떤 일이 있어서 불편해하고 힘들어하고 하는 것은 전부다 아상이 굳어져서 자기 입장, 자기 기준, 자기 잣대, 자기 틀이 생겨서 여기 안 맞으면 힘들어지는 거거든요.
이것은 아상이 이미 똘똘 뭉쳐져 있다는 것은 이미 근원의 자리에서 벗어나 있다. 이 말입니다.
“그 아상을 버리라” 이 말입니다.
어떻더라고 조건 없이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이 본래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관점이 쟤는 저것이 단점이야. 이렇게 보이잖아요. 어떨 때는.
이것은 아상이 생겨서 그래요.
아상의 자리에서 보는 겁니다.
쟤는 저것이 좀 안 이뻐.
이게 아상의 자리에서 보는 거예요.
요게 벌써 색안경이 생긴 거야.
이럴 때 색안경을 벗어야 돼요.
색안경을 벗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옛날에 단점으로 보이는 그것이 장점으로 보입니다.
옛날에 단점으로 보인 그것을 장점으로 볼 줄 알아야 이게 부처님의 눈이기도 하고 지혜의 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오늘 산신기도하는 날인데 산에 나무들이 많고 많습니다.
아주 우람하고 쑥쑥 자라서 목재로 쓰일 나무만 좋은 것 같죠.
물론 좋습니다. 장점을 보는 거예요.
그런데 나무가 못 생기고 좀 위로 좀 올라가야 되는데 옆으로 좀 퍼지고 아랫배도 좀 나오고 이런 나무는 어떻습니까?
아무도 집 지을 때 발탁을 안 해요. 그죠.
그러니까 아랫배 나오고 키도 작고한 것이 단점으로 보인단 말이에요.
그런데 눈을 뜨고 보면 있는 그대로 가 이게 장점이에요. 장점.
키 작고 옆으로 퍼지고 배 나온 게 이게 장점이란 말입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키 크고 잘난 놈은 잘난 놈대로 좋은 나무고 또 키 작고 아랫배 나온 요놈은 또 그런대로 좋은 놈이더라.
왜냐하면 결국은 나중에 30년 50년 100년 지나고 나서 산을 지키는 나무는 못생긴 나무야. 산을 지키는 나무는 못난 나무야.
그러한 나무들이 가득가득 들어차 있어야 산이 풍성해서 숲을 이루고 거기에 수많은 생명들이 들어와서 의탁을 하고 가지가지 기와요초(琪花瑤草)들이 자라난단 말이에요.
눈을 뜨고 보니까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옛날에 단점으로 보이는 그 사람의 그 면도 장점으로 볼 수도 있다.
관점을 자꾸 다각적으로 봐야 돼. “다각적으로.”
옛날에는 빨리빨리 하고 일등 하는 것이 좋다.
느릿느릿하고 맨 날 게으름 피우는 것처럼 보이고 또 맨날 시험을 보면 맨날 꼴찌 하는 것이 이게 단점으로만 보이죠.
눈을 뜨고 보면 그 자체가 장점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일자무식이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일자무식이 좋은 점이 뭘까요?
장점으로 본다면 일자무식이기 때문에 외울 수밖에 없어. 신묘장구대다라니도.
글 아는 분은 잘 안 외워. 보고하면 되니까.
일자무식이 만약에 수행을 한다면 안 외우면 안 되니까 그냥 달달달 외우는 거예요.
책도 안 봐. 책 안 보니까 어떻게 합니까?
외워서 오직 깊이깊이 대비주를 지송한단 말이에요.
일자무식이 오히려 문자와 언어에 걸리지 않고 오히려 문자가 나오는 자리 언어가 나오는 그 자리에 바로 접속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뜨고 이것을 인정하고 허용하고 단점으로 봤다면 이런 면을 장점으로 본다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한 번 이렇게 관점을 바꿔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산신기도는 부동산 취득 또 부동산 매매, 신축하기 위해서 기도를 많이 올리고 성취가 잘 됩니다.
좋은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서는 원이 뚜렷해야 됩니다.
내가 살고 싶은 지역 살고 싶은 위치에 마음을 두어야 됩니다.
어느 지역에 어떤 위치에 꼭 동네가 아니더라도 또 어떠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내가 집을 마련해서 살겠다.
그다음에는 단독에 살 것인가? 아파트에 살 것인가?
하는 것도 뚜렷하게 그 집 이미지를 아름답고 풍요로운 정말 행복한 더 좋고 그런 자리에 사는 것을 원을 세우셔야 되요.
원을 가지고 있어야 돼.
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 성급하게 할 필요가 없어요.
쫓아다닐 필요도 없고 그것이 오게 해야 됩니다.
다가오게 해야 됩니다. 다가오게.
다가오게 하는 방법은 수행으로 지혜를 늘리고 작복으로 복을 늘려야 돼.
복이 있어야 돼. 복이.
산왕대신이 좋은 땅 정말 이 땅에 머물면서 인류를 위해서 일할 그러한 땅 주인을 구하는데 땅 주인 되려고 매달리는 사람은 많은 데 정말로 그 땅에서 건강과 풍요 행복을 스스로 누리면서 이웃에 인류를 위해서 본보기가 되고 인류를 위해서 헌신할 그런 사람이 없다 이 말입니다. 산왕대신 입장에서는.
매달리기나 하고 조르기나 하지.
그런데 원이 뚜렷하고 자기 일로 자기 인연을 위해서 이로움을 주는 그런 사람은 산왕대신이 발탁하게 돼 있다. 이 말입니다.
어떤 통로로든지, 정보가 오게 돼 있고 오게 되어 있다.
다가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따라 다니고 조급하게 쫓아다니고 이렇게 하면 안 보여.
저 멓리 삼천리 오천리 찾아다녀도 안 보여.
그런데 눈을 뜨고 자기 자리에서 수행하고 작복하면 보인다. 이 말입니다.
다가온다 이 말입니다. 다가오게 해야 돼.
사람도 쫓아다닐 필요 없어.
“귀인 상봉” 우리 원 중의 하나잖아요. 사람도 쫓아다니며 쫓아다녀서 만나면, 1학년짜리가 6학년짜리 쫓아서 놀아줘 놀아줘 해서 만나게 되면 맨날 심부름이나 해야 돼. 그죠.
그런데 6학년짜리하고 놀려면 6학년이 되거나 중학생이 돼야 된단 말이에요.
6학년이 되면 오히려 6학년짜리가 오면 오히려 안 놀아줘.
딴 데 가서 놀아.
이렇게 된단 말이에요.
내가 수행과 작복하는 것이, 이것이야말로 인연이건 부동산이건 성취할 수 있는 길이란 말입니다.
이 자그마한 복 그릇에는 그 복 그릇 크기만큼만 담을 수 있어요.
아무리 욕심내도 안 돼.
욕심내서 집어넣다가는 그릇이 터져서 배 터져 죽어.
그러니까 욕심낼 필요 전혀 없이 자기 복 그릇만 자꾸 키워야 된단 말이에요.
복 그릇을 어떻게 키우는가? 어떻게 키워요?
자기 일로 키워야 돼.
사업하는 분들은 자기 이 능력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플러스시킬 수 있을까?
오는 고객들한테 어떻게 더 편안하게 이로움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이것을 화두로 삼아서 연구하고 개발하고 실천하고 하는 거예요.
집에서도 좋은 집 그렇게 아까 원을 뚜렷하게 가진 다음에는 지금 집은 좁고 별로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여기서 뭐 대충대충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점점 늦어집니다.
지금 이 터, 지금 이 공간 가운데서 사랑을 가득하게 하고 여기서 복을 짓는 거예요. 여기서,
원대한 비전은 가슴속에 품고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서만 가능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 된다 말입니다.
지금 이 인연에서 해야 돼요.
이 인연으로 지금 이 일로 해야 돼요.
이것을 부실하게 하면서 원이 큰 것은 이것은 늘 뜬구름 잡는 것이고 늘 무지개 찾아다니는 거예요.
그러니까 실천은 어제나 내 집에서 지금 내 직장에서 지금 내 도량에서 해야 되는 거예요.
여기서 그때 원이 이루어졌을 때의 풍요로운 마음 또 평화로운 마음 또 사랑 가득한 마음을 실천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돈도 많이 들어오는 길을 냈잖아요.
돈이 여러분들한테 들어오기를 원하는데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안 들어오겠죠. 그러니까 자꾸 돈이 따라오도록 여러분을 좋아하도록 자꾸 해야 돼.
돈이 누구를 좋아할까요?
“돈이 나를 좋아한다.” 이렇게 믿어.
나도 돈을 좋아하고 돈도 나를 좋아한다. 그죠.
돈이 좋아하는 사람은 누군가 하면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돈이 좋아합니다.
사람에너지하고 돈 에너지하고 본질이 같애요.
그러니까 여러분 남편이 돈 많이 벌면 여러분이 좋잖아요. 그죠.
그럼 남편을 좀 좋아해 봐.
남편 마음이 흐뭇하고 남편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울 때 그때 돈이 들어와요.
행복한 공간에 돈이 흘러 들어와요.
이렇게 탁 내치고 하는 공간에는 돈이 내치일까 봐, 잘릴까 봐, 못 들어가.
그러니까 다 받아들이고 허물을 덮어두고 다독여 주고 포근하게 해주고.
막 술 마시고 들어와서 뭐 새벽까지 열 번 이야기 했는데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이렇게 하는 분 있잖아요.
그런 분들은 뭘 갈구하는가 하면 “좀 들어줘 봐.” 이 말입니다.
들어줘 봐 하는데 열 번 들었는데 한 번도 안 들었거든.
왜냐하면 아예 안 들었거든.
한 번만 진심으로 들어봐요.
한 번만 진심으로 다 들어요. 진심으로 들어요. 진심으로.
가르칠 것도 없어요.
왜냐하면 그분이 다 알고 있는데 뭐.
몰라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거든.
다 진심으로 들어서 ‘진심으로 나를 받아들이고 나를 이해하는구나.’
하는 확인이 되어 버리면 이제는 졸업이 돼 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남편이 편안하고 아들이 편안하고 딸이 편안하게 정말 즐겁게 지내는 집이 돼야합니다.
집이 정말로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됩니까?
남편이 그렇게 안 해야지.
애들이 빨리빨리 들어오고 이렇게 해야지.
돈 잘 벌어주고 이렇게 해야지.
그런데 남편 할 일에 간섭하고 아들딸 일에 간섭할 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거야.
내가 할 일이 뭔가?
내가 어떻게 할까?
요것만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하면 내가 그렇게 할 때부터 내 삶이 내 뜻대로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책임을 전가시키고 불편해하고 바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바라는 것은 요게 부족한 마음이거든요.
부족한 마음이 남아 있는 한은 부족한 현실이 계속 이어져요.
언제부터 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부동산 임대 취득 매매 신축하는 분들 마음에 탁 이미지가 만들어졌죠?
또 돈이 술술술 들어옵니다.
또 여러분은 돈이 좋아하는 분이야.
돈까지 여러분한테 집착을 자꾸 하네. “돈이.”
내가 집착을 끊으니 돈이 집착을 해. 이 정도 돼야 됩니다.
그리고 사업도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냉이를 캐서 팔아도 또 무슨 뭐 청소업을 하더라도 어떤 사소한 것을 하더라고 풀빵이나 과자 만들어서 팔아도 아이스크림 하나를 팔아도 여기에서 자기 일에서 무궁무진한 풍요가 무한으로 나올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창조 마인드를 가지고 도와주는 마음으로 이로움을 어떻게 하면 더 기쁨을 줄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울궈낼까? 하면 거꾸로 돼요.
더 도와줄까 더 이로움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사업도 크게 번창하게 됩니다.
오늘 산신기도 오신 여러분들은 용맹심으로 좌절해 있는 분들은 힘차게 더 나아가시고 부동산 돈 사업 그 원이 기대 이상으로 모두 성취가 됩니다.
감사합니다._()()()_
첫댓글 문풍지는 미세한 떨림으로 바람을 잡듯
스님 말씀은 세포 깊숙한 곳까지 감성을 자극하는
묘한 비법이 있어요
아하!
이렇구나 하면서
한꺼번에 깨쳐집니다.
아공
법공 .고요한 자리 밝음의 자리에서
지혜가 샘 솟습니다.
분명 알고 있던 법문인데
마음따라 새롭게 들립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수일보살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