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교회(왕상8:1-11)
갈등
1. 오늘 저녁에는 솔로몬 시대로 갑니다. 솔로몬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는 지혜를 대표하는 사람, 호화로운-럭서리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 세계에서 최고의 영화를 누렸던 사람, 많은 여자와 결혼했던 사람(백제의 의자왕처럼), 성전을 건축한 사람, 시와 잠언을 좋아하던 사람, 이런 모든 것을 그가 누리게 된 배경은 아버지를 잘 만났기 때문입니다.(다윗) 솔로몬은 재벌 2세와 같아요. 솔로몬의 생애 중반기 이후는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스라엘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는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열왕기상 11장부터 나옵니다. 열왕기상1-10장까지는 솔로몬의 완전하고도 행복한 삶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어요.
오늘 본문도 솔로몬이 가장 행복한 때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이 이루지 못한 숙원을 이뤄냈습니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화려한 성전을 지을만한 능력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일을 과감하게 하지 않았어요. 이것이 다윗이 솔로몬이나 다른 왕들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이 여기서부터 출발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한 것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나이도 어렸고, 왕으로 취임하며 통치의 경험이 없었던 때라 아들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자기 생전에 최대한 준비를 해주었습니다.
2. 솔로몬은 성전건축의 재정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현대 교회들이 가장 부러워할 것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고요. 우리 교회야 하나님만 바라보며 건축도 하고 나가고 있습니다만. 솔로몬이 아버지가 하지 못한 숙원을 성취하고 성전 봉헌식을 할 때 그의 감격은 참으로 컸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겼어요. 1절,“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로 소집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고 장로들이 다 봉헌식에 와서 언약궤를 옮기는 행렬에 참여했습니다. 이 행렬의 모습은 3-4절,“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솔로몬은 언약궤만 아니라 성막 안에 있던 기구들도 일체 성전으로 옮기도록 했어요. 이것들을 옮기는 모습을 보면 수레나 어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이 옮겼어요. 그것도 아무나 아니고 특정 사람들만이 메고 옮긴 모습입니다. 이렇게 옮긴 이유가 무엇이었고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갈등 심화
3.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축제 가운데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5절,“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오늘 우리는 예배 가운데 헌금을 하지만, 구약 시대 제사에는 헌금이 아니라 제물을 드렸어요. 제사에 참여하는 이들이 모두 제물이 필요했으니, 양이나 소로 제물로 드렸던 당시의 풍경을 잘 그려주었습니다.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셀 수도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지성소로 옮겼습니다. 이것이 위치하는 곳이었어요. 성전은 성막과 구조가 비슷합니다. 성막은 천막으로 만들어 이동할 수 있었고, 성전은 건축물로 만들어 고정식이었을 뿐입니다. 성전의 구조는 매우 간단했어요. 성막 뜰(마당) 안에 건축물로는 성소와 지성소가 연결되었습니다. 지성소는 성소를 지나서 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출입구가 따로 없었습니다. 언약궤가 성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드러내줍니다.
4. 언약궤를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에 두었습니다.(6절) 그룹은 천사 모양의 조각이었어요. 우리 말 음역으로는 그룹이라고 부르지만, 히브리어는 케루빔입니다. 영어로는 체루빔이라고 의역을 했어요. 언약궤 위에 이 조각을 올려놓았습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7월 10일), 정결한 짐승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왔습니다. 대제사장은 준비한 피를 속죄소라고 불리는 언약궤 위 그룹 날개에 뿌리며 제사 의식을 최종 마쳤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언약궤 안에 두 돌판만 남았습니다. 9절에서 정보를 주었어요. 싹이 났던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 항아리는 없어졌습니다. 한때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던 신비로운 역사도 있었어요.(사무엘상6장)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궤와 성전의 기구들이 성막에서 성전으로 이사를 마쳤습니다. 제사장이 기구를 다 성소에 옮기고 나올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5. 10-11절,“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성경에서도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구름 때문에 제사장이 서 있기도 힘들었습니다. 이 현상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다는 이 말씀을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실마리
6. 오늘 본문은 짧지만, 성경에서 찾아보기 힘든 진기한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성막 시대가 종결되고 성전 시대가 시작되었어요. 다윗은 전쟁을 많이 치르며 피를 많이 흘려서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대상22:8, 다윗이 솔로몬에게 한 말)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 왕을 이어서 다윗이 집권하며 이스라엘을 통일하였습니다. 그가 땅을 넓히면서 이방인들과 전쟁까지 하며 부득불 피를 계속해서 흘려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허락하시는 범위를 정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허락하지 않으셨던 성전건축을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이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아버지의 유언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잘 순종했어요.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이 율법을 잠시 잊고 실수했던 전철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궤와 성막의 기구들을 수레를 이용하여 옮기지 않았습니다.(웃사가 죽었던 일) 언약궤는 레위인들 가운데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게 했고, 나머지 성막 기구들도 율법을 따라 정해진 레위인들이 각각 메어서 이사를 하도록 했어요. 부모가 한 실수를 자식이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7. 모세 때 주셨던 율법이 오랜 세월 뒤에 솔로몬 때에도 적용되어 순종하는 멋진 모습입니다. 이런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질서 있고 성결하게, 성별되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어요.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저기 장소가 아니라, 그의 통치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곳에 임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며 축제의 봉헌식이 진행되었던 곳에 진기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이것은 모세 이후에 처음 보는 현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세상 구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름이 성전에 가득했어요. 이 구름으로 제사장이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일어난 현상입니다. 구름이 모습이나 영향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다고 오늘 본문이 전해줍니다. 하나님은 아무 때나 아무 곳에 임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준비된 곳에 임하십니다.
8. 이런 곳이 모세 시대에 시내산이었고, 솔로몬 시대에 성전 봉헌식 현장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8장은 66절에 걸쳐 길게 성전 봉헌식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우리는 오늘날 성전-교회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어요. 그것은 교회 건물의 유무. 교회가 자기 건물이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이 없습니다. 건물이 얼마나 크냐, 교회 예배실 좌석이 몇 석이냐 상관이 없습니다. 교인들이 몇 명이 모이느냐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그의 영광이 가득한 곳이냐가 참다운 교회의 증거입니다.
복음 제시
9. 구약에서 성막 또는 성전의 구조와 기능은 각각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은 철저히 제사를 위한 구조로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와는 상당히 다른 용도였어요. 솔로몬 시대에 성전은 짐승 제사를 중심으로 하였습니다. 오늘은 짐승 제사가 없습니다. 짐승 제사가 사라진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죄는 예배를 통해서 각자 죄를 고백함으로 사함받습니다.
요일1: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사도 요한은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은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것이라고 직언했습니다.
기대
10.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야 합니다. 언제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임하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답을 주었어요. 솔로몬과 이스라엘이 모두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순종할 때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하나님의 은혜를 빙자하여, 너무 방자하게 살아갑니다. 독일의 순교자가 본회퍼가 지적했던 값싼 은혜입니다. 죄를 쉽게 지으면서도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는 모습이 많이 나타납니다. 심히 두렵고 걱정되는 한국교회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는 거리가 먼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은 임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며,“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경고했습니다.(6:7)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와 우리 한국교회가 회개할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거나 부흥을 구하니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기만 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11. 이것이 세례 요한이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라며 설교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개인-가정-교회 공동체에 하나님은 임하시지 않아요. 하나님의 영광은 이들에게 머나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나 기대하는 것뿐입니다. 이 땅에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해요. 우리가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도 솔로몬의 성전 봉헌 때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도록 이 시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