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383
■ 2부 장강의 영웅들 (39)
제 6권 꿈이여 세월이여
제 5장 난세의 군주들 (3)
난세의 강물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정(鄭), 송(宋), 진(陳) 등 중원의 중소국들이 앞을 다투듯 초(楚)나라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시절이 지속되는가 싶더니, 홀연 초목왕(楚穆王)이 세상을 떠났다. 병사한 것이다.
초목왕(楚穆王)의 재위 기간은 12년.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웅려(熊侶)가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제 3대 패공이 되는 초장왕(楚莊王)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겠다.
이해는 BC 613년으로 진(秦)나라에 망명해 있던 진(晉)나라 대부 사회(士會)가 진강공(秦康公)을 속이고 귀국한 다음 해다.
그 해에는 유독 많은 임금들이 죽었다.
천자국인 주왕실에서는 주경왕(周頃王)이 재위 6년 만에 죽고, 태자 반(班)이 새 왕에 올랐다.
그가 주광왕(周匡王)이다.
또 초(楚)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기고도 그 후환이 두려워 스스로 항복한 진공공(陳共公)도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이은 임금은 진영공(陳靈公).
제나라 임금 제소공(齊昭公)도 죽었다.
여기서는 잠시 제(齊)나라에 관한 얘기를 해야겠다.
제(齊)나라는 제 1대 패공인 제환공을 탄생시킨 동방의 대국이다.
한때는 중원의 맹주로서 천하를 호령했었다.
그러나 제환공(齊桓公)의 죽음 이후 아들들의 후계 다툼으로 인해 급격히 쇠락하여, 이 무렵에는 발톱 빠진 호랑이에 지나지 않았다.
제환공(齊桓公)은 정실에게서는 아들을 두지 못했고 첩에게서만 여러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여섯 아들이 공실 내에 만만치 않은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 면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장위희의 소생 1공자 무휴(無虧)
소위희의 소생 2공자 원(元)
정희의 소생 3공자 소(昭)
갈영의 소생 4공자 반(潘)
밀희의 소생 5공자 상인(商人)
송화자의 소생 6공자 옹(雍)
이 중 제6 공자 옹(雍)을 제외한 나머지 5공자는 모두 임금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제환공이 생전에 세자로 책봉한 아들은 제 3공자 소(昭)였다.
그러나 제환공이 죽자 제1공자인 무휴(無虧)가 쿠데타를 일으켜 제3공자인 세자 소를 쫓아내고 스스로 군위에 올랐다.
하지만 송나라로 망명한 세자 소(昭)가 곧 반격을 시도해 무휴를 죽이고 끝내 자신의 몫인 임금자리를 차지하니, 그가 제효공(齊孝公)이다.
그는 형이자 앞의 임금인 무휴에게 시호를 내리지 않았다.
제효공(齊孝公)이 재위 10년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번에는 제4공자 반(潘)이 조카인 세자를 죽이고 자신이 임금이 되었다.
그가 제소공(齊昭公)이다.
제환공의 여섯 아들 중 세 명이 임금이 되었다.
제소공은 별 신통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20년간 재위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나머지 공자들은 자신이 임금이 되어야겠다는 야심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중 특히 심한 것이 제5공자인 상인(商人)이었다.
상인(商人)은 제소공 밑에 있으면서 자신이 군위에 오를 일만을 생각했다.
이런 낌새를 눈치챘음인가.
제소공(齊昭公)은 위나라에 망명해 있던 형인 제2공자 원(元)을 귀국케 하여 정사(政事)를 맡겼다.
이를테면 정치적 연합을 시도한 것이다.
야심이 없는 제6공자 옹(雍)만은 여전히 초나라에 망명하여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상인(商人)은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작전을 바꾸어 제소공이 죽은 후의 틈을 노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 빈민층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곡식이 모자랄 때는 빚까지 내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조했다.
이러한 그의 선심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임치성 내에서뿐만 아니라 제(齊)나라 전역에 걸쳐 제5공자 상인(商人)의 자비로움과 후덕함은 널리 소문이 났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그의 집과 별장에는 늘 수십 명의 장사(壯士)들이 모여 아침저녁으로 훈련하고 있을 줄을...
그런 중에 제소공(齊昭公)이 세상을 떠났다.
제환공이 죽은 지 만 30년 되는해인 BC 613년의 일이었다.
죽은 제소공에게는 세자가 있었다. 사(舍)가 바로 그였다.
세자 사(舍)의 생모는 소희(昭姬)라고 불리었다. 제소공의 부인 희씨라는 뜻이다.
소희(昭姬)는 정실부인이었지만, 남편 제소공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했다.
그래서 궁실 내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세자 사(舍) 또한 재주와 덕성이 없어 백성들의 신망이 두텁지 않았다.
그러나 세자는 세자였다.
제소공이 죽자 사(舍)가 그 뒤를 이어 임금에 올랐다.
아직 제소공에 대한 장례를 치르기 전이었다.
어느 날 밤, 혜성이 빗발처럼 반짝이며 북두(北斗) 사이에 나타났다.
지금도 점성가들 사이에 그러하지만, 그 당시에 혜성은 더더욱 불길한 징조였다.
복관(卜官)이 점을 쳤다.
- 송, 제, 진(晉)나라 임금이 장차 모두 변란으로 죽을 징조입니다.
제 5공자 상인이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송, 진나라의 일은 내가 알 바 아니다.
제(齊)나라에서 변란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나밖에 없다.'
그 날 밤, 상인(商人)은 집에서 몰래 기르던 장사들을 시켜 빈궁 앞에 앉아 있는 세자 사(舍)를 목 베어 죽였다.
그러고는 조당에 신료들을 불러 모아놓고 외쳤다.
"이번에 즉위한 사(舍)는 어느 모로보나 군주의 자격이 없다.
그래서 내가 우리 형님인 원(元) 공자를 위해 사(舍)를 죽였다."
이 말을 듣고 제 2공자 원(元)은 사색이 되었다.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난 네가 오랫동안 군주가 되려고 애써온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번 일에 나를 끌어들이는 것인가?
나는 너를 임금으로 섬길 수 있어도, 너는 나를 임금으로 섬길 사람이 못 된다.
그러니 너는 딴소리하지 말고 속히 임금이 되어라."
마침내 5공자 상인(商人)은 꿈에도 그리던 제나라 임금에 올랐다.
그가 제의공(齊懿公)이다.
그러나 제 2 공자 원(元)은 속으로 제의공을 몹시 미워했다.
그때부터 그는 병을 핑계삼아 집 안에 틀어 박힌 채 조정 출입을 일절하지 않았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