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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무(洪武) 13년 10월.
인간에게는 빈부(貧富)와 계급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속옷 나부랭이와 식사 후에 마시는 한 잔의 차에 이르기까지 등급에 의하여 격이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에도 예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계절이다. 땅을 가는 농부의 험한 손에 내리던 가을(秋)은 지금 이곳 황궁이 있는 금릉에도 똑같이 내리고 있다.
사나이.
비상하는 독수리 문양이 수놓아진 백색무복을 입고 황궁의 청석(靑石)이 반듯하게 깔려 있는 대도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어가는 품위있는 걸음걸이는 그가 곧 이 황궁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나이는 약관이 조금 넘어 보였을 뿐이나 그는 지나칠 정도로 잘 다듬어진 용모와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영준한 용모도 용모려니와 그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기상과 날카로운 면이 느껴지는 것이다.
규칙적인 걸음걸이로 걸어가던 사나이는 문득 걸음을 멈춘다.
그는 눈살을 약간 찌푸리고 있었다. 사나이의 시선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사나이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육순이 넘어보이는 한 명의 환관 복장의 노인이 포박된 채 개처럼 의금부 관원들에게 끌려가고 있는 광경이 비친 것이다.
"으음.......? 등태감(登太監)이.......?"
이렇게 중얼거린 사나이는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쓸데없는 일이겠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간다.
그가 향하는 곳은 황궁에서는 약간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커다란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날따라 황궁 내의 공기가 다소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본래 황궁은 언제나 경비가 삼엄한 편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살벌한 기운이 퍼져 있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황궁이라면 그에게는 집안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따라서 그가 모르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것은 사나이가 황궁 내에서 요직을 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보통 요직이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열 평 가량 되어 보이는 밀실이었다.
사방 벽에는 중원전도(中原全圖)가 벽지처럼 도배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딱딱하고 살풍경한 분위기였다.
이 밀실이 바로 대명황실의 최고 첩보기관인 동창(東廠)의 본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불과 몇몇의 요인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당금의 황제 홍무제(洪武帝)는 동창을 자신의 오른팔로 여기고 그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었다.
동창의 힘은 절대적인 것이다. 이들은 황가의 인물에서 고관대작에 이르기까지 마음대로 체포, 구금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역모의 가담자나 그밖의 불순분자들을 체포하여 심문한다.
그러므로 금릉의 권문세가에서는 동창 알기를 귀신 보듯 하는 것이다.
검은 태사의에 앉아 있는 역시 검은 옷의 청수한 인상의 중년인.
그는 언뜻 서당 훈장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창의 최고권좌에 앉아 있는 영반이었다. 수백 명의 생살여탈권을 한 손에 쥐고 대명부를 흔들고 있는 인물이었다.
대영반 장영걸(蔣英傑).
권문가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그는 황제의 직속이며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하룻밤에 권문가를 온통 피비린내로 진동케 할 수도 있었다.
전 금군대도독(禁軍大都督)이었던 장무혁(蔣武赫) 대장군의 친 아우이자 대명제국을 일으킨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지금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언제나 그가 신뢰하고 있는 인물의 낮고 침착한 음성이 들리고 있었다.
"부영반 장하영(莊河英),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장영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린다.
"들어와라, 하영."
그의 말투는 인자하게 들렸다. 들어선 청년은 백색무복을 입고 있었다. 바로 방금 전 청석대로를 가로질러온 사나이였다.
장하영은 앞으로 다가와 한 쪽 무릎을 반쯤 꺾어 예를 표했다. 그리고 일어서더니 곧바로 부동의 자세를 취했다.
그를 바라보는 장영걸의 시선은 부드럽기만 했다.
'기특한 놈. 볼수록 커지는구나.'
장하영. 그는 석년에 병사한 금군대도독 장무혁의 독자(獨子)이자 바로 장영걸 본인의 조카이기도 하며, 또한 동창의 부영반이기도 하다.
장래가 촉망되는, 아니 전도가 양양한 청년이었다.
"그래 그동안 별고 없었느냐?"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이었다. 동창 소속의 사람이라면 꿈속에서라도 듣고 싶어하는 말소리지만 장하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순간 장영걸은 내심 쓸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엇다.
'ㅉ. 여전하군. 녀석, 모처럼 삼촌을 보면 미소라도 지을 것이지........'
그는 섭섭하다. 그러나 그것이 조카 장하영의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장영걸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이곳은 동창밀실이고, 그가 조카를 부른 것은 공무가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대환관인 등소가 체포되었다."
".......!"
"예전에 등소는 자신의 양자인 등진강이라는 소년을 소태감으로 들여보낸 적이 있었다. 아마 너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
장하영은 안색이 변했다. 그는 웬만한 일에 안색이 변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진동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소태감 등진강을 알고 있었다. 워낙 인상이 강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소년이 며칠 전 이유없이 행방을 감추었다. 그런데 그 사건을 조사하던 중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
"소년이 행방을 감춤과 동시에 황궁의 비밀무고(秘密武庫)가 털렸다는 것이다."
".......!"
"그래서 등소가 그 책임을 지고 체포당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비밀무고에서 없어진 물건이 문제인 것이다."
".......?"
장하영은 이제까지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그러나 점차 그의 얼굴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천년하수오(千年荷首烏), 만년설삼(萬年雪蔘), 소림대환단(少林大還丹) 여섯 알, 구지자엽초(九枝紫葉草), 공청석유(孔淸石乳) 한 병........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영약류와 함께....... 아니다. 그런 것은 그다지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한 권의 중요한 문서(文書)가 없어진 사실이다. 그래서 너를 부른 것이다."
순간 장하영의 동공에서는 강한 의문이 떠올랐다.
'겨우 그런 일로 나를........'
아무리 중요한 물건이 없어졌다고 해도 그까짓 좀도적에 대한 일에 자신이 직접 나서야 되겠느냐는 강한 반발인 것이었다.
딴은 그렇다. 장하영은 동창이란 막강한 권력부의 부영반이다. 그런 그가 도적을 잡는 일에 직접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아무리 없어진 물건들이 중요하다고 해도 고작 약 나부랭이일진데........ 그 정도로 동창이 나선다는 것만 해도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자신을 장영걸이 친히 부르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때 그의 마음을 읽은 듯이 장영걸이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없어진 문서........ 아니다. 그것은 문서가 아니라 한 권의 무경(武經)이다. 그 무경이 무엇인지 아느냐? 이름을 들으면 너도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소수마경(素手魔經)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겠지?"
"소수마경!"
마침내 장하영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흘러 나왔다.
- 소수마경(素手魔經).
그 얼마나 놀라운 이름인가?
전설은 말한다.
.......소수혈옥광(素手血玉光)이 나타나면 천하가 피에 잠기게 되노라!
소수마경은 칠백 년 전 천축(天竺) 소뢰음사(少雷音寺)에서 파생한 악마의 무경이었다. 이 무공을 익히게 되면 손바닥이 투명한 흰색을 띄게 되며 공력의 정도에 따라 손바닥 한가운데(掌中) 혈옥색의 반점이 생긴다.
일단 이 무공에 적중하게 되면 생물은 결코 죽음을 피할 수가 없다. 만일 십이 성에 달하게 되면 심성(心性)이 변하여 악마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서운 마공이었다.
칠백 년 전 천축의 마승 파가랍(破伽拉)이 이 마공을 익혀 천축을 피로 혈세하고 중원으로 건너 왔을 때 중원은 도합 칠십오 개의 문파가 무너졌었다.
만일 당시 소림의 신승(神僧) 무한선사(無限禪師)가 소림의 백팔나한대진과 무당의 대칠성검진, 그리고 중원 무림의 일백팔인의 고수들이 연합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그를 제거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원에서 소수혈옥이라는 말은 곧 죽음과 공포의 대명사였다. 그로 인해 소수마경은 금단의 마경으로 불리워졌으며 어떤 인물을 막론하고 그 마경을 익히게 되면 전 무림의 공적으로 선포된다는 철칙이 생겼다.
그후 칠백 년이 흐르는 사이 소수마경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그 마경이 황궁무고에서 잠자고 있었을 줄이야.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마경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실로 전율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이 마경이 세상에 나간다면 머지 않아 천하는 피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는 이 일이 더 번지기 전에 마경을 회수하여야 한다."
장하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녕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그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느꼈다.
숙부 장영걸이 자신을 부른 것은 지당한 일이었다. 그가 생각하기로도 소수마경이 강호에 나간다면 이후로 벌어질 일은 상상하기도 무서운 결과가 파생할 것이다.
"너에게 환영팔신(幻影八神)을 주겠다. 적절히 부릴 줄로 믿는다."
환영팔신.
그들은 본래 사도 출신의 고수들이다. 후에 황궁에 투신하였으나 그들의 능력은 가히 신비경이었다. 그들이라면 무슨 일을 도모하든 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장하영은 본래 혼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위인이었으나 이번만큼은 환영팔신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이번에는 그도 거절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 만의 방식을 고집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허허........ 너의 무운을 빈다. 즉시 떠나도록."
장하영은 절을 한 뒤 밀실을 물러났다.
첫댓글 감사...
감사 합니다
즐감하고갑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줄감~!
감사해요
잼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ㅈㄷㄱ~~~~~~~~```````````````
즐감
즐~감 하고 갑니다.
즐감요~^^
즐감하고 갑니다.
즐독! 감사 합니다^^.
♡ 늘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