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의 사업제안을 본사에 보고하라
2014년 8월 도쿄 CJ 재팬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날. 프레젠테이션용 레이저 포인터를 든 내 손이 유난히 떨렸다. 40여 명의 각 부서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표가 시작됐다. 며칠을 두고 밤을 새가면서 연습했지만 긴장은 풀리지 않았고 목소리는 평상시보다 높았다. 그래도 거의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연습을 해서인지 15분의 시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발표가 끝나고 사장님이 “계열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시너지를 극대화한 좋은 제안”이라고 칭찬해주셨을 때야 ‘인턴 생활을 무사히 마쳤구나’ 하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입식 스테이크 프랜차이즈 사업 제안
CJ 재팬에서 했던 발표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한마디로 이 장면은 ‘졸업 PT’였다. 글로벌무역인턴십 프로그램에 따라 일본에 파견돼 일하다가 인턴 생활이 끝나는 날, 일본 식품 시장의 트렌드를 벤치마킹해 한국 본사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소개하는 사업제안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나는 당시 퇴근 후 즐겨 찾던 식당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입식(立式) 스테이크 프랜차이즈를 한국에 소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 제안에 앞서 수요 조사가 필요했다. 1990년대에 일본의 유명규동(고기덮밥) 체인점인 ‘요시노야’가 한국에 진출했다가 매출 부진으로 철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님의 조언을 토대로 한국의 소비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그들의 외식 습관, 희망 가격 등의 항목을 직접 작성해 SNS를 통해 주요 타깃인 20~30대 미혼 직장인과 대학생 100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면서 팀 직원들과 함께 일본 식당을 방문해 음식의 맛과 가격에 관해 의견을 나눴고, 식당 내부 사진도 촬영해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보충해나갔다.
PPT 초고가 완성된 뒤에는 퇴근시간 이후 회의실을 빌려 팀장님과 함께 2주간 내 의견이 최대한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발표 연습을 했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내용이 보이면 즉시 삭제했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면서 최종 발표일에 맞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사업제안 발표 당일, 많은 직원들이 모인 가운데 그간 공들여 조사하고 다듬은 내용을 발표했다. CJ가 자랑하는 ‘빕스(VIPS)’의 서브 브랜드인 ‘VIPS standing steak bar(가칭)’로 런칭하되, ‘빕스’의 숙련된 경험과 시설을 활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이에 사장님이 “문진호 군의 오늘 발표 내용을 좀 더 다듬고 발전시켜 본사에 제안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신 것이다.
뚜렷한 동기에서 뚜렷한 행동이
내가 글로벌무역인턴십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부러움’이었지 않나 싶다. 수년 전 동갑내기 친구가 인턴십에 지원하고 독일에서 근무하는 것까지 봤기 때문이다. 파견 전 국내교육부터 파견 후 인턴십 과정까지 한국무역협회의 치밀한 준비 아래 흔치 않은 경험을 하는 친구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꼭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싹텄던 것이다. 기본적인 지원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1~2년 전부터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준비를 해나갔다(개인적으로 어학시험 같은 자격시험은 단기간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내 인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이런 프로그램은 평소 본인의 실력 향상에 의미를 두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요건을 갖춘 뒤에는 지원 동기는 뚜렷한지, 무역인턴십을 통해 경험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6개월이란 시간과 그 시간에 벌어질 일은 친구가 부럽다고 무조건 따라할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하던 프로그램에 합격했고, 그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단기간에 많은 무역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배운 내용은 그때그때 시험을 통해 평가받았기 때문에 그만큼 긴장도 많이 했고 면학 분위기도 훌륭했다. 1박 2일 간의 정신교육 시간 또한 기억에 많이 남는데, 다소 서먹했던 연수생들끼리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자 삼성동을 벗어나 공기 좋은 곳에서 아침체조를 하면서 맛있는 밥을 함께 먹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통합 페이스북을 구축하다
CJ 재팬에서 내 일은 사업기획팀 직원들의 업무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번역에서부터 통역, 감수, 시장 조사, 자료 작성, 복사, 스캔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온갖 기본 사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6개월의 인턴기간 중 후반기에 해당하는 3개월 동안은 기본 업무에 더해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맡아서 했는데, CJ 재팬에 마케팅 고문님이 새로오시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단기 계획과 중장기 계획 두 가지를 실무자와 비슷한 입장에서 추진했다. 단기 계획은 일본에 진출한 CJ 재팬 9개 계열사의 통합 페이스북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일이었다. 계열사별로 제각각 운영되던 페이스북을 통합해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함과 동시에 향후 중장기 마케팅 플랜의 근간이 되는 통합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통합 페이스북을 구축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계열사별 페이스북 담당자들을 만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간의 운영 노하우와 개선사항 등을 듣는 한편, 통합 구축의 취지를 설명해 전사적 차원의 백업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페이스북의 구축과 운영을 도와줄 광고 대행사를 선정했다. 대행사에 제안을 요청하기에 앞서 나부터 CJ 재팬과 일본 진출 계열사의 사업현황 및 목표를 파악해야했다. 그래서 한 달간 마케팅 고문님과 계열사를 돌아다니면서 각 법인장님들로부터 사업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는 한편, 필요한 자료는 메일로 요청해 정리해 나갔다. 이를 토대로 여러 광고 대행사들과의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직접 CJ 재팬을 설명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적합한 업체를 선택해 함께 통합 구축작업에 들어갔다.
페이스북 구축 및 운영의 주된 프로세스는 각 계열사가 발신하고자 하는 광고의 소스(source)를 광고 대행사에 전달해 전문 카피라이터의 손을 거친 뒤 페이스북을 통해 발신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내가 자연스럽게 광고 대행사와 9개 계열사를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 담당자와 광고 대행사 카피라이터들로부터 “한 달에 60회의 광고를 발신하다 보니 일상 업무에 지장이 있다”는 의견을 듣고 마케팅 고문님과 협의해 두 가지 결정을 통해 업무를 효율화하기로 했다. 먼저 계열사 간 협업을 통해 업무량을 줄였다. 한 달에 한 번씩 계열사 담당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업무 개선방향에 대해 토의했다.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방송’과 ‘외식사업’이라는 이업종 계열사 간의 합작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합의할 수 있었다. 해당 CJ의 방송 콘텐츠를 이용하는 고객이 CJ의 외식체인을 방문하면 혜택을 주는 이벤트였는데, 이벤트 기간 동안에는 지속적인 정보 발신이 가능해 담당자들의 업무량 감소에 도움이 됐다.
일을 하다 보니 광고 대행사에게 주인의식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메일이나 유선으로 처리 가능한 부분도 직접 방문해 사소한 것까지 의견을 나눔으로써 수정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다. 이를 통해 대행사가 업무에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했고, 이를 통해 단순한 갑-을 관계를 벗어나 CJ의 브랜드와 여러 상품을 일본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질 수 있었다. 페이스북 원고가 마감되기 일주일 전부터는 매일 같이 야근을 하면서 나 또한 ‘이건 내 일’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대행사와 함께 오·탈자 하나까지 끈질기게 검토해 최종 발신 정보의 완성도를 높여 나갔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이 모이고 모여 통합
페이스북을 런칭한 것은 물론, 한 달 만에 400명의 팬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업무를 하면서 느낀 점이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만 접하던 SNS를 기업 입장에서 디지털 마케팅의 도구로 보게 된 것이다. 또한 초기 페이스북 구축과정에서 마케팅 예산을 과도하게 잡지 않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전 조사와 계획, 이와 동시에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중장기 계획은 내년의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마케팅 플랜을 수립하는 것이었는데, 인턴 기간 중 마무리할 수 없어 많이 아쉬웠다. 대신 덴츠, 하쿠호도 같은 일본 굴지의 광고 대행사들과의 수십 차례에 걸친 미팅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 기타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저도 cj 식품사업부와 함께 봉사 활동을 같이 한적이 있는데 직원들의 섬김에 감탄하고
지역 사회 계발에 애쓰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참여했던 봉사대원들 왈 앞으로 cj 식품만 먹을 께요?ㅋㅋㅋㅋ
저도 한번 들어가서 배우고 싶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