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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부 북한강 중류에 위치한 군.
동쪽은 강원도 춘천시·홍천군, 서쪽은 포천시·남양주시, 남쪽은 양평군, 북쪽은 포천시와 강원도 화천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16'∼127°37', 북위 37°14'∼38°03'에 위치한다. 면적은 843.48㎢이고, 인구는 5만 7,108명(2008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6개 면, 125개 리가 있다. 군청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 있다.
동북지방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쪽에는 광주산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지나고 남쪽에는 북한강이 동서로 흐르고 있다.
북쪽의 광주산맥의 줄기에는 화학산(華虐山, 1468m), 응봉(1435m)·촛대봉(1125m)을 비롯한 1000m 이상의 높은 산 외에 가덕산(加德山, 858m)·북배산(北培山, 867m)·계관산(鷄冠山, 855m)·보납산(寶納山, 330m) 등이 있다. 이것들이 강원도의 화천군 및 춘천시와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서쪽에는 국망봉(國望峰, 1168m)·강씨봉(姜氏峰 830m)·청계산(淸溪山, 849m)·원통산(圓通山, 567m)·현등산(縣燈山, 936m)·주금산(鑄錦山, 814m)·개위산(675m)·서리산(825m)·축령산 등이 있다. 이것들이 경기도 포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중앙에는 명지산(明智山, 1267m)·매봉(927m)·칼봉산·불기산(701m)·대금산(601m) 등이 있다.
이 지역을 흐르는 하천으로는 북한강과 그 지류인 가평천과 조종천(朝宗川)이 있다. 북한강은 동서로 흐른다. 북면에서 발원하는 가평천과 하면에서 발원하는 조종천은 15개의 지류와 합류하여 곳곳에 분지를 만들면서 북서∼동남향으로 흘러 북한강에 합류한다. 이들 하천과 북한강이 만나는 외서면 청평 사이에는 15km의 좁은 통곡(通谷)이 발달하고 있다. 이 통곡은 경춘가도와 경춘선이 지나는 교통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강 남쪽에는 장락 산맥이 남북으로 지난다. 이 산맥의 동쪽에 있는 왕터산(410m)·나산(628m)·봉미산(856m)이 홍천군, 양평군과 경계를 이룬다. 서쪽에는 화야산(化也山, 755m)·통방산(通方山, 650m)·중미산(仲美山, 834m)이 양평군과 경계를 이룬다. 중앙에는 청평호(淸平湖)가 있으며 주변에는 넓은 분지가 발달하고 있다. 그리고 광주산맥의 지질은 대부분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이다. 북한강 남부지역은 규암층으로, 청평호 주변은 변성퇴적암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평군은 중부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 대륙성기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연평균기온 10.5℃, 1월 평균기온 ·6.6℃, 8월 평균기온 25.3℃로 같은 위도의 해안지역보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연강수량은 1336㎜이고 8월 평균강수량은 300㎜를 상회하고 1월 평균강수량은 30㎜이다. 무상기일은 180일로 서리는 10월 중순경에 내리고 4월 중순경에 끝난다.
구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가평읍 마장리 야철주거지(冶鐵住居址)가 발굴되었다. 여기에서는 민무늬토기·석기·김해토기·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 지방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조선시대 북방 부족사회이던 맥국(貊國)이 북한강을 지배하고 있었으니, 가평은 그 지배를 받아왔다고 믿어진다.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차지하자, 가평은 고구려 근평군(斤平郡, 또는 竝平郡)이 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에는 가평군(嘉平郡, 또는 加平郡)으로 개칭되었다. 속현으로는 조종현(朝宗縣)이 있었는데, 이것은 고구려 때에 심천(深川)·복사매(伏射買)라 불렸고, 신라시대에는 준수(浚水)라 일컬어졌다.
1018년(현종 9)가평은 춘주부(春州府)에 예속되었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북면 적목리에 성을 축조하여 난을 피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도성재’라고 하는 곳에 성곽의 흔적이 있다. 공민왕이 산 정상에 올라가 송경(松京)을 바라보았다고 하여 국망봉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1413년(태종 13)에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어 현감이 두어졌다. 1507년(중종 2)에 임금의 태(胎)가 봉안된 곳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가릉군(嘉陵郡)이라고 개명되었다. 1599년(선조 33)에는 명필 한호가 가평군수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는데 이를 계기로 시인·묵객과 학자들이 산수 좋은 이곳을 찾아와 학문에 전념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광해군 때에 김육(金堉)이 이곳에 와서 대동법(大同法)과 시헌력(時憲曆)을 연구하였으며, 그 아들 김좌명(金佐明)·김우명(金佑明)도 이곳 출신이다. 1697년(숙종 23) 역신 이영창사건(李榮昌事件)으로 현으로 격하되었다가, 10년 뒤에 다시 군으로 승격되었다.
양주목(楊州牧) 관할에 있던 가평군은 1888년(고종 25)강원도에 편입되었고, 1895년에는 경기도 포천군에 일시 편입되었다가 1년 후가평군으로 독립되었다. 『가평군읍지』에 의하면, 1871년 당시 호수는 2,744호, 인구는 6,814명, 7개 면 86개 리였다.
1927년에는 호수 6,163호, 인구는 3만 3,934명이었고, 1985년에는 인구 약 6만 명에 이르렀다. 1942년양평군 설악면이 가평군으로 편입되었고, 내서면·남면은 가평면으로 통합되었다.
1950년 6·25 때 가평이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자 청년들이 반공산악동지회·임산의혈대·학도의용대 등 결사대를 조직해 싸웠다. 6·25 때 이 지방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1958년 3월 15일가평읍 읍내리에 가평지구 전투전적비를 세웠다.
또, 읍내리에는 6·25남침 때 참전했던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뉴질랜드·영국 등 영연방(英聯邦) 4개국의 전공을 빛내기 위해 1967년 9월 30일 세운 영연방참전기념비가 서 있으며, 북면 이곡리에는 1975년 11월 7일 세운 캐나다군 참전기념비가, 북면 목동리에는 1967년 9월 30일 세운 호주군 참전기념비가 있다.
1963년 일부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져 외서면의 입석리·내방리·외방리가 양주군으로 편입되었으며, 1973년에는 가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이웃 양평군의 서종면 삼회리가 외서면으로, 노문리 일부가 설악면으로 편입되었다. 2004년에는 외서면의 이름을 청평면으로 바꾸었다.
가평읍 마장리에서 10여 개의 수혈주거지(竪穴住居址)가 발견되었다. 이 수혈주거지에서는 사철(砂鐵)을 녹여서 선철(銑鐵)을 생산한 흔적이 보인다. 유물로는 민무늬토기·석기·김해토기·철기가 공존하고 있어서 서기전 12세기경부터 서기후에 걸친 중서부지방 문화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사찰로는 운악산 현등사와 화야산 운곡암(雲谷庵)이 있다. 불교유적은 하면 하판리의 현등사(懸燈寺) 경내의 현등사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3호)이 있다. 이것은 고려시대의 탑으로 불교 조계종의 개조인 보조국사의 사리탑이다.
이 외에도 지진탑(地鎭塔)·함허대사부도(涵虛大師浮屠)·북악부도(北岳浮屠)가 있다. 특히 현등사 동종은 1619년(광해군 11)에 주조된 것으로 조선시대 범종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유교문화재로는 가평읍 읍내리에 가평향교가 있으며, 설악면 선촌리에 미원서원지(迷源書院址, 일명 景賢壇)와 외서면 청평리에 잠곡서원지(潛谷書院址)가 있다. 미원서원은 1573년(선조 6)경에 조광조(趙光祖)·박세호(朴世豪)·김식(金湜)·남언경(南彦經) 등 12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분묘로는 가평읍 하색리에 고려의 무신인 이방실장군묘(李芳實將軍墓,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5호), 상면 태봉리에는 명종·선조 때의 문신인 이정구(李廷龜) 선생의 묘(경기도 기념물 제79호)가 있다. 또한 영조·정조 때의 영의정 이재협의 묘, 명종·인조 때의 문신인 유몽인(柳夢寅)의 묘, 개화파 인물인 오경석(吳慶錫)의 묘가 군내에 있다.
군내 연안 이씨 종중에는 월사집목판(月沙集木板,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3호)과 연안이씨의 삼세비각(三世碑閣)이 보존되어 있다.
기념물로는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천보의 고가와 그 후원에 가평연하리향나무(경기도 기념물 제61호)가 있다. 하면 대보리에는 조종암(경기도 기념물 제28호)과 그 일대인 대보단이 있다.
문헌상 최초의 교육기관으로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된 가평향교가 가평읍 읍내리에 있다. 1529년 조광조를 추모하기 위해 경현단이 건립되었는데 1573년에 미원서원이라 일컬어졌다. 여기에서는 많은 유생이 교육을 받았다. 이 밖에도 외서면 청평리에는 김육을 추모하고 그의 학문을 본받기 위하여 잠곡서원(潛谷書院)이 세워졌다. 이 곳은 1707년에 사액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모두 철거되었고, 현재는 신위만이 안치되어 있다.
최초의 신교육기관은 1911년 개교한 가평명륜보통학교로서, 1919년 3월 16일 전교생들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 학교가 현재의 가평초등학교이다. 2008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3개 교(분교 3개 교), 중학교 6개 교, 고등학교 5개 교,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가 있다.
1982년에 민간단체로 출발한 가평향토문화추진협의회(가평문화원의 전신)는 각종 향토문화유물 및 자료를 조사, 정리하여 문화개발에 공헌하고 있다. 1985년 12월에 개관된 가평군립도서관은 청소년들의 면학에 크게 공헌할 것으로 기대된다.
종교기관으로는 불교사찰 48개, 천주교성당 4개, 개신교교회 94개가 있다.
이 지방에서는 경기도·강원도의 민속놀이가 대부분 행해지는데, 특유한 놀이로는 회다지놀이와 어린이놀이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가평읍 상색리의 회다지놀이는 다복하고 장수한 사람이 죽었을 때 호상이라 하여 슬픈 마음을 해학적으로 풀어 회다지소리에 따라 흥을 돋우면서 슬픔을 달래는 묘역작업을 놀이화한 것이다. 놀이는 상여행렬과 회다지놀이로 구분되는데, 상여가 장지로 갈 때에는 향두가를 부르며 간다.
장지에 도착하면 상여를 내려놓고 일부는 상여를 해체하고 일부는 산역을 시작한다. 회다지꾼 8명이 선소리에 맞추어 처음 6, 7분간은 느린 동작으로 2마치 회다지를 하다가 점점 흥이 나면 3마치 회다지로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회다지를 할 때에는 “슬프고 슬프도다! 석숭에 역만제를 어찌하여 슬프던가……”라고 시작되는 성토가를 부르며 한다. 이렇게 내광다지가 끝나면 광중을 제거하고 평토다지기와 봉분다지기를 하고 끝난다.
어린이들의 놀이로 말놀이·조조잡기 등이 있다. 말놀이는 여럿 중에서 대장 두 사람을 정해 대장이 손을 잡아 문을 만들면 나머지가 문 아래로 통과하는데, 마지막 사람이 통과할 때 막아서서 “콩죽이 좋은지 팥죽이 좋은지.”를 묻는다. 거꾸로 나머지 사람도 그렇게 물으면 콩죽편과 팥죽편이 구분되는데 양편이 같이 줄다리기를 하여 승부를 겨룬다.
조조잡기는 조조·공명·관우·장비 등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 쓰인 종이를 나누어 가지고는 ‘공명’을 집은 사람이 아무 아무에게 가서 ‘조조’를 잡아오라고 명하는 놀이이다. 만약 제대로 못 뽑았을 때에는 벌로 노래를 부른다. 그 밖에도 한쪽발귀신놀기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산신제·대동제 등의 동제를 신사(神祠)에서 지낸다. 신사는 마을 중앙에 있는 산 위에 설치되어 있으며, 두 칸 짜리 15평 정도의 규모이다. 제관은 촌락의 연장자가 생기복덕(生氣福德)한 남자 3인을 선정한다. 제관은 3일 전부터 부정한 것을 피하고, 촌락과 제관의 집에는 금줄을 치며 적색토를 뿌려둔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경우에는 마을에 맹호가 나타나서 사람과 가축을 해치고 괴질이 유행하며 마을에 싸움이 일어난다고 전해온다. 제물로는 검은 돼지·술·삼색과일 등을 진설하며, 제사가 끝난 뒤에는 제관 등이 음복한다.
설화로는 이 지역과 관련된 전설이면서도 다른 지역에도 두루 분포된 전설이 전승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아기장수전설과 장자못전설을 들 수 있다. 아기장수전설은 외서면 하천 2리에 전승되고 있다.
옛날 이 곳 어느 농가에서 사내아기를 낳았는데,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있었다. 낳은 지 3일도 안 되었는데 산모가 밖에서 돌아오니 어른 키만한 높이의 선반 위에서 아기가 놀고 있었다. 이 아기가 장수인 것을 알고 놀란 부모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맷돌을 아기 배 위에 얹어 눌러 죽였다.
그러자 서북쪽의 산에서 흰 용마가 솟구쳐 날아와 그 집 주위를 큰 소리로 울면서 돌다가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마가 죽은 자리라 하여 이 곳을 ‘마죽이(마직이)’라 부르며 용마가 나온 산을 마산(馬山)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또한, 용마가 나온 구멍에는 효험이 큰 약수가 있어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이러다가는 온 마을이 병신들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한 마을사람들이 개를 잡아 약수터에 넣자 약수가 말라버렸다는 이야기가 아울러 전해지고 있다.
또 ‘장자못전설’은, 옛날 부자집에 동냥하러 온 중에게 인색한 부자가 돈 대신 쇠똥을 자루 속에 넣어주었다. 이를 지켜본 그 집 며느리가 쌀을 한 되 주며 용서를 비니, 중은 내일 정오가 되면 뒷산으로 올라가되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튿날 정오에 뒷산을 향하여 고갯길을 오르던 며느리가 마을에서 나는 천둥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고 그 부자집은 연못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 연못을 장자늪이라 부르고 마을의 이름을 장자골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홀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온 산을 헤매다가 돌아와 보니 닭장 속에 수꿩이 여러 마리가 있더라는 가평읍 복장리의 장원한(張遠翰)에 얽힌 일화, 죽은 남편을 따라 순절한 북면 화악리 출신의 열녀 정씨(丁氏)의 일화 등 효자·열녀담이 전해지고 있다.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는 노동요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산악지대로서 밭이 많기 때문에 밭농사요가 중심인데, 「밭갈이노래」는 가락이 느리고 구성지다. 이것은 ‘이러’등 소 모는 소리로 구성된 여음이 중심이고, 일을 빨리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사설이 간간이 삽입되어 있는 아주 단조로운 노래이다.
여성들이 베를 짜면서 부르는 「베틀노래」도 많이 전해지는데 형식이 정연하고 내용도 풍부하다. “좁쌀같은 뉘를놓아/입쌀같은 고치따서/청실홍실 달아놓고/이월을경 가미찍어/한올엘랑 잉어걸고/구름엘랑 베틀놓고/황경나무 복바디집/왈칵달칵 짜노라니……”라는 「베틀노래」는 계수나무 찍어 베틀을 만들고 베틀을 난간에 놓는 대목으로 시작하는 일반적인 것과 달리 누에를 키워 고치 따는 것을 첫 대목으로 하고 있고, 「줌치노래」 등 타령요류의 사설을 수용한 것도 있다.
이 밖에도 「흥타령」 등 비기능요인 타령요류가 전하고, 경기잡가류도 많이 불린다. “구슬구슬 동풍 궂은 비 오구요/시화연풍에 임섞여 노잔다/에헤이 에헤요/어루마둥둥 네가내사랑이라.”와 같은 「상사노래」는 경기잡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상사노래」 가운데 “에―이에―차문주가하처재(借問酒家何處在)요/목동요지(牧童遙指) 살구나무촌이라/에라 놓아라 못 놓겠구나/총독 분부라도 못 놓겠구나.”는 사설과 후렴은 각기 다른 경기잡가류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민족항일기에 생겼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토지 중 임야가 83.5%, 경지가 9.4%, 하천부지가 3.2%이다. 2008년 현재 경지면적 4,049㏊ 중 논이 3,985㏊, 밭은 1,683㏊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다. 주요 농작물로는 쌀·콩·팥·옥수수 등이 있고 채소류로는 고추·배추·호박이, 과실류로는 사과·포도가 있으며, 특용작물로는 참깨·들깨 등이 있다.
최근 농가 부업으로 임산자원 개발이 장려되면서 잣·호도·도토리·대추·은행·표고버섯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잣은 경기도 생산량의 64%, 호두는 33%를 차지한다. 특히, 상면의 행현리와 상동리, 가평읍의 승산리 등이 주요 생산지이다.
축산업으로는 닭·돼지·토끼·사슴·노루 등이 사육되고 있다. 이 군은 내륙에 있으나 청평호를 중심으로 양식업이 발달하였다. 설악면의 회곡리·사통리, 외서면의 호명리는 잉어가두리 양식업이 활발하다. 제조업은 매우 빈약하나 섬유, 식료품, 비금속, 조립금속이 발달하였다. 전기시설로는 1943년에 건설된 청평발전소, 1980년에 건설된 양수발전소가 있다. 광업으로는 주로 규석이 많이 생산되며, 이 외에도 흑연과 고령토가 생산된다. 상업 시설로 정기 시장이 가평읍·설악면·외서면·하면 등에서 열리고 있으나 가평읍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교통은 국도 46호선이 남서∼북동방향으로 지나고 국도 37호선이 서북∼동남으로 지나 외서면에서 46호선과 만나고 있다. 국도 46호선은 흔히 경춘가도라 불리고 있는데 서울∼가평간 61㎞로 4차선 고속화 도로이다. 지방도로로 464호선이 국도 37호선과 설악면에서 분기하여 홍천군으로 지나고 있다. 철도는 경춘선이 국도 46호선과 평행하게 지나고 있다. 교통기관이 발달되기 전에는 서울과의 교류는 주로 뱃길에 의존하였다.
가평군은 높은 산맥이 곳곳에 솟아 있어 이웃과 교류가 어려웠으나 강원도 춘천시와는 남실·싸리재고개, 연천군과는 도성·강씨봉·갈마·노고시고개·귀목·화목·노루미, 남양주와는 수레넘어 고개 등을 통해 교류되었다.
이 지역의 광주산맥은 차별침식을 받아 화학산을 중심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완만한 기복을 이루면서 구조곡을 따라 하천이 흐르고 있으므로 주변에 많은 관광지를 형성하고 있다. 북한강은 이 지역의 동쪽 경계를 따라 흐르면서 청평호를 이루고, 그 지류인 가평천과 조종천 연안에는 작은 분지와 곡저지대가 형성되어 이 곳에 관광지가 발달되었다.
특히 북한강 연변에는 화강편마암이 차별침식을 받아 이루어진 기암절벽과 잣나무 숲이 우거져 천연의 피서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명산·폭포·계곡 등의 명승고적이 분포되어 있다.
관광명소로 유명한 곳은 북한강 연변의 피서관광지인 새터유원지를 들 수 있다. 이 곳은 주로 서울 거주 학생들의 단체훈련 장소로 사용되는 민박집이 많고, 요트, 수상스키훈련장, 윈드서핑 등의 물놀이 시설이 잘 되어 있다. 또한 신당3거리에서 약 6㎞ 거리인 광악분교 부근까지 절경을 이루고 있는 화악계곡과 화악산, 경기도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운악산, 설악면에서 양평군 옥천면에 걸쳐 있는 유명산, 가평읍에서 서북쪽으로 20㎞ 지점에 위치한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으로 유명한 명지산과 10m 높이의 직폭인 명지폭포가 있다.
북면 적목리에 위치한 속세와 단절된 신선마을로 알려진 조무락골과 목호폭포는 흐르는 물을 그대로 마셔도 좋을 만큼 깨끗해서 서울에서 온 피서객들에게 애용되고 있다. 청우봉과 녹수봉 사이의 녹수계곡에는 유원지가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울창한 잣나무숲이 삼림욕에 적당하다.
그 밖에 숲과 계곡이 때묻지 않은 산장유원지가 외서면 하천리에 있으며, 외서면 대성리에는 대성리유원지가 강변을 따라 8만여 평의 레저타운을 이루고 있다. 또한, 조종암·현등사·대보단·무운폭포(舞雲瀑布)·수락폭포(水落瀑布)·용추폭포(龍湫瀑布) 등은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 받고 있으며 청평호반 국민관광단지는 호반관광휴양지로 이용되고 있다.
조종암에는 암벽에 각자한 비문이 있는데 그 비문은 송시열의 필적이라고 확인되어 유명해졌다.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인도에서 온 마리타미 승을 위해 창건한 절로 알려지면서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