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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 : 믿음 BIW : 돌아가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때로는 쉽지 않은 어렵고 힘든 길이라도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출산을 앞둔 산모가 배가 너무 아파서 급하게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남편은 진찰실 밖에서 아기가 빨리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진찰실에서 의사선생님께서 걸어 나오자 남편이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이에 의사선생님께서 “배탈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출산을 앞둔 산모이기 때문에 배가 아프다니까 당연히 아이 낳는 줄로 알았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이렇게 잘 하고 싶어도 잘 되어 지지 않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어떤 일이든 하고자 할 때 종종 이상한 변수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변수가 등장해서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합니다.
변수가 생겼을 때 지혜롭게 잘 풀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믿음과 은혜를 주셔서 잘 풀려 지는 것도 축복입니다.
P4.
과거 로마제국 시대에 유럽과 중동지역의 모든 도로는 로마로 통한다고 하였던 적이 있다.
로마제국이 유럽과 중동지역을 송두리째 점령하면서 가장 강력한 제국을 형성했기 때문에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가는 길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로마로 가는 길은 오직 한 길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길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모로 가나 도로 가나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도 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오직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는 매우 다양한 길이 있고,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 자신이 사용하는 방법만이 옳은 길이라고 고집해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가 없다.
그 길이, 그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는 길도 마찬가지이다.
광야 생활을 마감하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중간에 놓인 에돔족들이 거주하는 땅을 통과하는 것은 아주 쉬운 방법이다.
누구나 그 길을 선택하고 싶을 만큼 쉽고 빠른 방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족이 거주하는 도로를 통과하려고 했던 도로가 “왕의 큰길, 왕의 대로”라고 이름 붙여진 도로이다.
왕의 큰길, 왕의 대로는 그 당시에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활용하기에 아주 용이한 도로이다.
왕의 큰길, 왕의 대로는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경부고속도로 또는 중부고속도로와 같다고 할 수 있는 유명한 도로이다.
그러면 그 당시에 주로 통과하던 왕의 큰길을 지나서 가나안땅으로 올라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이끌어가고 계시는가?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D4.
① 외교사절단을 보내서 타협하게 하시는 하나님.
모세는 지금 진을 치고 있는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낸다.
14-17절에서 모세는 사신들에게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가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 우리 조상들이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우리가 애굽에 오래 거주하였더니 애굽인이 우리 조상들과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당신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사오니, 청하건대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한다.
모세는 사절단을 에돔 왕에게 보내서 히브리 민족이 처한 처지와 상황을 상세하게 알려주면서 에돔 땅을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오라고 한다.
사절단이 에돔 땅을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부탁을 들은 에돔 왕은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라고 하면서 거절한다.
에돔 왕의 거절을 받은 사절단은 “우리가 큰길로만 지나가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낼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지나갈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라고 하면서 다시 청원한다.
에돔 왕은 거듭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라고 하면서 완강하게 거절한다.
비록 에돔 왕에게서 거절을 당했지만, 모세가 사절단을 보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감동시켜 주셔서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꼭 좋은 반응을 받는 것만 감동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좋지 않은 반응을 받을 수 있는 것들도 얼마든지 감동을 주시면서 그 일을 진행시켜 나가도록 하신다.
지금 우리들이 어떤 일을 추진하고 있다면 그 일을 추진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잠언서 16:1에서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감동시켜서 추진하는 그 일에 좋은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정반대의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좋지 않은 결과로 되돌아오더라도 그 일을 추진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일에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의지 속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② 거절하게 하시는 하나님.
모세가 보낸 사절단이 거듭거듭 에돔 땅을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원함에도 불구하고 에돔 왕은 완강하게 거절한다.
18절에서 에돔 왕은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라고 하면서 거절한다.
20절에서도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라고 거절한다.
에돔 왕은 계속 거절함에도 불구하고 에돔 땅을 통과하려고 하면 막강한 군사력을 대동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는다.
20-21절에 보면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므로,”라고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모세가 사절단을 보내서 에돔 땅을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원하도록 감동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에돔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청원을 거절하게 하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왜 에돔 왕은 거절하였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순하게 에돔족들이 거주하는 땅을 지나가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에돔족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에돔족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냥 지나서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조상 적부터 대대로 거주하는 땅을 점령하려고 침략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 쳐들어오는 것이라면, 에돔족들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막아서야 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에 일본의 풍신수길은 명나라를 치러 갈테니 명나라를 치러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는 명목으로 우리 조선을 침략한 것이다.
200만 명이 넘는 대민족이 자신들의 거주지를 지나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200만 명의 사람들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가축들도 함께 지나가는 것이다.
200만 명의 사람들도 지나갈 때,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잠을 자면서 지나가야 하는 것이고, 양이나 염소나 소나 나귀, 닭, 오리 같은 가축들도 무언가를 먹고 마시면서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이 지나간 흔적은 엄청난 피해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10재앙을 내릴 때에 메뚜기 떼를 보내서 애굽 제국에서 나오는 모든 식물들을 먹어 치우는 재앙을 내린 것과 같은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이 뻔한데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지나가라고 허락할 수 있겠는가?
허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거절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막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에돔족들이 거절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거절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만 감동시켜 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구촌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감동을 주실 수 있는 분이다.
③ 돌아가는 길을 택하도록 하시는 하나님.
21절에서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족들이 거주하는 땅을 지나가면 가장 빠르게 요단강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좀 힘들고 어렵고 시간이 더 많이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길로 이끌어가신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택하도록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고자 하면 못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에돔 왕이 완악하게 거절할지라도 에돔 왕과 에돔 족들을 징벌하시면서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쉬운 길을 열어갈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쉬운 길을 열어주지 않으시고 어려운 길을 택하여 가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이처럼 막으시면서 다른 길로 이동하게 하시는 것일까?
ⓐ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려고 계획하는 시간이 아직은 남아 있다.
아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가 아니다.
물론 이들은 가나안 땅 가까이 까지 이동하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계산하고 있는 시간에 정확하게 맞추어서 일을 진행해 나가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그 정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약간 딜레이시키면서 지체하시기도 하시는 분이다.
우리들이 아무리 서두르기도 하고, 왜 빨리 안 되냐 하면서 안달하기도 할지라도, 우리들이 빨리 빨리 응답해 달라고 금식기도하고, 철야기도하고, 작정기도하면서 매달려도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시간대에 맞추어서 역사해 가시는 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설령 우리들의 마음이 바빠서 서두른다 해도 하나님은 느긋하고 천천히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대에 맞추면서 인도해 가실 뿐이다.
그러니 왜 빨리빨리 안 되느냐? 왜 빨리빨리 서둘러서 하지 않느냐? 지금이 얼마나 바쁜데 이렇게 늦장 부리고 있느냐? 고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 시간대에 맞추어서 인도해 가심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묵묵히 우리들이 걸어갈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 형제이기 때문에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고 계신다.
에돔족의 조상인 에서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야곱은 형제지간이다.
모세가 에돔 왕에게 사절단을 보내서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원했을 때에 에돔 왕이 비록 피해를 입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을 크게 먹고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면 하나님께서 에돔 족속들에게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을 주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에 그랬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과 에돔 족속은 형제지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에돔족이 피해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신명기 23:7에서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에서의 후손들로 형성된 에돔족을 보호해 주고 계신다.
에돔 왕이 거절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길로 돌아가지 않고 에돔 길을, 왕의 큰 길로 통과하려고 했다면 틀림없이 이스라엘과 에돔족은 큰 전쟁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두 민족 다 큰 피해를 당하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전쟁이기 때문에 에돔족속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형제지간인 두 민족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로 인도해 가시는 것이다.
돌아가는 길이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오히려 돌아가는 길이 더 은혜롭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고, 에돔족과는 형제지간이기 때문에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하여 돌아가는 길로 인도해 가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활짝 열어주지 않으시고 거절당하여 다른 길로 돌아가게 하는 것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계획과 섭리와 뜻이 담겨져 있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빠른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감으로 인하여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다른 길로 선택하여 그 길로 인도해 가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열고, 그 길로 인도해 가시기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순응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B4 & L4.
사도바울 일행들이 제2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사도행전 16;6-7의 말씀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바울 일행에게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아시아 지역에서 계속 전도의 길은 막히고, 계속 막히고 막히고 막히면서 열매도 나타나지 않는다.
계속 전전긍긍하면서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좋은 결과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에 밀리고 밀려서 드로아 지역까지 내려가게 되었는데, 밤 중에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바울에게 찾아오신다.
9-10절의 말씀을 보면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다른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의 길을 가로막으시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아무리 막아도 바울일행이 제대로 깨닫지 못하자, 환상으로 찾아오셔서 직접 마게도냐로, 유럽으로 건너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환상을 본 바울은 “아하, 아시아에서 계속 복음의 길이 막히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뜻이고, 의지이시구나. 하늘 아버지께서 다른 길을 예비해 놓으셨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시아 지역이 아니라 더 넓고 광활한 세상으로, 마게도냐로, 유럽으로 건너가서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라고 인도하시는구나라고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바울은 곧바로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지나서 유럽 땅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네압볼리라는 지역에 도착하게 된다.
네압볼리(Neapolis)는 오늘날 그리스의 작은 소도시인 카발라(kavalla)라는 지역이다.
오늘날 카발라에 가면 바울이 배에서 내려서 첫발을 내딛었음을 기념하는 돌이 놓여져 있다.
카발라에는 바울도착기념교회당이 세워져 있다.
카발라에서 에그나티아 도로를 따라서 산을 넘어서 들어간 곳이 마케도냐의 첫 성이었던 빌립보성이다.
바울의 일행은 안식일에 빌립보의 강가에서 유대 여자인 자주장사 루디아 여인을 만나서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고 빌립보교회가 세워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유럽지역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계기가 마련된다.
사도행전27장에 보면 바울이 죄수의 몸이 되어서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서 로마로 떠나게 된다.
마침 겨울이기 때문에 항해하기가 쉽지 않음을 깨달은 바울은 백부장과 선장에게 겨울을 지나고 나서 떠나자고 제안했는데도 선장은 더 좋은 곳으로 가서 겨울을 지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하면서 항해의 길을 떠난다.
이에 겨울에 자주 불어오는 유라굴로라는 태풍으로 인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물론 하나님께서 바울을 살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까지도 지켜주시지만, 겨울을 지난 후에 로마로 올라가자고 제안하는 바울의 말을 거역함으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지만 밀레도섬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마련된다..
하나님께서 쉬운 길이 아닌 좀 더 어렵고 힘든 길로 돌아가라고 인도하실 때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과 섭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믿음으로 확신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쉬운 길인 에돔 땅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른 길로 돌아가도록 인도하심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과 섭리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바울 일행이 전도하는 길을 가로막는 것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과 섭리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①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임을 고백해야 한다.
로마서 8:28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일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추진해 나가시는 구령의 사역을 진행시켜 나가신다.
그러므로 쉬운 길이 아니라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것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구령의 뜻과 의지를 실현해 나가시는 것이다.
꼭 좋은 일들만, 쉬운 일들만, 잘 되는 일들만 하나님의 거룩한 구령의 의지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일들, 어렵고 힘들고, 잘 안 되는 일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추진해 나가시는 구령의 의지와 계획을 실현해 나가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돌아가는 길도, 잘 안 되는 일들도, 어렵고 힘든 일들도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하심임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신앙인,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② 돌아가는 길에는 새로운 사명의 길이 열리게 됨을 확신해야 한다.
에돔 땅을 지나가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에돔 왕이 허락하여 에돔 땅을 지나갔더라면 아론은 에돔 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에돔 왕이 거절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 땅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하여 출발하여 호르산에 도착하여 진을 쳤기 때문에 아론은 호르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아론이 호르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아론의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대제사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계속 아시아 지역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던 바울에게 더 이상 아시아지역이 아닌 마케도냐로 건너가는 길을 열어주신 것에는 새로운 복음 전도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이다.
유럽의 복음화를 위하여 바울의 길을 다른 길로 열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가는 길에는 하나님께서 꿈꾸고 계시는 분명한 의지와 계획이 세워져 있음을 확신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의지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와 뜻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쉬운 일, 누구나 선택하여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정반대의 일들, 힘들고 어려운 일들, 어느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외면하는 일들이 우리들 앞에 주어진다 해도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와 계획과 섭리가 녹여져 있음을 믿음으로 확신하면서 감사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응하며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새로운 길을 선택하여 순종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으로 순종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생각이나 의지로 반항하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면서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지와 마음과 결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망한다.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하나님, 전화위복시켜 나가시는 하나님,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넘치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채워주시리라 믿는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②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③ 창세기 이야기 1권, 2권
④ 출애굽기 이야기 1권, 2권
⑤ 레위기 이야기
모두 9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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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주님의 거룩한 손길로 임마누엘하소서.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주님의 ㅡㄴ혜가 풍성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