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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진리의증인
메시지288(설100, 마태103) 가나안 여자의 믿음
“21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5:21-28)
서론: 어느 날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 북쪽에 위치한 이방인의 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땅인 사마리아에는(북 왕국 이스라엘 땅) 자주 방문하셨지만, 이스라엘 국경을 벗어나 이방인의 땅에 들어가신 것은 본문의 기록이 유일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느냐?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입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잠시도 쉬실 수가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마태복음 8:20).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잠시 쉬시기 위해 이스라엘 국경을 벗어나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지만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에서도 쉬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두로와 시돈에서도 많은 병자들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신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는 “가나안 여자의 믿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가나안 여자는 모성애의 지극한 사랑으로 그녀의 귀신들린 딸을 구원했습니다.
가나안 여자에게는 사랑하는 딸이 있었는데 귀신이 들려서 그녀의 인생에 고통의 멍에가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가면 혼자서 웃고 중얼거리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건강할 때나 병에 걸렸을 때나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귀신이 들려 이상한 행동을 할 때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럽겠습니까? 가나안 여자도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귀신들린 딸의 치료는 약물이나 인간의 의술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가나안 여자는 사랑하는 딸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귀신들린 딸을 고치고 말겠다는 가나안 여자의 집념과 용기가 어디서 나왔느냐? 딸을 사랑하는 가나안 여자의 모성애에서 나왔습니다. 사랑 앞에는 고난이나 불행이나 어떤 운명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입니다. 오매불망(寤寐不忘) 자나 깨나 사랑하는 딸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 살아가던 가나안 여자는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죽은 자도 살리고 귀신도 쫓아내고 어떤 병이든지 다 고친다는 예수님이 그녀의 마을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에게 이보다 복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가나안 여자에게 예수님의 방문 소식은 복음 중에 복음이었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께 호소하여 그녀의 딸의 병을 고친 것입니다.
인생에서 기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은총의 찬스(chance)입니다. 그러나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지 않습니다. 기회는 기회를 만들고 기회를 찾고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자나 깨나 딸에 대한 생각과 걱정으로 살아가는 가나안 여자가 딸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런데 딸의 문제로 근심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 죽은 자도 살리고 귀신들린 사람을 고친다는 예수님께서 그녀의 마을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사람의 눈과 귀는 자기가 원하고, 자기가 관심을 갖는 방향으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듣지 못해도 자기의 관심사에는 귀가 열리고 자기의 관심사는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같은 잠자리에서 아빠는 아이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지만 엄마는 아기의 작은 소리나 작은 움직임에도 잠이 깹니다. 이런 현상은 엄마의 마음과 생각이 아기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자가 딸에 대한 생각으로 기도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녀의 마을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이방인이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메시아에 대한 호칭인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부른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다는 뜻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사랑하는 딸을 위해 예수님이 방문하시기 전부터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의 믿음과 딸을 사랑하는 가나안 여자의 모성애에 감동하셔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습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뜻입니다. 딸을 위한 가나안 여자의 사랑과 정성에 감동하셔서 그녀의 딸을 고쳐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사랑하고 노력하고 기도하면 길이 열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가나안 여자는 모성애의 지극한 사랑으로 그녀의 귀신들린 딸을 구원했습니다. 가나안 여자처럼 어떤 일이든지 뜨거운 사랑과 열정으로 기도하고 노력하셔야 신앙과 인생에 승리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가나안 여자의 믿음은 인내로 승리한 믿음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참고 인내하여 승리한 것입니다. 재능 있는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노력이 성공의 아버지라면 인내는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인내심이 어디서 나오느냐? 사랑과 믿음에서 나옵니다. 사랑이 없으면 인내 할 수 없고 믿음이 없으면 인내할 수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인내하며 자식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거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어떤 병이든지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린다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큰소리로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싫다든지 좋다든지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여자는 계속해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전히 못 들으신 척 아무 말씀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무반응은 가나안 여자가 당한 첫 번째 시험입니다. 인내심이 없고 딸의 병을 고치고 말겠다는 집념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무반응에 포기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자는 단념하거나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멸시를 당하고 무시를 당한들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귀신 들린 병은 인간의 의술이나 인간의 능력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것을 가나안 여자는 그녀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나안 여자에게 예수님은 사랑하는 딸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며, 마지막 기회입니다. 여자는 계속 큰소리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여자가 계속 부르짖고 소리를 지르자, 제자들이 얘수님께 “여자가 저렇게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고쳐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복음 전도자로 파송하실 때도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0장).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서 복음화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는 예수님 말씀이 가나안 여자에게는 절망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방인인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딸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찾아온 가나안 여자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절망적인 말씀입니다.
그래도 가나안 여자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님께 딸을 고쳐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나안 여자에게 더욱 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자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는 이스라엘 사람을 말하고 개들이란 가나안 여자를 포함한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옛날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는 자들은 개와 같다고 이방인을 개라고 멸시했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 얼마나 절망적이고 모욕적인 말씀입니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줄 수 없다는 예수님 말씀은 가나안 여자에게 세 번째 시험입니다. 첫 번째 시험은 예수님의 무반응이었고, 두 번째 시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이며, 세 번째 시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셔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오히려 지혜롭고 재치 있는 대답으로 예수님께 칭찬을 받고 그녀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줄 수 없다’는 예수님 말씀에 가나안 여자는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자의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 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나는 이방인으로 개와 같이 부정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자기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의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나도 주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축복의 부스러기를 얻어먹기 원합니다.”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지혜로운 말에 감동하여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시고 귀신들린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겸손이며 얼마나 놀라운 인내이며 얼마나 지혜로운 대답입니까? 가나안 여자는 그녀의 인내와 겸손과 지혜로운 대답으로 그녀의 딸을 구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의 말을 못 들은 척하신 것도 시험이며,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는 말씀도 이방인인 가나안 여자에게는 시험과 낙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줄 축복을 개들에게는 나누어 줄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자는 인내하며 그 모든 시험을 이기고 예수님의 은총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는 예수님 말씀에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란 여자의 대답이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가나안 여자와 같은 사랑과 열정과 인내와 지혜만 있다면 성공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가나안 여자의 끈질긴 간구와 인내는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성도가 기도할 때 가나안 여자처럼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계획은 잘 세우고 거룩한 결심도 잘 하지만 끈기와 인내심이 부족해서 성공하지 못하고,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의 믿음은 시험과 난관을 극복하고 인내로 승리한 믿음입니다. 가나안 여자에게 주어진 축복과 행운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딸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어떻게 해서든지 귀신들린 딸을 고치고 말겠다는, 가나안 여자의 집념과 인내로 승리했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23,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었다면 그 원인은 주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부족했고, 우리의 기도가 부족했으며, 우리의 인내가 부족했고,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생의 불행과 실패도 우연히 오거나 저절로 오지 않지만 불행과 실패에서 벗어나는 것도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고 기회를 포착해서 전력투구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가나안 여자와 같은 사랑과 인내와 믿음을 가져야 신앙과 인생에 승리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목적과 뜻을 세웠으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그 사람이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을 하십니다.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하나님 축복을 받는 비결은 믿음과 겸손과 인내와 끈기입니다. 그리고 끈기와 겸손과 인내의 원천은 믿음과 사랑입니다. 가나안 여자처럼 믿음과 사랑과 인내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